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진양(8)을 보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나도 모르게 ‘욱’하는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눈물을 감추기 위해 애써 천정을 쳐다봤다. 심호흡을 한 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수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어루만지기만 해도 ‘툭’하고 부러질 것 같은 가늘디가는 팔과 다리.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머리에는 커다란 수술자국이 그동안 수진이가 살아온 삶을 대변하는 듯 했다.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신경외과 중환자실. 수진이는 지난해 11월 17일 이 병원에 입원해 11번째 뇌수술을 받았다. 뇌 안에 악성 종양이 생겨 성장 및 발육 장애를 겪는 희귀병인 수두증을 앓고 있는 수진이는 생후 8개월 때 처음으로 뇌수술을 받았다. 수진이의 지능은 한 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능뿐만 아니라 그의 몸무게도 갓 돌 지난 아이와 비슷한 14.7kg.
▲지난해 6월 3일 수진이 모습. 팔과 다리에 제법 살이 올라 있다.▲
부모는 수진이가 태어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 자식들은 수진이 아버지의 몫이었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수진이의 아버지는 3남매를 복지시설 ‘금빛사랑의 집’(원장 최병헌목사ㆍ53)에 맡겼다. 돈 벌면 아이들을 찾아가겠다면서. 2년 후. 수진이의 두 오빠는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수진이는 복지시설에 남겨졌다. 두 아이를 키우는 것조차 벅차 아픈 수진이를 키울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수진이는 뇌수술을 11차례나 받았다▲
수진이가 아버지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98년. 3차 뇌수술을 받은 직후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수진이를 바라보던 수진이의 아버지는 ‘금빛사랑의 집’ 최병헌 원장에게 “아픈 자식을 제대로 보살피지도 못한 에비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면서 “수진이가 죽어도 연락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수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게 되면 사는 게 더 고통스러울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땅바닥 한번 디뎌 보지 못한 수진이의 발▲
말 할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입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수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말 한마디 하지 못했고 단 한번도 걸어 본 적이 없다. 눈도 보이지 않는다. 수진이의 의사표시는 웃거나 울거나 둘 중에 하나다. 가끔 기분이 좋으면 ‘어~ 어~’하고 소리를 지를 뿐이다.
만 8년 동안 누워서만 살아온 수진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밥조차 입으로 먹을 수 없다. 삼킬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복부의 두꺼운 호스가 수진이의 ‘입’을 대신한다.
수진이와 같은 병을 앓는 환자 중 40% 가량은 수술 후 상태가 좋아지지만 나머지 환자들은 말도 제대로 못한 채 누워 지내야 한다. 수진이는 다행히 11번째 수술 경과가 좋아 다시는 뇌수술을 하지 않고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하지만 여느 가난한 환자들처럼 수술비가 고민이다.
▲수진이의 손을 꼭 잡은 ‘금빛사랑의 집’ 최병헌 원장▲
15명의 중증장애인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최 원장은 “복지시설에 대한 후원자와 후원금 등이 많이 줄어 수진이의 11번째 수술비 700여만 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막막하다”면서 “수진이가 하루 빨리 완쾌해 기분 좋을 때 살포시 미소 짓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기사제공= 흥국생명 세상엿보기 / 김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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