이것이 삶인가 봅니다
댓글
0조회
426추천
0
![as[20050319072733].gif](http://club.nate.com/cindex6/429/sh2745/18650120/1/as%5B20050319072733%5D.gif)
이것이 삶인가 봅니다
생활비가 쪼들려 아이들 학원비와
급식비마저 제때 못내어 가슴졸이며
한숨을 버릇처럼 내쉬는
내 심정도 모르는지 매달 독촉장은
우편함에 빼곡히 쌓여만가고
바깥에서 하는 일이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 남편의 술주정은
하루하루 늘어만 간다.
일자리 하나 구해보려고
각종 정보지의 구인란을 뒤적이다
나이 직장과의 거리 등을 내세우는
그쪽의 입장에 나는 언제나 쓸모없고
나이만 많은 아줌마로
뒤로 물러나 앉곤한다.
식당일을 안 다닌것도 아니고
부업을 안 해 본것도 아니건만
이제는 점차 하루가 다르게
내 능력의 한계가 다가옴을 절실히 실감한다.
야속하기만 했던 남편.
아이들 공부와 집안 돌아가는
형편 따위는 아랑곳 없이
자기 자신에만 충실했던 아이들의 아빠.
이 나이에 어쩔수없이
한 이불을 덮고 살고는 있다지만
남편에 대한 신뢰감이나
애정 같은 건 이미 오래전부터
한톨도 내 마음에 남지 않았음을
홀로 한숨지며 또 한번
내 팔자 사나운 팔자라
자신을 마구 헐뜯곤 한다.
독촉장이 우편함에 날아들다 이제는
먼지 묻은채로 수북히 쌓여
길바닥으로 흩어지고
나는 원인모를 속병까지 얻었는지
매일매일 아파서 드러눕는다.
학교 다녀온 큰딸은
가방 내려놓기가 무섭게
부엌쪽으로 향한다.
쏴아 물소리 들리고
딸그락 그릇소리 들리고 연이어
무슨 냄새가 방안으로 스며든다.
아프다고 누운 이 엄마를 위해
큰딸이 저녁밥을 짓는 것이다.
반찬도 없을텐데...
내가 아이들한테 그동안 너무 소홀했구나...
이유없이 눈물만 난다.
그래도 행여 아이들이
내 이런 나약한 모습에
상처라도 입을까봐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없이 훌쩍거린다.
명치 끝까지 치밀어 오른 설움을
울음으로 토해내니
조금은 속이 후련하다.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뒤로
남편이 들어선다.
오늘도 남편 입에선
독하고 진한 술냄새가 확 풍긴다.
보나마나 아프다고 누운
내 이불을 걷어차고
칠칠맞은 여편네라 또 욕이라도 하겠지...
그런데 남편은 다른날과 달리
술주정도 않고 조용히 내가 누운
이불속으로 무언가를 밀어넣고
그만 일어서서 다시 나가버린다.
어디로 가려는지...
또 술마시러 가는 모양이지..
이불속에 밀어 넣은 무언가를
꺼집어 내보니 서류봉투가 하나 있다.
열어보니 그속엔 하얀 편지 봉투하나와
농협 통장에 도장도 하나 있다.
봉투속엔 이제 갓 찾아온 듯한
갈깔한 새돈이 제법 두둑하다.
기십여만원은 될법한데
나는 새어 보고 싶지는 않아
도로 집어 넣었다.
농협 통장엔 남편의 이름 세글자가
또박히 진하게 새겨있고
붉은 인감도장도 찍혔다.
첫 장을 펼쳐보니 몇 번의 주고 받은
거래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뒤이어 동그라미 몇개가 그려진
아라비아 숫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딱 백만 사천 팔십원이다.
내 눈은 동그랗고 커진다.
가슴은 두방망이질치고
호흡마저 곤란해진다.
요즘 세상에 놀랄만한
그리 큰 돈은 아니었지만
내 눈엔 내 일생 이처럼 큰 돈 거액을
처음 대하는듯 믿기지가 않는다.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남편... 아이들의 아빠...
나와 18년을 살 맞대고 살아온 내 남자...
그동안 그렇게도 무능력하다
무심하다 인정머리 없다 독하다..
그렇게 속으로 숱한 욕을
다 가져다 붙인 그 사람...
그사람이 내게 건네준 통장이
나를 너무 아프게 울린다.
여보 정말 미안해요.
당신을 원망하고 미워했던 내가
참 못나고 속좁은 여자였어요.
아이들 아빠 정말 고마워요.
이제는 당신 원망 않을께요.
당신 그동안 나 몰래 딴주머니 차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나요.
피와 살과 같은 이 귀한 돈...
절대로 섣불리 헛되이 낭비하진 않을께요.
내일은 아이들이 학원비 들고
씩씩하고 밝은 걸음으로
우리집 대문을 나서겠군요.
저는 그것만으로 행복합니다.
.
.
.
이글은 MBC라디오 지금은 라디오시대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
의곡리울맹자의 최근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