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젊은이들에게는 희망으로 가득 찬 계절,
새 생명의 숨결을 느끼는 계절이리라.
하지만 나 정도 나이가 되면 무언가 번거롭고 초조한,
그래서 묘하게 조용한 잠을 원하게 되는 계절이다.
한밤 중, 고양이가 우는 것을 들으며 천장을 올려다 보는 때..
혹은 이렇게 툇마루에 앉아 벚꽃이 지는 것을 보고 있을 때..
쓸데없이 옛 일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러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 편의 공기에 맞춰 숨을 쉬고 있다.
위험하다고 느껴 정신을 차리면, 몹시 지쳐있음을 느끼곤 한다.
우리 외갓집은 도쿄 변두리에서 생선가게를 했었다.
타이쇼 무렵에는 황궁에도 생선을 팔았었다니, 규모가 보통이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가게 구조는 그리 크지 않았다.
1층에는 가게가 있고,
2층에는 가족들이 사는 집이고, 그 위에 3층이 있었다.
3층이라고는 해도 이불을 넣는 창고와
다다미 4장 반 정도 크기의 작은 방이 하나 있을 뿐이다.
토시코는 전쟁 전부터 그 방에서 먹고 자며,
더부살이로 일하던 가정부였다.
외갓집에는 가족도 많아 딱히 일손이 모자랄 일은 없었지만,
지인이 아무쪼록 부탁한다며 말해와 토시코를 떠맡았다고 한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을까..
다들 토시코 내지는 토시짱이라고 낮춰부르곤 했지만,
나이는 이미 그 무렵에 마흔을 넘었던 것 같다.
장애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조금 머리가 안 좋고 말도 부자연스러웠다.
매년 정월, 친척이 모이면 토시코는 뭐가 그리 기쁜지,
언제나 싱글벙글 웃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요리와 술병을 나르며 바삐 일했다.
다만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어른들에 싫증난 우리 아이들과 놀았던 기억은 없다.
내가 여덟 살인가 아홉 살이던 때, 그 토시코가 죽었다.
사흘인가 앓아눕더니, 반시간 동안 끙끙대며 괴로워한 끝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장례식에는 어머니만 갔다.
유골은 고향에 가져 갔는지, 아니면 고향에서 누가 가지러 왔는지
어찌되었든 외갓집 무덤에는 이름이 없다.
그리고 일 년 정도 지났을 무렵,
아마 봄 춘분과 추분 사이가 아니었나 싶다.
어머니에게 이끌려 외갓집에 갔으니, 아마 그럴 것이다.
나는 어머니 곁에 앉아, 숙모들에게 떠받들어지며 초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오줌이 마려워져,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은 복도 끝을 오른쪽으로 돌면 있었다.
메이지 초기에 지어진 꽤 낡은 집이었기에 복도는 가늘고 어두웠다.
마루는 황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볼일을 마치고 또 복도 끄트머리까지 오니,
정면에 좁고 어두운 계단이 있었다.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었다.
계단이 갑작스레 튀어나왔을 뿐더러, 전등도 있는지 없는지,
올려다 본 위쪽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 계단 중간보다 조금 위에 토시코가 서 있었다.
사람들이 몰렸을 때 보여주던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무섭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제껏 3층에 발을 디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무언가 올라가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가 예전부터 감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동했기에,
나는 계단에 한쪽 발을 먼저 올렸다.
[아니된다! 가면 안돼!]
그때, 등 뒤에서 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거기에는 증조외할머니가 서 계셨다.
무척 장수하신 분이라, 99살 되시던 해까지 사셨다.
그때는 아마 80살 정도 되셨을 것이다.
남편을 일찍 잃고도 여자 혼자 가게를 크게 키운,
다부지면서도 대하기 어려운 분이셨다.
그 증외조모가 나를 향해
[어서 이리로 오련.] 하면서 손짓하고 계셨다.
다시 계단을 올려보자, 과연 증조외할머니는 무서웠는지,
토시코는 등을 돌리고 천천히 계단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윽고 그 모습은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증조외할머니는 내 옆, 계단 아래까지 오시더니,
잔뜩 찌푸린 얼굴로 위를 바라보셨다.
[그렇게 잘해줬건만.. 못된 장난 따위는 하지 말아라.]
나중에 숙모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외갓집에서 살던 이종사촌 셋도 다 같은 체험을 했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토시코는 어른이 있으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 3층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집은 어느새인가 재건축되어,
콘크리트로 된 2세대 주택으로 다시 세워졌다.
지금은 증조외할머니도, 숙모들도 다 저세상으로 건너가셨고.
봄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조금 애매해지곤 한다.
그런 일을 생각하다보면,
또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게되는 요즘 세상이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