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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코발트폐광속 유해遺骸 160여구 발굴
이름새겨진 도장, 금 씌운 치아에 손톱 등도 나와
57년간 폐광속에 캄캄하게 묻혀있던 유해들이 비로소 밝은 세상밖으로 나왔다.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약칭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9월 20일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이 집단 학살된 것으로 알려진 경산코발프광산사건의 유해발굴 결과에 대한 현장 설명회를 가졌다.
이날 설명회는 유해발굴을 진행한 경남대 박물관(관장 이종흡)팀 주관으로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조사단(단장 박선주 교수), 경산코발트광산 피해 유족회(회장 이태준) 회원 20여명 등 70여명이 이상길(경남대 박물관 책임연구원) 교수로부터 발굴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지난 7월 8일 개토제를 올리고 본격적인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해왔다고 밝혔다.
발굴단은 수직갱도에서 매장된 유해가 수평갱도의 한쪽 부분으로 쏟아져 나온 상태로 토사와 함께 묻혀있는 160여구 이상의 유해를 발굴했다. 발굴숫자는 유해의 각 부위를 검토해 최소 개체로 계산했다.
발굴된 유해들 중 일부는 두개골과 골반 등에 총상을 입은 것이 확인됐고 금을 씌운 치아와 손톱 등도 발굴됐다.
또한 직접적인 학살의 증거로 보이는 실탄 5점과 탄피, M1 18정, 칼빈 22정을 비롯해 희생자들의 손목을 묶었던 것으로 보이는 삐삐선 등이 발굴되었다. 한편 민간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 단추, 천 조각, 고무줄, 칫솔, 허리띠(버클포함), 도장 등의 유품도 대량 발굴됐다.
특히 2호 수평갱도에서는 박봉우朴奉羽라는 이름이 새겨진 목도장이 도장집과 함께 발굴되기도 했다. 단추는 교도소 수감자들이 아닌 일반 민간인들의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많았고 여성용 단추도 발굴돼 상당수의 여성 피해자도 포함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상길 교수는 "수습된 유해들은 충북대 박물관으로 옮겨 유해의 사망지점, 성별 구분 등의 기본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감식과정을 거치게 된다." 면서 "조사과정의 정황으로 보아 수직갱도 하부에 유해가 집중됐을 가능성이매우 높다."고 "앞으로 폐광의 구조와 작업조건 개선, 수직굴의 조사방법 개발을 통해 효율적인 발굴작업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산코발트광산 유해발굴 작업은 수직갱도에서 주로 토사를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10.8m지점에서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는 다른 갱도가 발견돼 현재 11.5m까지 확인하고 중단된 상태이다.
이날 송기인 위원장은 "유해발굴은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의 결정적 증거를 찾는 중요한 일인만큼 57년간 기다려 온 유족들의 기대에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산코발트광산사건은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당시 대구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 2,500여명과 경산, 청도, 대구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 등 3,500여명의 민간인들이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사살돼 폐광속에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해는 최소한 240구 이상으로 수평갱도 1호에서 40여구, 2호에서 120여구가 발굴됐고 2001년과 2005년에는 대원골에서도 80여구가 발견됐다. <편집자 주>}
경산코발트폐광속에서 발굴된 도장과 도장집
경산코방트폐광속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