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살던 곳은 지은지 30년은 더 된 낡아빠진 2층짜리 목조 아파트였다.
역 근처에 있었지만 워낙에 오래된 곳이라 그런지
주변 집들에 비해 집세가 훨씬 쌌다.
다른 곳보다 싼 집을 찾아 모인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당연히 주민들도 그리 유복한 사람은 없었다.
하루종일 기침만 하고 있는 노인에,
사시사철 뭔 소리인지도 모를 말로 싸움만 일삼는 외국인 부부까지..
당시 나는 프리터라, 일은 하고 있었지만 수입은 적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방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이었다.
버린 적이 없는데, 쓰레기통이 비워져 있었다.
쓰레기를 훔쳐갈 사람이 있을리 없으니 그저 내가 착각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뒤, 또 쓰레기통이 비워져 있었다.
나는 확신했다.
누군가가 쓰레기를 훔쳐가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왜 쓰레기를..
결국 나는 고작 쓰레기 따위야 마음대로 하라고 생각하며,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계속 일어났다.
이번에는 몇 장 없는 팬티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이었다.
코인 세탁소에 들러 세탁물을 가지고 왔는데,
어제 입었던 놈이 사라져 있었다.
그 팬티는 며칠 뒤 방 안에서 발견됐다.
왠지 이상했다.
부엌에 쌓아둔 설거지거리가 다 정리되어 있기도 했다.
물론 내가 한 적은 없는데.
어느날, 집에 돌아오니 옷장 안에서 소리가 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옷장을 열었지만, 당연히 안에는 아무도 없다.
며칠 더 지나, 감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조퇴하고 평소보다 좀 빨리 집에 왔다.
현관을 열자, 그 녀석이 있었다.
다 쓴 나무젓가락을 빨며, 그 여자는 나를 보았다.
나는 큰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도망쳤다.
주변 사람한테 전화를 빌려 경찰을 불렀고, 곧 경찰차가 왔다.
사정을 말하자 경찰은 집을 조사하러 들어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자,
여자의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곧 경찰한테 잡혀나왔다.
다음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 찾아갔다.
범인은 옆집에 혼자 사는 여자였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낡은 아파트라 벽장 천장은 쉽게 떼어낼 수 있어,
거길 통해 내 방으로 드나들고 있었던 듯 했다.
처음에는 그저 옆집에 누가 사나하는 호기심에서였지만,
그것이 점차 연애 감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내가 그 여자를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긴 머리카락에 잔뜩 야윈 모습은 꽤 기분 나빴다.
경찰관은 내게 말했다.
저 여자는 정신병이 있으니 곧 석방될 거라고
왠만하면 이사를 하는게 안전할 거라고..
나는 짐을 정리해 친구네 집에 잠시 얹혀살다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 일이 있고 1년 정도 지나 서서히 잊어가고 있을 무렵,
문득 나는 집 정리를 하다 앨범을 펼쳐보게 되었다.
내 사진 옆에는 그 여자의 사진이 풀로 붙어 있었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