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안에서 자는 게 취미라,
휴일 전날에는 적당히 차를 끌고 나가 돌아다니다 차 안에서 잠을 자곤 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이해하기 힘든 괴상한 짓이겠죠.
지나가던 경찰이 말을 걸거나,
폭주족들이 들여다보며 차를 두드릴 때도 있어 장소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난 여름, 그날도 나는 어디서 잠을 청할까 고민하며 이리저리 차를 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산속에 폐허가 된 전망대가 있다는 게 떠올랐습니다.
거기 주차장에서는 트럭 운전하는 형씨들이 한숨 붙이곤 하는 곳이거든요.
나는 거기로 차를 몰았습니다.
주차장에는 역시나 트럭이 2대 서 있었습니다.
가장자리에 서 있는 트럭과 약간 거리를 두고,
주차장 한가운데 가로등 밑에 차를 세웠습니다.
뒷좌석을 눕히고, 그 위에 누워 담요를 덮었습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니 곧 잠이 쏟아졌습니다.
잠시 후, 나는 갑작스레 눈을 떴습니다.
목이 말라 앞자리에 둔 가방에서 음료수를 꺼내려고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뒤에서 탁하고 작은 돌 같은게 날아와 부딪히는 소리가 났습니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지만, 딱히 아무 것도 없습니다.
벌레라도 부딪혔나 싶어, 나는 그대로 쥬스를 한 모금 마시고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4시 반쯤,
나는 오줌이 마려워 차에서 나왔습니다.
낡아빠진 전망대라 밖에 화장실 하나 없어,
나는 어쩔 수 없이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 노상방뇨를 했습니다.
그러고 있자니,
트럭 문이 꽝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침 일도 다 치뤘겠다, 저 양반도 잠이 깼나 싶어 차로 돌아가는데,
트럭에서 나온 동년배로 보이는 안경 쓴 형씨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어제 잠 못 잔거 아니쇼? 무서웠지?]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 [응? 뭐가요?] 라고 반문했습니다.
[어라? 못 알아차렸나?]
놀란 기색이었습니다.
그 형씨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트럭에서 DVD를 보고 있는데,
내가 차를 몰고 와 주차장 한가운데 멈추더라는 것입니다.
트럭말고 그냥 승용차가 오는 경우는 드물어,
별일이다 싶으면서도 계속 DVD를 봤더랍니다.
DVD를 다 보고, 잠이나 자려 뒷좌석으로 가려다 문득 내 차를 봤는데
차 본넷 앞에 왠 여자가 서 있었다고 합니다.
"여자친구인가? 뭐하는거지?" 하고 생각하며 자세히 보니,
본네트에 양손을 대고 마치 차를 막아서는 것 같은 모습으로 서있더랍니다.
뭔가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형씨는 이상한 걸 봤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뒷좌석으로 들어가 자려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묘하게 신경 쓰여서 다시 내 차를 봤더니,
이번에는 운전석 창문 옆으로 여자가 옮겨가 있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막아서듯 창문에 양손을 딱 붙인채..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며 잠깐 눈을 돌렸다 다시 보니,
이번에는 여자가 조수석 쪽에 있더랍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형씨는 소름이 끼쳐 눈만 빼꼼 내밀고 살폈다고 합니다.
그러자 여자가 갑자기 형씨 쪽으로 시선을 돌려,
몸을 굽혀 숨었다고 합니다.
한동안 숨어 있다가,
이제 괜찮을까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여자는 사라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허둥지둥 뒷좌석에 올라타 잠을 청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못 봤어요? 진짜 장난 아니던데.]
[그러고 보면 이상한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긴 한데..]
[그치? 차 한번 살펴보는 게 좋을거 같은데. 어디 손자국 남아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나는 형씨랑 같이 차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손자국은 전혀 없었지만,
본네트 앞쪽이 살짝 패여있었습니다.
이게 뭔가 하고 멍하니 보고 있는데,
차 뒤쪽을 살피던 형씨가 [뒤쪽에도 기스 났는데!] 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뒤로 가보니, 브랜드 엠블럼 위에
작은 돌이 부딪힌 것처럼 흠집이 좍좍 나 있었습니다.
둘이서 [이게 뭐람.. 무섭네, 무서워.]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또 다른 트럭에서 아저씨가 내리더니 우리들한테 다가와 한마디 했습니다.
[여자 이야기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아저씨도 내 차를 보고 일반 승용차라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더랍니다.
그런데 졸다 잠깐 잠이 깨서 내 차를 봤더니,
여자가 창문 옆에 서서 차 안을 들여다보고 있더라는 겁니다.
어디서 온건가 싶어 주차장으로 돌아봤지만,
딱히 다른 차도 없었기에 내 차를 타고 온 여자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저씨는 딱히 기분 나쁘다는 생각 없이, 무심코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자가 고개를 확 돌리더니, 저벅저벅 가장자리 쪽 트럭으로 걸어가기 시작하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트럭 앞에 서서, 계속 앞 유리를 올려다보더라는 겁니다..
[아니아니아니아니..]
그 이야기를 듣자 이번에는 안경 쓴 형씨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나는 [어, 그럼 그 사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던가요?] 하고 물었지만,
[기분 나빠서 그냥 잤어.] 라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그 둘은 이 주차장에서 눈을 붙일 때가 잦지만 처음 봤다고 하고,
나도 토박이지만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던 터였습니다.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어보니,
두 사람 모두 "머리카락이 길고, 비쩍 마른 치마 입은 여자" 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트럭 운전수는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나는 전혀 짚히는 바가 없습니다.
무슨 일이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 사건 이후 나는 차에서 자는 취미를 버렸습니다.
출처 :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