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고대 문명을 자랑하는 중동 답게 터키에서 어마무시한 유적지가 발견됐다.
그런데 위치가 존나 절묘해서 터키군대가 중무장하고 유적지키고 학자들까지 맨투맨 커버중
중동에 헬게이트가 된 시리아로부터 80km도 안 떨어져있다. 유적파괴 페티시 IS가 코앞에 있단 뜻이다.
배치된 터키 군 신병의 심경.jpg
여하튼 여기를 목숨걸고 지킬 필요성이 상당히 높은데 유적지가 만들어진 시기가 측정결과 기원전 100세기, 12000년 전에 세워졌다
이때 어느 정도냐 하면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전 쯤 되는데, 고조선보다도 존나 오래 전이라고 보면 된다.
청동기 시대 이전이라면 석기 시대인데, 신전을 세울 노동력과 밑에 사진처럼
신전을 장식할 능력까지 있었다는 사실이 고고학계를 갈아엎어 놨다.
석상의 머리 모양 상태가?
이거 말고도 존나 많은데 박물관에 실고 가서 시간 지나면 공개한댄다. 그리고 이 유적지의 규모를 보자면
요정도? 오른쪽에 구석에 있는 검은 동그라미 안에 있는게 사람이다.
아직 스캔한 것에서 10%만 발굴한게 저정도. 발굴한건 일단닥치고 박물관에 보냈단다.
이 유적만의 특이한 점이 주거의 흔적x, 먹다버린 걸로 추정되는 동물 뼈, 바퀴흔적x, 문자x, 토기x, 청동기x
존나 오래 전인데 저정도 규모면 500명 정도는 동원했을 거라는게 정설이라는데. 아마 신전이었을 것으로 추정.
요 그림들로 보건데 농업, 사냥 기원을 위한 신전이 아니라 죽은 자들을 위한 신전이었을 것이며
이 문명은 다른 동네와 비슷하게 조장, 시체를 새들이 뜯어먹게 했을 것으로 추정.
사용기간은 2천년 정도 사용했으며, 이곳의 기둥들로 보건데 시간이 흐를 수록 조잡함이 드러났고
기원전 8천년 쯤에는 완전히 잊혀져서 땅에 묻혔다고.
조사면서 드러난 것인데, 자연스럽게 묻힌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석회자갈, 석기도구, 동물, 사람뼈로 쌓으면서 묻었다!고
추정컨데 소빙하기로 부족이나 국가가 망했거나, 신석기가 시작되면서 농업으로 먹고 살만해지니까 버린 것으로 추정중.
여담으로 리더였던
클라우스 슈미트 교수가 이분인데, 14년도에 수영하다 심장마비로 인생 즐기다가 훅 가시고
지금은 와이프인 치으뎀 쾩살 교수가 자리를 이어받아서 일하고 있다고.
치으뎀 교수의 페북에는 가끔 남편의 유적지 발굴 썰을 푸는데 재미도 감동도 있다니까 터키어 되는 게이 해석 요망
https://www.facebook.com/cigdem.koksal.965
여담 : 발굴기술과 장비의 발달 수준이 딸려서 10%밖에 못 꺼냄. 근데 10%가 인류사를 흔들 정도라는게 유머
요약 : 유적지 발굴했는데 IS 놀이터 바로 앞.
조사 결과 그동안의 인류사가 흔들림. 못 꺼낸게 기술부족으로 발굴불가
출처 - 루리웹 윾머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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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 추가 설명 덧글도 유익해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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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명칭 괴베클리 테페
이 유적의 중요성
지금까지 학자들이 주장했던
농경 - 정착 - 잉여생산품 - 종교생활의 인류발달사를 갈아엎음
즉 인류의 1차 기술혁명이라는 농업혁명을 전면 재고하게 만듬
이 유적으로
1. 종교(죽은자를 기리는 의미의 종교)가 생기고
2. 대형 구조물(괴베클리 테페)이 생기고
3. 그 관리를 위해 정착이 시작되고(실제 유적지에서 멀리 떨어진곳에 정착지를 발견)
4. 정착이 시작된 후에 농경이 시작되고
5. 농경으로 인한 잉여생산품이 발생하여 교역/거래가 생김
이란 연구가 이루어짐
농경으로 인해 사회(정착생활)이 시작된게 정착생활이 농경을 유발했고 그 필요성이 종교였다는 이야기
기존 인류는 과일따먹거나 사냥,조개채취등 수렵으로 살다가 농사를 지으며 모여살게됨 모여살다보니 종교,법 등이 나오게됨
유적발견 이후, 인류는 과일따먹거나 사냥,조개채취등 수렵으로 살다가 종교를 찾게됨 종교때문에 모여살다보니 농사를 짓게됨 으로 변경
1차 출처 : 루리웹
2차 출처 : fm코리아
3차 출처 : 모해유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