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h] 할아버지의 이야기

금산스님 작성일 16.11.25 15:3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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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내가 겪은 이야기다.

당시 나는 시골에 있는 친가에 살고 있었다.

 


친가는 오래 전부터 내려온 일본식 주택이었지만,

맞닿는 한 면에 논이 펼쳐져 있는 시골 동네라는 걸 빼면 극히 평범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집이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구직도 않고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부모님은 매일 같이 잔소리를 했지만,

곧 들은체만체 하는 내 모습에 기가 막혔는지 그냥 내버려두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인생 최악의 시기였던 것 같다.

어느날,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평소처럼 툇마루에 멍하니 누워있을 때였다.

 


[마사.]

누가 이름을 불러 뒤돌아보니, 툇마루 너머 옆방에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꼬질꼬질하게 때가 탄 런닝 셔츠에, 갈색 복대와 잠방이를 입은 채다.

 


만화에서 흔히 나오는 할아버지랑 빼닮은 모습을,

우리 할아버지는 언제나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옛날부터 내게 이런저런 체험을 시켜주신 분이라,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어릴 적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 맞은 편에 앉았다.

 


[너, 취직 안하냐?]

[할게. 조금만 있다가.]

[하, 거짓말 하고 있네. 평생 부모 그늘 밑에서 얻어먹고 살 작정이지?]

[들켰어?]

 


[어이, 마사. 이 시골에는 정말로 필요한 놈 아니면 바보 멍청이만 있는게야. 너는 멀리 나가서 일해라.]

[그게 뭐람.]

나는 할아버지의 말에 코웃음 쳤다.

 


[너를 위해 말하는게다.]

그 때 봤던 할아버지 눈은 묘하게 무서웠다.

목소리는 평소의 상냥한 할아버지 목소린데, 눈매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날카로운 것이었다.

 


얼빠진 내 기억에도 선명히 남을 정도로..

그 때는 아직 할아버지가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몰랐다.

 


그날 밤,

저녁식사 후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마사.]

또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낮과 변함없는 모양새다.

 


[왜요, 또.]

계속 TV나 보고 싶었지만, 낮에 봤던 할아버지의 무서운 눈초리가 떠올라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너한테 이야기 해야만 하는 게 있다.]

그러더니 할아버지는 [으랏샤.] 하고 내 옆에 앉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너에게 이 집의 비밀을 가르쳐주마.]

[집의 비밀?]

[이 집 천장에서, 가끔씩 이상한 소리가 나지. 너도 알고 있지?]

[..응, 아, 뭐..]

나는 이 집에서 태어나 자라며 천장에서 소리가 나는 걸 수십번은 들은 터였다.

 


흔히 있을법한 이야기지만, 미친 듯 달려 천장을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바람소리 같은 낮은 신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이상하게 경을 읊는 목소리 같은 게 들리기도 했다.

 


그것은 그 무렵에도 계속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건 혼자 있을 때 뿐이라,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할아버지만은 예외였지만.

 


[그게 뭐 어쨌는데?]

내심 두근대며, 나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저것은 천장과 지붕 사이에 모시는게다.]

[..뭐를?]

할아버지는 [아..] 하고 무언가를 말하려다 멈췄다.

 


[아.. 이름을 말하면 안되겠구나..]

[아니, 그게 뭐야? 나는 안 되겠는데. 뭔가 위험한 거 아냐?]

그 때, 촉이 확 꽂혔던 것이다.

 


[뭐, 일단 가보자고.]

할아버지 손에는 언제 가져온 것인지, 회중전등이 2개 들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있었지만 나는 벌써부터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목적지까지 향하는 다리가 무겁다.

20년 넘게 살아온 정든 집인데, 완전히 생소한 심령 스폿으로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할아버지가 준비할 시간을 주겠다며 30분 정도 있다가 움직였으니,

확실히 시간은 9시 반 넘어서였을 것이다.

 


부모님은 아침 일찍부터 일이 있어,

그날은 이미 잠을 청하고 계셨다.

 


거참, 잘도 주무시네..

아들은 죽을 각오로 끌려가고 있는데 말이야..

나와 할아버지는 툇마루를 지나, 복도를 걸었다.

 


[여기다.]

할아버지는 내 앞에서 탁 멈추더니,

오른쪽에 있던 문을 열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까지 놀이방으로 썼던 방이었다.

패미컴을 가지고 놀거나, 인형 가지고 군인놀이를 하기도 했던 추억 어린 곳이었다.

 


지금은 그냥 창고지만.

그러다 문득, 나는 깨달았다.

 


[할아버지.. 저거..]

내가 가리킨 곳에는 옻칠된 새까만 여닫이 문이 있었다.

 


내 기억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저 하얀 벽장문이었는데..

기억과는 다른, 너무나 이상한 상황에 심장이 마구 뛰었다.

 


[네가 여기 들어오지 않게될 무렵에 바로 바꿔버렸지.]

할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 말하며 벌벌 떠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 문에 손을 댔다.

끼긱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은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

 


할아버지에게 속이 안 좋다고 호소했지만,

[곧 익숙해질게다.] 라는 한마디만 듣고 무시되었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회중전등을 켜,

문 안쪽 천장을 비추었다.

 


[보거라, 마사.]

할아버지는 내 팔을 잡고, 억지로 안을 들여다보게 했다.

거기에는 또 부자연스럽게 옻칠된 네모난 문이 있었다.

 


우리는 그 문을 통해 천장과 지붕 사이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할아버지를 밀어 올리고, 그 다음에는 내가 그 공간에 들어섰다.

 


그 순간, 아까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오한과 구토가 나를 습격했다.

분위기가 무겁다는 정도로 설명할 수준이 아니었다.

 


위험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생명의 위험을 느낀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등골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입안은 바싹바싹 말라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공간이 멀쩡한 것일리 없다.

이런 데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대단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 할아버지.. 나 더는 안되겠어. 나 좀 살려줘..]

그 나이를 먹은 주제에, 나는 할아버지에게 울며 매달렸다.

 


[아니된다. 너는 똑바로 봐두거라.]

할아버지는 낮에 봤던 것 이상으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나를 이런 곳에 끌고 오다니,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마음 속으로는 할아버지를 살인자라고 울부짖고 있었으니..

 


어쨌든 나는 안정을 되찾으려,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숨이 콱 막힌다.

 


당연하지만 먼지투성이였던 것이다.

깊게 들이마셔봐야 숨이 막힐 뿐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지은지 90년은 된 집의 대들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리저리 회중전등을 휘둘러 보는데, 어느 구석에 번쩍 빛나는 게 있었다.

 


뭔가 싶어 다시 그 쪽으로 빛을 비춰보니, 거기 있었다.

신단 비슷하지만, 무언가 조금 모습이 다른 게.

잘은 모르겠지만 사당 같은 게 이상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거기 있었다.

 


[할아버지, 저게 뭐야?]

입술은 벌벌 떨리고 혀는 마구 꼬이는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물었다.

 


[저게 소리가 나는 원인이다.]

할아버지도 사당에 빛을 비췄다.

그리고 갑자기 할아버지는 놀란 얼굴을 하더니, 내게서 전등을 뺏고 두개 다 불을 껐다.

 


눈앞에는 어둠 뿐이다.

할아버지는 꽤 초조해하고 있는 듯 했다.

 


[할아버지?]

나는 눈앞에 닥친 어둠과, 당황해 하는 할아버지 모습에 반쯤 패닉에 빠져있었다.

 


[쉿, 조용히 하거라!]

할아버지는 작은 목소리로, 강하게 말했다.

 


[마사, 지금부터 출구로 간다. 그때까지 숨을 참거라.]

[엣, 숨을 참아?]

[됐으니까 서둘러라! 출구에 도착할때까지 저것에서 눈을 떼면 안된다!]

저것이라는 건 분명 사당을 말하는거겠지.

 


하지만 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숨을 참고 사당을 보며 출구로 가야하는거지?

 


물론 반쯤 패닉이었기에, 나는 그 말대로 했다.

그쯤되니 어두운 곳에 눈이 익숙해져, 사당의 윤곽은 눈에 들어올 정도가 되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참자, 곧 이변이 일어났다.

사당 문에서, 이상한 그림자 같은 게 스르륵 나왔다.

 


"그 것"을 본 내 움직임은 한순간 얼어붙었다.

더 이상 생각이라는 걸 할 수가 없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사람 형태를 하고 있었다.

 


어둠보다 더 어둡고 움직임은 둔하다.

좌우로 흔들리기도 하고, 갑자기 넘어지더니 거미처럼 기어오는 등,

차마 내가 말로 다 전하지 못할만큼 기분 나쁜 움직임이었다.

 


처음으로 본 "그 것"은, 공포보다는 흥미가 느껴지는 존재였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것은 틀림없다.

 


분명히 이 세상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에,

내 다리는 벌벌 떨리고 있었다.

 


"그 것"에서 눈을 떼어놓지 않고 있자,

할아버지는 내 옷자락을 잡고 출구까지 뒤로 물러나도록 이끌었다.

 


다행히 놈은 이렇게 가까이 있음에도 우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했다.

아마 숨을 참으라고 할아버지가 말한 건, 놈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겠지.

 


우리는 가능한 한 발소리를 내지 않으며, 가까스로 출구까지 나왔다.

출구에서 조용히 내려올 때까지, 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놈이 움직일 때마다,

천장과 지붕 사이 공간에서 기분 나쁜 발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나는 방으로 내려오자마자,

할아버지를 버려두고 거실까지 미친듯 달렸다.

 


불을 켜고 TV를 틀어, 방금 전까지 있었던 비상식적인 공간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곧 할아버지가 거실로 왔다.

 


[보았겠지? 굉장하지 않냐, 저건.]

할아버지는 내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며 만족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제정신이 아닐 지경이었다.

저게 만약 알아차렸다면 분명 나는 죽었을 터였다.

틀림없다.

 


[도대체 저건 뭐야! 할아버지는 뭘 하고 싶은건데!]

흥분한 나는, 소리치며 할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와하하하하, 저건 선조에게 원한을 품은 영혼이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너무 위험한 거라 우리 선조가 사당에 모시고, 저걸 천장과 지붕 사이에 넣은거다. 검은 문은 결계 같은게지.

 안전을 위해 근처 신사에 부탁해 만든게야. 이름을 말하면 안 되는 건, 그 이름을 들은 사람은 홀려버리기 때문이다.]

홀린다.. 상상을 초월하는 말에,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거기서 의문이 생겨났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름 알고 있는거잖아? 근데 어째서 멀쩡한데?]

[비밀이다.]

그 후 몇 번이고 이유를 물었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또 툇마루에 있었다.

 


어제 일은 혹시 꿈을 꾼 게 아닐까?

아마 그렇겠지?

우리 집에 그런게 있을리 없어..

 


그렇게 스스로를 속여넘기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또 내 맞은편에 앉았다.

 


[안녕, 할아버지.]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단 인사는 했다.

옛날 사람이라 인사를 안하면 경을 치시니..

 


[그래, 안녕이다.]

할아버지도 웃는 얼굴로 받아줬지만, 곧 나를 보고 양 무릎에 두 손을 얹었다.

 


[OOOOO.]

어? 할아버지가 지금 뭐라고 말한거지?

 


[할아버지?]

[OOOOO.]

나는 곧바로 그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틀림없이, "그 것"의 이름이다!

 


내가 없었던 일이라고 치부하려고 애썼던 어제 일이,

단번에 다시 떠올랐다

 


역시 꿈일리 없었다.

그 뿐 아니라 이 정신나간 할배는, 내게 "그 것"의 이름을 알려줘버렸다.

 


[오, 뭔지 알겠나? 안심해라. 여기 머물지 않으면 홀릴 일도 없어. 저 놈은 집 밖으로는 나가질 못하니까 말이다.]

할아버지는 태평하게 웃어제낄 뿐이었다.

 


그 후 나는 곧바로 도쿄에서 일자리를 찾아내, 집에서 도망쳤다.

덧붙이자면 할아버지는 그로부터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혹시 "그 것"에게 홀리지는 않을까 잔뜩 겁을 먹은 채 집으로 돌아가 장례식에 임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아마 할아버지가 나를 집에서 내쫓으려고 거짓말로 전해준 이름이었던 건 아닐까.

 


출처 :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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