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의 예술

김정욱 작성일 14.05.20 23: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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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에게

 성경은 때로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고 분노하게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될 수 있는 어리석음과 편협함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혼란스럽게 하네. 결국 우리를 깊은 슬픔에 잠기게 만들고. 그러나 성경이 주는 위안도 있지 않은가. 딱딱한 껍질 속에 숨어 있는 쌉쌀한 과육과도 같은 위안, 그것은 그리스도라네. 오직 들라크루아와 렘브란트만이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렸네. 그리고 밀레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렸지.

 회화적 관점이 아니라 종교적 관점에서 그려진 종교화들은 나를 웃길 뿐이네. 보티첼리 같은 초기 이탈리아 화가들, 혹은 반 에이크 같은 초기 플랑드르 화가들, 크라나흐 같은 독일 화가들,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 화가들이나 벨라스케스, 그리고 다른 많은 자연주의 화가들과 같은 이유에서만 내 관심을 끈다네.

 철학자들과 마술가들이 많이 있었지만,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생을 확신했고, 시간의 무한성, 죽음의 무의미한, 평온과 헌신의 필요성과 의미를 인정했지. 그는 다른 모든 예술가보다 더 위대한 예술가로서, 대리것, 점토, 물감을 경멸하면서 살아있는 육신으로 일했고 평온하게 살았네. 신경질적이고 둔한 우리 현대인의 두뇌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이 두려움 없는 예술가는 조각을 하지도, 그림을 그리지도, 글을 쓰지도 않았네. 단지 자신의 말을 통해 살아 있는 사람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지.

 여보게, 베르나르. 이런 생각은 우리를 예술 자체를 넘어서 아주 멀리 있는 세계로 데려가네. 그래서 생명을 창조하는 예술,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는 예술을 볼 수 있게 해주지. 이 생각은 회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네. 흔히 한 마리의 황소로 상징되는 누가는 복음서의 저자인 동시에 물리학자이자 화가였기에 흔히 화가들의 성자라 불리면서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을 빼앗아가는' 이 냉혹한 행성에서 화가들이 꾸려가는 생활은 정말 초라하지. 그뿐만 아니라 실천하기 힘든 사명 때문에 허리가 부서져라 멍에를 지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네.

 그래도 다른 무수한 행성이나 태양에도 선과 형태와 색체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반박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른 존재가 되어 그림을 그리게 될 지도 모른다고 믿을 자유가 우리에게 있지. 유충이 나비가 되고 굼벵이가 딱정벌레가 되는 것보다 더 놀라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어떤 현상에 의해 완전히 달라진 존재 말일세.

 지상에 머무는 동안 지도 위에 검은 점으로 표시되어 있는 마을이나 도시에 직접 가볼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나비가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무수한 별이 있을지도, 그리고 죽은 후에 우리도 그곳에 갈 수 있게 될 지도 모르지 않겠나.

1888년 6월 23일

-반고흐, 영혼의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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