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랑 할머니 내외가 운영하는
동네 헌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만화책이나 단행본보다는
고서나 끈으로 묶인 오래된 책 같은 걸 주로 다루는 곳이었다.
고서를 모으는 사람이나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꽤 자주 경험하는 것 같은데,
종종 사온 책을 가게에 와서 세보면 줄어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치매라도 온 거 아니냐고 묻고 싶겠지만,
잘못 세는게 아니라 세는 사람에 따라 권 수가 바뀌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가 사왔을 때 10권이었는데,
할머니가 세면 6권이고, 내가 세면 8권이라는 것이다.
눈 앞에서 할머니가 세는 걸 볼 때는 분명 6권인데,
정작 내가 세면 어째서인지 8권이 있다.
사람의 눈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고서가 섞여 들어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는 책은,
팔기 시작해도 어느샌가 사라져버린다.
옥션 같은데 올려서 팔아도 막상 택배로 보내면 도중에 배송 사고가 나서
손님한테 가기 전에 어디로 사라져 버리곤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딱히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고가의 책이라도 그런 책은 버리는 게 암묵적인 룰로 자리잡았다.
가장 심한 건 아무도 보지 못하는 책이다.
그런 책은 사올 때도, 가게에 진열할 때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손님이 그 책을 들고 계산대에 왔을 때,
가격표가 없는 걸 보고서야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경우 [원하신다면 팔겠지만 책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라고
꼭 사전에 주의를 주었다.
기분 나쁘다며 안 사는 손님도 있지만,
대부분은 재미있어하며 책을 가지고 돌아간다.
그리고는 사흘쯤 있다가 새파랗게 질려서 찾아오는 것이다.
가장 놀랐던 일은 어느 초등학생 손님이 왔을 때였다.
여자아이였는데, 혼자 찾아와 이런저런 책을 살피다가 계산대로 왔다.
무거운 듯, 무언가를 엄청 껴안은 듯한 모양새였지만..
나는 물론이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도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결국 할아버지가 [책을 좋아하면 그거 다 가지고 가도 된단다.] 라고 말했다.
소녀는 기뻐하며 여전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껴안고 돌아갔다.
그리고 재미를 붙였는지 내가 아르바이트를 그만 둘 때까지 이따금씩 찾아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책을 공짜로 받아가곤 했다.
어떤 책인지 물어둘걸 그랬다고,
지금도 종종 후회하곤 한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