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직후,
아와지에서 어부로 일하던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겪은 일이라 한다.
어느 여름날,
할아버지는 고기잡이를 마친 후, 취미 삼아 조카와 둘이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섰다고 한다.
현지 사람만 아는 명당에 들어서 낚싯대를 내렸지만,
어째서인지 그 날따라 입질이 전혀 없었다.
시간만 흐르자 조카는 더운 날씨에 질렸는지 옷을 훌훌 벗고 바다에 들어갔다.
"이런이런" 하고 생각한 할아버지도 낚싯대를 손에서 놓고, 잠시 휴식에 들어갔다고 한다.
문득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보는데,
수십미터 떨어진 저 편 해저에 무언가가 서 있었다.
지금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지만,
공장이 마구 들어서기 전의 세토나이카이는 꽤 물이 맑은 바다라 바닥까지 보였다는 것이다.
뭔가 싶어 할아버지는 거기를 계속 바라봤다고 한다.
아무래도 해저에 서 있는 건 사람인 듯 했다.
그것도 그저 서 있기만 한 게 아니라,
천천히 배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한 명만이 아니라,
여러명이 행렬을 이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비명을 지를 뻔 했지만,
할아버지는 문득 어린시절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바다에서 이상한 걸 보면 소리를 지르거나 눈을 마주쳐서는 안된다.
그럴 때는 봤어도 보지 못한 척하고 도망쳐야해.]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은 할아버지는 도망칠 생각으로 조카를 배에 태우려 했다.
될 수 있는 한 평정을 가장하고,
배 주변에서 헤엄치며 놀고 있던 조카에게 말을 걸었다.
[야, 이제 돌아가자.]
어느새 조카 바로 밑에 한 명이 서 있었다.
꽤 근처까지 와 있는게 보인다.
방공두건을 둘러 쓰고, 몸뻬바지 차림의 젊은 여자였다.
조카는 알아차리지 못한 듯 할아버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새어나오는 비명을 억지로 참으며,
[우물쭈물하지 말고 당장 올라와!] 라고 조카에게 화내는 걸로 대신했다고 한다.
그 여자는 조카가 헤엄치는 걸 따라와, 배에 가까워 온다.
조카가 배에 올라오는 도중, 여자가 바다 밑에서 서서히 올라오는 게 보였다.
할아버지는 황급히 눈을 돌렸다.
조카가 배에 올라타자, 할아버지는 엔진을 켜고 전력으로 도망쳤다.
조카는 의아하다는 듯 무슨 일 있냐고 물었지만,
[아무 것도 아니다.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 라고 넘겼다고 한다.
무사히 항구에 도착한 후, 할아버지는 조카 먼저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배에서 내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배에서 내렸을 때는,
온몸이 바다에 빠지기라도 했던 것처럼 축축하게 젖어있었다고 한다.
출처 :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