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빅터 프랭클 박사의 이야기다.
어느 날 의과 대학시절의 은사가 박사를 찾아왔다.
얼마 전 부인을 잃은 그는 매우 힘없고 우울해 보였다.
상실감을 견디기 힘들다며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
"프랭클, 아내 없이는 더 이상 못 견디겠어."
두 사람의 금실이 유난히 좋았기에
프랭클도 은사의 슬픔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에게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교수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만일 교수님이 먼저 돌아가시고 사모님이 살아 계신다면
지금의 고통을 과연 누가 견뎌야 했을까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노교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는 곧 말했다.
"차라리 내가 당하는 게 낫지... 그래, 그 사람은 나보다 못 견뎠을 거야."
노교수는 일어나 방을 나갔다.
들어올 때와 달리 힘 있게 악수까지 나눴다.
프랭클은 노교수에게 훌륭한 안과 의사 역할을 했다.
볼 수 없던 것을 보게 해 주었다.
사별의 고통을 견뎌야 할 이유를 볼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
노교수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의 의미는
'나는 아내가 당할 지독한 사별의 아픔을 대신 겪고 있는 것'이었다.
노교수는 의미를 찾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되었다.
노교수의 경우처럼 고통 그 자체도 삶의 의미일 수 있다.
철학자 니체는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면 이미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삶의 의미가 행복하고 화려할 필요는 없다.
삶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삶이 힘들고 무기력해질 떄 자신에 물어봐야 한다.
'나는 무얼 위해 살고 있는 거지?'
마음속에서 답이 올라올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 승진하려고, 돈 버는 재미로, 연속극 보는 재미로, 신에게 예쁨 받으려고...
꼭 고상할 필요는 없다.
일단 이런 답이 올라온 사람은 적어도 우울증에 빠지지는 않는다.
인생의 위기는 삶의 의미가 증발해 버리고 실존적 진공 상태에 빠졌을 때 온다.
돋보기를 쓰고라도 자기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세상사는 힘이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무석 박사의 '이무석의 마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