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통닭을 사오셨어.txt

나딕사 작성일 13.10.28 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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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버지가 통닭을 한 마리 사오셨어.   몇 시간 전, 현관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구둣발 소리가 나는 거야.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없을텐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거실로 나와보니   금방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가 신발장에 구두를 넣고 계셨어.   고개를 드시는 아버지와 눈을 마주쳤는데, 아버지 눈가에 물기가 흥건했어.
무슨 일이라도 난 건 아닐까. 
알 수 없는 울렁거림에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건내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지.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식탁에 통닭을 내려놓으셨어.   검은 봉지 안에 담겨진 노릇한 시장 통닭.
평소에는 사달라고 보채도 한 번 들어주는 일이 없으셨던 아버지가
토요일 여섯 시에 통닭을 가지고 집에 들어오신거야.
식구들이 거실에 모였어.

텔레비전은 잠시 끄고, 대신 아침에 온 조간 신문 한 부가 식탁 가운데 놓였지.
식탁에 놓인 통닭은 우리 네 식구가 먹기에 적당한 양이었어.
읽기 위해 가져온 줄 알았던 신문을 넓게 펼치시곤 식탁에 까시던 아버지.
이렇게 해야 더럽지 않게 먹을 수 있다고 하셨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조금 축축했어.   같이 사온 병맥주를 묵묵히 따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그의 슬픈 표정을 읽어낼 수 있었어.
자식들에게도 좀처럼 감정을 보이지 않으시는 우리 아버지의 일그러진 눈매는   앞으로도 잊기 힘든 먹먹함으로 남을 것 같아.   잔이 넘치도록 콸콸 따라 단숨에 들이키시곤 하시는 말씀.  
"잘 지내냐?"
  취하시려고 술을 드신 것 같아. 어떤 괴로운 일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어.   벌게진 아버지의 두 뺨이 그의 마음 속 괴로움을 게워내고 있었거든.   말을 마치시곤 다시 한 잔을 따라 말끔히 비워내셨지.   새삼스레, 우리 아버지도 많이 늙으셨다는 생각이 들었어.   젊었을 적엔 준수하셨다는 얼굴도 군데군데 상처나고, 불퉁하게 변하신 아버지.   세월이 깎아 놓은 이마의 계곡은 그가 겪어온 나날을 담아내고 있었지.   왼손에 닭날개를 잡고 뜯으려고 할 때 들려오는 아버지의 그 말씀은 차라리 당혹스러웠지.
  "네?"
  "잘 지내겠지? 잘 지내야 한다."
  단 두 마디 뿐이셨어. 평소에도 말이 없으셨지만, 오늘은 유달리 침묵하셨지.   맥주만 잔뜩 들이키시곤 통닭에는 손도 대지 않으셨어.   그러기를 한 30분쯤이였을까.   마지막 맥주잔을 비우시곤 천천히 몸을 비틀어 자리에서 일어나셨지.   너무 피곤하니, 오늘은 좀 일찍 자야겠다는 말씀만 남기시곤 안방으로 가셨어.   어머니는 아버지를 따라 안방으로 가시고, 식탁에 앉은 우리 두 남매는 영문을 모를 뿐이였지.   어쨌든 통닭은 남았고, 먹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어.
  두어 시간 뒤에 어머니가 안방에서 나오시더니 말씀하셨어.
아버지 친구 분이 돌아가셨대. 투병 생활을 한지 6개월만에 세상을 뜨셨다는 거야.

오늘 밤에 문상을 하러 갈거야.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께서.
 
알고 지내던 사람을 잃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분명 끔찍할거야.
하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 언젠가 나도 그런 기분을 겪어야 할 때가 오겠지?
오지 않았으면 해, 솔직히. 잃는다는 것은 무섭잖아.  
  "잘 지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웅얼거려.

잘 지내야 할 것 같아.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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