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조부모님은 두 분 모두 그림을 무척 좋아하신다.
그래서 외갓집에는 온갖 그림이 잔뜩 모여 있어, 종종 놀러갈 때면 나도 한참을 구경하곤 한다.
두 분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그림만 있고 비싼 건 없다고 웃으시지만,
내 눈에는 무엇 하나 할 것 없이 다 훌륭하게만 보인다.
그 중 긴 금발을 한 여자의 초상화가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상냥하게 미소짓는 미녀가 그려진 초상화'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외할아버지와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그림 이야기를 꺼냈더니 고개를 갸웃거리시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나 말고 다른 사람 눈에는
'무표정하고 차가운 인상의 미녀가 그려진 초상화'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내 말이 신경쓰이셨는지, 외할아버지는 그 그림을 판 사람에게 연락해 물어봤다고 한다.
하지만 별다른 사연은 없고, 그저 평범한 보통 그림이라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결국 그 때는 그저 내가 다른 사람하고는 보는 눈이 조금 다르다는 결론으로 끝났다.
하지만 엊그제, 외조부모님에게 편지가 왔다.
그림 중 몇개를 친척과 지인에게 나눠주려 하니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가지러 오라는 것이었다.
편지에는 그림 중 몇 개의 사진이 동봉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지난번 그 초상화 사진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 기억과는 달리, '차가운 표정의 미녀'가 그려져 있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그림인 게 아닌가.
역시 어린 시절 기억의 착각이었나 싶었지만,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나는 그 그림을 받으러 가기로 했다.
외조부모님에게 연락해 그림을 받으러 외갓집에 도착해, 나는 그림을 보러 갔다.
그리고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사진으로 봤을 때와는 달리, 역시 그 초상화는 상냥하게 미소짓고 있는 미녀의 초상화였으니까.
종종 인형에는 영혼이 깃든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지만, 그림에도 누군가의 영혼이 머무를 수 있는걸까?
출처 :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