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기초 철학 13 (비트켄슈타인 2)

로오데 작성일 22.01.27 16:15:08 수정일 22.01.27 16: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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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의 용도를 결정하는 규칙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문법적 규칙도 있고, 의미론적 규칙, 구문론적 규칙도 있으며, 일반적으로 문맥의 규칙이라고 불리는 규칙도 있다. 이 규칙들은 아주 엄격하기도 하고, 아주 유연하기도 하며, 타협적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게임을 비교할 수도 있는가 하면(예컨대, 체스의 규칙은 수건 돌리기 게임의 규칙보다 엄격하다). 게임 내부에서도 그런 비교가 가능하다(폰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규칙은 엄격하지만 폰의 크기에 관한 규칙은 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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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only wish I have such eyes to be able to see nobody”

 

 그러나 유연한 규칙도 엄연한 규칙이므로 그것을 어기면 모종의 결과가 따를 수밖에 없다. ‘언어 게임’의 일부 규칙이 미묘하게나마 깨질 경우에 그것은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리자면 "언어가 휴가간 날"(38)이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특정한 종류의 철학이 생기며(형이상학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종류의 광기가 생긴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보는 것처럼), 여기서 앨리스를 언급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앨리스’ 시리즈를 무척 좋아했다. 왜냐하면 거기에 제시된 언어학적 농담들은 언어의 일부 속성들의 기능에 관해 오해가 빚어질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광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왕과 엘리스가 나누는 대화들을 보자. 왕이 앨리스에게 길에 누가 있는지 보라고 하자 앨리스는 “아무도 안 보여요” 하고 대답했다. 그 말에 왕은 이렇게 말한다. “내게도 그렇게 아무도 안 보이는 눈 같은 게 있엇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먼 거리에서도 안 보이는 눈 말이야!”(즉, 왕은 안 보이는 게 ‘보인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영문에서는 앨리스의 말이 “I see nobody on the road”로 되어 있고, 왕의 대답은 “I only wish I have such eyes to be able to see nobody”라고 되어 있다. 우리 말의 부정 방식과 영어권의 언어들의 부정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예를 이해해야 하겠댜. ‘앨리스 시리즈’의 작가 루이스 캐럴은 이런 흥미로운 어법을 많이 구사했다.) 왕의 말에는 뭐가 잘못되었을까? 그 농담은 비트캔슈타인의 추종자들이 ‘범주 착오’라고 부른 것을 말해준다. 그것은 언어학적 사실들이 범주를 착각한 탓으로 엉뚱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을 가리킨다.('일상 언어 철학자'인 길버트 라일에 따르면, 그것은 데카르트가 정신-신체 문제를 잘못 해결함으로써 빚어진 오류다. 데카르트는 ‘정신’을 신체와 유사한 범주에 위치시킴으로써, 마치 ‘생각하는 사물’처럼 만들었다. 그 때문에 정신은 물리적 존재들과 공존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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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불닭이야? (언어가 휴가 간날)

 

 이번에는 여왕의 경우를 보자 여왕은 하녀에게 급료로 1주일에 2페니와 이틀에 하루씩 잼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이틀에 하루’ 라는 날은 없다는 핑계로 잼을 주지 않겠다고 한다. 이런 경우가 바로 언어가 휴가 간 날이다.

 그렇다면 과학적 토대 위에서 실재의 가장 단순한 구성 요소를 찾으려는 실증주의자들의 노력은 어떨까?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한다.

 

 실재를 구성하는 가장 단순한 요소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의자의 단순한 구성 요소란 무엇인가? 의자는 나무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는가? 아니, 분자 혹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는가? ‘단순하다’는 말은 복잡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복잡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냥 절대적으로 "의자의 단순한 부분들" 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무의미하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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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이 '진리란 무엇인가? 존재를 존재로 만들어 주는 본질은 무엇인가?'와 같은 무책임한 질문들을 만들어 온 이유

 

 ‘원자적 사실’을 찾으려는 노력도 마찬가지다.

 <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쓴 바 있다. “대부분의 철학적 명제나 질문들은 언어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다.”(4. 002) <탐구>에서도 그는 어느 정도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언어의 논리’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큰 변화를 보였다. 철학의 임무는 언어의 ‘배후’에 숨겨진 논리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일상 언어의 함축적인 논리를 드러내는 데 있다는 것이다(바로 여기서 ‘일상 언어 철학’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그래서 그는 일상 언어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언어를 통해 지성이 마법에 걸리는”(109) 결과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려했고, 세계에 관해 일상적으로 사유하고 대화하는 방식에 쓸데없이 간섭할 경우에는 ‘언어학적 휴가’가 일어나며, 그 결과로 철학의 역사를 이루는 대부분의 농담이 생겨났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비엔나에서는 식초를 담은 병에 꿀을 넣어두고 파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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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속에 파리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파리는 꿀 냄새를 맡고서 가던 길에서 벗어나 병 속으로 들어와서는 달콤한 꿀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그만 죽고 만다. 비트겐슈타인에게는 대부분의 철학이 바로 그 파리의 허우적거림처럼 보였다. “파리 병의 파리에게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용해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문제들이 일상 언어의 길에서 벗어난 결과로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의 보수적인 일면을 잘 보여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철학은 언어의 현실적 사용에 결코 간섭할 수 없으며, 단지 그것을 서술할 수만 있을 따름이다. 또한 철학은 일상 언어에 어떠한 토대도 마련해 줄 수 없고, 다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놔둘 수만 있을 따름이다.”(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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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자기 만족은 언뜻 G. E. 무어를 연상하지만, 그 비유는 사실 적절치 못하다. 비트켄슈타인의 마음속에는 항상 혼란과 혼돈이 들끓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위의 말에서 본 것과 같은 베르메르 류의 부르주아적 자기 만족과는 또 다른 격정적인 동요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네덜란드 학자 베르메르는 극히 소량의 작품만 남긴 점에서, 유작까지 해서 단 두 권의 저작만 남긴 비트겐슈타인과 비슷하다.)

 

 

 이상 마무리하며, 비트겐슈타인 출현 이후 현대 철학은 혼돈의 카오스 상황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철학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철학은 항상 새로운 이론이 나오면 이전 철학은 뒤집혀 지고 또다시 새로운 이론을 찾아 갑니다. 과학과 가장 큰 차이점이고 사람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런 철학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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