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동물] 용

개후루루룹 작성일 14.11.14 22: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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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 과학자’가 묘사한 용의 모습-용


용(龍)

“만력(萬曆) 기묘년(己卯年·1579년), 나는 대사농(大司農)이었던 조부를 따라 유구섬으로 떠나는 도중에 세찬 태풍을 만났다.천둥과 번개 그리고 우박이 일시에 몰려들었고, 용 세마리가 배의 앞뒤에 매달려 있었다. 용들의 수염이 바닷물과 뒤엉키고 구름 사이로 들어갔으며, 머리의 뿔이 모두 보였지만 허리 아래로는 볼 수가 없었다.… 용이 구름 속에 거꾸로 매달린 채 물과 100여장(丈) 떨어져 있었는데, 물이 마치 연기처럼 튀어올라 구름과 서로 닿았으며, 사람들은 그 모습을 역력히 볼 수 있었다. 내가 만약 이 사건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면 그 이치는 거짓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若非親見,鮮不以爲妄矣)”(謝肇制, 『五雜俎』中)


근대 중국 ‘과학자’들이 남긴 용에 대한 관찰 기록은 현대 역사가들의 흥미를 돋우는 대목이다. 상대적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엄격한’ 과학적 사고를 선보이면서 근대 중국 과학사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인물들 중에서 황당하게도 용을 “직접 봤다”며 상세한 기록을 남기는 경우가 있는 것.

전통시대 신화적 설화나 정치 지배층의 지배 이데올로기 차원이 아니라 “눈으로 보거나, 사실로 입증된 것만 기록한다”며 방대한 백과사전적 저술을 남긴 명나라 시대 사조제(謝肇制)가 대표적이다. 그는 ‘동지 후에 눈꽃이 오각으로 핀다’는 옛말을 그대로 믿지 않고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눈꽃을 채집해 살펴본 결과 “모두 육각이었다”며 “예부터 내려오는 말 역시 모두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됐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직접 관찰을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세련된 관찰자이자 명석하고 냉철하며 실용적이며 학식있는 인물들이 (실존하지 않는) “용을 봤다”고 수차례 글을 남긴 것이다.

그는 용에 대한 묘사에서도 ‘직접 본 것’과 ‘전해들은 것’을 엄밀히 구분했다. “용이 나타날 때는 항상 천둥, 번개, 구름, 안개가 그 몸을 감싸고 있어 용의 전체 모습을 본 사람은 매우 드물다”는 전제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전통시대 동양 사람들이 용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혹은 도깨비), 귀는 소, 목은 뱀, 배는 이무기,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발바닥은 범과 같고 등에는 81개의 비늘이 있다”는 식의 관념적인 묘사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본 것에 한정해서 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머리속에서 나왔을 용의 분류(장소에 따라 해룡(海龍),호룡(湖龍),지룡(地龍)으로 나누고, 색깔에 따라 청룡,황룡,적룡,흑룡,백룡으로 구분하고, 발톱수에 따라 오과용(五瓜龍),사과용,삼과용으로 분류하고, 나이에 따라 각룡(角龍·500살),응룡(應龍·1000살)으로 나눠 부르고, 뿔의 여부에 딸 규룡과 이룡 식으로 차이를 두는 구분법)은 사조제의 용 묘사에는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철저한 관찰자였던 사조제는 1598년에도 용이 나타났다는 기록을 추가로 전하고 있다.

“그해 여름 구용(句容)에서 두마리 용이 만났다. 그 가운데 한마리는 곤경에 처해 땅으로추락해 논 가운데서 버둥댔다. 수백리 밖의 사람들이 다투어 몰려들어 이를 구경했는데, 3일이 지나자 바람과 번개가 그 용을 부축하여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같은 기록에 대한 ‘방증’도 빠뜨리지 않는다. 황하 하류이 치수를 담당했던 한 관리가 비늘과 발톱, 갈기 그리고 뿔을 갖춘 길이 수십척(尺)되는 용의 허물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는 것. 그리고 용의 뼈는 단단하고 하얘서 마치 옥과 같았다(其骨堅白如玉)고 묘사한다.

관념과 믿음, 그리고 날카로운 관찰이 복잡하게 섞였던 시기 사조제는 과연 무엇을 본 것일까.

임진년(壬辰年) 새해를 맞아 ‘흑룡(黑龍)의 해’라는 상술섞인 표현이 널리 퍼져있다. 한학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도 전통적으로 ‘흑룡’이 언급된 사례를 거의 찾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굳이 흑룡이 언급된 것을 들춰봐도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22장에 달린 주(註)에선 이성계의 할아버지인 도조(度祖)의 꿈에 백룡이 나타나 “나는 아무 호수에 사는 백룡인데 흑룡이 내가 사는 곳을 빼앗으려 하니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데서 흑룡이 언급된다. 이어 도조가 활로 흑룡을 쏘아 죽이자 백룡이 “도조의 자손은 크게 흥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것인데 흑룡은 암울한 어둠의 세력으로 묘사될 뿐이다. 또 제주도에선 죽음은 흑룡, 권력은 청룡, 백성은 백룡에 비유해 “흑룡이 올라가면 사람이 많이 죽고, 청룡이 올라가면 머리 큰 사람이 살기 좋고, 백룡이 올라가면 농부가 살기좋다”는 표현도 있다고 한다. 또 용은 해를 거듭할수록 색깔이 황색으로 변해 황룡이 가장 좋은 것이란 설명도 있다고 한다. 첨단 과학시대 조차 (물론 재미삼아 하는 말들에서 출발한 것이겠지만) 근거없는 설들은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16세기말 17세기초 중국의 정상급 과학자인 사조제가 용을 실제로 봤다고 믿은 것처럼...


용이 실제로 있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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