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은 동성왕에 이어 백제 제25대 왕으로 왕위에 오릅니다.
무령왕이 어떤 왕이었고, 어떤 업적을 남겼으며,
당시 백제 문화가 어떠했는지, 무령왕릉을 통해 후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지만 미스테리로 남은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무령왕의 출생과 성장과정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1971년 배수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무령왕릉은 완전 보존상태로
후손들에게 모습을 드러냈고, 지석을 통해 누구의 무덤인지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 지석에는 무령왕의 생전 이름이 사마였고
언제 붕어했는지 새겨져 있었고, 무덤 안에서는 백제 문화와
한국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 유물들이 남아
백제사와 미술사, 세계사를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령왕이 왕이 된 이후의 기록만 있을 뿐, 왕이 되기 전의 기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무령왕은 마흔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왕이 되기 40여년의 세월은 영영 알 수 없는 걸까요?
무령왕 탄생설화는 일본 가카라시마(가당도)라는 섬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누구나 무령왕의
탄생설화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가카라시마의 절벽 해변에는 지금도 무령왕의 탄생지라
추측되는 장소가 남아 있고, 가카라시마 주민들은
이 장소를 신성시하고 있고 작은 제단도 마련해 놓았습니다.
개로왕의 부인은 남편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를 따라
왜국으로 향하던 중, 이 섬에서 무령왕을 낳은 거라
사학사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 추측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자료는 무령왕릉에서 발견견 지석과
일본서기의 기록된 출생연도입니다. 두 기록의 출생연도는
차이가 없기에 가카라시마 무령왕 탄생설화에 힘을 실어줍니다.
왜국에서 태어난 무령왕은 왜국에서 성장했을 거라 사학자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령왕의 이름인 '사마'는
'섬'의 일본식 발음인 '사마'이기 때문입니다.
또, 무령왕이 왜국에서 성장했을 거라 추측하는 이유는,
백제가 고구려군에게 침략을 당했을 당시 무령왕의 아버지인
개로왕과 어머니인 왕비, 왕자 등이고구려군에게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무령왕이 백제에 있었다면
분명 고구려군에게 잡혀 죽임을 당했을 겁니다.
일본 아스카베 신사에는 백제 개로왕의 아우인 곤지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쯔리 기간은 곤지의 제삿날과 일치합니다.
사학자들은 삼촌인 곤지가 조카이자 양자인 무령왕을
왜국에서 길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미지캡처 : KBS1 역사스페셜)
동성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무령왕은
동성왕이 백가에게 살해당할 당시 이미 백제에서
기거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마흔이 되어서야
왕이 된 무령왕. 무령왕은 23년 동안 백제를 통치했고
환갑을 지나 62세에 눈을 감았습니다.
왕위에 오르기 전, 무령왕에 대한 이야기는
뚜렷한 기록보다 추측이나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어서 백제에 대한 더 많은 자료와
기록이 많이 나와 무령왕의 출생과 성장과정에 대한
사실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