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지도 (펌)

옥탑방고양이 작성일 06.09.05 15: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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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오의 부름을 받고 나는 그의 집으로 향했다. 전화에서 그의 목소리는 다급했고 떨림이 전해졌다. 아마 무슨 일이 생긴 듯 했다.
3번 출구를 빠져나와 약간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돌았다. 앞 쪽에 보이는 2층 주택집의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 현관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진오가 얼굴을 약간 내밀었다. 현관으로 들어서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냐?"
진오는 내 말을 들은체 만체하더니 거실 서랍장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약간 크고 두꺼운 색바랜 종이였는데 떄가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놈은 그 종이를 탁자에 펼쳐놓고는 나를 주시했다.
"이게 뭐냐?"
나는 등받이가 없는 목재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진오는 종이를 심각하게 쳐다보더니 다시 나를 주시했다.
"기억안나? 아마 작년 겨울에,,"
진오는 내가 기억해내기를 바라는 듯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주현이 따라 광주에 내려갔을 때, 그 때 헌책방에 들렸던거 기억안나? 그 작고 허름한 곳 말이야."
나는 눈동자를 위쪽으로 올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자 곧 기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 기억난다. 그 칙칙한 책방. 으, 정말 지저분했단 말이야."
"그래, 그럼, 우리가 그 책방에서 산 책들 기억나? 그 책 중에 아주 두껍고 제목도 없었던 책이 있었잖아. 그리고 그 책 사이에 이상한 종이가 접혀 있었고,,"
나는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탁자위의 종이를 쳐다보았다. 분명히 기억이 났다. 그 책 사이에 있던 종이는 바로 이 종이였다. 우리가 그 때 이 종이를 몇 시간동안 관찰하고 연구했었다. 여러 그림들과 이상한 기호들로 채워져 있는 그 종이는 우리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우리는 별 다른 성과도 얻지 못하고 그냥 종이를 구석에 치워버렸다. 진오녀석의 서랍장 깊숙히 박혀있던 종이가 1년 만에 다시 빛을 본 것이다.
"기억나네. 그 때 얼마나 머리가 아팠는지. 그런데 이걸 왜 다시 꺼낸거야?"
진오녀석은 숨을 길게 내밷고는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
녀석은 뭔가 중대한 발언을 할려는 것 같았다. 나는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어젯밤에 꿈을 꿨는데, 그 꿈이 아주 괴상하고 이상해. 내가 어떤 거리를 걷고 있는데, 흉칙하게 생긴 한 남자가 다가오는 거야. 그 남자는 나에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어디론가 가버렸어. 나는 남자를 따라갔지. 한참 후에 남자가 도착한 곳은 어떤 산 속이었어. 산 중턱에 있는 어떤 공동묘지였지. 무덤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그 남자는 한 무덤앞에서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엎드려서 무덤을 파는거야. 도저히 그건 인간이 아니였어. 엄청난 괴력으로 무덤을 완전히 파헤치고 나서는 뭔가를 들어올렸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건 철문이었어. 남자는 그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도 엉겹결에 따라 들어갔지. 계단이 길게 있었고 아주 좁았어. 계단을 내려오자 미로같은 통로가 늘어져 있었지. 이미 남자는 보이지 않았어. 나는 너무 어두워서 감각으로만 손을 더듬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갔어. 그러다가 엄청난 빛이 보였고, 나는 그 방향으로 달려갔지. 나는 너무나 놀랐어. 아주 큼지막하고 단단해 보이는 상자안에 금괴가 쌓여 있었어. 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눈부신 금괴를 하나 집어들었지. "
진오는 잠시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순간에 잠에서 깨어났어. 별 괴상한 꿈도 다 꾼다고 생각했지. 잠도 이미 다 달아나 버려서 거실에서 책이나 읽으려고 했어. 그런데 뭔가가 뇌리를 치는듯한 느낌이 들었어. 내 머리 속에서 어떤 조합이 완성된 것처럼 말이야. 나는 서랍장을 열어 이 종이를 꺼내 탁자에 펼쳐 놓았어. 그리곤 난 확신을 가졌어. 이것이 보물지도라는 것을 말이야. 그 꿈이 나의 오래된 기억을 되살려 놓고, 암시를 준거야.
여기 지도 중앙에 그려진 반원들이 보이지? 바로 무덤인거지. 내가 꿈에서 본 무덤속 보물 말이야. 나는 이것을 확인하고 나서 흥분을 하기 시작했지. 뭔가 엄청난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곧 차분하게 이 지도를 해석하기 시작했어. 일단 나는 맨 아래쪽에 쓰여진 글자들을 살펴보았어. 여기를 봐. 영어하고 숫자가 조합된 난해한 문장이 있지?. 나는 이 문장을 아마 한 시간정도 뚫어져라 쳐다보았어. 그러다가 뭔가가 떠올랐어.
여기 이 글자들을 봐. 알파벳 한 두개가 오고 뒤에는 무조건 숫자가 오지?. 그리고 알파벳이 숫자보다 더 많아.
나는 생각했어. 아마도 알파벳과 숫자는 자음과 모음일 거라고 말이야.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그 다음은 간단했어. 알파벳의 순서대로 한글의 자음을 적어넣고 숫자대로 모음을 적어넣었지.
'A'는 'ㄱ'이런 식으로 말이야. 그렇게 바꿔 적어놓으니 문장이 하나 나왔어.
'거인이있는곳아래'
나는 다시 골똘히 생각했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이야. 일단은 거인에 대해 생각했지. 그러다가 곧 거인이 뭔지 알았어. 바로 충남 청운동에 있는 거대한 부처석상이지. 한 50M는 되고 한국에서 제일 큰 석상이야. 나는 흥분했지. 아마 거기에 보물이 묻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상했어. 그게 다라면 이 이상한 그림은 뭐냐는 생각이 들었지. 게다가 무덤이 아니라는 것도 이상했어.
나는 다시 지도를 집어들고 생각을 바꿨지. 이 문장이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실제 세부적인 위치는 그림이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이야.
그래서 나는 '거인이있는곳아래'를 거인이 있는 청운동 아래 지역이라고 다시 생각했어. 나는 지도책을 뒤적이면서 청운동을 찾았어.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건 주화동이었어. 나는 글자의 의미를 완벽히 해석하고 나서 그림을 살펴보았어.
여길 봐. 큰 삼각형이 그려져 있지?. 나는 아마도 이것이 산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삼각형 꼭대기에 있는 이 그림을 보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지도책을 다시 펼치고 하나하나 대조해 보았어. 주화동의 산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그 그림의 의미를 유추하려고 했지. 그러다가 결국은 알게되었어. 이걸 봐. 마치 짐승의 발톱처럼 보이지?. 이건 난폭한 육식동물을 나타내는 거야.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이것, 뭘로 보여?. 이건 왕관이야. 이제 알겠지?.
백수의 왕 사자. 결국 주화동에 있는 사자산을 가리키는 거지. 산 모양이 사자처럼 생겼거든. 그리고 여길 봐. 삼각형 안에 반원들이 여러개 그려져 있지? 이 반원은 아까 말한 무덤이야. 그리고 이것들이 여러개가 있으니 공동묘지를 가리키는 거지. 그리고 이 오각형, 이건 아마도 비석을 나타내는 거야. 비석 옆에 또 글자가 쓰여있어.
이걸 아까처럼 해석하면 '좌삼십일발뫼'가 돼. 이 비석에서 왼쪽으로 31걸음 쯤에 있는 무덤이라는 거지."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들은 내용을 정리하고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지도를 집어들어 곰곰히 살피고 또 살폈다. 준오는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지도를 탁자에 다시 내려놓고 어눌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사자산에 보물이 묻혀있다 뭐 이런 말이야?"
준오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우리가 그 보물을 찾으러 가자는 거야."
"뭐?. 보물을 찾으러 간다고?"
"그래."
나는 약간 어이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우려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이게 진짜라고 생각해? 만약 누군가의 장난이거나, 아니면 너의 추리가 틀렸을 경우는?"
준오는 담담한 표정으로 약간의 미소를 띠었다.
"밑져야 본전이지 뭐."






다음날 우리는 주화동으로 향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 가량 걸리는 곳이었다. 아침 11시 정도가 되어서야 우리는 주화동역에 도착했고, 택시를 잡아 타고 사자산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날씨가 쌀쌀했고 바람이 매서웠다. 우리는 옷을 단단히 껴입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중간쯤 올랐을 때, 위 쪽에서 내려오고 있는 한 등산객이 보였다. 우리는 그 등산객을 불러 공동묘지의 위치를 물었다. 등산객은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더니 자기도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다시 산을 올라 결국 정상까지 도달하고야 말았다. 우리는 잠시 숨을 돌리고 산 곳곳을 자세하게 살폈다. 하지만 정상에서도 공동묘지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허탈감을 느끼며 다시 산을 천천히 내려왔다. 우리 둘은 공동묘지를 찾기위에 눈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 때문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오후 3시가 되었고, 우리는 아직도 정상부근에서 맴돌고 있었다. 길이 나있지도 않은 험한 곳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결국 공동묘지를 발견했다.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공동묘지로 달려갔다. 정말 공동묘지가 기가막힌 위치에 존재했다. 정말 기묘한 위치였고 우리는 일종의 확신을 가졌다. 준오는 가방에서 그 보물지도를 꺼냈고 나에게 비석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나는 흥분한 상태로 다급히 비석을 찾았다. 무덤은 수십개가 있었지만 비석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시야를 넓게 잡았다. 반시계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눈동자를 돌리다가 가까스로 눈에 비석이 포착되었다.
"저기다!"
나는 비석을 향해 준오와 달려갔다. 회색의 그 비석은 다듬지를 않아서 모가 많이 났으며 곰팡이까지 피어있었다. 준오는 정확하게 비석의 왼쪽을 향해 눈을 맞추었다. 하지만 무덤이 하도 많아서 쉽게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준오는 나를 보더니 일정한 걸음으로 정확히 직선으로 걸으라고 지시했다. 나는 지시대로 천천히 최대한 일정하게 발걸음을 했다. 준오는 내가 방향이 흐트러지거나 보폭이 일정한지를 지켜보며 계속 따라왔다.
몇 개의 무덤을 타고나서 정확한 위치에 있는 무덤 하나를 발견했다. 그 무덤은 내 발과 불과 10센치 정도 앞에 떡하니 서있었다. 내가 똑바로 걸었다면 분명 이 무덤이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이었다.
준오는 또 다시 흥분을 하더니 곧 정신을 차리고는 가방을 열었다. 준오는 준비해온 삽과 경작용 농기구를 꺼냈다. 나는 삽을 집어들고 준오와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물론 꺼림칙한 기분은 들었다. 음산한 느낌의 이 공동묘지에다가 남의 무덤까지 판다는 사실이 약간은 무섭고 두려웠다. 하지만 보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흥분이 그런 감정들을 삼켜버렸다.
무덤을 판다는 건 사실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다. 1시간 정도가 지나자 팔에 쥐가 몰려왔고 근육이 풀려버렸다.
그렇게 아마 3시간 정도가 지났을 것이다. 주변은 이미 암흑이 덮고 있었다. 우리의 힘이 완전히 바닥이 나려는 순간 둔탁한 금속음이 들렸다. 나는 삽질을 멈추었고, 준오는 손전등을 비추었다.
그것은 철문이었다. 주변의 흙들을 대충 털어버린 후, 준오는 손잡이 부분을 비추었다. 손잡이에는 이미 산화되어 녹슬어 버린 좌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준오는 무거운 그 농기구를 힘껏 내리쳤다. 두 번정도 그렇게 하자 자물쇠가 힘없이 풀려져 버렸다. 준오는 희한한 표정을 지으며 손잡이를 잡았지만 꿈쩍하지도 않았다. 이번엔 나까지 가세해서 힘껏 들어올렸다.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더니 점점 육중한 철문의 마찰음이 들렸다. 겨우겨우 철문을 열어재끼고 우리는 암흑의 통로로 잠입했다.

안은 너무나 어두웠고 우리는 오로지 손전등에만 모든걸 의지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곧 길고 좁은 통로가 보였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갑자기 기절할 뻔 했는데, 바로 지네 때문이었다. 손가락만한 지네가 벽을 스물스물 기어다니고 있었다. 준오는 그런 나를 다그치며 놀랠 것 없다며 격려해주었다. 벽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하나같이 다 괴상한 모양이었다. 곳곳에는 버섯이 나있기도 했는데 색깔이 화려해서 독버섯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한참을 걷던 우리는 세갈래의 분기점에 도달했다. 우리는 일단 왼쪽으로 접어들어 다시 한참을 걸었다. 다시 2갈래의 분기점이 나왔고 우리는 차례대로 가 보았지만 모두 막힌 길이었다.
미로였다. 준오가 꿈에서 겪었던 바로 그 미로였다. 나는 일종의 짜증을 냈지만 준오는 확신에 차 들떠있었다. 꿈에서 처럼 금괴를 찾을 것이라는 확신이 준오를 흥분케했다. 우리는 다시 세갈래 분기점으로 돌아와 오른쪽으로 향했다. 다시 여러곳의 분기점을 거쳐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
"또야?"
실망감 섞인 한숨을 내쉬다가 나는 준오의 다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저것 봐."
나는 준오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한참을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그것은 사람의 시체였다. 반은 해골이었고 반은 시체였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준오의 팔을 꽉 잡았다.
"저건 시체잖아. 임마!"
나는 오싹한 감정에 휩싸여 말했다. 준오도 약간은 꺼림칙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야,, 그냥 돌아갈까?"
"무슨 소리야! 여기까지 와서."
준오는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성을 냈다. 나는 다시 준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끝도없이 막다른 길로 접어들었고 되돌아 다른곳으로 가도 막다른 길이었다. 우리는 이미 이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방향감각과 기억력을 상실해 버렸고, 우리가 보물을 향해 가고 있는지 아니면 무덤입구로 되돌아 가고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
우리는 이미 길을 잃었고 어쩌면 이 곳에서 평생 맴돌 수도 있었다. 칙칙한 습기가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었고 곳곳에서 이따금씩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속으로 준오를 욕했다. 이 녀석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의 분노가 치밀었다. 이 놈의 어리석은 호기심이 결국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나는 통로를 걷는 내내 뒤에서 준오를 노려보았다. 손전등으로 머리를 한대 후려버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다 소용없는 짓이었고 단념해 버렸다.
우리는 한참 후에 또다시 막다른 길에 접어들었고 그 곳에서 시체 두 구를 발견했다. 우리는 다시 혐오감과 두려움을 느끼며 그 시체를 관찰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이 시체들은 형체가 어느정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이 시체들의 머리통이 모두 갈라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도끼로 내리 찍은 것처럼 잔인하게 터져 있었다. 오싹한 공포가 나를 공격했다.
끔찍한 시체를 뒤로한 채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공포감과 절망이 몰려왔다. 나는 이젠 오로지 이 곳에서 빠져나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준오의 표정에는 아직도 보물을 찾는 호기심어린 눈빛이 남아있었다. 지독한 놈.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미로의 출구가 눈 앞에 보였다. 나는 미로를 빠져 나왔다는 기쁨으로, 준오는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기쁨으로 환호했다.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드디어 눈물겹게 미로를 통과한 것이었다.

우리는 잠시 숨을 돌린 뒤 앞에 보이는 광경을 살폈다.
눈 앞에는 나무로 된 탄탄한 다리가 놓여있었고, 그 아래에는 암흑의 구렁이 있었다. 얼핏 느끼기에도 엄청난 깊이였다. 그리고 다리의 건너편에는 좁은 통로가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다시 굳은 각오를 하고 내가 먼저 앞에 서서 천천히 걸었다. 다리의 폭이 매우 좁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곧장 저승길로 떠날 수 있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발을 하나하나 내딛었다.준오도 곧장 내 뒤를 따랐다.
그런데 내가 다리 중간 정도의 위치에 도달했을 때, 무슨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귀를 귀울여 최대한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애를썼다. 그건 아마도 발소리인 것 같았다. 순간 오싹한 기분이 감돌았다. 우리 말고도 누가 이 곳으로 들어온건가?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됨을 느끼며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다. 우리가 지나온 미로쪽으로 손전등을 비추었다.

곧이어 거대한 몸집의 사내가 미로의 출구 부분에 나타났다. 그는 다 낡아떨어진 헐렁하고 지저분한 옷을 입고 있었고, 털이 엄청나게 많았다. 손에는 도끼 한자루가 들려있었고, 어둠속에서 빛을내는 오싹한 눈은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진오는 기겁을 하면서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다리를 건넜다. 죽을 각오로 다리위를 달려 가까스로 건너편에 도착했다. 나는 살아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고 진호를 챙길 겨를조차 없었다. 엄청난 공포감이 심장과 머리를 진동시켰고 나는 필사적으로 이어진 좁은 통로를 향해 뛰었다. 곧 진오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좁은 동굴을 메아리치며 사방으로 퍼졌다. 그 비명은 자극제가 되어 나의 달음박질을 더욱 부추겼다. 얼마 가지않아 철문이 길을 가로막았다. 나는 끔찍한 불안감을 느끼며 손잡이를 잡았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나는 두려움의 힘으로 철문을 열었다. 반쯤 열렸을 때, 거대한 발자국 소리가 또 다시 들려왔다.
곧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거대한 사내가 보였다. 그 모습은 정말이지 끔찍하고 흉칙했다. 나는 죽을힘으로 무거운 철문을 닫은 후에 재빨리 잠금장치를 조작했다. 그 괴물은 문을 두들기며 성을 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귀가 째지도록 질러댔다. 그런데 그 괴물이 힘이 얼마나 센지 그 육중한 철문이 심하게 흔들렸다. 다급해진 나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빨리 이 곳에서 나가야만 했다.
하지만 난 그만 절망에 사로잡혀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이곳은 막혀버린 하나의 동굴방이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빠져나갈만한 곳은 없었다. 약간의 구멍조차도 없었다. 게다가 그 빌어먹을 놈은 도끼로 문을 부시고 있었다. 굉음과 함께 철문이 약간씩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곧 문에 구멍이 뚫릴 판이었다.
나는 다급함과 공포감에 싸여 일종의 발작을 일으켰다. 숨이 가파오고 정신이 혼미했다. 하지만 극도의 두려움이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숨을 가라앉히고 눈앞에 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거대하고 단단한 상자를 주시했다. 사람 10명 정도는 충분히 들어 갈 수 있을만한 크기였다.
나는 이미 사라져버린 이성을 가까스로 끌어올려 생각했다. 보물. 준오가 말했던 바로 그 보물상자였다.
나는 그 상자를 천천히 열어 조심스럽게 안을 비추었다. 하지만 반짝이는 금괴를 생각했던 나는 그만 구역질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 안에는 금괴대신 썩어버린 시체와 해골 뿐이었다. 시체들과 해골들이 이리저리 엉켜서 상자에 잔혹하게 박혀있었다. 게다가 상자 안에는 죽음보다도 무서운 더러운 냄새가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끔찍해서 울고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절망은 문이 부서지는 소리에 의해 깨졌다.
문이 거의 열릴 즈음, 나는 다급함에 사로잡혀 본능적인 행동으로 그 안으로 들어가 뚜껑을 닫았다. 최대한 몸을 숨기기 위해 시체밑으로 파고들어 제일 아랫부분에 자리를 잡았다. 곧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뭔가를 끄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사내는 상자 앞에서 멈추더니 뭔가를 중얼거렸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중얼거림이 끝나자 곧 상자의 문이 천천히 열렸고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극도의 두려움에 떨면서 몸을 약간 움츠렸다. 사내는 상자안에 뭔가를 툭 하고 집어넣는 듯 싶더니 이내 뚜껑을 닫아버렸다. 자물쇠 소리가 나더니 사내는 사라져 버렸다.
나는 몸을 일으켜 필사적으로 상자를 열어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 놈이 상자를 잠궈버린 것이었다. 나는 깊은 절망과 구역질을 느끼며 방금 들어온 이 따끈따끈한 시체를 어둠속에서 주시했다. 머리가 깨져 뇌와 눈알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준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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