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좀 악질인 구석이 있어서, 단합이 목적인지 정신수행이 목적인지,
매년 신입사원들을 데리고 등산이나 캠핑을 하곤 한다.
올해는 어느 산 속의 절에서 수행을 하는 쪽으로 계획이 잡혀버렸다.
매년마다 사장과 더불어 기존 사원 중 인솔자가 한 명 같이 가는데,
하필 올해는 사장이 갑작스러운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내가 인솔자로 혼자 동행하게 되었다.
A, B, C라는 신입 3명을 데리고 신세를 지게 될 절에 가자,
주지스님과 S 스님, O 스님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주지스님은 항상 미소를 띄고 있어, 무척 상냥한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매일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좌선과 독경을 하는 일정으로 사흘간 이 절에 묵게 된다.
첫날 밤, 신입 두 명이 큰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갔더니, 절에 있는 우물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둘이서 우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여자아이가 나타나 우물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산 중에 있는 절에, 그것도 한밤 중에 웬 여자아이인가 싶었지만,
일단 A가 S 스님에게 달려가 황급히 사정을 설명했다.
[우물 안을 들여다보기 전에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갑자기 여자아이가 뚝 떨어졌어요. 빨리 구하지 않으면 빠져 죽어버릴거에요!]
하지만 S 스님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 우물 안에 물은 없습니다. 먼 옛날에 이미 수맥이 끊어졌어요. 게다가 우물은 철판으로 닫아뒀을 터인데..]
A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열려 있었습니다. 거기다 '첨벙' 하고 물소리까지 들렸어요. 야, 너도 들었지?]
곁에 있던 B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분명 여자아이가 떨어졌습니다. 빨리 끌어올려야해요.]
우선 물이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했지만 손전등으로 비춰보니 우물은 확실히 바닥을 들어내보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소란스러웠는지 주지스님이 왔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주지스님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이런 늦은 밤에 아이가 혼자 이런 곳까지 올리가 없습니다.
여러분, 본당에 와 주시지요. 독경을 합시다. 우물 뚜껑은 제대로 닫아두세요.]
A, B는 물론이고, 직접 우물 안을 보지 않았던 C 역시 꽤 두려워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장에게 전화를 해 사정을 말하고 일정을 일찍 끝내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사장에게 하자니 영 용기가 나질 않았다.
이틀째 밤, 자기 전에 잠깐 짬을 내서 나는 담배를 피러 흡연소로 향했다.
흡연소는 그 우물 바로 옆에 있었다.
문득 우물을 바라보니, 어제 닫아뒀던 철판 뚜껑이 치워져 있었다.
어라, 하고 생각한 나는 우물로 향했다.
멍하니 우물 안을 들여다보자, 갑자기 옆에서 여자아이가 떨어졌다.
물소리도 분명히 들렸다.
그 때, A 역시 담배를 피러왔는지
내 곁에 다가와 [왜 그러세요?] 라고 물었다.
[야, 나도 봤어.. 분명 여자아이가 떨어졌다구. 여기 위험해, 진짜..]
[H씨도 보셨어요? 여기 진짜 위험한 거 같아요. 그냥 빨리 돌아가면 안 될까요?]
[나도 돌아가고는 싶은데.. 그래도 이제 하루만 참으면 되니까.. 이제 자러 가자.]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데 주지스님이 왔다.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위험하니까 철판을 열면 안 됩니다.]
[저희가 한 게 아닙니다. 저도 그 여자아이를 보고 말았어요. 옛날에 여기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귀신에게 홀려있는지도 모르겠군요. 본당에서 독경을 합시다. 철판을 닫고 따라오세요.]
주지스님이 강경했기 때문에 우리는 찜찜한 기분을 억누르며 본당으로 돌아갔다.
하루만 참으면 돌아갈 수 있어서
나는 의식적으로 그 우물을 피해다녔고, 별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자기 전에 한 대 피우고 잘 생각이었지만,
어제 일이 뇌리에 남아 혼자 가기가 좀 두려웠다.
A는 내가 가려고 하기 전에 벌써 혼자 갔다왔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참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한밤 중, 문득 잠에서 깬 나는 아무래도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이걸 어쩌나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 누워 있는 A가 깨어있는 것 같았다.
[야, A야, 안 자냐?]
[네, 아직요. 담배 피우고 싶어서 잠이 안 오네요.]
[너도? 나도 피우고 싶어 죽겠다, 야. 지금 갔다올래?]
[갈까요? 근데 이 시간에 거기 가도 될까요?]
[무서워서? 아니면 혼날까봐?]
[무서워서요. 그래도 둘이 가면 괜찮을 거 같긴 한데..]
[나도 무섭지만.. 가자.]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나와 A는 살금살금 흡연소로 향했다.
슬쩍 우물 쪽을 봤지만 철판은 잘 닫혀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점점 가까워 온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발소리의 주인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지스님이었다.
큰일났다 싶어, [죄송합니다. 도저히 담배를 못 참겠어서..] 라고 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주지스님은 그걸 무시하고 우물로 향했다.
뭘 하는건가 보고 있자니, 우물의 철판을 치우고 우리에게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돌아갔다.
무슨 일인걸까?
철판을 치우고 있던 건 주지스님이었다.
지금 주지스님의 행동은 누가 봐도 이상했다.
나와 A가 우물로 시선을 옮기자, 우물 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뒤에는 스님이 서 있고, 여자아이를 싱글벙글 웃으면서 보고 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스님이 여자아이를 우물 안으로 밀어 떨어트렸다.
우리는 우물 안을 들여다보고 있어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지만,
여자아이는 떨어진 게 아니라 떠밀려 떨어졌던 것이었다.
스님은 여자아이를 밀어 떨어트린 후 기쁜 듯 싱긋 웃었다.
어디선가 본 미소다..
나에게는 그 스님이 주지스님으로 보였다.
주지스님보다는 젊지만, 분명 닮았다.
스님은 웃으며 사라졌다.
그러나 또 여자아이와 스님은 나타나고, 방금 전과 같은 일이 반복됐다.
동영상을 되감아 다시 트는 것처럼..
몇번이고 몇번이고 여자아이는 스님에게 등을 떠밀려 떨어지고,
스님은 기쁜 듯 웃는다.
나와 A는 멍하니 그걸 보고 있었다.
가위에 눌린 건 아니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만.. 그 광경을 계속 보고 있었다.
몇번이나 반복된 것일까..
어느새인가 여자아이와 스님의 모습은 사라진 후였다.
나와 A는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서 있었지만,
문득 등 뒤에서 들려온 [좋은 아침입니다.] 라는 B와 C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고는,
이미 다 타버린 담배꽁초를 버리고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모르겠어서 그저 입 다물고 담배를 태웠다.
그러는 와중 S 스님이 다가왔다.
[이런 곳에서 멍하지 있지말고 청소를 좀 도와주시죠.]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스님, 여기서 혹시 옛날에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지 않았습니까? 사실을 안다면 좀 가르쳐주세요.]
[또 뭐라도 보신건가요? 저는 잘.. 아직 여기 온지 3년밖에 안 됐거든요. O 스님이라면 혹시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나와 A는 아침식사 후, O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혹시 이 절에서 옛날에 무슨 사건 같은 게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O 스님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물에서 뭔가 보신 모양이군요. 저는 여기 온지 10년이 넘었지만 제가 온 이후에는 별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이상한 일은 있었는데.. 음.. 이걸 말씀드려도 될런지..]
O 스님은 뭔가 고민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뭐, 일단 비밀로 해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실은 전에도 우물 뚜껑이 열려 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연 적은 없는데, 주지스님한테 한껏 혼이 났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닫아놔도 어느샌가 뚜껑이 열려 있는 겁니다.
주지스님에게 들키면 경을 치니 바로바로 닫아 놓지만, 어느날 보고 말았습니다.]
O 스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지스님이 우물 뚜껑을 열어놓는 걸 말입니다. 제가 스님에게 계속 말을 걸었지만 무시당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우물 뚜껑이 열려 있는 적이 없었지만, S 스님이 온 후 또 몇번인가 그런 일이 일어나더군요.
뭐, 열려 있을 때마다 제가 찾아서 닫아놔서 아마 S 스님은 알아차리지도 못했겠습니다만.]
A가 물었다.
[혹시 우물 안에서 뭔가 보신 건 없으신가요?]
[아무것도요. 저는 영감이 없는건지, 지금까지 한 번도 유령 같은 건 본 적이 없습니다.]
[주지스님께는 우물 뚜껑을 연 것에 대해 물어보신 적이 있나요?]
[아뇨.. 그런 적은 없습니다. 주지스님이 왜 그런 일을 하신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혹시 의도해서 그런게 아니라, 무언가에 홀려서 그런 건 아닐까요?]
[..아마 주지스님이라면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여러분, 무얼 보셨기에?]
나와 A는 얼굴을 마주 보고, 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
결국 A가 입을 열었다.
[저기.. 여자아이가 우물에 떨어지는 걸 봤습니다. 여기 H씨도, 저도, 그리고 B씨도요. 그것 뿐입니다만..]
O 스님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런가요.. 하지만 지금까지 특별한 일은 없었으니 아마 괜찮을 겁니다. 잊으시지요.]
나 역시 더 이상 파고들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늘은 절에서 떠나는 날이니, 이제 됐겠지..
그날 정오 무렵, 우리는 절을 떠나기로 했다.
주지스님이 문 앞까지 나와 웃는 얼굴로 배웅해준다.
여기 처음 올 때 봤던 미소와 같은 미소일터인데,
도저히 주지스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인사를 건네고, 절문에서 한걸음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주지스님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프후후후.. 햐하햐하햐하핫히히히히히히힛.]
그러더니 갑자기 멈추더니, 이번에는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으우우.. 으아아아앙, 훌쩍훌쩍..]
제정신이 아닌 듯한 광경에, B와 C는 도망쳤다.
S 스님과 O 스님은 필사적으로 주지스님을 말리고 있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듯 했다.
나는 걱정된 나머지 주지스님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주지스님은 기쁜 듯 싱긋 웃었다.
그 얼굴을 보고, 나와 A도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회사로 돌아온 후에도 A는 이상한 사명감을 가지고 그 절에 관해 계속 조사하고 있었다.
거기다 나도 같이 조사를 도와달라고 달라붙어오는 것이었다.
[H씨도 같이 조사해보시죠. 이대로는 그 여자아이가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건 도대체 뭐였을까, 마지막 그 주지스님 꼴은..]
[그건.. 그 여자아이 나름대로 우리한테 뭔가 이야기하려던 건 아닐까요?
우물에서 우리가 그 광경을 보고 있을 때, 옆에서 그 여자아이가 계속 H를 보고 있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A의 말대로인지도 모른다.
그 여자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S 스님과 O 스님 대신, 우리에게 도움을 요구했던 것인지도..
뭔가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내게는 무리였다.
솔직히 말해 몇번이고 본 그 여자아이의 얼굴이나 모습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주지스님의 웃는 얼굴만은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자아이를 밀어 떨어트린 후 지었던 그 만면의 미소를..
지금도 갑자기 떠올라, 혼자 있는 게 참을 수 없이 두려울 정도다.
결국 나는 A에게 미안하다고, 나에게는 도저히 무리라고 말하고 발을 뺐다.
그리고 3달 가량 지난 오늘, A에게 메일이 왔다.
지난주 주지스님과 만나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A는 세 달 동안 매주 일요일마다 꼬박꼬박 그 절을 찾았다고 한다.
매번 S 스님이 맞아줬지만, 일반인은 절의 예불에 참여할 수 없다며 절에 들여보내주지는 않았다고 한다.
지난주 일요일도 A는 친구와 함께 절을 찾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세 달 동안 같은 짓을 반복하자 열이 오른 A는
[안 들여보내주면 경찰에다 내가 봤던 걸 다 말할테야! 괜찮은거냐!] 라고 절 앞에서 소리를 쳤단다.
그리고 한동안 있자니,
S 스님이 나와서 A 혼자만이라면 들어와도 된다며, 주지스님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친구는 차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A는 주지스님을 만나러 들어갔다.
S 스님도, O 스님도 없이 오직 주지스님과 둘이서 독대하는 것이었다.
A는 들어가자마자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그 여자아이는 당신이 옛날에 밀어 죽인거죠?]
주지스님은 말이 없었다.
[정직하게 말해주시죠.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찾아오겠습니다.]
주지스님이 입을 열었다.
[..벌써 20년은 더 된 이야기입니다.. 내 여동생에게는 딸이 있었어요. 무척 사랑스러운 아이라,
어릴 적 여동생이랑 꼭 닮았죠. 나는 조카가 너무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워서, 그래서.. 밀어버린 겁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모르시겠나요? 뭐, 모르시겠지요. 조카는 죽었습니다. 사고사로요.]
[사고사라니.. 당신이 죽인 거잖습니까!]
[사고사입니다. 그렇게 처리됐으니까.]
A는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고 한다.
[당신, 그 여자아이의 귀신에게 홀려 있어!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당신 스님이잖아?
그러고도 괜찮은거냐? 회개하라고. 그래야 당신 조카도 성불할 거 아니야!]
기묘하게도 주지스님은 계속 웃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요. 나는 홀려 있습니다. 조카는 나를 원망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대로 영원히 내 곁에 있어주는 겁니다.
성불이라니, 터무니 없는 짓 아닙니까? 계속 나와 함께 있어주는 겁니다. 이 모습 그대로, 언제까지라도..]
그 말에 A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사명감에 차 잊고 있었던 공포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올랐다고 한다.
[이제 진실을 아셨으니 만족하셨나요? 그럼 돌아가주시죠.
두 번 다시 이 곳에 오지 말길 바랍니다. 또 오신다면 그 때는 저도 생각이 있으니..]
A는 그대로 절을 내려와,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나는 [살인을 자백한 셈이니, 경찰에 신고하는 게 낫지 않을까?] 라고 A에게 물었다.
하지만 A는 잔뜩 겁에 질려, [아뇨.. 저는 무리입니다.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요.]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물론 나도 이 이상 엮일 생각은 없다.
출처 :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