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DDR

향수_ 작성일 12.12.19 03: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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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빠 내가 말한 선물 잊지 않았지? 올해는 내가 착한 일 많이, 많이 했으니까 크리스마스 선물로 꼭 그걸 사줘야 해. 아빠, 알았지?"

모처럼 약속이 없는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8살난 아들 상규녀석이 내 배위를 올라타며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잠결에 눈을 부시시 뜨며 물었다.

"뭐? 뭐를 사달라고?"

"어~ 아빠 까마귀 고기 먹었나 보다. 피잇..."

내가 짐짓 모른 척을 하자 상규 녀석이 토라져서 제 방으로 '쪼르르' 들어가고 말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아 피워 물었다.

그때 곁에서 우리 부자의 행동을 쭉 지켜보고 있던 아내가 넌지시 물었다.

"여보, 도대체 상규가 뭘 사달라고 하는 거예요?"

"으응... D.D.R."

"D.D.R.이 뭐예요?"

나는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당신 그거 몰라? 요새 전자 오락실 가면 애들이 줄로 서서 기다렸다가 춤을 추는 기계... 거 왜 있잖아?

시끄러운 음악 나오면서 발로 스텝을 밟으며 박자를 맞추는..."

"아, 본 적 있는 것 같네요."

그제서야 아내는 D.D.R.이 무엇인지 알았는지 고개를 끄떡이다가 이상하다는 듯 내게 다시 물었다.

"아니, 그러면 상규가 그걸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달래요? 참나, 쟤가 미쳤나? 그런 기계면 값이 엄청날 텐데..."

나는 집안 살림만 하느라 바깥일을 전혀 모르는 아내가 약간은 안쓰럽게 느껴져 다정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니, 상규가 사달라는 것은 오락실에 있는 그런 기계가 아니라 컴퓨터에 연결해서 하는 가정용 D.D.R.을 말하는 거야."

"그런 것도 있어요? 하긴... 요새 세상에는 별의 별게 다 있으니까..."

아내는 약간 쑥스러운 듯 말끝을 흐리며 부엌으로 나갔다.

**********************

"갑자기 어디를 가자는 거야? 일요일에는 쉬고 싶단 말이야."

"아이 참 이이는... 오늘 우리 아파트 부녀회에서 불우 이웃돕기 바자회를 한다고 했잖아요?

제가 부녀회 부회장인 만큼 물건이라도 팔아줘야 체면도 서고 하니... 바자회 하는 곳에 잠시 갔다오자고요."

"그냥,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몇 개 바자회에 내놓으면 되지... 꼭 가서 다른 사람들 것을 팔아 줘야 해?"

늦은 오후, 아내는 방바닥에서 뒹글거리는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그렇게 투정댔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같이 잔뜩 인상을 쓴 채 겉옷을 대충 걸치고 바자회 장소로 향했다.

그리 크지 않은 아파트라 그런지 바자회 하는 장소는 그야말로 썰렁했다.

그곳에 나온 물건들도 조잡한 주방용품이나 옷가지들이 전부였고 그걸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들도 물건에는 관심이

없는 듯 군데군데 모여 수다 떨기에 급급했다.

"아, 회장님. 수고가 많으시네요?"

"부회장님 어서 오세요. 안 그래도 왜 안 오시나 했는데..."

자기들끼리 돌아가며 하는 감투 호칭을 스스럼없이 부르는 아내와 부녀회장을 번갈아 보니 웃음이 먼저 나왔다.

나는 그 둘을 남겨 둔 채 초라한 바자회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 이런 것도 여기서 파나?"

5분 쯤 건성으로 구경을 하는데 한쪽 구석, 문구용품을 파는 곳에 상규가 그토록 원하던 가정용 D.D.R.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야, 잘됐다. 크리스마스까지 기다릴 필요없이 당장 사다 줘야 겠구만..."

내가 그 앞에 서서 만면에 미소를 띄고 중얼거리자 물건을 파는 부녀회 아줌마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떤 것을 사실려고요?"

"아, 예... 이거... D.D.R.이요."

가까이에서 살펴 보니 물건이 아주 새것 같았다. 더욱이 구입한지도 얼마 안됐었는지 상자도 그대로 있었다.

"D.D.R.... 이라니요?"

아줌마가 멍청한 얼굴로 내게 묻자 갑자기 아침에 집에서 아내가 똑같은 물음을 한 것이 생각났다.

귀찮은 생각에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고 그저 D.D.R.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아니, 됐어요. 이거 주세요. 얼마예요?"

아줌마는 하품을 크게 한번 한 뒤 D.D.R.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확인하며 말했다.

"10000원이라고 써 있네요. 그런데... 이거... 장난감 같은데... 자녀분께 선물하시게요?"

"하. 하. 예. 아들 녀석이 하도 조르는 바람에..."

나는 서둘러 돈을 지불하고는 무척 기뻐할 상규의 표정을 머리속에 그리며 흐뭇해했다.

****************************


"이야, 아빠 정말 멋쟁이야. 뽀뽀, 뽀뽀"

내 예상대로 상규 녀석은 D.D.R.을 받자마자 온 세상이 자기 것이나 된것처럼 신나하며 즐거워했다.

"상규야, 앞으로는 더욱 엄마, 아빠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알았지?"

"응, 알았어. 이야, 신난다."

상규녀석은 제 몸만한 상자를 품에 꼭 안더니 깡충, 깡충 뛰며 제 방으로 향했다.

나는 그런 아들의 뒤에 대고 얘기했다.

"참, 아빠가 네 방 컴퓨터에 설치해 줄까? 그리고, 아빠 앞에서 춤도 한 번 추어 보렴..."

"아니, 나도 설치 할 수 있어. 그리고... 춤을 잘 출 때까지는 방에서 나 혼자 연습할거야.

춤을 잘 추게 되면 그때 아빠에게 보여줄게. 헤헤헤."

나는 한껏 들떠 방으로 들어가는 상규를 바라보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

-띠링, 둥둥둥... 띠리리리~-

자정이 넘어 잠이 얼픗 들었는데 어디선가 조용하게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 역시 그 소리에 잠을 깼는지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흠... 음악 소리 같은데...상규 방에서 나오는 것 같아."

"아니, 쟤가 이 오밤중까지 뭐하는 거야? 잠도 안 자고?"

"놔둬. 오늘 자기가 갖고 싶은 것 가졌으니... 며칠 저러다 말겠지."

나는 아내를 다독이고는 화장실로 가기 위해 방을 나섰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상규 방을 지날때까지도 여전히 희미하게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규야, 그만 자라. 내일 또 하고 말이야."

지나가는 말로 그렇게 방문에다 대고 말하고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상규 방에서 이상한 음성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자.. 잠깐. 아빠가 깨셨어."

그 말을 듣자마자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끼쳤다. 이 밤중에 누구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게다가 분명 상규의 목소리 같기는 한데 어딘가 모르게 쉰듯한, 기분 나쁘게 음산한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컴컴한 마루에 박힌 듯 잠시 서있던 나는 상규 방문에 귀를 대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엿들었다.

"조용히 해. 아마... 지금 아빠가 방문에 귀를 대고 엿들을지도 몰라."

깜짝 놀라 저절로 목이 움츠러 들었다. 마치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있기나 한 듯 방안에서 상규의 은은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안되겠어. 우리... 그만 하자. 아빠가 안가고 계속 엿듣고 계셔."

가슴이 철렁하며 눈이 동그래졌다. 상규의 방문을 열고 싶었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 묘한 감정에 그렇게 멍하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아악! 아.. 아파... 갑자기 그렇게 꽉 쥐면... 아... 알았어. 내일도 꼭 할테니..."

-좋... 아... 내... 일... 또... 하... 는... 거...야...

이번에는 상규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쇳소리의 야릇한 음성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며 메아리쳤다.

나는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방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나 안에서 잠갔는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다급함에 문을 흔들며 소리쳤다.

"사... 상규야. 문 좀 열어. 뭐하는 거야? 지금 누구와 말하는 거냐고?"

몇번이고 소리치며 문을 흔들자 '텅'하고 손잡이 걸쇠를 푸는 소리가 들리더니 빼꼼히 문이 열렸다.

"아악~ 세... 세상에..."

어두침침한 방안에서 천천히 나오는 상규의 얼굴에는 희미하게 웃음이 배어 있었는데 두 눈동자는 뒤집어져 흰자만 번들거렸고 두 팔은 뼈없는 동물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입가에는 게거품을 물고 천천히 내게 걸어 오고 있었는데 발목 언저리에서 피가 연신 흘러 내려 마루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사... 상규야."

내가 상규를 잡아 흔들자 백지장보다 더 새파랗게 질려 있는 상규의 입술이 오물거리며 중얼거렸다.

"복... 수... 할... 거... 야... 꼬... 옥..."

나는 다급함에 큰 소리로 아내를 불렀다. 곧이어 아내가 놀라 안방에서 뛰어나오다가 힘없이 쓰러지는 상규를 부축해 안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아내에게 구급차를 부르라고 부탁하고는 상규의 방으로 급히 들어갔다.

방안은 D.D.R. 발판을 비롯해 온통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책상 위에 놓인 모니터는 화면보호기가 작동 됐는지 까만 화면만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이상한 예감에 천천히 다가가 마우스를 움직여 보았다.

"이... 이... 럴수가..."

모니터가 다시 환해지며 나타난 화면에는 아직 D.D.R.이 설치 중이라는 메시지가 뜨고 있었다.

그렇다면 상규는 지금까지 무엇을 보고 춤을 추고 또 누구와 얘기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

구급차에 상규를 싣고 아내와 병원으로 가서 음급 치료를 받은 후 입원을 시키고 나니 어느덧 아침이 되었다.

아내는 계속 울고만 있었고 나는 멍한 정신에 담배만 피워댈 뿐이었다.

이윽고 담당의사가 그런 내게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아드님은 공포에 극도로 질려 있습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요..."

"저, 발목에 난 상처는 괜찮겠습니까?"

내가 더듬거리며 묻자 담당의사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무엇에 할퀴었는지 살점이 그렇게 떨어져 나갔으니... 어쨌거나 당분간 걷지는 못할 것 같네요. 뼈에도 금이 몇 군데 갔거든요?"

"세... 상에."

아내는 그 말을 듣자 마자 다시 오열을 했다. 나는 그런 아내를 진정시키다가 이상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안되겠어. 분명히 뭔가가 있어. 어제 내가 산 D.D.R. 말이야. 분명 무슨 사연이 있는 거야."

"흑, 흑.. 그...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지금 애가 다 죽어 가는데 무슨 소리를..."

"아냐, 알아봐야겠어. 분명..."

그때 수다쟁이 부녀회장이 병원 복도 끝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종종 걸음으로 다가왔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자네 괜찮아? 응? 어떻게 된 거야?"

그녀는 아내를 보자마자 두 손을 붙잡으며 가장 신경쓰는 척, 위로를 해댔다. 나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회장님. 어제 제가 산... 그 D.D.R.... 누가 바자회에 내 놓은 물건인지 아세요?"

"D.D.R.? 아, 그 장남감말이예요? 그건 A동 303호에 사는..."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자마자 겉옷을 걸치고는 어리둥절해 하는 회장과 아내를 뒤로 한 채 병원 문을 나섰다.

***************************

"계세요?"

A동 303호 앞에 이르러 몇번이고 초인종을 눌러봐도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한번 크게 소리쳤다.

"급한 일인데요... 아무도 안 계세요?"

그제서야 안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잠시후 힘없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아, 예. 저는 이 아파트 앞 동에 사는 사람인데요... 뭣 좀 여쭤 볼 말이 있어서..."

둔탁한 쇳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리자 그곳에는 하얀 상복을 입은 여자 한 명이 퉁퉁 불은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이, 이런... 죄송합니다. 저... 누가 돌아가셨나 보죠?"

"예... 흑, 흑..."

여자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가만히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내가 찾아온 이유를 조심스럽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크게 한숨을 쉬며 뜸을 들이다가 마침내 대답을 했다.

"그... D.D.R.은 며칠 전에 죽은 제 딸 것이었죠. 제가 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걸 바자회에..."

"그렇다면... 따님은... 왜..."

"휴우... 두달 전이었어요. 허구헌날 그걸 사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허락을 하고 돈을 주었죠.

그때가 밤중이었는데도 딸애는 뭐가 그리 급한지 당장 사오겠다고 밖으로 나가더군요. 그런데...

돌아올 시간이 됐는데도 오지를 않는 거였어요. 불길한 예감에 아파트 앞 큰 거리로 마중을 나가보니... 도로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는 제 딸이 쓰러져 있었지요."

"그... 럼... 교통사고를...?"

"예. 누가 사고를 내고 도망갔는지... 아무도 본 사람은 없고... 아무튼 제 딸은 사오던 D,D,R,을 품에 꼭 껴안은 채 신음을 하고 있었지요.

급히 병원으로 옮기고 몇차례나 수술을 받았는데... 차가 그 애 다리를 무참히도 짓뭉개고 간 바람에... 결국 양쪽 다리 모두를 절단 할 수밖에 없었죠. 흑... 흑..."

"저... 저런..."

나는 그녀의 안색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잠시 흐느끼던 그녀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저는 딸애의 목숨이나마 건진 것이 천만 다행이다 싶어 위안을 삼았는데...

졸지에 휠체어 신세가 된 제 딸은 심한 우울증에 빠져... 하루종일 방구석에 처박혀서 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죠.

그러던 어느날... 제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내게 미안하다는 유서만 한 장 달랑 써놓고는... 식칼로 자기 목을 찔러...자... 살을... 흑... 흑...

사실... 제 딸의 꿈이 발레리나 였거든요? 어릴 때부터 춤을 무척 잘 추고는 해서 몇 번이나 입상도 했는데...

그런 그 애가 더 이상 춤을 못 추게 되었으니... 불쌍한 것... 겨우 16살 밖에 안 됐는데... 흑흑흑..."

더 이상 그녀의 얘기를 듣지 않아도 대충 알 듯 싶었다. 평소에 귀신을 믿지 않는 나로서도 섬뜩한 느낌이 들었고...

나는 온몸에 신열을 느끼며 한시라도 빨리 그 재수없는 D.D.R.을 없애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숨까지 헐떡이며 황급히 집으로 돌아와 보니 상규의 방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방안에는 무언가가 왔다갔다하는 것이 얼핏 보였다.

나는 온몸이 떨려오는 것을 애써 진정시키며 천천히 방앞으로 다가가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아... 이럴수가..."

상규 방안에는 아내가 머리를 풀어 해친 채로 등을 지고 멍하니 서서 D.D.R. 발판 위에서 깜깜한 모니터를 바라보며 연신 발놀림을 하며 신이 들린 듯 춤을 추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애써 추스리며 아내에게 다가가 떨리는 손으로 어깨를 잡는 순간 아내가 갑자기 얼굴을 '홱' 돌리며...

"훗... 바로... 너였지? ... 네가... 나를..."

"여... 여보..."

아내는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을 내게 바싹 들이대며 매섭게 노려보다가 느닷없이 품속에서 식칼을 꺼내더니 자신의 목에 대고 일자로 '주욱' 긋는 것이었다.

연이어 그 찢겨진 목부분에서 피가 샘솟듯 뿜어져 나오더니 내 얼굴로 튀기 시작했다.

너무 깜짝 놀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얼굴에 튀긴 핏방울만 간신히 손으로 훔쳐내며 입만 크게 벌린 채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서는데 발 밑에 뭔가 '물컹'하고 밟히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고개를 떨구어 아내가 서서 춤을 추던 D.D.R. 발판을 내려다보는 순간...

"엇!... 아악~~"

그곳에는 두달전, 내가 술에 취해 운전하다가 차로 치었던, 바로 그 소녀가 잘려진 다리를 질질 끌며 몸뚱이만으로 비척이며 기어와 아내의 발목을 두 손으로 굳세게 부여잡고는 D.D.R. 발판 위로 들었다 놓았다하는 것이었다.

소녀가 붙잡고 있는 아내의 발목은 살점이 튿어지다 못해 뼈까지 으스러지는데도 죽어가는 아내는 그 소녀가 원하는 대로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소녀는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듯 내게 피묻은 미소를 보내다가 칼에 찢어져 덜렁거리는 자신의 머리를 대롱대롱 흔들며 '쉭, 쉭' 바람새는 목소리로 이죽거리고 있었다.

다음은... 흐..흐..흐.. 네... 차례야...... 바로... 너... 흐... 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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