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h] 할아버지의 수첩

금산스님 작성일 17.08.11 21: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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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할아버지 성묘를 갔다 돌아왔다.

성묘를 마친 후, 할머니댁에서 식사를 했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식사 후 할아버지가 읽던 책들을 뒤적였다.

초판본 같은 다자이 오사무 전집을 찾아냈지.

 


그런데 그 전집을 꺼낸 뒤편에 작은 미닫이 문이 달려 있었다.

거길 열어보니 끈으로 묶인 만화책 정도 크기의 샛노란 수첩이 있었다.

할머니에게 그걸 보이며, [이게 뭐에요?] 라고 여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20여년 가량 심령현상이나 초자연적 현상을 연구했던 연구 노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할아버지도 딱히 숨길 내용은 아니라고 하셨다며,

내가 가져가도 된다고 허락해주셨다.

 


안에는 이런저런 장소나, 사념이 어떻느니 하는 잘 알 수 없는 이야기투성이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시처럼 느껴지는 짧은 글이 있었다.

맨 위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입에 담거나 내용을 이해하면, 영적인 현상 내지는 감정의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문장."

흥미가 동해 여기 옮겨 써 본다.

 


[첫번째]

눈을 뽑고 입을 엮어 하늘을 본다

바다는 불이 되어 하늘을 굽네

그의 갈 길을 보여주지 않으매

안내하기 이른 길은 길다

 


앞은 있어도 뒤는 없으니

벼랑을 등지고 그저 걸을 뿐

끝은 무한하고 끝이 없나니

어둠에 빛에 하늘은 없고

모두 무너지리라

 


[두번째]

가리킵시다 떨어집시다

가리킵시다 떨어집시다

가리킵시다 떨어집시다

죽읍시다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이 수첩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쓰고 있었다고 한다.

 


쓸데없는 걱정일지도 모르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과 이 문장에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할아버지는 폐렴으로 돌아가셨지만

왠지 모르게 오싹하다.

 


출처: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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