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딱 한번 겪은 심령 관련 사건이다.
내가 사는 곳은 엄청 시골이다.
몇 년 전에 편의점은 생겼지만,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인데다 여름에는 머위 따고 가을에는 감을 말리는 그런 옛 동네다.
자동차 한 대 지나갈 너비의 길 옆은 죄다 논이다.
그렇게 논과 밭 한가운데, 우리 집이 있다.
우리 집은 상당히 뜰이 넓어서 툇마루에는 햇빛이 기분 좋게 내려온다.
초봄에는 정말 따뜻하고 기분이 좋아 할머니와 함께 앉아 같이 다과를 즐기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뜰에 자주 고양이가 찾아오게 되었다.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종류의 고양이가 말이다.
점박이도 있었고, 세 색깔 털이 섞인 고양이도 있었다.
할머니는 볕을 쬘 때면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던져주곤 하셨다.
그런 풍경을,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가족들도 고양이를 쫓아내거나, 목걸이를 채워 집고양이로 삼으려 들지 않았다.
그저 "호랭이"라던가, "점박이"라던가 이름을 붙여, 바라볼 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는 그대로 지역 식품회사에 취직했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인데다, 직장 환경도 좋았다.
우리 회사에서는 가다랑어포 가루가 매일 같이 잔뜩 나온다.
어느날 내가 그 가루를 가지고 돌아오니, 할머니는 무척 기뻐하셨다.
[고양이는 가다랑어포를 정말 좋아하니, 분명 기뻐할게다.]
다음날부터 작은 도자기 그릇에 할머니가 가루를 올려두면 고양이들이 핥아먹게 되었다.
어느덧 할머니는 여든을 넘으셨다.
옛날에는 자전거를 타고 쇼핑도 가시고,
노인정에서 회의가 열리면 꼭 나가셨는데, 어느새인가 집에만 머무르게 되셨다.
매일 얼굴을 마주보기에 무심코 넘어갔지만,
자세히 보면 뺨은 홀쭉하고 손에는 혈관이 선명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매일같이 고양이 먹이 주는 것만은 잊지 않으셨다.
할머니가 지쳐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하시는 날에는, 나랑 어머니가 먹이를 주었다.
재작년 여름, 내가 직장에서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나왔을 때였다.
할머니가 줄곧 "쿠로"라 부르던 고양이가 쓰레기 버리는 곳에 있었다.
땅에서 뒹굴거리는 걸 정말 좋아하고,
자주 먹이를 먹으러 오는 칠칠치 못한 인상의 고양이었다.
언제나 귀찮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아, 쓰레기 냄새를 맡고 왔구나." 싶어 조금 웃었다.
언제나 집에서 만나던 쿠로를 직장에서 만나니, 왠지 신선하고 조금 기뻤다.
쿠로는 나를 바라보더니 아장아장 다가왔다.
그리고는 쓰레기 봉투를 손에 든 내 앞에서, 등을 쫙 펴고 앉았다.
평소라면 발 밑에 바짝 다가와 먹이를 달라고 조르던 쿠로가,
마치 경례라도 하는 듯 앞발과 귀를 세우고 나를 바라본다.
그런 쿠로의 모습은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다.
울지도 않고, 침도 흘리지 않고, 그저 내 눈을 바라보았다.
쿠로가 전하려던 건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니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는 찾아오고야 마는 것..
나는 어른이 되고 처음으로 울었다.
고무장갑을 벗고 눈시울을 눌러도, 눈물은 자꾸 흘러나왔다.
오열 같은 소리와 딸꾹질이 멈추질 않았다.
흐릿한 시야에 쿠로가 번져서 보였다.
아직도 내게 무언가를 전하려는 듯.
[알았어, 알았으니까.]
나는 울먹이며 쿠로에게 말했다.
가슴이 무언가로 꽉 조여진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장식물 같이 움직이지 않는 쿠로의 얼굴은 눈물로 번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왜일까, 몹시 무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것이 견딜 수 없이 슬펐다.
쓰레기 버리는 곳에서 울고 있는 나를 상사가 찾아냈다.
그런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나는 그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상사를 따라 돌아가는 사이,
뒤를 돌아보니 쿠로는 이미 거기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라는 전화가 온 것은,
사무실에 들어온 직후였다.
지금도 우리 집에는 따뜻한 날이면 고양이들이 찾아온다.
햇빛도 쬐고, 먹이를 달라고 어머니를 보채고..
나는 아직 본 적이 없지만,
종종 쿠로가 등을 쫙 펴고 툇마루를 바라본다고 한다.
그런 때면 어머니는 방석과 차, 과자를 툇마루에 올려두신다고 한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