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츠야마 30인 살인사건...

난향동 작성일 13.09.20 14: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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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츠야마 30인 살인사건


오카야마(岡山)현 츠야마(津山)시에서 북쪽으로 20킬로미터 떨어진 톳토리현 경계 근처의 산촌에서, 일본 범죄 사상 전대미문의 참극이 일어났다.


오카야마현 니시카모(西加茂) 마을 카이오(貝尾) 부락과 이웃 사카모토(坂本) 부락을 무대로 한 명의 청년이 불과 1시간 반 사이에 마을사람 30명을 살해한 사건이었다.


니시카모 마을은 380가구, 약 2000명, 카이오 부락은 23가구, 인구 111명, 사카모토 부락은 20가구, 인구 94명의 작은 마을이었다.


대부분이 영세 농민인 이 양쪽 부락 주민은 산전(山田)을 경작하거나 양잠이 주된 수입원이었다. 그러나 겨울 동안은 눈에 갇혀 지내게 되는데, 남자는 대부분 객지로 나가 돈을 벌거나 숯을 구우러 산에 들어가는 바람에 마을에는 노인과 부녀자만이 남는다. 일명 '밤놀이'라는 성적(性的)으로 방종한 구습이 현저하게 남은 지역이기도 했다.


1938년 5월 21일 새벽 1시 무렵. 카이오 부락 779번지에서 농사를 짓는 토이 무츠오(都井睦雄 : 당시 22세)는 할머니와 함께 자던 중 할머니가 눈을 뜨지 않도록 살그머니 일어나 발소리를 죽여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토이의 집은 카이오 부락 거의 중앙에 위치했으며,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방해꾼 취급하는 부락사람들을 살해하려고 면밀한 습격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특히 자신과 육체관계를 가졌으나 다른 사람에게 시집간 2명의 여성에 대해 격렬한 살의를 품고 있었다.


토이는 두 여성이 마을에 돌아오는 날을 알아내 그 날을 실행일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사건 전날인 5월 20일 오후 4시 무렵, 그는 자전거로 습격할 예정인 집들을 몇 번이나 왕복하면서 꼼꼼하게 조사했다. 오후 5시쯤에는 전봇대에 올라가 전선을 절단해 부락 전체를 깜깜하게 만들었다.


전등 회사에 수리를 부탁한 마을사람은 없었다.


토이는 친한 친구에게 어차피 폐병으로 죽을 테니, 아베 사다(阿部定, - 영화 ‘감각의 제국’의 실제 범인) 이상의 굉장한 일을 저지르겠다고 토로하고 있었다.


다락방에 올라간 토이는 검정색 교복을 입고 양쪽 다리에 군사 훈련용 각반을 단단하게 감고 고무창 신발을 신었다.


머리에 감은 수건에는 2개의 소형 회중전등을 달았고, 자전거용 램프를 목에다 끈으로 매달고 다른 끈으로 몸통에 고정해 어두운 곳에서 상대를 비출 수 있도록 했다.


일본도(刀) 하나와 비수(匕首) 두 개를 왼쪽 허리춤에 끈으로 묶은 후 가죽의 벨트로 다시 맸다. 손에는 맹수 사냥용 구경 12번 9연발에 개조한 브라우닝 엽총을 들고, 포켓에는 실탄 100발을 넣고, 실탄 100발을 넣은 주머니를 왼쪽 어깨에 걸쳤다.


이 지방에서는 야간 천렵을 할 때 회중전등 1개를 수건 등으로 머리에 붙이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토이가 애독한 잡지 「소년클럽」(전년 12월호)에는 총검을 단 총(회중전등도 묶어 붙어 있다)을 든 일본군이 중국인을 찔러 죽이려는 만화가 실려 있었는데, 이것을 흉내 낸 것 같기도 하다.


5월 21일 밤에는 이슬비가 내렸지만 곧바로 그쳤고 가끔 구름 사이로 달이 보였다.


봄이었지만 쌀쌀한 밤이었다.


(※ 주 : 범인인 토이 무츠오를 제외한 등장하는 사건 관계자의 이름은 모두 가명)


희생자 1 - 오전 1시 40분쯤, 토이는 다락방에서 내려와 난로 옆에서 푹 잠들어 있는 자신의 친할머니인 요네(76세)의 목을 장작 패는 도끼로 절단했다.



희생자 2 - 가장 먼저 습격한 곳은 북쪽 이웃인 키시모토 카츠유키(岸本勝之)의 집이었다. 여기는 5인 가족이었지만 카츠유키는 군대에 입대해서 집에 없었다. 시골이라 문단속은 하지 않고 있었다. 몇 차례 밤놀이로 집안을 다 알고 있던 토이는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토이는 과부인 카츠유키의 모친 츠키요(50세)와 육체관계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 거절당한 데다 마을에 소문이 퍼졌기 때문에 강한 원한을 품고 있었다. 엽총을 사용하면 근처에 들린다고 생각한 그는 일본도를 소리 없이 뽑아 숙면 중이던 츠키요의 목과 가슴을 찔렀다.



희생자 3, 4 - 계속해 어머니의 옆에서 자고 있던 남동생 요시오(14세)와 마모루(11세)를 일본도로 베어 살해했다. 여동생 미사(19세)는 일 때문에 다른 곳에 묵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은 살해되는 것을 모면했지만 토이는 그녀가 누구의 집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희생자 5 - 세 번째 집은 니시다 슈지(西田秀司)의 집이었다. 이곳에는 4명이 있었는데, 이곳도 열쇠를 잠그는 습관은 없었다. 토이는 이 집의 안주인인 토메(43세)와 몇 차례 육체관계가 있었지만, 토메는 “몇 번이나 덤벼든 것을 거절했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었다. 토이는 방에서 잠들어 있는 토메의 복부에 엽총을 대고 쏘아 즉사시켰다.



희생자 6~8 - 옆방에서는 3명이 난로 옆에서 자고 있었다. 장녀 오토모 요시코(22세)와 주인 슈지(50세), 아내의 여동생 치즈코(22세)였다. 요시코는 토이와 육체관계가 있었지만 다른 집에 시집갔다. 그러나 감기로 앓고 있는 토메를 문병하러 요시코와 치즈코가 와 있었다. 토이는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 날을 학살일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세 사람은 총성에 잠을 깼는데, 근거리에서 엽총에 맞아 모두 즉사했다.



희생자 9, 10 - 네 번째는 키시모토 타카시(岸本高司)의 집이었다. 여기는 4인 가족이었다. 마찬가지로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앞문으로 침입한 토이는, 한 이불 속에 잠들어 있던 주인 타카시(22세)와 임신 6개월이던 아내 니시다 토모에(西田智惠, 20세)를 엽총으로 사살했다. 토모에는 5번째로 살해된 토메의 둘째 딸이었다.



희생자 11 - 잠에서 깬 조카 테라나카 타케오(寺中猛雄, 18세)가 달려들었으나, 토이는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때려 쓰러뜨린 뒤 엽총으로 가슴을 쏘았다. 토이는 웅크리고 앉아 떨고 있던 모친 타마(당시 70세)의 앞에 버티고 서서 당신들과는 아무런 원한도 없었지만, 니시다의 딸을 며느리로 삼았기 때문에 죽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타마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토이는 총을 쏘았다. 그러나 타마는 치명상을 입지 않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혼자 살아남은 타마는 젊은 사람이 죽고 내가 살았다. 신도 부처님도 없다고 슬퍼했다.



희생자 12 - 다섯 번째는 테라카와 마사이치(寺川政一)의 집. 여기는 6인 가족이었다. 거듭되는 총소리에 테라카와 집의 식구들은 모두 잠에서 깼지만 문단속은 하지 않았다. 현관으로 들어온 토이는 무슨 일인가 하며 나온 주인 마사이치(60세)의 가슴을 엽총으로 쏘아 사살했다.



희생자 13~16 - 놀라서 창밖으로 튀어나온 장남 테이이치(貞一, 19세)의 등을 엽총으로 쏘아 사살하고, 복도의 덧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던 5녀 토키(15세)와 6녀 하나(12세)를 사살했다. 며느리 노기 세츠코(野木節子, 22세)는 복도 구석으로 몰고 가 총으로 쏘았다. 테이이치와 세츠코는 불과 6일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4녀 유리코(당시 22세)와 토이는 깊은 사이였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불만을 품은 토이가 신혼집에 밤마다 찾아가는 바람에 유리코는 이혼하고 말았다. 토이는 둘 사이를 되돌리려 했지만, 유리코는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마침 3일 전부터 유리코가 집에 와 있었는데, 그것을 알고 있던 토이가 이 날을 학살일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유리코는 뒷문으로 재빨리 나와 이웃집으로 도망쳐, 토이가 가장 원망한 유리코는 경상을 입는데 그쳤다.



희생자 17 - 유리코가 도망친 것을 눈치 챈 토이는 바로 뒤를 쫓았다. 6번째 집인 테라카와 모키치(寺川茂吉, 당시 45세)의 집은 원래 토이의 습격 계획에 들어있지 않았지만, 비극에 연루되고 말았다. 여기는 5인 가족이었다. 앞문을 잠근 직후 토이가 와서 문을 열라고 고함쳤다. 별채에 있던 부친 코시로(孝四郞 86세)가 덧문을 열자 토이는 그를 엽총으로 쏘아 즉사하고 말았다. 유리코와 주인 모키치, 아내 노부코(伸子, 당시 41세), 차남 신지(進二, 당시 17세)는 모든 문을 꼭 닫았다. 토이는 총을 마구 쏘고 문을 격렬하게 두들겼다. 모키치는 이대로는 모두 살해당한다고 판단, 신지를 테라카와 모토카즈(寺川元一)의 집으로 가 도움을 청하도록 했다. 그러나 신지는 옆문으로 나와 대나무 숲으로 뛰어들었으나 토이에게 들키고 말았다. 토이는 곧바로 뒤를 쫓았지만 그것을 눈치 챈 신지는 숲 속에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자 토이의 눈을 속일 수 있었다. 신지를 놓친 토이는 뒷문 앞으로 와 마치 그를 잡은 것 같은 말투로 말하지 않으면 “쏴버리겠어~!”라고 큰 소리로 고함쳤다. 노부코는 신지가 잡힌 것으로 알고 울면서 모키치에게 매달렸다. 유리코도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흐느껴 울었다. 모키치는 몰래 뒷문으로 다가가 틈새로 밖의 모습을 보았다. 문 바로 옆에는 토이가 가로막고 있었지만 신지가 없는 것을 알고 안심했다. 하지만 토이는 열지 않으면 도끼로 부숴 버리겠어~라고 고함치면서 집을 향해 2발을 쏘았다. 이때 1발이 4녀 유키코(당시 21세)의 대퇴부에 명중해 경상을 입었다. 이 때쯤 되어 심야의 산간에 울려 건너는 총성, 절규와 비명 탓에 이상함을 느낀 마을사람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희생자 18~19 - 일곱 번째는 언덕에 있는 테라카와 코지(寺川好二)의 집이었다. 여기는 모친 토요(45세)와 아들 코지(21세) 등 2명이 살고 있었다. 이곳 역시 열쇠를 잠그는 습관이 없었다. 토이는 돈을 주고 토요와 관계를 가졌지만 그녀가 니시다 요시코, 테라카와 유리코의 중매를 한 것을 원망하고 있었다. 총소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잠들어 있던 두 명은 이불을 덮은 채로 총에 맞아 사망했다.



희생자 20~21 - 여덟 번째는 토이의 집 남쪽 테라카와 센키치(寺川千吉, 당시 85세)의 집. 이곳에는 가족 여섯 명과 양잠 일을 하는 2명 등 모두 8명이 자고 있었다. 토이는 이 집에 원한이 없었지만, 예전에 자신과 정교를 거절한 단게 우이치(丹下卯一)의 여동생 츠루요(21세) 와 키시모토 카츠유키의 여동생 미사(19세) 등 양잠실에서 자고 있던 두 명을 엽총으로 사살했다.



희생자 22 - 같은 방에서 자고 있던 다른 한 명인 장남 아사이치(朝市, 64세)의 아내 히라지 토라(65세)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총을 두 번 쏘아 죽였다. 양잠실을 뛰쳐나온 토이는 안방 툇마루의 덧문을 열고 들어가 난로 앞에 앉아 있던 센키치와 마주쳤다. 센키치는 토이를 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차분하게 앉아 있었다. 토이는 “노인이라도 가만 두지 않겠어~!”라고 하면서 총구를 센키치의 목에 겨누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하더니 “당신은 내 욕을 하지 않았으니 봐 주겠어. 내가 죽으면 욕을 할지도 모르지만”이라고 말하면서 히죽 웃더니 자리를 떴다. 그 직후 토이는 안쪽 창고로 갔다. 여기에는 아사이치가 이불 속에서 자는 척 하고 있었다. 아사이치는 토이와 센키치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떨면서도 자는 척 하고 있었다. 토이는 3개의 전등으로 아사이치를 비추다가 갑자기 베개를 걷어찼다. 아사이치가 놀라 일어나려 하자, 가슴을 총으로 밀면서 “젊은 사람(이사오 부부)은 도망쳤군. 움직이면 공격할거야. 얌전히 일어나~!”라고 명령했다. 아사이치는 토이를 바라보며 두 손을 모으고 꼼짝하지 않을 테니 살려달라고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토이가 “그렇게 목숨이 아까운가?”라고 조롱하듯 말하자, 아사이치는 손을 모은 채로 여러 번 아이처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아, 살려주지~” 토이는 그렇게 말하고 센키치 집을 나왔다. 센키치의 아내 테라카와 치요(당시 80세)는 마루밑에 숨어 있었고, 손자 테라카와 이사오(당시 41세)와 그 아내 테라카와 키이(당시 38세)는 2층에 숨어 있었다.



희생자 23 - 아홉 번째는 단게 우이치(당시 28세) 집이었다. 이 집은 3인 가족이었지만, 여동생인 츠루요(21세)는 테라카와 센키치의 양잠실에서 이미 살해당했다. 단게 집에도 별채인 양잠실이 있었는데 마침 어머니인 이토(47세)가 보온용 화로의 불을 보고 있던 중 토이가 나타나 딸 츠루요는 이미 죽었고, 이번에는 당신이라고 하며 엽총을 쏘아 중상을 입혔다. 그녀는 병원에 옮겨졌지만 6시간 후에 사망했다. 우이치는 안방에서 자고 있다가 어머니의 비명과 총성을 듣고 깨어나 재빨리 탈출해 난을 면했다. 우이치는 한때 테라카와 유리코와 부부였기 때문에 토이의 표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이치는 니시카모(西加茂)의 파출소에 갔지만 순경이 부재중이자, 다시 카모쵸(加茂町) 파출소로 달려가 숨을 헐떡이며 사건의 발생을 알렸다. 약 3km의 논두렁길을 달리다가 도중에 자전거를 빌려 20분 후에 도착했다. 오전 2시 40분쯤이었다. “순경 아저씨, 큰 일 났소. 일어나요, 살인이야~!”라는 우이치의 고함소리에 이마다 타케오(今田武雄) 순경은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우이치의 이야기를 듣기 전 토이가 저질렀냐고 이마다 순경은 고함쳤다. 평소부터 토이의 동정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이마다 순경은 곧장 전화로 츠야마 경찰서 숙직인 키타무라 부경감에게 보고했다. 이웃 히가시카모마을 파출소의 요네자와(米澤) 순경에게도 연락했다. 소방대와 의사에게도 연락하고, 만일의 경우에는 철도 전화를 빌려 더 이상의 사태 발생을 막기 위해서 마을의 종을 두들길 것 등을 아내에게 부탁한 후 우이치와 함께 카이오 부락으로 향했다.



희생자 24 - 10번째 집은 이케야마 스에오(池山末男, 당시 37세)의 집이었다. 8인 가족이었지만 수학여행 중이었던 장남 요우(당시 15세)를 제외한 7명이 있었다. 토이가 이곳을 습격 대상에 포함시킨 이유는 이케야마 스에오가 테라카와 마츠코(당시 35세 이케야마 가츠이치의 5녀, 20세에 테라카와 히로시와 결혼)의 오빠였기 때문이었다. 토이는 마츠코와 관계가 있었는데, 토이가 폐결핵에 걸린 것을 알자 갑자기 변심했다. 스에오는 뒤의 덧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이 때 이미 뒤로 돌아갔던 토이가 스에오를 보자마자 총을 난사했으나 스에오는 대나무 숲으로 뛰어들어 위기를 모면했다. 토이는 집안에 들어가 엽총으로 아내인 미야(34세)를 사살했다. 테라카와 마츠코 일가는 위험을 알아채고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남편과 3일쯤 전 교토로 이사 갔다. 이 때, 다섯 번째 희생자인 니시다 토메에게 함께 가자고 권했지만, 토메는 “(토이가) 죽일 만큼 미워하진 않을 거야”라며 거절했다. 토이는 마츠코 일가가 도망친 것을 알고 있었다.



희생자 25~27 - 토이는 4남 아키오(5세)와 모친 츠루(72세)를 사살하고 도망치려 하던 부친 가츠이치(74세)에게 총을 난사해 사살했다. 차남 쇼우(당시 12세)와 삼남 쇼조(당시 9세)는 토이의 눈에 띄지 않았는지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살아났다.



희생자 28 - 11번째 집은 마을 제일의 부자인 테라카와 쿠라이치(寺川倉一, 당시 61세) 집이었다. 여기는 세 명이 살고 있었다. 쿠라이치는 돈이나 물건을 주면서 테라카와 마츠코, 오카베 미요 등 몇 명의 마을 여자와 관계하고 있었다. 토이가 비탈을 오르는 도중 가슴에 달았던 전등이 떨어졌지만 쿠라이치가 있냐고 고함치면서 정문으로 뛰어들었다. 아내 하마(56세)가 초를 들고 덧문을 열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앞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전등 두 개가 보이는데”라고 쿠라이치와 장남 스구루(당시 28세)를 돌아보며 외치는 순간, 토이의 엽총이 불을 불었다. 하마는 초를 들고 있던 오른손에 총을 맞았지만, 아픔을 참고 서둘러 덧문을 닫은 후 쿠라이치와 함께 필사적으로 토이의 침입을 막았다. 토이는 닫히는 덧문을 향해 엽총을 5발 난사, 하마의 오른 팔에 중상을 입혔다. 그것을 본 쿠라이치는 2층에 뛰어 올라 창을 열고 도와 달라고 소리쳤다. 언덕이었기 때문에 마을사람 전원에게 이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토이는 쿠라이치에게도 발포했지만 총알은 1층의 지붕 기와를 깼을 뿐이었다. 쿠라이치는 당황해 방안에 몸을 숨겼다. 토이는 쿠라이치를 단념하고 떠났다. 하마는 사가노 병원에 옮겨졌지만 출혈이 심해 12시간 후 사망했다.



희생자 29~30 - 지금까지는 모두 카이오 부락에서 벌어졌지만, 12번째 살인은 카이오 부락 북서쪽의 사카모토(坂本)부락에 있는 오카베 카즈오(岡部和夫, 51세)의 집이었다. 토이는 약 2킬로의 산길을 달려가 이곳에 왔다. 여기는 부부 2명이 살고 있었다. 아내 미요(32세)와 토이는 여러 번 관계를 가졌는데, 남편 카즈오는 이를 막으려고 부심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요까지 차갑게 대하고 있었다. 오카베의 집은 토이가 찾아오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문단속은 하고 있지 않았다. 혹은 테라카와 쿠라이치 때문에 미요가 자물쇠를 떼어 두었을지도 모른다. 카즈오는 토이를 쫓기 위해 최근 공기총을 구입했는데, 토이가 들어왔을 때 맞서려 했으나 아내와 함께 사살 당했다. 이렇게 해서 약 1시간 반에 걸친 참극은 끝났다. 피해자는 사망자 30명(즉사 28명, 중상을 입고 나중에 사망한 사람 2명), 중상자 1명, 경상자 2명 등 합계 33명이었다.


오카베 집을 떠나 오전 3시 쯤 타루이(樽井)부락 타케다 마츠하루(武田松治, 당시 66세)의 집에 나타난 토이는 “오늘밤은~ 오늘밤은~”하며 마츠하루가 자고 있는 방에 마구 들어갔다. 마츠하루는 토이를 보고 강도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토이는 “할아버지, 떨지 말아요. 할아버지, 빨리 종이와 연필을 가져와요. 경찰차가 이 아래까지 나를 쫓아오고 있어~!”라고 말했다.


마츠하루가 종이를 찾고 있자 토이는 함께 자고 있던 마츠하루의 손자에게 “앗챵, 할아버진 안되겠다. 네 연필과 공책을 가져와라”고 말했다.


손자가 연필과 공책을 주자, 토이는 공책의 일부를 찢으며 “나는 죄 없는 사람은 공격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공부 열심히 해라”고 하면서 서둘러 나갔다.


손자는 저 사람이 토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마츠하루는 처음으로 오카베 미요와 밀통(密通)의 소문이 있던 토이를 본 것이었다.


마츠하루는 토이가 유서를 쓸 생각으로 종이와 연필을 달라고 한 것을 알아챘지만, 토이에게 앗짱이라 불린 초등학교 5학년 아츠오(篤男)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토이의 시체가 발견된 곳은 거기서 산으로 3.5km 들어간 산꼭대기였다.


옆에는 몸에 달았던 회중전등, 머리띠, 일본도 1개, 비수 2개, 자전거용 램프, 잡낭(雜囊)이 가지런히 늘어 놓여 있었다. 신발도 벗어 제대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검정색 학생복의 단추를 풀고 브라우닝 9연발 엽총을 손에 들어 셔츠 위에서 심장 쪽에 총구를 대었다. 양손으로 총신을 제대로 잡고 오른쪽 다리를 펴 엄지발가락을 방아쇠에 걸었다. 총성과 동시에 손에서 총이 1미터 정도 날아갔으며, 토이는 쓰러졌다.


즉사였다.


자살 현장에는 유서가 있고, 자택에서도 2통의 유서가 발견되었다. 사망 추정 시각은 오전 5시경. 이 사건에는 하나의 기묘한 전설이 항상 따라다녔다.


중일전쟁의 한창이던 시기에 벌어진 이 사건은 너무나 끔찍해 공표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라디오를 비롯한 전국의 매스컴에 빠짐없이 보도되었고 전 일본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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