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아닌거 같내요.
제경험담은 아니구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까 체험담이 있어서
복사해와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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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경산좀지나서 귀신굴 이라고 불리는곳이있습니다.
6.25때 양만학살한 동굴인데요..
2002년도인가?발견했었죠...
그당시 발견초기에는 관광지처럼.안에 들어가게도 했었는데
곧.보호차원에서 막아버렸다고 합니다.
저희친구들 남자 11명에서.차3대 끌고갔죠..고등학교 동기들끼리.
그런데....불빛하나 없는.산중으로 갓습니다.일부로 라이트도 끄고..
도착하니.정말...산중이더라고요...
물소리가 졸졸흐르고...왜 조용한데 물소리만 밤에 졸졸흐르면..아주 무서운거아시죠?
그 물소리때문에 미칠것같았는데..
헉..산위로 올라가니까..
하얀폐건물이있고.유리 다 깨져있고..
여튼 정말 무서운분위기였습니다..
우린.새벽12시정각에 도착해서...
영들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그곳에가니...장화들이 널부러져있더군요..사람들이 신었던..
그 폐건물안에 보관소 비슷한데 있더군요..장화들이...
근데 이상햇던건.장화들이 잇떤곳에 검은색으로 아주 큰 십자가가 하나잇었다는겁니다.
그게 왜 잇었는지 아직까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리고.저희친구들..장화를 신고..그 동굴로들어갔습니다..
건물옆에 동굴이잇었꺼든요...
동굴은..아주좁았고...성인남자가 쪼그려 앉아서 가는정도였습니다.
한참을 갔엇죠..가다가..쇠로 줄이 잇떠라고요....
폰으로 살짝 비춰보니...낭떠러지더군요정말 깜깜한.낭떠러지요..
그리고 쇠줄을 타고...들어가던중...한명이 뒤에서
으악..소리를 질러서.정말 저 떨어질뻔했습니다.죽을뻔했죠 진짜..
원래 후레쉬안들고 오기로햇는데 그친구가 들고와선 아까 제가 말한
깜깜한 낭떠러지를 비춰보니..
그곳에...해골들이 수북히 쌓여있더군요..
정말...무서워서...나왔습니다..
입구에
"내부에 시신들이 수습 돼지않았음으로. 훼손이나. 도굴행위를 일체 금합니다"
라고 써저있더군요.....저흰 왠지모를 이상한기분에..
집에가자고 그랬씁니다..그중에 담이쏀녀석이.야 온김에 사진이나 하나 박자..해서
저희..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가 사진 셧터를 눌렀는데요..이상하게 사진찍을때마다..
하얀색물체가 뒤에서 아른거렸는데..애들이.겁쟁이라고 놀릴까바..말을않했는데요..
그리곤..내려왔죠 산을..내려오는데 갑자기..불빛이 번쩍~~거려서 보니..
별똥별이 떨어지더군요....처음봤습니다...
나름데로 기분좋게.내려와서...집에갔고..
현상하러 사진관에 맡겼죠..다음날 학교가면서..
근데.사진을 받아본저는...바로.그사진을 버렸습니다...
저희 친구들 뒤에..하얀색 옷을입은.여자 한명과 허리를 꾸부정하게 하늘에 붕떠잇는
무섭게 생긴 할머니가 저희를 노려보고있었기때문에...
100프로 실화입니다.대구사시는분들은 여기 유명해서 아실거라믿습니다
저희 간날.서울에서 오신팀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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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일행3명과함께 대구경북지역으루 이곳저곳 해매구 다녀씀니다......
흉가를 차자서 해매다녀찌여...... 안동으루해서 청송에서 시간을 보낸는데 별다른 지역을 찾지는 못해씀니당......
그래서 돌아오는길에 아쉬움에 못이겨서 경산 안경공장에 들려씀니당....
경산에 도착하니 이미 날은 밝아와꾸 공포감이 느껴질만한 시간은 아니어씀니당......
경산대 근방까지 가니 산 중턱에 하얀건물이 눈에 띄더군여.....
느낌상 거기가 안경공장이라는 필을받아찌여....
그래서 그쪽으루 향해씀니당......
입구에 들어서자 그곳을 관리 하던 아저씨께서 길을 막더군여......
저는 자초지정을 설명하구 사정사정후에야 허락을 받구 들어갈수 이써찌여....
막상 들어가 보니 별다른것이 없더군여......
들은 이야기가 이써서인지 약간은 묘한기분이 들긴 해찌만.....
그냥 텅빈 공간일뿐....
그리구 양민학살현장에는 입구에 문을만들어서 막아노아떠군여....
문 아래루 기어들어가면 들어갈수야 이께찌만 비가많이와서인지 물이 막 흘러 내려오구 이써서 들어가 보지는 못해씀니당...
기숙사 건물에두 별것 없구 누군가가 버리구간 빈 술병뿐이어씀니당....
그리구 서바이벌 게임에 사용되는 BB탄들이 굴러다니더군여....
이리저리 구경하구 내려와서 관리하는 아저씨와 30분가량 이야기를 해찌여....
그 안경공장에 대해서 자세한걸 알구 시퍼꺼등여.......^^
거기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보니 여기서 들은 소문들은 과장된 현실임을 알수 이써씀니당...
그 공장의 상호는 대성사 이구여......
거기 사장이 자살을 해따는 소문이 이떤데 모두 허위사실임을 아라씀니당....
현제 아직두 살아이씀니당.....
누군가가 거기서 자살한적두 없구여 불이난적두 없슴니당.....
단지 부도가 나서 잠시 문을 닫아쓸뿐임니당.....
근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하나둘씩 오더니 그곳이 서바이벌 게임장이 되어꾸여......
그러다가 잠겨이떤문마저 도둑의 손에의해서 뜯겨져 나가구 없어져따더군여......
그러다가 서바이벌한답시구 거기서 모닥불을 피우기두하구 유리창두 깨부수구 그러다보니 밤마다 동내가 시끄러워 진거지여.....
심지어는 그쪽에서 카섹스를 즐기는 사람들두 있다구 하더군여....
그러다가 참다못한 주민들은 신고를 하게 되어꾸여......
그래서 지금은 관리아저씨를 두고서 그곳을 순찰한다구 하더군여......
그렇게 하면 뭐함니까???? 매일 8시경에 관리아저씨는 퇴근하는데 그이후에 담넘어 들어가면 다시 동내가 시끄러워지져...
그러다가 대성사 사장은 전재산인 자신의 공장이 부도난것두 억울한데다가 공장이 그지경이 되어버려쓰니......
지금은 병이나서 노이로즈로 누워이따구 함니다......
안타까운현실임니당.....
제가 공장에 들어가보니 정말 깨끗하구 그런대루 괜찬은 건물이어씀니당....
허나... 누군가가 고의적으루 유리창을 깨부셧구 곳곳에 쓰래기들을 버려두어떠군여.....BB탄은 말할것두 없이 많아꾸여.....
어떤사람들은 거기서 술을마시구 버려노쿠 가떠군여.... 술병이 얼만아 많턴지......
관리인아저씨 께서 그러시더군여......
제발좀 자제해달라구여.......
몰래들어가다가 적발되면 경찰서루 연행시킨다구 하시더군여....
우리 이제는 그곳에 가는것을 자제하는것이 조을듯 함니당...
사진은 몇일뒤에 올리도록하게씀니당.......
깔끔스놔일 ㅋㅋ경산대 가기전에 우회전...ㅋㅋ맞죠?? 저는 친구들이랑 6월 4일날 갔다왔는데~막상가니깐 BB탄만 굴러 다니구~ㅋㅋ그래도 건물자체가 으스스 하더군요~ㅋㅋ근데 양민학살했다는 동굴은 도대체 어디있는가요?? 사진찍어 놓으셨음 올려주심 고맙겠습니당~위치도 갈켜 주세요~ㅋㅋ
ㅋㅋ 이곳도 많이 타락했군요.
귀신굴이라는 장소가 2년전에 웃자 갈 정도로 유명하고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위에 글 두개는 공게 베스트에 간 글이구요.
마지막 글은 최근에 진실을 알아버린..ㅋㅋ
중복이지만 거의 잊혀진 글이라서 다시 한번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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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의 흉가는 경산 일대의 대학생들에게는 꽤나 유명하다는 경산의 안경공장 폐허였습니다. 정말 안경공장이었는지도 확실치 않지만 우리 체험단의 리더 학생은 그 음침하고 괴기스런 공장의 폐허에서 여러 번의 흉가 체험도 가졌다지요. 하지만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찾은 안경공장 폐허는 번듯한 무슨 병원의 신축 건물로 탈바꿈해 있었습니다. 낙심천만이었습니다만 또 다른 장소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 공장 폐허의 옆에 자리잡은 수상한 동굴이었지요. 그 동굴의 입구에는 “경산 코발트 광산 민간인 피학살자 합동위령제”를 알리는 검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구요.
“6.25 때 이 지역에서 민간인들이 이 동굴에 끌려 와서 수천 명이 죽었다고 해요. 안경공장도 이 동굴 전설 때문에 더 무서워진게 아닌가 하는데....”
“대구도 공산군이 쳐들어왔나요?”
“아니오 대구는 공산군이 안들어왔지요 아마?”
“그럼..... 누가 죽였어요?”
“..........”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다가 말이 막혔습니다. 대체 수천 명씩이나 되는 민간인들을 누가 왜 죽였는가. 그들은 바로 대구 교도소의 수감자들과 보도연맹에 가입되어 있던 ‘이적혐의자’들이었습니다. 아니 ‘(학살자가 보기에) 이적 행위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었고 보리쌀 서말이라도 얻으려고, 또는 과거를 씻고 (보도..라는 말은 그릇된 길을 벗어난다는 뜻이라죠) 자유대한의 품에서 새출발하라고 윽박지르는 경찰에게 떠밀려 이름 석 자 올린 양민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며칠 전 내린 비로 물이 괸 동굴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곳은 우리가 보았던 무질서한 흉가는 아니었습니다. 이미 정돈된 진열장과 사건의 기록이 A4 코팅 용지에나마 우리를 맞았으니까요. 그 진열장 안에는 54년 전 황망히 죽어간 사람들의 백골이 죽은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두개골 한가운데 뚫린 총탄 자욱, 뭔가에 맞아 부러져 나간 다리뼈, 칠십 노인에서부터십대 아이들에 이르는 폭넓은 세대의 ‘이적혐의자’들의 뼈들이 반세기의 어둠을 걷고 나는 이렇게 죽었노라며 말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진열장에 들어가지 못한 뼈들은 지금도 동굴 바닥에 널려 있었습니다. 백골에 뚫린 두 눈의 흔적이 저와 마주쳤을 때 느꼈던 공포감을 저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것은 저 뿐만이 아니었겠죠. 체험단 여학생이 짜내듯 힘겹게 말을 내뱉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어요.”
동굴 안에서 저는 귀신을 믿고 싶었습니다. 아니 귀신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편이 맞겠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50년간 동굴 속의 어둠에 묻혀 왔습니다. 자기 피붙이의 시신이 동굴 속에서 고스란히 썩어가고 있음에도, 세상 사람들은 마치 늘봄갈비에서 퇴마사의 “귀신 습격” 소리 듣고 코웃음쳤던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 피해자의 피울음을 박해하고 외면하고 무시했습니다. 퇴마사의 눈에만 보이는 처녀 귀신이 아니라, 실제 지금도 손에 잡히고 눈에 박히는 수천 구의 시신을 100미터 앞에 두고도 우리는 눈을 감고 있었던 겁니다. 귀신이라도 있었으면, 그래서 사람들 앞에 출몰하여 공포라도 안겨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 분명히 일어났습니다. 대구를 사수하는 참호의 이면에서, 전쟁의 광기에 미쳐버린 사람들은 자기들하고 다를 것이라고는 쌀에 뉘만큼도 없을 사람들에게 총알을 퍼붓고 칼로 찌르고 그 시신들을 폐광의 동굴 속에 차곡차곡 개고 있었습니다. 학살자들 가운데는 누구보다 교양도 있고 인간적 정리도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이웃집 아무개가 학비가 없어 대학을 못간다면 쌈지돈 털어 보태고도 그를 굳이 숨기려는 맘씨 좋은 반공청년단원도 있었을 겁니다. “ 빨갱이라고 다 나쁘겠느냐”며 이야기하다가 괜히 치도곤 맞은 선량한 경찰관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날 모두 악마가 되었습니다. 동네 아저씨가 몸서리치며 회고하던 대로, “올 때는 트럭 만땅, 갈 때는 두 세 명의 총든 사람” 중의 하나로, 수천 명의 생목숨을 앗아간 악마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악마가 아니었지만 결단코 악마였습니다. “빨갱이들은 이것보다 더해~”하는 악마들끼리만 통하는 면죄부를 서로에게 발부하면서 자신들의 총질과 칼질을 합리화했을 겁니다.
미국의 럼스펠트라는 작자가 곤혹스럽게 고백한 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 행위”가 이라크 포로들에게 행해졌습니다. 그 주인공으로 지극히 선량한, 그래서 친구들이 가혹 행위 사실 자체를 믿기 거부한다는 잉글린드라는 여군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전쟁의 광기를 전쟁터에서 겪으면서, “쿠르드족을 독가스로 학살한 후세인의 개들” 따위는 이래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임신 4개월의 몸으로 발가벗은 남자의 국부 가지고 장난을 치는 마녀가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사실상 그녀를 그리 만든 자의 입으로부터 “지극히 비 미국적인 행위자‘로 지탄을 받게 되었겠지요. 미국 대통령 부시가 그렇게도 쓰기 싫어했던 ’I'm sorry"를 ‘두 번이나’ 했다고 뉴스에 났더군요. 그 지경으로 여러 사람의 인격을 파탄낸 자에게 영어 회화의 기본인 I'm sorry는 그렇게 어려웠나 봅니다.하지만 그나마 부시는 I'm sorry.라고나 했습니다.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아직 제대로 된 아임 쏘리를 들어 본 적이.......없지요.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통령 사면권 제한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묻혀 하나의 법안이 거부권에 휴지 조각이 됐습니다. 그 법안은 ‘거창 사건 등 관련자 명예 회복 특별 조치법’이었습니다. 경산의 코발트광산과는 달리 그나마 빨리 세상에 알려졌던 거창 양민 학살, 국군 화랑부대 11사단 13연대에 의해 자행되었던 지리산 골짜기의 대학살의 희생자에게조차 명예 회복과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한국전쟁 중 민간인 희생에 대한 보상의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접하고 저는 그 어떤 흉가보다도 무서운, 커다란 흉가에 제가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무섭고, 떼려야 떼어지지 않는 귀신이 살고 있는 흉가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