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래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겪고 난 후, 저는 아마 귀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산이라 사투리가 섞여 있는 점 양해 바랍니다.
12년 정도 전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할아버지와 참 친하게 지냈었습니다.
3명 있는 손자들 중 막내였던 저에게만 유독 정을 주시고 예뻐해주셨지요.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될 즈음 할아버지의 몸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셨습니다.
예전에는 가볍게 다니시던 거리도 숨이 차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신 겁니다.
결국에는 매일 나가시던 노인정에도 못 가시고 집에 누워만 계시게 되었습니다.
담배를 많이 피셨던 때문인지 폐가 안 좋아지신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일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할아버지의 병수발을 들었지만,
할아버지의 몸은 나날이 말라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할아버지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 전날 어머니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진아, 내일은 일찍 온나.]
저는 그 말을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해서 장례식을 다 치른 뒤 어머니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엄마, 그 이야기 왜 했던거야?]
알고보니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저뿐만이 아니라 아버지께도
내일 하루는 어디 가지 말고 할아버지 곁에 있어달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놀라웠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저녁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참고로 싱크대는 할아버지 방문 바로 옆에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발 쪽에 있는 TV를 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부르셨다는 겁니다.
[얘, 에미야..]
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가자
할아버지께서는 발 쪽 침대와 TV 사이를 손으로 가리키셨다고 합니다.
[얘, 에미야, 저기 저 사람이 서 있네? 누고?]
[예? 무슨 사람말입니꺼?]
[저기 저, 사람 한 명 서서 내를 보고 있는데?]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이상하다 싶어 가족들에게 말을 하셨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게 저승사자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지금도 저는 그것이 저승사자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귀신 같은 것을 본 적도 없고, 가위 같은 것에 눌려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일 이후 저는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사건을 생각하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주위에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출처 :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