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사] 이스라엘 위한 거부권을 32회나 발동한 미국 !

긴머리소년아 작성일 07.03.22 17: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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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위한 거부권을 32회나 발동한 미국 !   미국은 이스라엘에게 완전히 사로잡혀서 이스라엘이 요구하는대로 행동하고 있다면 사람들이 못믿어 하겠지만 짧은 유엔역사에 이스라엘을 제재하기 위한 결의를 하려 해도 미국이 항상 거부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유엔이 이스라엘을 제재할 수 있는 길은 영원히 닫혀 있다. 미국은 필요할 때는 유엔을 찾고 그렇지 않을 때는 항상 제멋대로 하는 나라였다. 유엔의 중심은 유엔 안보리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192개국의 회원국을 지닌 유엔에 대해 말할 때, 또는 유엔 총회에서 연설할 때조차도 그가 말하는 ‘유엔’은 5개 상임이사국과 10개 비상임이사국으로 이뤄진 ‘유엔 안보리’를 뜻한다. 유엔 안보리 개혁은 유엔의 고질적인 패권구도를 개선한다는 점에서 시급한 것이다.
초점은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거부권(veto power)이다. 잘 알려진 바처럼, 유엔 안보리는 1945년 막을 내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Axis powers,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이긴 연합국들이 만들어낸 배타적 역학구도의 산물이다. 유엔이 51개 회원국으로 결성되면서 승전국인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은 스스로를 영구적인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차지, 자국 이익과 충돌할 듯 보이는 사안에 대해선 거부권을 휘둘렀다. 지난 60년 동안 상임이사국 5개국이 보여온 행태를 들여다보면 거부권이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국제정치의 주요 현안들이 유엔 안보리에 올라왔지만, 거부권을 지닌 상임이사국 5개국이 그때마다 이해득실을 따져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휴지가 되곤 했다. 유엔 안보리에서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나라가 다름 아닌 미국이다. 미국의 잦은 거부권 행사는 많은 제3세계 국가들로부터 비난을 들어왔다. 대표적인 보기가 이스라엘 비난 결의안이다. 지난 1967년 이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골란고원을 군사적으로 점령, 무자비한 억압통치를 펴왔다. 이를 비난하고 이스라엘이 군이 점령지역에서 철수하라는 결의안이 안보리에 제출될 때마다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하곤 했다. 미국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뒤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표결 때 무려 32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정책은 인류의 보편적 정의에 어긋난다. 강대국들이 장악해온 안보리 개혁은 유엔 개혁의 핵심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개편안은 기득권을 지닌 상임이사국들, 특히 미국의 반대로 논의만 무성할 뿐 현실화되지 못한 상황이다. 60년 전 51개국으로 출발했던 유엔은 현재 회원국 숫자가 192개국으로 늘어났다. 거의 4배 가까운 수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상임이사국은 붙박이 5개국에서 더 이상 늘지 않았다. 2년마다 돌아가며 뽑히는 10개 비상임이사국은 거부권이 없다. 바로 여기서 안보리 운영 체제를 민주적으로 개편해야 할 필요성이 나온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도 유엔 안보리 개혁을 통해 유엔이 21세기의 변화된 지정학적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는 합리적인 모습의 국제기구로 거듭 태어나길 바랐다. 2005년 3월 그는 유엔 개혁안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 핵심은 현재의 5개국에서 11개국으로 늘리는 내용의 A안과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사이에 준상임이사국 8개국을 신설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B안이었다.
아난 사무총장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앞서 벌어진 미국과 독일?프랑스 등 유럽 사이의 심각한 분열이 국제안보 체제에 위협을 가져왔으며 유엔의 신뢰도에도 상처를 줬다”며 개혁안의 주요 목적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같은 강대국의 일방주의를 제한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안보리 개혁안에 대해 시큰둥한 자세를 보여 왔다. 미국 대표인 타히르 켈리 국무장관 선임보좌관은 유엔 연설에서 “개혁안 처리가 인위적인 시한 설정에 구속돼서는 안 된다. 미국은 광범위한 합의에 바탕을 두고 일을 진척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빨리 또는 간단히 회원국 사이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분야도 있다”며 딴전을 피웠다. 미국의 유엔 안보리 기득권 지키기에 앞장서는 인물이 존 볼튼 유엔 주재 미국대사다. 1기 부시 행정부 때 국무부 차관으로서 대북 옥죄기의 선두주자였던 타고난 강경 매파 볼튼 대사는 입으로는 유엔 개혁을 외치면서도 미국의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양보하려는 자세와 거리가 먼 행태를 보여 왔다. 볼튼의 세계관은 “미국은 다르다”는 미국적 예외주의에 기초한 미국적 국제주의다. 유일 초강국이자 민주국가로서 자비로운 패권국가인 미국 중심으로 국제질서가 움직여야 한다는 신념이다. 미국은 유엔 사무총장 선출에서도 횡포를 부려왔다. 미국이 밉보인 인물은 사무총장 꿈을 접어야 한다. 규정상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지금껏 역대 사무총장 가운데 아무리 다른 국가들이 강력 추천한다 해도 미국이 반대한 후보가 당선된 일이 없다.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1992∼1996)이 2기 연임에 나서고자 했으나 좌절, 그 대신 코피 아난 사무차장이 총장에 오른 것도 “유엔은 독자노선을 걸어야 한
다”며 번번이 미국과 잦은 충돌을 일으켜 밉보인 탓이었다. 패권국가 미국은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에도 매우 소극적이다. 유엔의 주요 역할은 분쟁지역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분쟁지역에 평화유지군을 보내야 할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다고 치자. 미국이 여기에 적극 나서는 것은 쿠웨이트의 석유를 비롯해 미국의 이해관계가 훼손당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클 경우다.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후투-투치 부족 사이의 인종학살 바람이 불었을 때, 미국은 “정확한 정보를 알기 어렵다. 인종학살인지도 분명치 않다”며 유엔평화유지군 파병에 제동을 걸었다. 필요에 따라서는 ‘우리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라 하지만, 그것도 미국의 이해가 걸려 있을 때의 얘기다.     미국은 왜 끝없이 전쟁을 하게 되는가 ?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은 무기 제조업과 군수산업이다.
전쟁 비용은 당연히 미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미국 정부가 지불보증을 하고
미국 국방부는 유대인 회사가 만든 무기를 사서 전쟁을 치르게 된다.
죽는 것은 미국 사람들과 다국적 군이 죽고
욕은 기독교가 얻어먹고
총알은 유대인들의 대적을 향하여 날아가고
돈은 유대인의 주머니에 쌓이게 된다. 미국이 전쟁을 시작하면 유대인들은 전쟁 당사국에도
다른 루트를 통하여 무기를 판매한다.
유대인들은 미국 정부에도 무기를 공급하고 상대방 나라에도 판매한다.
우리 나라에 판매한 아파치 헬기를 이북에도 팔아먹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다. 미국의 국방비 예산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470,000,000,000,000 ~500,000,000,000,000 원이다.
470 조원 내지 500 조원 규모의 국방비를 쓰고도 국민들은 과소비에
젖어 있어서 저축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 ?
"백인들이 일하고
"흑인들이 즐기고
"유대인이 소유하는 나라"라는 말이 가장 정확한 말이다. 그런데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언제나 특별 예산을 통과시켜서
무제한으로 쏟아 부어 승리를 가져 오게 해야 한다.
지구상에 전쟁이 일어나면 유대인의 추수때가 된다고들 한다. 과거 로마가 많은 나라와 전쟁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돌이켜 보면 지금의 미국만큼 짦은 역사에 많은 전쟁을 했던 나라는 없다.
지난 200 년 동안에 크고 작은 전쟁을 거의 150 번까이 치르고도
아직도 망하지 않은 나라가 미국이라는 나라이다. 1. ○ 트리폴리 전쟁 (1801∼1805),
2. ○ 모로코와 전쟁 (1801∼1805)
3. ○ 스페인과 전쟁 (1803∼1806)
4. ○ 캐나다와 플로리다를 위해 영국에 선전포고 (1812∼1815)
5. ○ 스페인령 서부 플로리다 강탈 (1812∼1814)
6. ○ 말카스제도 누크 히버섬 상륙, 침공 (1813),
7. ○ 알제리 전쟁 (1816∼1818)
8. ○ 옐로우스톤 원정 (1819∼1829)
9. ○ 쿠바, 푸에토리코, 산토도밍고, (1819∼1825)
10. ○ 멕시코의 유가탄 반도 침공 (1819∼1825)
11. ○ 하와이 제도 침공 (1826),
12. ○ 그리스 미코노스섬, 앤드로스섬 침공 (1827)
13. ○ 포클랜드 군도 침공 (1831∼1832),
14. ○ 수마트라섬 쿠알라토르 침공 (1832)
15.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침공 (1833),
16. ○ 사모아 제도 침공 (1835)
17. ○ 수마트라섬 침공 (1838),
18. ○ 피지 군도 침공 (1840)
19. ○ 길버트 군도의 드래몬드 제도 침공 (1841),
20. ○ 리베리아 침공 (1843)
21. ○ 멕시코와 전쟁(1847∼1848),
22. ○ 아이티의 사마나만 점령(1847)
23. ○ 부에노스아이레스 침공 (1852∼1853),
24. ○ 니카라과 침공 (1853∼1854)
25. ○ 중국 상해, 광동 침공 (1854∼1856),
26. ○ 피지 군도 침공 (1858)
27.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침공 (1855∼1858),
28. ○ 뉴 그레네이더 하나마 침공 (1858)
29. ○ 니카라과 침공 (1857),
30. ○ 유이하 제도 침공 (1858),
31. ○ 파라과이 침공 (1858∼1859)
32. ○ 중국 상해 침공 (1857),
33. ○ 판 데트카 해협의 산판섬 침공 (1859)
34. ○ 멕시코 침공 (1859),
35. ○ 포르투갈령 서아프리카 키센보 침공 (1860)
36. ○ 일본 시모노세키 침공 (1863∼1864),
37. ○ 콜롬비아 파나마 침공 (1865)
38. ○ 중국 침공 (1863∼1964),
39. ○ 멕시코 침략(1866),
40. ○ 대만 침공 (1867)
41. ○ 조선 침공 (1867∼1872),
42. ○ 우르과이 몬테비데오 침공 (1868)
43. ○ 일본 침공 (1868),
44. ○ 콜롬비아 침공 (1868),
45. ○ 멕시코 침공 (1870∼1873)
46. ○ 콜롬비아 파나마 침공 (1870),
47. ○ 하와이 군도 호눌룰루 침공 (1874)
48. ○ 멕시코 침공 (1876),
49. ○ 이집트 침공 (1882),
50. ○ 파나마 침공 (1885)
51. ○ 아이티 침공 (1888),
52. ○ 조선 상륙(1888)
53.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상륙 (1890),
54. ○ 아이티 침공 (1891)
55. ○ 칠레 침공 (1891),
56. ○ 호눌룰루 상륙, 하와이 제도 점령 (1893)
57. ○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 침공 (1894),
58. ○ 니카라과 상륙 (1894)
59. ○ 조선과 중국 상륙 (1984∼1896),
60. ○ 콜롬비아 상륙 (1895)
61. ○ 니카라과 상륙 (1896),
62. ○ 하와이 제도 병탄 (1898),
63. ○ 니카라과 상륙 (1898)
64. ○ 쿠바, 필리핀, 괌, 푸에토리코 점령 (1898∼1899)
65. ○ 니카라과 상륙 (1899),
66. ○ 피지 제도 군사원정 사모아 침공 (1899), 
67. ○ 추추라이섬 점령 (1899),
68. ○ 사모아 침공 필리핀과 전쟁 (1899∼1902)
69. ○ 중국 의화단 진압 군사원정 (1900∼1901)
70. ○ 파나마, 콜롬비아 상륙 (1900∼1902)
71. ○ 사마르섬, 필리핀 레에테섬의 군사작전 (1903∼1904)
72. ○ 파나마 운하 영구점령 (1903),
73. ○ 산토도밍고 침공 (1903∼1904)
74. ○ 파나마 상륙 (1904),
75. ○ 조선 상륙 (1904),
76. ○ 쿠바 점령 (1906∼1909)
77. ○ 니카라과 침공 (1910),
78. ○ 온두라스 침공 (1910-1911)
79. ○ 중국 상륙, 베이징 침공 (1911∼1912),
80. ○ 파나마 침공 (1912),
81. ○ 쿠바 상륙 (1912)
82. ○ 터키 상륙 (1912),
83. ○ 니카라과 침공 (1912∼1915),
84. ○ 멕시코 상륙 (1913)
85. ○ 아이티 상륙 (1914),
86. ○ 멕시코 침공 (1915∼1916)
87. ○ 산토도밍고 점령 (1916∼1925),
88. ○ 제1차 세계대전 참전 (1917∼1918)
89. ○ 파나마 치리키 점령 (1918∼1920),
90. ○ 신생국 소련 침공 (1918∼1920)
91. ○ 온두라스 상륙 (1919),
92. ○ 코스타리카 침공 (1919),
93. ○ 과테말라 침공 (1920)
94. ○ 파나마, 코스타리카 침공 (1921),
95. ○ 중국에 무력개입 (1922∼1941)
96. ○ 온두라스 침공 (1924∼1925),
97. ○ 파나마 침공 (1925)
98. ○ 니카라과 침공 (1926∼1933),
99. ○ 온두라스 침공 (1931),
100. ○ 쿠바 연안 정찰 (1933)
101. ○ 중국 양자강 연안 점령 (1937),
102. ○ 중국 광동, 태평양의 엔더베리 점령 (1938)
103. ○ 그린랜드 항구 점령 (1941),
104. ○ 아이슬랜드 점령(1941)
105. ○ 한국 전쟁 (1950∼1953),
106. ○ 이란의 모사디그 정권 전복 (1953)
107. ○ 과테말라 군사개입 (1954),
108. ○ 중동 위기 선동 (1958)
109. ○ 케모이섬, 마쓰섬 주변에서 무력시위 (1958)
110. ○ 유-2 첩보기 소련 영공 정찰 (1960),
111. ○ 콩고에서 '유엔 군사작전' 선동 (1960)
112. ○ 피그만 침공 (1961),
113. ○ 베를린 위기 선동(1961),
114. ○ 통킹만 무력도발 (1964)
115. ○ 베트남 전쟁 (1964∼1972),
116. ○ 도미니카 공화국 내정개입 (1965)
117. ○ 엔크루마 정권 전복 (1866),
118. ○ 라오스, 캄보디아 무력개입 (1970)
119. ○ 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 (1973),
120. ○ 포르투갈에서 파괴활동 (1974∼1975)
121. ○ 케냐의 무왕기 카리우기 암살 (1975)
122. ○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정권 전복 (1975),
123. ○ 콩고인민공화국 정권 전복 (1977)
124. ○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1979∼1981),
125. ○ 카스트로 암살 기도 (1960∼1981)
126. ○ 카다피 암살계획 (1981),
127. ○ 파나마의 토리호스 암살 (1981)
128. ○ 인디라 간디에 대한 음모 (1981),
129. ○ 잠비아 대통령 암살계획 (1981)
130. ○ 폴란드 내정간섭 (1980∼1984),
131. ○ 아프가니스탄 군사개입 (1980∼1984)
132. ○ 엘살바도르 내전 군사개입 (1981∼1983)
133. ○ 니카라과에서 군사도발 (1981∼1983)
134. ○ 시드라만에서 리비아에 대한 군사도발 (1982)
135. ○ 그레네이더 침공 (1983),
136. ○ 걸프전 (1990-1991)
137. ○ 소말리아 무력개입 (1992-1995),
138. ○ 1994년 6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침략기도 무산
139. ○ 수단, 아프가니스탄 미사일 공격,
140. ○ 이라크 공격 (1998),
141. ○ 유고연방 침공 (1999)
142. ○ 아프카니스탄 공격(최근까지)
143. ○ 아라크 전쟁(지금 진행중)
144. ○ 시리아 위협 중
145. ○ 이란과 신경전 중
146. ○ 북한과 신경전 중
147. ○ 그 다음은 어디가 될 것인가를 주목하라     미국도 못건드리는 성역 ‘슈퍼파워’ 美유대인 !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처한 곤경은 미국에서 공적인 인물이 ‘유대인 로비’에 대해 입을 열 때 겪는 위험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영국 출신 중동문제 평론가 패트릭 실 씨의 ‘걸프뉴스’ 기고문) 지미 카터(83) 전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담은 저서로 호된 시련을 겪었다. 그는 자신의 재임 기간(1977∼1981년) 중동 평화정책 전개 과정을 회고한 ‘팔레스타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아닌 평화’를 지난해 11월 출간한 뒤 “팔십 평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거짓말쟁이, 반유대주의자, 겁쟁이로 불렸다”고 스스로 말할 만큼 친유대계 단체와 인사들에게 호된 비판을 받았다. 비판의 화살은 먼저 책의 제목을 향했다. ‘아파르트헤이트’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시오니즘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과 동일시한 결과가 아니냐는 것. 책 내용 가운데 “아랍 공동체와 모든 주요 팔레스타인 그룹들은 국제법과 평화 로드맵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스라엘이 수락하면 자살 폭탄이나 다른 모든 테러 행위를 끝낼 것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대목에도 비판이 집중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 협상이 성사되기‘까지는’ 테러 전술을 옹호하는 것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결국 책 내용에 항의해 ‘카터센터’ 자문위원 14명이 지난달 카터와 결별을 선언하고 사퇴했다. 중동특사를 지낸 데니스 로스 씨는 책에 자신이 만든 지도가 허락 없이 사용됐다고 주장하면서 표절 논란에까지 불을 지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 같은 비난들은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이 공정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나의 결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책의 내용이 정확하고 유용하다는 사실을 희석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맞서 왔다. 그러나 결국 카터 전 대통령은 23일 학생의 절반 정도가 유대계 학생으로 구성된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교외의 브랜다이스대 초청 특강에 응해 고개를 숙였다. 그는 문제의 테러 옹호 논란 구절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 구절은 완전히 부적절하고 멍청하게 쓰였다”며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는 책의 2판부터 표현을 바꾸도록 출판사에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퇴임 후 존경을 받아 온 전직 대통령이 필화(筆禍)를 겪다가 결국 무릎을 꿇기까지 “비판이 지나치다”며 시시비비를 가려 보자고 나선 정치 지도자나 유력 언론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까지 성명을 발표해 “카터 전 대통령의 견해가 민주당의 이스라엘 정책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열린사회’의 상징이라는 미국 사회지만 이스라엘, 유대인에 대한 비판이 갖는 ‘폭발성’은 지난해에도 여러 차례 입증됐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중동문제 상담역이었던 필립 젤리코 보좌관은 지난해 9월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해 이스라엘의 양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11월 사임했다. 배우 멜 깁슨은 7월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된 뒤 “유대인들 때문에 세계의 모든 전쟁이 일어난다”고 ‘취중 진심’을 얘기했다가 혹독한 비난을 받고 사과했다. 앞서 3월엔 하버드대 스티븐 월트 교수를 비롯한 몇몇이 영국의 잡지에 유대인 로비에 대한 기고를 했다가 반유대주의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에 대한 보고서   1950년 미국 시민의 아내가 된 최초의 한국 여성이 미국에 발을 디뎠다. 필시 그녀의 남편은 미군 병사였을 것이다. 이후 거의 반 세기 동안 10만 명에 가까운 한국 여성이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이민을 갔다. 최근까지도 한국 여성들은 미군과 매년 지속적으로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가고 있지만 이들의 존재는 '기지촌여성', '매춘부'라는 꼬리표를 단 채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원제: Beyond The Shadow of Camptown)는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 '군인 아내(military bride)'에 대한 첫 심층 연구로 그들의 삶과 자매애, 세상의 통념에 대한 저항에 초점을 맞췄다. 이 책은 인종과 민족성, 문화, 여성과 젠더, 정체성의 구성에 관심이 많은 재미교포 2세 여지연 박사(노스웨스턴대 역사학과 교수)가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쓴 박사 논문을 보완한 것이다. 저자는 1993년부터 3년 동안 군인 아내의 공동체에 참여하고, 함께 교회에 출석하며 150명에 달하는 군인 아내와 그 가족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된 논문은 군인 아내들이 미국 문화와 한국 문화 사이에서어떻게 타협해왔고, 어떻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해왔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 군인 아내 대다수는 한국과 미국 사회 양쪽 모두에서 소외당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국에 살든, 미국에 살든 미군과 결혼한 여성들을 기지촌과 연결시켜 생각했고, 이런 믿음 때문에 군인 아내들을 노골적으로 배척하고 경멸했다. 미국 사회 역시 한국인 군인 아내들을 미국의 우월성과 인종적 다양성을 입증하기 위해 이용했고, 이들에게 미국적 가치를 강요했다. 하지만 이들은 언어와 인종, 계급의 장벽 앞에서 마냥 좌절하고 피해의식에 젖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끼리 단결하며 운명과 사회적 편견에 당당히 맞서왔다. 국제결혼한 한국인 미군 아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단체를 결성한이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한국 여성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지키고, 끈끈한 자매애를 체험했다. 따라서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군인 아내들은 모두 기지촌 출신이며,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버림받아 다시 성매매에 굴레에 빠진다는 식의 세간의 편견은 부당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대신에 한국인 군인 아내들이 가족과 한국인 교민 사회, 국가, 언어의 가장자리에 어정쩡하게 서 있지만 억척스레 자신들의 삶을 꾸려나갔다는 점에서 그들 나름의 '아메리칸 드림'을 달성했다고 평가한다. 여성학자 임옥희씨가 번역했다.
삼인. 432쪽. 1만8천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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