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보 효과 (Placebo effect)
실질적으로 효과가 없는 것을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
상공에 비행기가 떠있다.
옆에는 멋들어지게 써있는 여행회사의 로고.
창문 하나 하나는 마치 구멍이 뚫린 것만 같다.
…
“형, 이번에 서울가면 뭐하고 살꺼야?”
“글쎄다.”
“그럼 가서 뭘 제일 먹고싶어?”
“글쎄다.”
“그럼 뭐하러 돈들여서 가는거야?”
“글쎄다.”
“그럼… 됐다 말을 말자.”
쓸때없는 말을 접기로 했다.
장시간 여행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대화가 지루함을 죽이는 최고의 방법이건만,
잘난 내 형은 자신의 지루함을 말로써 표현하며 그 지루함을 죽일 생각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잠깐만요, 지나갈께요”
“네.. 잠시만요”
10시간쯤 지나며 지루함과 앉아 있을때의 특유한 고통은 날 확실히 자리에서 뜨게 만들었다.
그것보다도 대화가 없다는게 모르는 사이에 고통을 증폭시킨 모양이다.
허벅지 근육은 10시간동안 움직이지 않은것에 불평을 토하고 있었다.
창문가에 앉아 가만히 있는 형이 부러웠다.
어떻게 저렇게 오래 앉아 있을수 있을까.
가운데 자리에서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뜨는사이에 허벅지의 고통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뭐하는거야! 당장 피를 통하게 하라고! 안그러면 혈전이 생겨 뇌를 죽여버릴지도 몰라!’
허벅지가 말을 할줄 안다면.
비행기는 이제 시베리아 벌판 상공 만 미터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캬… 이제 살겠다.”
비행기 뒤쪽 화장실 앞에는 다른 문과 함께 작은 공간이 있다.
비행기 옆쪽에 달려있는 3개의 문은 공기도 통하지 않도록 단단히 잠겨있어 사람들이 빨려나가는걸 막아준다.
문에는 창문이 하나 달려있고 물론 이것도 공기가 새지 않는데 하튼 지금 이 공간은 나에게는 천국이었다.
몸을 풀면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것이다.
한 10분쯤 몸을 풀고 나자 창문 밖에 정신을 집중하기로 했다.
닫힌 공간은 언제나 나에게 긴장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식으로 비행기 여행의 긴장을 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보통은 영화감상, 그 다음이 음악감상, 그리고 수면.
‘참 부럽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장시간 비행기 여행을 견디어 낼 수 있는 것일까.
나에게는 좁은 새장으로 느껴지는데.
자리로 돌아가며 저 부러운 사람들과 같이 영화감상을 하며 지루함과 답답함을 이기기로 생각했다.
“다시 잠깐만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지나가세요.”
비행기가 출발하자마자 책을 펼쳐 들고 10시간이나 있는 이 대학생은 자리를 비켜주면서 분명 속으로 욕을 하겠지.
왜 저놈은 자꾸 왔다 갔다 하냐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그만 왔다 갔다 해라.”
빌어먹을. 그렇잖아도 난 저 사람을 방해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단 말이다.
“형이 이상한 거야. 10시간을 어떻게 그냥 영화나 보면서 때워??”
“그런가?”
“응. 나 같은 사람은 무조건 10분마다 움직여 줘야 몸이 안 아프다고.”
“그래? 근데 왜 집에서는 빈둥대냐?”
이런 썅. 형은 직업이 없다는 약점을 또 물고 잡고 싶은 모양이다.
언제나 형은 이런 식으로 이었다.
아마 이 대화만 잘 넘기면 원하던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창 밖을 보며 예기한다.
“시끄러.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세상 잘못이라구. 날 인정해 주지 않잖아.”
“아 그러세요? 그래서 지금까지 알바 하나 안뛰셧어?”
창밖에는 새가 날아가고 있었다.
무슨 매 같은 종류였다.
자유로운 저 새.
창공을 비행기랑 똑 같은 속도로 날며 높은 고도와 맑은 공기의 청량감을 느끼겠지.
지금 나의 상황이랑 대조되어 있지 않은가.
“어 그건 내가 알바를 할 그런 군번이 아니라서 그렇고, 어.. 형 근데 밖은 시원하겠지?”
“어. 당연히 시원하지. 우선 바깥은 고도 만 미터 아니냐. 기압이 낮아지기 때문에…”
온갖 과학적 설명을 하지만 나에게는 단지 바깥에 저 구름 잡는 얘기일 뿐이다.
지금은 과학보단 빨리 주제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형의 관심을 다른 주제로 끄는 동시에 난 추궁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어 밖이 추운 건 알겠어. 그러면은 우리가 지금 비행기 안에 있잖아, 그치?”
“어. 당연하지.”
또 단답형.
속히 형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그리고 비행기는 그 뭐시냐 벌집 같은 구조의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잖아, 그치?”
“어. 비행기는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벌집구조의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지.
무게를 줄이자고 얇은걸 쓸 수는 없기에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벌집구조가 무게 대 내구성 효율이 제일 높은 걸로 나타 났기 때문에 쓰는 거야.”
“어. 그거 멋지네. 근데 그래도 비행기는 무겁잖아, 그치?”
“어. 그런데 너도 알듯이 베르누이의 법칙이 있잖아.
“아니. 난 몰라. 그게 뭔데?”
“무식한 놈. 모르냐. 공기는 액체처럼 움직여. 그걸 이용하는 거야.”
“설명을 해야지.”
이쯤 해서 형의 우월감을 자극 시켜야 한다.
이렇게 대화를 이끌어 가면 적어도 3시간은 과학예기를 할 테니 그만큼
지루함은 상대적으로 덜해질 태니까 말이다.
“잘 들어. 비행기 옆에 날개는 유선형으로 이루어져있어. 유선형. 물고기 모양으로 생겼단 말이지.”
“거 멋지네. 그럼 날개 때서 바다에 놓으면 헤엄도 칠 수 있다는 소리야?”
“무식한 새/끼.”
“알았어. 입 닥칠게.”
“날개 위는 곡선이고 날개 밑은 직선이야. 니는 곡선 옆을 지나가는 게 빠르겠냐, 아니면 직선으로 지나가는 게 빠르겠냐?”
“어… 직선이 빠르겠지?”
“그렇지!. 무식한 놈도 이런 건 아는구나.
알어. 이 잘난척만 하는 형님아. 안다고.
그래도 이 방법만이 지루함을 이길 수 있는데 어떡하랴.
“어. 나도 그 정돈 안다.”
“하튼 직선으로 되어있는 부분의 공기는 상대적으로 곡선 쪽의 공기보다 몇 배는 빠르게 움직여.”
“아 그래서 빠르게 지나가면서 날개를 툭툭 쳐대기 때문에 비행기가 뜨는 거다?”
“어. 그렇지. 아유 똑똑한놈. 대신 공기는 유체이기 때문에 니가 지나가는 사람 어깨치는 것처럼 치는 게 아니라
니가 노 젓는 거 같은 저항이 일어난다. 알간?”
“어. 비유도 참 무식하게 하네.”
“당연하지. 니가 무식하니까.”
“어 그래? 근데 무식한 예기 나와서 말인데 그 누나랑은 어떻게 됐어?”
“아 그건 됐어 임마.”
형의 관심사는 과학밖에 없는 모양이다.
창문 밖의 공기는 비행기의 속도 만큼 옆으로 쌩쌩 지나가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몸을 푼 탓일까.
마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허벅지의 고통도 점점 참을 만 한 수준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대화는 역시 모든걸 푼다는 말이 맞는 듯 하다.
“형, 그러면은 전투기들 있잖아.”
“어.”
“그거 막 곡예도 하고 그러잖어. 옆으로 눕고 거꾸로도 가고.”
“어. 그렇지.”
“근데 날개가 거꾸로 되면 그 뜨는힘이 반대로 되잖아?”
“어. 그렇겠지? 날개가 반대방향이면.”
“그럼 그건 지금 이 비행기가 중력을 거스르는 힘만큼의 힘을 바닥으로 곤두박칠 치는대 쓰는거잖아?”
“어. 그렇지. 게다가 중력을 합하면 그 힘은 무지막지 하겠는걸.”
“근데 안그러잖아.”
“어? 안그래?”
“응. 내가 예전에 그 알잖아. 전투기 사진 공모전.”
“아 그 돈 하나도 못벌어낸 그거?”
형은 끝까지 내 약점을 잡아 채려고 안달이다.
부모님께는 내가 형한테 얹혀 산다는걸 알면 길길히 뛰신다는 걸 알고 이렇게 행동하는 모양이다.
다시 허벅지의 고통은 참을수 없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 그거. 근데 그 곡예할 때 180도 돌아서 거꾸로 갈때가 있거든?”
“어 근데.”
“근데 그거 곤두박질 안치더라. 되려 잘 가던데?”
“밑으로 떨어지지도 않고?”
“어. 속도가 붙어있어서 그런가? 하튼 떨어지지는 않더라.”
“속도가 붙어있으면 양력을 받아야지! 거꾸로! 그럼 상당히 많이 고도가 떨어질탠데?”
그 말을 하자마자 앞 좌석 밑에 놔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들었다.
“그걸로 뭐하게?”
“계산.”
침묵. 괴롭다. 고통은 더더욱 증폭되어 간다.
내 허벅지의 근육과 혈관은 내에게 혈액 손실증에 걸린 환자의 고통을 기연시 맛보게 해줄 모양이다.
그들의 불평을 들어주기에는 옆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생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
이 순간에 또 비켜달라고 하기에는 너무 금방이었기 때문이다.
가운데, 그래. 가운데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다.
둘째로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비행기에서까지 끼인 상태라니.
“태우야.”
“왜 형.”
형이 내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무언가 상황이 고조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저번에도 내가 큰 잘못을 했을 때 형이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도 이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
“내 생각에는……”
…
긴 침묵.
“뭐? 뭔데? 말해봐! 답답하게 시리.”
큰소리를 쳐 버렸다.
이 빌어먹을 허벅지의 신경이 날 자극하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초기 폐쇄 공포증의 증상일까.
그제서야 나는 나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취침시간에 소리를 지르는 행동은 영화감상을 하던 앞자리,
수면을 취하고 있었던 뒷자리,
그리고 공부를 하던 옆자리의 대학생을 포함한 온 비행기의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 아마도 우린 속은 걸지도 몰라.”
주위의 시선은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는 내 궁금증을 더더욱 자극시켰다.
어느새 고통은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오직 형의 목소리에 모든 정신을 집중시키게 되었다.
“제기랄! 예전에 읽어 본적도 있어. 뉴사이언스! 그 잡지에서도 말했듯이 베르누이의 정리는 비행기의 양력을 증명하지 않는다고!”
“무슨 소리야?”
“들어. 사실상 그 법칙은 비행가가 뜨는 거랑은 관계가 없다는 거야.”
“뭐?”
“맞아… 그랬어. 애초에 기압부터가 지상의 4분의 1이야. 지상에서 실험했을 때의 저항은 여기서도 4분의 1인 거야…”
“그… 그래서?”
“그리고 무게도 생각해야지! 짐과 사람들의 무게, 그리고 비행기의 무게를 더하면 이미 이 정도의 저항으로는 이건 뜨지도 못해.”
“형, 심각한 목소리로 큰 소리 치지 좀 말고 뭔 소린지 예기해봐. 못 알아 듣겠어.”
“방금 비행기 정보판으로 속도랑 고도를 확인했어. 고도는 9411미터, 여기에서는 기압이 4.3 psi 거기에다가 -50도, 속도는 단지 시속 170 남짓……”
“그래서! 뭐!”
“우리는 이정도 속도를 가지고선...... 못 난다는거야.”
“뭐?”
“불가능하다고. 지금 이 비행기가 나는게.”
저 빌어먹을 과학.
형의 혼잣말과 같은 그 말은 혼란을 가져왔다.
지금 저 말은 이 비행기가, 아니 나랑 형, 저 사람들이 뜨고 있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소리 아닌가.
“저기요… 그럼 지금 우리는 어떻게 날고 있는거죠?”
옆의 대학생이 응수했다.
그래. 형한테 망신을 줘.
그래야 이 공포에서 벗어날 거 아닌가.
지금 우리가 날고 있는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공포에서.
“모르겠어요. 어떻게 된건지. 지금까지 물리학을 공부해 오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자부해 왔는데…”
웅성웅성.
사람들이 예기를 하기 시작했다.
방금 내가 그들의 주위를 끌고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말을 형에게 하게 내버려둔 탓이다.
“야, 비행기가 사실 날수 있는게 아니래.”
“저기 엄마, 비행기 원래 못 나는거야?”
“아무래도 그건 사실이 아닌거 같은데, 비행기의 양력은…”
“말도 안돼. 밖에 보면 우리가 날고 있다는게 확실하잖아.”
학생, 여행객, 어린이, 심지어 교수까지 이 말에 대해 반응하고 있었다.
천천히 이 말들은 사람들을 타고 다른 칸으로 퍼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덜컹.
비행기가 살짝 흔들렸다.
아니. 보통 바람에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 기류의 변화로 인해, 기내가 흔들리고 있으니…”
상투적인 스튜어디스의 안내이자 경고 방송.
“안돼! 전부다 말하는걸 멈춰!”
덜컹.
한번더 흔들리며 내 형이 내 어깨를 밀쳐내고, 대학생을 밀쳐내고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전부다 입닥쳐!”
“뭐? 넌 또 뭔데 우리더러 얘기를 하라 마라야?”
“예의가 없으시네요, 그렇잖아도 비행기가 흔들리니 앉아있지 그래요?”
“저기 아저씨, 진짜로 비행기 못 뜨는거야?”
사람들이 더욱 웅성거린다.
고작 저런 설득력 없는 욕설로 관중의 행동을 멈추려 하다니.
그 지혜롭던 형은 어디로 간것일까.
하지만 저 표정은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덜컹.
한번더.
“전부 말하는걸 그만두세요! 아니 그만 두서야 해요.”
웅성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덜컹.
다시한번.
덜컹.
“전부 조용히 하라고요!”
덜컹. 웅성웅성.
흔들림은 이제 보통 기류의 변화가 아니었다.
“지금 기류의 변화가 있으니, 전부 자리에 앉아…”
웅성웅성.
덜컹. 덜컹.
기내 방송과 웅성거림은 그칠줄 몰랐다.
소리와 함께, 그리고 흔들림과 함께 혼란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여주지 않았다.
“전부 입 닥치라고! 입 안 닥치면 전부다 죽어!”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덜컹.
덜컹거림은 이제 한도를 넘어섰다.
날개는 휘어지다 못해 마치 새의 날개를 보는 듯 했다.
그렇지. 새. 이 단어가 갑자기 머리를 파고 들었다.
…
잠깐. 어떻게.
어떻게 새가 10000미터 상공을 날고 있던거지.
“으아아악! 제발 입좀 닥치라고! 전부!”
형의 목소리는 이제 답답함과 억울함, 그리고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덜컹.
이제 덜컹거림은 연속적인 흔들림이 되었다.
“어떻게 된거야?”
“역시 저 사람말이 맞았어! 비행기는 못 뜬다고!”
“안돼… 안돼, 이럴리가 없어..”
“엄마! 엄마! 살려줘! 무서워!”
모두가 공포에 질렸다.
모두가 비행기는 뜰수없다고 믿게 되었다.
흔들림.
이제 흔들림은 바닥을 향한 소용돌이로 바뀌었다.
사람은 한쪽벽, 혹은 천장, 소용돌이의 방향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쳤고,
일부는 밀려서 마치 지하철의 러시아워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만들었다.
이제 인간의 언어란 찾아볼수 없었다.
오직 그들, 아니 우리가 할수 있는 거라곤 인류가 원숭이적부터 내던 공포의 비명을 내지를뿐.
쾅!
암흑만의 나의 시야를 맞이했다.
과연 우리가 믿던 것은 무엇이였을까.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