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돌

cry4you 작성일 09.05.24 23: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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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쳐다보기만 해도 겁이났다.

아무런 감정도, 이성도 존재하지 않는 볼품없는 바위덩어리에 불과했지만

신기하게도 그 바위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위압감을 심어주는

알 수 없는 마력이라도 담겨있는듯한 물건 같았다.

사람들도 그 바위덩어리를 피해다녔다.

 

동네 어르신들은 임진왜란때 왜놈들이 퇴각하면서 박아놓고 가버린 돌이라고도 했고,

혹은 일제강점기때 우리 마을 뒷산에서부터 이어져오는 장군의 맥을 끊어놓기 위해

일본인들이 박아놓은 기둥이라고도 했다.

그들의 논거에 의하면 그 고귀한 맥을 사람의 힘으로 끊어놓았기 때문에

맥이 이어지지 못해 하늘의 분노가 바위위에 서린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살펴봐야할 점은 사실 그 어르신들이

임진왜란때는 물론이거니와 일제강점기 시절때 태어나지도 않았었다는 점이다.

그들도 코흘리개 어린아이일때 그들의 할아버지가 해준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고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마치 그 당시 그 역사의 목격자겸 산증인인 행세를 하며 들려주는 것이다.

아마 어르신들의 할아버지 세대에도 저 돌은 저 자리에 계속 박혀있었을 것이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세대에도 돌은 자리에 박혀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저 돌이 생긴 연도가 임진왜란에서 일제강점기까지라는 긴 시간적 공백이 있는것 아닐까.

중국 은나라때 동방의 기운을 억제하기 위해 심어놓은 돌이라 주장하는

소수의 어르신들의 주장까지 반영하면 저 돌의 추정연도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왜 돌을 치우지 않느냐는 아이들의 호기심어린 질문에

어르신들은 손사래까지 쳐가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임진왜란때 돌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어르신들은 철종때 누군가가 저 돌을 없애려다

죽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일제강점기때 돌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어르신들은

40년전에 만수할아범이 술먹고 저 돌을 깨부수려하다가 병이 들어 죽었고,

그 가족들은 저주를 피해 마을을 떠나야했다고 이야기를 하고

은나라 시절에 돌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어르신들은 고조선의 왕이 저 돌을 없애라고 명령했다가

원인모를 괴질에 걸려 죽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나마 일제강점기파 어르신들의 말씀이 가장 현실적이지만

40년전에 만수할아버지라는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만수할아버지라는 사람은 그 어르신들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그 바위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일단 생긴것부터 매우 괴팍하다고 할 수 있다.

옆에서 모로보면 마치 서양인의 코같이 맵시있게 쭉뻗다가 끝은 칼처럼 예리하게 서려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정면에서 두고보면 이건 말하기도 민망한 완벽한 남근석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마을의 전설탓일지는 몰라도 이렇게 완벽한 그것 모양의 돌이

흠집이나 손때하나 탄것없이 멀쩡한 것을 본다면 이방인들은 신기해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들하나 점지해달라고 이 흉흉한 돌에다가 훈훈한 소원하나 빌어볼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약 10미터쯤 떨어져서 그 바위의 뒷모양새를 보면 왜놈들이 쓰던

칼모양처럼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고, 언덕아래에서 그 돌을 쳐다보면

마치 검은 용의 발톱이 거꾸로 솟아나는 모양새로 땅에 박혀있다는 이야기도있다.

겉보기에는 좀 특이하게 생긴 돌덩어리이지만 알게모르게 흉흉한 기운이 솟아있어

마을사람들이 쳐다보기를 꺼려하는 돌이다.

마을사람들은 이 돌을 칼날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칼날처럼 생긴 돌자루에 흐르는 요사스러운 기운이 마을에 여러가지 일들을 불러온다고

믿지만 그 돌을 건드려서 생기는 대가를 두려워하기때문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그 돌의 흉흉한 기운은 오로지 마을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 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인즉슨 이방인들은 그 돌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을사람들은 이방인들이 장난삼아 그 돌을 발로차고 돌을 던지고 모욕하는 것을 두려움에 떨며 지켜보아야했다.

 

어느날 마을주민인 은창이 어머니에게 원인모를 병이 도졌다.

은창이 어머니는 고열에 병상에 누워 알지못할 소리들을 지껄였다.

몇차례 의사들이 찾아와 진단을 해보았지만 열이면 열이 하나같이 원인미상의 고열및 신경쇠약이라고 했다.

과로일지도 모르니 안정을 취해보라는 말도 했고, 약을 몇가지 적어서 처방해주는 의사도 있었지만

어떠한 것도 이렇다할 효험을 보지 못했다.

마을사람들은 은창이 어머니가 몰래 그 칼날돌에 이상한 일을 저지른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은창이 어머니는 그 돌에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몇일이 지나서 은창이 어머니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죽기직전에 은창이 어머니는 칼날돌에 붉은재를 뿌리면 칼날돌에 서려있는 귀신이 물러간다는

무당의 말을 듣고 칼날돌에 붉은재를 뿌린적이 있었다고 고백을 했다.

그리고 그게 자신에게 이런 저주를 내릴줄을 몰랐다고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다.

마을사람은 그 무당이란 사람에게도 어떤 일이 일어날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무당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무당은 칼날돌에 얽힌 기괴한 전설을 모르고 있었고 단지 은창이 어머니의 말만듣고

잡귀가 얽힌 돌이려니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은창이 어머니가 죽은 이후 은창이 아버지는 허구한 날 술만 먹어댔다.

칼날돌을 저주하고 늘상 틈만 나면 칼날돌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었고

언젠가는 저놈의 돌을 망치로 때려 부숴버릴거라고 마을사람들에게 소리질러댔다.

 

얼마 뒤 은창이 아버지는 은창이를 데리고 마을을 떠났다. 정확히 말하면 야반도주했다.

마을사람들이 은창이 아버지가 떠나기 전날밤 커다란 망치를 들고

칼날돌이 있는 언덕위로 올라가는걸 봤다고 이야기했다.

마을사람들은 앞다퉈 칼날돌 앞으로 가보니 과연 칼날돌의 귀퉁이가 일부 깨져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은창이 아버지가 저주를 피해 마을을 떠났다고 수군거렸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자 작은 의문점이 몇 차례 생겨났다.

어째서 단순히 재만 뿌린 은창이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 돌을 부숴버린,

마을사람이나 돌의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아도 시원치 않을 죄를 저지른

은창이 아범은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걸까.

그리고 왜 이방인들은 돌에대해 아무런 기운도 느끼지 못하고 무슨 짓을해도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까.

 

나는 작은 호기로움이 생겨 그날밤 칼날돌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한손에는 망취를 거머쥐고...

 

한밤중에 본 칼날돌은 기이하다 못해 음험하고, 요사스럽기까지했다.

마치 나의 의도를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내 온 몸 구석구석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 했다.

칼날돌앞에 선 나는 마치 온몸이 벌거벗겨진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려움이 불러낸 만용이었을까. 나는 숨을 가다듬고 망치로 있는 힘껏 칼날돌을 내리쳤다.

 

 

망치가 돌을 때리는 소리에 내가 놀라 나는 망치를 놓치고 얼마간 허둥거렸다.

그건 마치 칼날돌이 내게 내리는 불호령같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망치로 힘껏 칼날돌을 내리쳤다.

 

꽈광

 

밤하늘은 맑고 고요했지만 칼날돌을 내리치는 망치에서는 천둥소리가 났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칼날돌이 아파 신음하는 소리같기도 했다.

칼날돌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그의 몸 일부가 떨어져나가는걸 지켜보아야만했다.

나는 무적의 수호신이 나의 힘에 부서져 내리는 듯한 느낌에 약간의 희열까지도 느꼈다.

 

다시한번 세게

 

 

또 다시한번

 

 

망치가 불을 번쩍거릴때마다 칼날돌의 실체는 그것이 우리에게 제공한 무시무시한

허상의 이미지와는 달리 허망하게 무너져내렸다.

난 지금 내 눈앞의 돌을 부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른들과 노인들이 만들어낸

허상의 전설을 부수고 있는 것일까?

 

수 차례 돌을 내려치자 돌은 완전히 부서져내렸다.

나는 그것에서 저주보단 일종의 후련한 기운까지도 느꼈다.

 

과연 이 돌을 부수려했던 고조선의 왕이나 철종시대의 사람이나 만수할아버지는 진짜 사람이었을까.

아마 아닐것이다.

그럼 이 돌에 붉은재를 뿌린 은창이 어머니는 진짜 사람이었을까.

아마 아니었을것이다.

그렇다면 이돌의 귀퉁이를 부수고 도망친 은창이 아버지는 과연 진짜 사람이었을까.

아마 아니었을것이다.

그렇다면 이 돌을 부수어버린 나는 진짜 사람일까.

그렇다.

 

우리가 진정으로 무서워했던 것은 전설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거짓된 진실에 대한 막강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칼날돌의 전설은 거짓된 진실을 부인하려는 의지도 없이 오랜 역사와 함께 떠내려온 우리들에 대한 자조가 아니었을까.

 

 

출처 : 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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