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이 흐믈거리듯 골목을 비추고 있다. 밤의 한기가 옷을 파고든다. 현민은 서둘러 옷을 조인다. 술기운 때문인지 단추를 채우기가 힘들다. 행인들이 어두운 그림자를 안고, 옆을 스쳐 지나간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젠장.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사실 주량을 넘어섰다. 현민의 몸은 많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비틀거리며, 골목의 구석과 중앙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다. 얼굴에 미소인지 모를 표정이 지어진다.
현민은 배를 한번 쓰다듬는다. 배가 고팠다. 망년회 모임에서 꽁치구이가 나왔지만, 그것으로 배를 채우기는 아쉬웠던 것이다. 그리고 꽁치구이를 본 순간 초밥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초밥에 대한 열망이 술기운 속에서 더욱 강해진 것이다.
"배고픈데, 여기 초밥 잘하는데 없나?"
몽롱한 정신에서 조용히 말한다고 했는데, 나름대로 큰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현민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다시 술자리는 시끌벅적해지고, 현민은 테이블에 살짝 엎드렸다. 옆에서 정호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엎드린 자세로 정호의 말을 들었다.
"이 주변에 초밥 잘하는 데가 있지. 작고, 사람도 별로 없는 곳인데, 맛 하나는 기막히단 말이야. 그 맛에 빠진 사람들은 거기만 가게 돼. 아직은 아는 사람이 없어서 사람이 많지 않지만, 곧 유명해질걸?"
현민은 입을 열기도 불편했지만,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풀린 혀에 힘을 주며 말했다.
"가까워? 나……. 거기 갔다 올게."
정호는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하며, 냅킨에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현민의 손에 쥐어진 냅킨에는 간단한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좁은 골목이니까 지나치기 쉬워. 알았지?"
현민은 일어서며 술잔은 엎었지만, 그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거린다. 열쇠가 짤랑거린다. 냅킨은 열쇠에 조금 찢겨진 상태였다. 현민은 찬 기운에 술이 조금 깨는 기분이었다. 몸을 한번 부르르 떨며 냅킨에 그려진 약도를 본다. 골목에는 이제 인기척이 없다.
고개를 들어 골목을 살핀다. 눈은 꿈뻑대며 다른 곳으로 통해 있는 길을 찾고 있다. 가로등 사이사이가 너무 어두워 그곳마다 골목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어둠 속에서 사람하나가 걸어 나온다. 현민은 그 방향으로 걸어간다. 조금 전 보다는 비틀거림이 덜하다.
사람이 나온 곳에는 골목이 있었다. 작은 차 하나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이었다. 대부분 문이 닫힌 상점들이 골목의 한 면을 차지하고 다른 면은 커다란 저택의 벽인 듯인 듯 했다. 길을 따라 쭉 걸어갔다. 듬성듬성 가게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러나 불이 켜져 있는 가게 안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정호가 말한 대로 조그만 초밥집이 보였다. 검은 간판에 흰 글씨로 뭔가가 적혀 있었지만, 읽을 수가 없었다. 투명한 유리로 요리사 한 명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작은 바 뒤에 서서 현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섬뜻함을 느꼈지만, 배고픔은 그를 가게 안으로 이끌었다.
좌석이 3개 밖에 없는 아주 작은 초밥 집이었다. 좌석 3개도 바에 붙어 있었고, 그 앞에서 요리사가 바로 초밥을 만들어주는 형식이었다. 현민은 가운데 좌석으로 가서 앉았다. 어차피 다른 손님이 올 것 같지도 않았다.
"어서오세요."
요리사의 째지는 듯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현민은 고개를 들어 요리사의 얼굴을 보았다. 기다란 얼굴에 주름이 곳곳에 있었고, 눈은 튀어나올 듯이 크게 뜨고 사람 잡아 먹을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커다란 입으로 드러난 새하얀 이빨이 공포감마저 들게 했다. 하얀색 요리복은 도살장의 그것을 생각나게 했다.
현민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약간은 풀어진 발음으로 말했다.
"아무거나. 빨리 되는 것으로 주세요."
이렇게 생긴 요리사가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이 거북했다. 요리사는 날렵하게 생긴 칼 몇 개를 꺼내더니 도마위에 놓는다. 조명이 문제인 것인지 요리사의 얼굴이 괴기스러워 보였다.
끼― 칼 가는 소리가 들린다.
"죄송합니다. 칼이 무뎌져서요. 초밥 맛은 칼끝에서 나오는 것이죠."
그의 음산한 음성이 칼 가는 소리와 함께 현민의 귀를 고통스럽게 한다. 현민은 눈을 감고, 손을 턱에 괴였다. 시계를 보지는 않았지만, 보통 잘 시간이 지난 것은 확실했다. 출근 시간에 엄격한 상사 때문에 되도록 잠자는 시간은 철저히 지켰다. 지각을 하게 되면, 그 상사는 이상한 것에서 트집 잡기 시작해서 하루 종일 현민을 괴롭혔다. 오늘처럼 망년회를 한 다음날도 예외는 아니다. 현민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손님. 피곤하신 것 같은데, 이것 먼저 한잔 잡수고 계세요. 피곤이 가실 겁니다."
눈을 뜨자 요리사가 하얀 잔에 검은색의 물 같은 것을 따르고 있었다. 소매를 걷어 올린 팔에 징그럽게 털이 나 있는 것이 보인다.
현민은 더 묻기가 귀찮아 그냥 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는다. 입 속에서 그 액체는 살아 움직이듯이 혀 위를 뛰어다녔다. 뱉어버리려 그랬으나, 목구멍을 향해서 달려드는 것이다. 그리고 위 속으로, 그리고 몸 곳곳으로 빠르게 흡수되었다.
요리사는 현민의 놀란 얼굴을 잠깐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여 초밥을 만들기 시작한다. 현민은 조금 놀라기는 했으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감고, 그 나른함을 음미했다. 사우나에서 금방 나온 듯한 나른함이었다. 그리고 식욕이 더 돌았다.
눈을 감은 채로 요리사에게 물었다.
"이거 첫 느낌은 좀 그런데, 몸이 편안해지는군요. 초밥은 아직 멀었습니까? 배가 너무 고프네요."
참기름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위가 요동치고 있었다. 요리사의 음산한 음성이 들려온다.
"손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원래 기다림의 고통이 커질수록 음식 맛도 좋아지는 법이지요. 원래 고통이란 것이 즐거움과 때어놓을 없는 거예요. 그거 아세요? 매운맛은 통각이란 거."
요리사는 느릿느릿 말을 이어갔다. 현민은 눈을 감고 그의 얘기를 들었다.
"예전에 야마자키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에도 시대에 훗카이도 지방에 살던 사람인데, 요리의 명인이었죠. 오끼나이라는 마을은 특히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인데, 야마자키는 눈 속에 초밥을 저장해 두었어요. 이틀정도 눈 속에 넣으면 초밥도 꽁꽁 얼어서 먹기가 힘들어요. 야마자키는 바늘로 손님의 혀에 다섯 군대 상처를 내지요. 그러면 뜨거운 피가 혀를 촉촉하게 적셔요. 당연히 고통도 상당하죠. 그런 다음에 초밥을 혀 위에 올려놓으면 뜨거운 피가 초밥을 데우죠. 그리고 바늘에 찔린 고통이 맛으로 변하게 된답니다."
눈을 가늘게 뜨자 요리사의 커다란 손이 밥에다 양념을 바르고, 꾹꾹 누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밤의 적막과 찬 기운은 가게 안으로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 초밥을 먹어본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맛을 못 잊는답니다."
현민은 배가 바늘로 쑤시는 듯이 쿡쿡 아파 오기 시작했다. 배의 오른쪽 장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느낌이 나더니 이내 등 쪽으로 고통이 전이된다. 현민의 입으로 조용한 신음소리가 난다. 고통은 곧 사그라지고, 이내 오줌이 마려워졌다.
"여기 화장실이 어딥니까?"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화장실 표시가 보이실 겁니다."
요리사의 음성은 안개처럼 좁은 초밥 집을 맴도는 듯 했다. 그의 살짝 올라간 입 꼬리 사이에서 흐흐흐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민은 초밥집의 반투명한 검은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은 새까맣다. 초밥 집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앞쪽에 벽이 존재함을 알리는 것 같다. 그것마저 없었으면, 앞에 끝없는 사막이 펼쳐진다고 해도 믿을 것이었다. 골목을 들어온 부분을 바라보았다. 모든 게 어둠 속에 잠긴 듯,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이곳에 들어올 때는 듬성듬성 상점들이 불을 켜고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현민은 정신이 좀 깨는 것 같았다. 화장실, 화장실. 혼잣말을 하며 화장실을 찾는다. 요리사가 말한 대로 작은 문에 화장실 표시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옆쪽에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골목의 깊은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점점 다가온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불빛 하나가 다가오고 있다. 뭐지? 불빛은 허공에 떠있는 듯이 흔들거리고 있다. 오토바이 불빛은 아닌 듯 했다. 그것은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현민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도깨비불인가. 현민은 어릴 적 도깨비불에 대해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나그네가 밤에 산길에서 길을 잃었을 때 별안간 도깨비불이 나타난다. 나그네는 그 불을 따라가게 된다. 그것은 가까운데 있는 것 같으면서도 멀다. 나그네는 불을 따라가다 지쳐서 쓰러져 죽게 된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를 마을 입구나, 집 마당에서 발견하게 된다.
지금 보이는 불빛도 도깨비불처럼 매혹적인 면이 없잖아 있었다. 현민은 화장실에 들어가지 않고, 그것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짤랑거리는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그것은 갓을 씌운 등이었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등을 들고, 천천히 골목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도 다 있군. 현민은 화장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자전거에 탄 남자를 보았다. 옷은 거적 같은 것을 걸쳤고, 바지 같은 것은 입지 않은 것 같다. 발은 맨발이고, 그의 눈은 …….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눈은 얼굴의 중앙에 박혀 있는 모양이었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현민은 존재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이, 어느 나라의 언어인지도 모를 노래를 불렀다.
"거의 다 됐습니다."
현민이 화장실에서 돌아오자 요리사는 커다란 입이 눈에 들어온다. 음식 따위는 먹을 것 같지 않은 입이다. 쥐나 먹을 듯한…….
음식을 먹은 후에 조금 전에 본 눈 하나 있는 사람에 대해 물어보려고 마음먹었다. 지금은 배고픔을 달래는 게 우선이었다. 현민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끼이― 이상한 소리에 현민이 눈을 떴다. 요리사의 얼굴이 사천왕처럼 일그러졌다. 커다란 눈에 핏줄이 흰자가 안보일 정도로 눈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의 커다란 입에서 끼이―하는 소리가 계속 세어 나오고 있다. 그의 온몸이 경직된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뭐 하시는."
현민은 말문이 막혔다. 요리사가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고 있었던 것이다. 뼈가 보이도록 손가락의 조직을 칼로 썰어내면서 입에서 끼이―하는 소리를 냈던 것이다. 왼손의 새끼손가락이 끝나자 이번엔 중지를 썰기 시작했다. 현민은 이상한 압박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섯 개의 손가락을 다 썰고 나자, 현민은 감춰져 있던 한 숨을 내 쉰다. 요리사는 아직도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마에 땀을 닦고 있다.
"뭐 하시는 겁니까?"
현민은 조금 전 하지 못했던 말을 했다. 요리사는 땀이 눈에 들어갔는지 눈을 찡그린다.
"진정한 맛은……."
요리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잇는다. 고통이 그의 말을 뒤덮은 듯한 느낌이다.
"고통에서 나오는 것이죠. 이 초밥은 인간의 살을 넣어서가 아니라, 고통이 그 안에 살아 있기 때문에 별미가 되는 것입니다."
동그랗게 눌러놓은 밥 위에 양념과 찢겨진 살을 올려놓는다. 살을 더 썰어서 총 열 개의 초밥을 쟁반 위에 올려놓았다. 피는 밥알 속으로 물들어 가는 듯했다. 현민은 그런 모습을 보자 더욱 식욕이 돌았다.
"그 손가락은 어떻게 하죠?"
뼈만 남아서 너덜너덜해진 손을 가리켰다. 요리사는 아무 말 없이 도마 위에 만들어 놓은 여분의 초밥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눈을 감고, 자근자근 씹니다. 그가 먹는 모습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바라본다.
초밥을 다 삼키고 나서 요리사가 말한다.
"살을 먹으면 살이 됩니다. 신기한 일입니다만, 이 초밥을 먹으면 손가락은 금방 재생이 됩니다. 초밥 장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자. 어서 드셔 보세요."
현민은 젓가락으로 초밥 하나를 집어 든다. 말하자면 육회 초밥인가? 피의 뜨거움이 시선으로도 느껴진다. 이까짓 것 못 먹겠느냐는 심정으로 입안에 던져 넣는다. 가만 눈을 감고 오물거린다. 피 맛과 양념이 교묘하게 곁들여져 혀에 달라붙는다. 이런 맛은 느껴본 적이 없다. 딱히 맛있다고 할 수 없지만, 유혹적인 맛이었다.
하나를 다 삼키고 나서, 또 하나의 초밥을 들었다. 두 번째 먹을 때 비로소 맛을 재대로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그 초밥에는 저의 고통이 같이 들어가 있습니다."
요리사가 그 말을 하자 현민은 그의 신경이 자신에게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고통이 자신에게 전이되는 것 같았다. 통증이 혀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씹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어쩌면 그 고통을 자신이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요리사가 현민의 눈앞에 자신의 왼손을 내밀었다. 피가 묻어 있기는 했지만, 많이 재생된 모습이었다. 요리사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현민은 어느새 마지막 초밥을 입에 물고 있었다. 그때서야 배가 불러왔다.
"어떻습니까?"
요리사는 길쭉한 얼굴을 내밀며 묻는다.
"맛있군요. 이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물을 먹고 나서 트림을 한번 한다. 다시 술기운이 오르는 느낌이다.
"인간의 살이 이렇게 맛있는 것이라니……. 정말 이상하군요."
"아……. 인간의 살이어서 맛있는 게 아닙니다. 고통이 그 속에 숨쉬기 때문이죠."
현민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 바 위에 올려놓았다. 뱃속이 훈훈한 것이 기분이 좋았다. 문을 나서면서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내일 또 와야지……. 몽롱한 정신 속에서 다짐을 하는 것이다.
골목을 어떻게 빠져 나온 지 모르게 큰길에서 택시를 잡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입 속에는 아직도 초밥 맛이 느껴진다. 현민은 입맛을 다시며 택시에 올라탔다. 꿈을 꾼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입에 느껴지는 맛은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회사에 있으면서도 현민은 하루 종일 초밥 생각을 했다. 점심때 비빔밥을 먹으면서도 초밥 생각이 났다. 비빔밥이 이렇게 맛없었나. 현민은 반도 비우지 않은 채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동료들이 식욕이 없냐고 물었다. 하지만, 현민은 식욕이 넘치고 있었다. 단지 초밥에 대한 식욕이었다.
퇴근길에 바로 그 골목길을 찾아갔다. 골목길 상점들은 다 불을 환하게 켠 체 장사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 허름하고 작은 소주 집들이었다. 현민은 초밥집이 있던 자리까지 걸어갔다. 하지만, 그곳에 초밥 집은 없고, 조그만 순대집이 있었다. 현민은 골목 끝까지 걸어갔다. 그러나 초밥 집은 찾을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고 물어봐도 초밥 집은 이 골목에 없다는 얘기밖에 들을 수가 없었다. 현민은 꿈을 꾸는 듯 했다. 길 가운데 멍하니 서서 초밥집이 있던 자리만 멍하니 바라본다. 그러다 뭔가 떠오른 듯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정호야. 나 현민인데, 네가 어제 술 먹을 때 나한테 알려준 초밥 집 알지?"
"초밥 집? 무슨 소리야? 나 어제 머리 아파서 망년회 못 갔는데……. 다른 사람이 알려준 거겠지."
정호가 장난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봐도 초밥 집 얘기는 알지 못했고, 한결 같이 정호는 망년회에 참석 못했다고 했다.
정말 내가 꿈을 꾼 것일까……. 현민은 힘없는 걸음걸이로 골목을 빠져나왔다. 배고픔이 밀려들었다.
"당신 너무 야위었어요. 병원에 한번 가봐요. 내?"
아내가 현민을 조른다. 하지만, 현민은 얼빠진 얼굴로 출근 준비를 한다. 아내는 한달 째 밥도 잘 못 먹고, 뭔가에 홀려있는 듯한 남편을 보면서 가슴이 아파진다.
현민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다른 것을 먹을 수가 없었다. 구역질이 났다. 지금까지 이런 맛없는 것을 먹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밥 생각이 간절하다. 벌써 한달 째 그 초밥 집을 찾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곳을 모른다. 새벽에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은 뒤에 그곳을 찾아간 적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매일 퇴근길에 그 골목에 들렸지만, 오늘은 바로 집으로 들어온다. 그의 손에는 마켓에서 사온 초밥재료들이 들어있다. 아내는 친정집에 일보러 가서 조금 늦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집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초밥 재료를 늘어놓고, 봉지에 싸여있는 칼을 꺼낸다. 초밥 집 요리사가 쓰던 칼과 비슷한 것을 찾느라 고생 꽤나 했다. 얼굴에 요리사와 같은 미소가 흐른다.
우선 손톱부터 도려내자……. 현민은 중얼거리며 칼끝으로 손톱을 찌른다. 고통이 신경이라는 줄기를 타고 뇌를 파고든다. 현민은 멈추지 않는다. 호흡은 가빠지고, 이마엔 땀이 흐른다. 하지만, 초밥의 맛을 생각하면 멈출 수가 없다. 그 고통 역시 즐거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도 역시 끼이-하는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다음은……. 음. 뼈만 빼고 다 도려내는 거지……. 그렇지……. 현민이 흘리는 침이 벌써 목을 타고 그의 와이셔츠를 적시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느낄 새가 없다. 손가락 하나를 다 도려내고, 다듬어서 초밥 위에 올려 넣는다. 그때처럼 밥이 피로 물들고 있다. 현민의 얼굴도 일그러진 미소로 물들어간다.
현민은 완성된 초밥 하나를 입에 넣는다. 그런 다음 눈을 감고 오물거린다. 그러다 구역질이 일어 뱉어낸다.
"이게 아냐!"
현민은 소리를 지르며 주위에 있는 그릇들을 던진다. 그릇들은 파편이 되어 바닥에 퍼진다. 현민은 다음 손가락을 자르기 시작한다. 요리사의 눈처럼 현민의 눈도 빨갛게 충혈 되어 있다. 자신의 다섯 손가락을 잘라 만든 초밥들을 모두 뱉어내며 현민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는다.
싱크대에 피가 흥건하다. 피부와 엉겨 붙은 초밥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고, 현민의 왼손에는 피가 물방울처럼 떨어지고 있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눈을 가린다. 그리고 곧 울음을 터트린다.
뭐가 잘못된 거지? 소스가 잘못된 건가? 현민은 뼈만 남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어대며 생각한다. 그 때 요리사에게 조리법을 물어보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밸이 울리고, 조금 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나 왔어요."
아내의 목소리였다. 아내는 현민이 쪼그리고 있는 부엌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피로 얼룩이 된 바닥과 현민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는 모습이었다.
현민은 천천히 일어섰다. 바닥에 그릇 파편들이 그의 발을 피로 물들이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아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칼이 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