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집단의식은 지구의 자기장에 묶여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카르마, 업, 집단의식, 관념, 사념체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구 자기장이 갑자기 사라지는 순간 인간은 그 모든 집단의식을 벗어버리고 순간의 각성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과 같이 지구 자기권을 벗어나 일해야 했던 우주 비행사들의 경우, 실제 우주에서 어떤 각성단계에 다다라 지구로 돌아온 후 삶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1960 년대 초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유인 우주 탐사 계획은 머큐리 계획(1961~1963)에서 아폴로 계획(1968~1972), 스카이랩 계획(1973~1974)에 이르기까지 많은 우주 비행사를 배출해냈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 공간에서 혹성 지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이들은 여러 신비 체험을 경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이 체험을 '우주감각(宇宙感覺, Cosmic Sense)'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들이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았을 때 느낀 것은 일종의 정신적 충격인 동시에 신비로운 종교적 고양감(高揚感)이었다. 또한 지상에서는 결코 체험할 수 없었던 장엄한 우주의식의 각성이었다.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온 뒤, 이들 중 다수의 인생관, 우주관이 극적인 변화를 겪었으며, 전에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직업으로 전환하였다. 대표적으로 아폴로 I5호 탑승자였던 제임스 어윈(James Irwin)이나 찰스 듀크(Charles Duke) 같은 사람은 종교 활동에 투신하여 전도사가 되었고, 또 어떤 사람은 화가나 시인이 되었다. 또 어떤 사람은 공해와 지구 오염을 반대하는 환경 운동가로 뛰어다녔으며, 아폴로 14호의 에드가 미첼(Edgar Mitchell) 같은 이는 초능력 연구소를 세워 초상(超常)현상 연구에 몰두하기도 하였다.
우주 비행사들의 대부분이 본래 기독교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우주에 다녀온 이후에는 특정 종교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더구나 이들의 종교관도 달라졌다. 각 종교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인데 그 표현 형태나 신을 부르는 명칭이 다를 뿐이라는, 보다 깊고 대범한 의식으로 바뀌었다. 또 이들 중 여러 사람은 깊은 종교적, 정신적 각지(覺知) 단계에 들어갔다. 제럴드 카아(Gerad Carr)나 에드 깁슨 (Ed Gibson), 에드가 미첼(EdgarMitchell), 럿셀 슈레이가트 같은 사람이 이 범주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이 인터뷰에서 전한 말 가운데 귀담아들을 만한 가치있는 말들을 추려보았다. 누구보다 먼저 우주를 직접 체험해 본 이들의 말은 인류의 의식이 진보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특히 마지막 에드가 미첼의 말은, 마치 심오한 우주 철학에 대한강론을 듣는 것 같으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아래 내용은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의 저서 (우주에서 돌아오다)에서 인용하였다.
■ 돈 아이즐리 (Donn Eisely) : 아폴로 7호 탑승자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고 있으면, 지금 실제로 저 어딘가에서 인간과 인간이 영토나 어떤 이념으로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다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바보스런 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껄껄 웃고 싶을 만큼 바보스런 짓이죠. 우주에서는 하찮은 것은 보이지 않고, 본질이 보입니다. 표면적인 사소한 차이점은 모두 날아가 버리고 같게 보입니다. 종족이나 국가를 초월해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라는 한 종(種)으로만 보일 뿐입니다.(중략) 아무튼 우주 비행 이래 이국인(異國人)이나 이인종(異人種)이라는 것에 대한 느낌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유진 서난(Eugene Cernan) : 제미니 9호, 아폴로 10호?17호 탑승자 우주에서 얻은 가장 큰 내면의 소득은 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입니다. 나는 우주에서 신이 거기에 계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의 이름은 종교에 따라 다릅니다.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불교 모두가 다른 이름을 신에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이 어떻건 간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모두 인간이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이름이 다르게 붙여졌습니다. 이름은 다르지만 대상은 같은 것입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볼 때, 그 과도한 아름다움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지구가 우연의 산물로 생겨날 리가 없습니다.(중략) 우주에서 지구를 보았을 때. 그것은 흔들림이 없는 확신이 되었습니다. 우주유영(宇宙遊泳)을 하기 위해 우주선 밖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자기 앞에 전우주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됩니다.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의 한가운데에 자기라는 존재가 거기 내던져져 있는 느낌입니다. 달 위까지 가서 지구를 볼 때 이 우주의 무한한 크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며칠이나 걸려서 초고속 로켓을 타고 가까스로 달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시간을 들여서 지구에서 벗어나 보아도, 암흑의 우주에 빛나는 별의 어느 것 하나에 한걸음도 다가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멀어진 지구의 크기만 변했을 뿐이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한한 우주 속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여행으로 이동한 거리도 무(無)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무한한 우주를 눈앞에 마주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그것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 무한하게 펼쳐져 있는 우주의 극히 일부분, 정말 하찮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즉 우리는 무한한 우주 속에 있으면서 그 아주 미소한 부분에 감금돼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것은 아득히 먼 달까지 가서, 달에서 지구를 바라보았을 때 실감이 됩니다.
■ 에드 깁슨(Ed Gibson) : 스카이랩 4호 탑승자 지구에서 우주를 보는 것과 우주 공간에 나가 우주를 보는 것은, 정말 완전히 다른 경험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우주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교과서에 나오는 태양계 구조의 도해(圖解)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구 위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지구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주에 나가면 바로 눈앞에 지구라는 천체가 있고 태양이라는 천체가 있습니다. 눈앞에 태양계의 도해가 아닌 현실이 있는 것입니다. 태양계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가 관념이 아닌 생생한 현실 체험으로 이해됩니다. 누구든 우주 공간에 나가면 그 현실에 압도됩니다. 그 경관의 장엄함은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우주에서의 체험은 완전히 종교적이었습니다. 우주는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하게 조화되어 있습니다. 우연히 이런 우주가 만들어졌을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선 창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지구가 바로 눈앞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는 게 보입니다. 좌우간 90분 만에 한 바퀴를 도는 것입니다. 지금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곳을 지났구나 하고 생각하면 바로 불타(佛陀, 석가모니)가 태어나신 곳을 지나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라의 수와 비슷한 만큼의 종교와 교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종교이건 간에 우주에서 보면 지역적인 종교일 뿐입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인위적인 국경선이라는 것은 볼래야 볼 수가 없고 이 아래에서 많은 국가가 분리되어 대립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우스꽝스럽게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 종교 집단간 대립도 어리석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오감(五感)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세계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오두막 속에 갇힌 채로 밖에 설치한 몇 대의 카메라로 바깥 세계를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으로 외계의 모든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 제랄드 카아 : 스카이랩 4호 선장 인간은 지구에다 거대한 건조물들을 잔뜩 지어 놓고 사람들은 또 그것들에 경탄하며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거나 관광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 어느 것이나 자연이 만든 것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주에서 보면 인간이 만든 것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조그마합니다. 보이는 것은 바다, 강, 산, 숲, 사막 등 대자연뿐입니다. 자연 내에서 인간의 보잘 것 없음을 보고 있자면, 인간이란 것이 우주에서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이해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구에서 눈을 돌려 우주 전체의 광활함에 주목하면 이번에는 우주 속에 있는 지구의 존재 역시 인간의 생각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대기권 밖에서 우주를 보면, 지상에서 우주를 보는 것의 5, 6배나 더 많은 별들이 보입니다. 하늘 모두가 은하처럼 보이며, 은하는 별들로 이루어진 고형물(固形物)처럼 보입니다. 지구는 이 우주에 충만해 있는 무수한 천체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지구를 무슨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지구 위에서, 또 지구는 우주에서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 밖에서 우주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돌연히 인간은 우주에서 너무나 하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이 인식되었습니다. 생명이 지구에만 존재한다는 생각은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우주에 충만해 있는 별들은 모두 태양이며, 지구와 마찬가지로 그 무수한 태양마다 각기 생명체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주에 있는 무수한 별의 존재와 우주 창조 이후의 시간 흐름을 생각해본다면, 이 우주에는 무수한 생명이 모든 발전 단계별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가장 타당하다고 봅니다. 지구상의 생명만이 최고의 발전 단계에 있다느니 하는 것은 인간의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주 체험은 나의 신앙을 한층 강화시켜 주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강화시켰다기보다는 확장시켰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그 이전에 나의 신앙 내용은 편협하였으나, 우주 체험 이후에는 전통적인 기존 교의에 별로 구애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른 모든 종교를 인정하는 입장이며, 어떤 종교의 신도 다른 시각에서 보았을 때 붙여진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말하는 신은 하늘에서 지상을 굽어보고 있는 수염난 할아버지 같은 따위의 인격신(人格神)이 아니며, 만물의 질서와 조화의 배후에 존재하는 일종의 근원, 또는 패턴(Pattern)을 의미합니다. 모든 신의 명칭은 이러한 근원이나 패턴에 격을 상정하여 붙여진 명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 월터 시라(Walter SchfTa) : 머큐리 8호, 아폴로 7호 탑승자 우주에서 보면 국경 같은 것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국경이란 것은 인간이 정치적 이데올로기 때문에 제멋대로 만든 것이지, 원래는 없던 것입니다. 우주에서 자연 그대로의 지구를 보고 있으면 국경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구인들이 저 아름다운 지구에서 민족 상호간에 서로 대립하고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이 서글프고 멍청하게 느껴졌습니다.
■ 에드가 미첼(Edgar Mitchell) : 아폴로 14호 탑승자 초능력을 다루려면 우선 그에 합당한 정신과 감성의 안정이 선결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잡념이나 잔물결 하나 없이 마음의 정적을 유지해야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종의 니르바나(Nirvana, 열반)에 들어가야 합니다. 거기까지 가면 인간이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정신적 존재라는 것이 자연히 이해됩니다. 인간은 물질적 수준에서는 개별적 존재지만, 정신 수준에서는 서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ESP(초능력)의 성립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더 나아가면 인간뿐만 아니라, 세계 모두가 정신적으로 ' 일체(一體, Spiritual Oneness)'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초능력 현상은 이 일체의 증명입니다. 모든 것이 일체이기 때문에 물리적 수단이 아닌 텔레파시로 외계와도 의사소통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고대 인도의 <우파니샤드(Upanishad)>에 '신(神:Brahman, 梵)은 광물 속에서는 잠을 자고, 식물 속에서는 눈을 뜨며, 동물 속에서는 걸음을 걷고, 인간 속에서는 사유(思惟)한다'고 씌어있습니다. 만물 속에는 신(神)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은 정신성(精神成)에 있어서는 한 몸인 것입니다. 그러나 신의 각성도는 만물에 따라 다릅니다. 나는 열렬한 기독교도로 남부 침례교의 근본주의자였습니다. 아다시피 근본주의자의 교리는 성서에 씌어 있는 것은 모두 옳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는 과학자였고 기술자였습니다. 때문에 내 인생은 40년 동안 과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의 대립을 어떻게 해소시킬 수 있을까 하고 계속 고뇌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철학과 신학을 어지간히도 공부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는 이 두 가지 진리의 상극을 안은 채 우주로 갔습니다. 그런데 우주에서 나는 그야말로 한순간에, 그 오랫동안 고뇌해 오던 문제의 해답을 얻었습니다. 바로 우주에서 지구를 보았을 때였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달 탐험을 마치고 지구를 항한 궤도에 오른지 얼마되지 않아서였습니다. 아스라이 먼 지구를 보았습니다. 허공에 무수한 별이 암흑 속에서 빛나고, 그 가운데 우리의 지구가 떠 있었습니다. 지구는 무한한 우주 속에서, 하나의 반점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치게 아름다운 반점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언제나 내 머릿속에 있었던 몇 가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왜 여기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인간은 단순히 지적 동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우주는 물질의 집합에 불과한 것인가?' '우주나 인간은 창조된 것인가 아니면 우연의 소산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모든 것은 우연의 손안에 있는가, 아니면 어떤 커다란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바로 이와 같은 의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의문과 동시에 그 답이 순간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종교학에서 말하는 신비 체험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순간적으로 진리를 파악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세계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도 우주도 우연의 산물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제각기 그 역할을 짊어지고 있는, 어떤 신적인 계획이 있습니다. 그 계획은 생명의 진화입니다. 생명은 목적을 가지고 진화해가고 있습니다. 개별적인 생명은 전체의 부분입니다. 개별적인 생명이 부분을 이루고 있는 전체가 있습니다. 모든 사물은 한 몸입니다. 한몸인 전체는 완벽하게 질서정연하고 조화로우며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전체 속에서 나는 신과 한 몸입니다. 나는 신의 계획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우주는 창조적 진화 과정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한 순간 한 순간 의식의 움직임 또한 우주를 창조해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한 순간 한 순간이 새로운 창조로서, 진화는 창조의 계속입니다. 신의 사유가 그 과정을 다루고, 인간의 의식은 그 신의 사유의 일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사실을 한 순간에 깨달으면서 비할 데 없는 환희와 행복감에 넘쳤습니다. 순간이었습니다. 진리를 순간적으로 깨침과 동시에 환희가 엄습해 왔습니다. 그것은 정말 지복(至福)의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신과의 일체감을 여실히 맛보았습니다. 지구로 돌아온 후 나는 이전과 달리 모든 종교와 모든 사상을 편견없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우주에서 느낀 저 신과의 일체감은 특정종교나 종파의 신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종교의 부분적 진리라는 것은 교단 형성 과정에서 빚어졌으며 진리의 길 밖으로 이미 벗어나 있습니다. 각 종교의 교주가 될 수 있었던 인물들 가령, 예수나 석가, 마호메트 또는 노자나 조로아스터 등은 모두 인간의 자의식의 속박에서 벗어나 이 세계의 정신적 일체성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초능력자들이었으며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을 받아 추종한 사람들은 자의식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깊은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도자가 세상을 뜨면 신자들의 집단은 '정신적 진리'에서 '인간적 자의식'으로 끌려오고 맙니다. 그리고 교단이 조직되면 교단 전체는 더더욱 원초의 진리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단화된 기성 종교는 어느 것을 보아도 이제는 참된 진리의 실재성(實在性)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신(神)이란, 우주 영혼 혹은 우주정신(Cosmic Spirit)이라고 해도 좋고, 우주지성으로 표현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사유입니다. 그 사유에 의해서 진행되는 과정이 이 우주계인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그 사유에서 분사된 스펙트럼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주의 본질은 물질이 아닌 영적 지성(靈的知性)으로 그 본질이 신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의식을 가진 에고(Ego)와 보편적 영적 존재와의 결합입니다. 전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인간은 유한하고 고급스러워진 물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갇혀 있던 자의식이 열리고 후자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면, 인간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보편적 정신과 합체가 됩니다. 신(神)과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우주의 정신적인 본질과 일체감을 경험한, 신비 체험을 가진 인간이 그것을 제각각 다르게 표현함으써 생겨난 것입니다. 즉 그 원초적 체험은 본질적으로 같지만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는 단계가 되면 그 시대, 그 지역 문화의 한정을 받고 맙니다. 모든 기존 종교의 틀은 한정되어 있고 좁기 마련입니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틀은 너무나 좁기 때문에 그 전통적 교의가 자행하는 인간 의식의 속박은 너무나 큽니다. 인간적 에고(Ego)에서 벗어나면 이 세계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에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지각 저편의 정신적 세계가 보이기 시작하고, 자기가 지금까지 진리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보다 큰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의식의 변혁, 시점(視點)의 전환이 모든 것의 열쇠임을 모든 종교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회개하라" "다시 태어나라"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희랍어로 '회개'는 '메타노이아'라고 합니다. 그것은 무슨 나쁜 짓을 저질렀으니 그것을 반성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아집을 버리고 세계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신적 세계가 이미 여기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힌두 전통의 '소마티'라는 것도, 불교의 '니르바나'도, 혹은 신비 사상에서 말하는 '조명(照明) 체험'도 모두 같은 것입니다. 신비적 종교 체험의 특징은 거기에 언제나 '우주 감각(Cosmic Sense)'이 있다는 점입니다. 위대한 정신적 선각자들은 지상에 있으면서도 우주 감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우주 공간에 나갔던 행위를 통해 그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우주에서는 보통 사람도 우주 감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주는 그런 체험을 하는 데는 가장 좋은 장소입니다. 인류의 진화 방향은 뚜렷합니다. 인간의 의식이 정신적, 영적으로 보다 확대되는 방향입니다. 장차지구 생물에서 우주 생물로 진화해 갈 것입니다. 즉 예수라든가 석가, 마호메트 등은 일찍부터 이런 진화의 방향을 인류에게 지적해준 선구자인 것입니다. 어떤 진화건 종 전체가 바뀌기 전부터 진화의 방향을 앞질러 보여주는 개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