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후쿠 묘지

현충일입니다 작성일 07.02.04 20: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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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싸로는 텅빈 노란색 학교 버스를 몰고 83번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버스 안에 손님이라곤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여자가 정류 장에 서 있는 걸 본 것은 라이에 83번 도로에서였다.
오하우 북쪽 해안을 도는 버스는 오로지 한 노선밖에 없었다.
이싸로는 지난 3년 동안 외길로 뻗은 이 길을
무려 3000번도 넘게 운전하며 다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에 3번씩 그는 여러 계층의 인종들과
여러 층의 연령을 가진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그들 중에는 오사카로 물건을 팔러가 는 장사꾼들도 있었다.
도시로 물건을 사러 가는 젊은 여자들도 있었고
마지못해 학교로 공부하러 가는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
승객 중에는 관광 안내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관광지로 돈을 벌러 나가는 길이 었다.
마땅한 차편이 없어 버스를 이용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일거리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어쨋든 이 사람들은 모두 이싸로의 친구들이었다.
이싸로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나이 든 여인은 예외였다.
버스 불빛이 얼굴을 비췄지만 아무리 봐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얼굴이었다.
한 60정도 됐을까? 아니면 65살 정도?
한국 여자같기도 하고 중국 여자같기도 하고?
그 여자는 빛이 바랜 호로쿠를 걸치고 낡은 고무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낡은 중국 밀짚 모자엔 깃털이 달려 있었다.
목엔 시들어 버린 화환을 걸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회색 빛으로 마치 엉킨 실타래처럼
모자 밑으로 갈래갈래 늘어져 있었다.
이싸로는 운전하느라 그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단지 무척 어두운 인상이라고 생각했다.
피부는 주름이 져서 마치 거친 바위 같았다.
버스를 세우려고 했을 때 이싸로는 문득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부득이 가스페달을 사용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났다.
그의 버스는 너무 낡아서 고장이 자주 났다.
'그냥 세우지 말고 갈까?'
'아냐, 승객을 놔두고 그냥 갈 순 없지. 게다가 나이 든 여자인데...'
간신히 버스를 세우자 그 여자는 올라타면서
사투리로 이싸로에게 뭔가를 물었다.
그리곤 버스 맨 뒷 좌석으로 가 앉았다.
'휴, 오늘도 무사히 일을 마쳤구나.
마지막 손님만 내려주면 오늘 일도 끝났구나.'
이싸로가 백미러로 보니 그 여자가 이싸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요금을 달라고 할까? 에이, 오늘 밤은 예외다.'
그때 버스가 갑자기 털털거리더니 서버렸다.
엔진이 꺼진 것이었다.
버스에 시 동을 걸려고 했지만 버스는 영 움직이지 않았다.
이싸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버스를 움직이려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버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휴, 이게 무슨 냄새지? 그러고보니 아까 저 여자 손님이 탈때
묘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 마치 죽은 고기에서 나는 냄새같아.
맞아. 썩은 물고기에서 나는 독한 냄새... 죽음의 냄새.'
"여보세요."
이싸로는 생각 에 빠져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아마 가방에서 나는 냄새같아. 뭐가 들었길래...?'
여자가 다시 사투리로 말했다.
"오, 부인. 저는 사투리는 잘 못알아듣는데요."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죠?"
여인은 명확하게 사투리가 아닌 표준어로 다시 물었다.
"와사마타로 갑니다." "와사마타? 난 와사마타가 어딘지 몰라요."
이싸로는 여 자의 몸에서 나는 숨막히는 냄새를 피해 차 밖으로 나왔다. 후드 아래를 점검해 보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 고장 난 것도 없고 점검해 보았지만 모든 게 정상이었다.
그는 언제나 버스를 내 몸처럼 아끼고 손질하는 훌륭한 운전사였다.
버스에 오르니 여자는 온데간데 없었다.
냄새만이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
'유령인가? 어디로 갔지?'
그러자 시동이 걸리더니 버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발했다.
기묘한 일이었다.
도로는 텅 비어 있었고 구름 낀 하늘은 그날따라 음침하기만 했다.
오직 버스의 빛만이 칠흑같은 길을 밝혔고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저녁 다시 마지막 운행을 마칠 무렵 그는 숨이 막힐 듯 놀랐다. 늙은 여자가 버스 정류장에 또 서 있었다.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싸로는 이상한 힘에 이끌려
다시 버스를 멈추었다. 그리고 전 날과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다음 날 아침,이싸로는 유령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는 항상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얘야, 만일 유령이나, 악마 또는 어떤 초자연적인 것을 보게 되거든
곧장 교회로 달려가 충고를 얻으려무나."
심각하게 이야기를 다 듣고난 사제가 이싸로에게 물었다.
"그 여인이 원하는 건 무엇일까요?"
"나도 모르겠어요. 왜 자꾸만 내 버스에 타려고 하는지...."
"이싸로씨. 그 여자에게 무엇을 원하는 지 물어 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여잔 영원히 그 버스 정류장에 서 있을 겁니다."
"알았습니다. 내가 꼭 알아 보겠습니다."
"꼭 해야 합니다. 그녀는 분명 떠도 는 영혼입니다.
왜 나와 버스에 붙어다니는지 그 이유를 꼭 물어 보시오."
그날 이싸로는 버스를 운전하며 생각했다.
"오늘 밤엔 내 앞에 있는 이 숙제를 꼭 풀어야 해."
이싸로는 가슴 속에 십자가와 묵주를 꼭 품었다.
그날 마지막 운행중 이싸로는 기도했다.
"그 여자를 태우기 전에 누군가가 이 버스를 탄다면...
아니면 그 전에 고장이라도 나던가... "
그러나 아무도 타는 사람은 없었고, 낡은 버스는 잘도 달렸다.
똑같은 그 정류장에 여자가 서 있었다.
구역질 나는 냄새와 시들어 버린 화환을 목에 걸고서....
여자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버스 맨 끝줄에 자리를 잡았다.
이싸로는 핸들 밑에 몸을 숨기고 덜덜 떨고 있었다.
마침내 이싸로가 벌떡 일어나 십자가와 묵주를 높이 들고 외쳤다.
"난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소. 당신이 죽은 영혼이라는 것을.
그러니 뭘 원하는지 말하시오."
"날 이 도로를 벗어나 아주 특별한 장소로 데려다 주세요."
여자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듯 말했다.
"난 나 혼자서는 그 곳으로 갈 수가 없답니다. 그곳은 너무 멀어요.
나를 카후쿠로 태워다 주세요.
그곳엔 내 친구들과 친척들이 살고 있지요."
이싸 로는 재빨리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차를 몰았다.
카후쿠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 곳에는 오래된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폐허가 된 지 꽤 오래되었다.
그래서 묘지로 가는 길은 울퉁불퉁하였다.
그런 길을 밤에 운전하기란 쉽지 않았다.
썩은 생선 냄새와 같은 지독한 냄새를 참으려고 이싸로는 코를 막고
백미러 속으로 여자를 흘끔흘끔 훔쳐 보았다.
묘지에 도착했을 때 버스는 헐떡거리더니 드디어 엔진이 꺼졌다.
바다로부터 겨우 15피트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오, 하느님. " 이싸로는 시동을 걸려고 노력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진동하던 냄새가 사라지고 여자의 모습도 사라졌다.
이싸로는 집으로 돌아오는 도로에서 중얼거렸다.
"이제 그 곳에서 오래오래 친구들과 친척들과 행복하게 살겠지.
다시는 안 나타날거야."
그 후로도 그는 시골 마을 사람들의 발이 되어 달리고 또 달렸다.
그의 승객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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