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투의 유럽원정
1236년 드디어 오고타이의 명을 받은 유럽 원정군이 서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정군의
총사령관에는 칭기즈칸의 장남 주치의 아들인 바투가 임명되었으며 총 병력은 10만을 육박했다.
<터키에 있는 바투 흉상>
총사령관 바투는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꽁꽁 언 호르가 강을 건너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공격함으로써 본격적인 유럽원정을 개시했다. 가르카 강변에서 제베와 수부타이의 별동대에게 한번 패배한 적이 있는 러시아군은 몽골군에게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 제대로 된 싸움을 펼치지 못하였다. 몽골군은 모스크바 수비병들을 간단히 무찌르고 성을 함락했다. 그리고 곧바로 모스크바 주위에 있는 여러 도시들도 모두 손아귀에 넣었다. 러시아는 이로서 몽골군에게 100년 동안 지배를 당하는 치욕의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이다. 러시아를 완전 공략한 바투의 몽골군은 서쪽으로 계속 진격해 지금의 우크라이나인 키예프 공국의 수도 키예프를 점령하고 동유럽 진출의 본격적인 발판을 마련하였다.
1241년 몽골군이 폴란드 왕국과 헝가리 왕국을 침입하기 시작했다. 폴란드 왕국과 헝가리 왕국은 군사 동맹을 맺어 몽골군의 침략을 막으려 했지만 몽골군은 헝가리와 폴란드의 군대를 무찌르고 헝가리 왕국의 심장부로 진격하여 수도 부다페스트를 점령함과 동시에 폴란드 왕국의 일대도 손아귀에 넣음으로써 유럽 여러 국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동유럽의 입구인 폴란드와 헝가리가 무너진 이상 서유럽 또한 안전치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몽골군의 존재에 드디어 서방 기독교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동유럽을 일대를 점령한 몽골군의 서유럽 진출에 위기를 느낀 것이다. 그러자 슐레지엔 공국 (公國) 공(公) 하인리히 2세는 독일과 폴란드의 연합군 20만을 결성하여 서쪽으로 진군하고 있는 몽골군에 대항해 맞서기로 하였다.
드디어 몽골군이 서유럽에까지 손을 뻗쳤다. 독일의 발슈타트 지방을 침입한 것이다. 그러자 하인리히 2세는 발슈타트를 사수하기 위해 그동안 조직해왔던 독일과 폴란드의 연합군을 투입하였다.
드디어 발슈타트 지방에 도착한 연합군. 그들은 동쪽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검은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진 침략자들을 보고 선뜻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몽골군이 몸에 씌운 무장이라곤 고작 비단이나 가죽으로 만든 갑옷뿐이었던 것이다. 휘황찬란한 은색 갑옷을 입은 그들과 비교할 때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러자 연합군은 그동안 소문으로 듣던 사나운 몽골군을 깔보기 시작했다. 단지 동쪽에서 몰려온 야만인 군대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그들은 몰랐다. 이 가벼운 무장이 몽골군의 기마전 때의 위력을 3 배 이상 증강시켜 준다는 것을...
<13세기 몽골 기마병의 복장>
드디어 전투가 시작되었다. 독일, 폴란드 연합군은 그들의 잘 무장된 갑옷과 머릿수만을 믿고 무모하게 몽골군과 아무런 전략도 없이 기마전으로만 격돌하였다. 유럽 사람들은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의 신인 천주와 예수에게 동쪽에서 나타난 잔인한 야만인들을 무사히 물리쳐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1241년 유럽세계에 독, 폴 연합군이 몽골군에게 궤멸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무모하게 기마전으로만 싸웠던 연합군은 가벼운 무장으로 기동력을 올리고 선천적으로 말을 다루는 기술에 능한 몽골군에게 기마전으로는 상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소식을 들은 서방 기독교 세계는 발칵 뒤집어졌고, 일부 종교 단체에서는 몽골군을 사탄(Satan)이 보낸 악마의 군대라고 까지 하였다. 실로 그들의 눈으로 볼 때 단 한번의 싸움에서도 패배하지 않고 잔인하게 사람들을 학살했던 몽골 기마군단을 사탄(Satan)이 보낸 악마의 군대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총 사령관 바투가 악마의 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이 전투가 바로 발슈타트 전투(리그니츠 대전)다.
이제 동유럽은 몽골군에 거의 정복된 상태였고, 서유럽 지방에 속하는 발슈타트에서 당시 제일 믿고 있던 독, 폴 연합군이 무너지자 이제 유럽대륙은 기세등등한 몽골군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오직 공포에 떨며 그들의 침략을 지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때 서방 세계에 한가지 희소식이 전해졌다.
몽골군이 철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고타이 칸의 갑작스런 사망 때문에 몽골군은 더 이상 원정을 진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서 유럽은 전화(戰火)의 위기 속에서 벗어났고, 한숨 돌릴 수가 있었다. 만약 그때 몽골군이 물러가지 않고 그 기세로 계속 서쪽으로 진군했다면 유럽 대륙은 정말 몽골에게 모두 정복되었을지도 모른다. 바투는 이때 정복한 땅 러시아에 '킵차크 한(汗)국'을 세웠다. 이후 몽골은 유럽을 다시 침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