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전쟁 도중 체험한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남쪽에서 미군과 전투를 했다는데,
운 나쁘게도 열세인 곳에 배치되어 서서히 후퇴하는 나날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본대 위치가 발각되어 공습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필사적으로 후방을 향해 도망치는 사이, 동료들은 하나 둘 죽어나갔다.
할아버지도 죽음을 각오하고 이동했지만,
하루만 더 가면 안전해질 지점에서 폭탄이 떨어졌단다.
정신을 차리니 아군 진영인지,
병사들이 잔뜩 있었다고 한다.
강에서 가까운 공터 같은 곳이었는데,
많은 병사들이 뒹굴며 놀고 있어 전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분위기였다.
할아버지는 근처에 있던 위생병에게 자기네 부대는 괜찮은가 물어봤다.
[강가 근처에 있을걸?]
강가에 가자 대장은 보이지 않았지만, 퇴각 도중 헤어졌던 동료들이 있었다.
제법 친한 녀석들이 보이기에 할아버지는 기뻤지만,
1/3 가량만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슬퍼졌다.
개중 절친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며 놀고 있는데,
강 저편에서 낯익은 동료가 큰소리로 할아버지를 부르더란다.
아무래도 같은 부대의 A인 듯했다.
할아버지는 A가 강 저편에 있다는 걸 동료들에게 알렸다.
처음에는 다들 멍하니 강 너머만 바라보더란다.
할아버지 눈에는 확실히 A가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보이질 않는 듯했다.
개중 누군가가 [아, 그런가?]라고 말하더니,
다들 할아버지를 떠밀어서 [너는 저 녀석한테 헤엄쳐서 가봐!]라고 말하더란다.
할아버지는 당황하는 사이 동료들은 할아버지를 강에 내던졌다.
할아버지는 부상자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A도 살아남았구나 싶어 기쁜 마음으로 통증을 참으며 헤엄쳐갔다.
건너편 강가에서 부르는 A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사이,
갑자기 엄청난 통증이 덮쳐왔다.
악어에게 물리기라도 했나 싶은 순간,
할아버지는 자신이 침대 위에 누워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까까지 있던 곳과는 다른 기지 안이었다.
할아버지는 통증을 참으며 위생병에게 어디인지 물었다.
할아버지가 후퇴하려던 곳보다 더 후방의 기지였다.
[고생 엄청 했구만. 업고 와준 동료한테 고마워하라고.]
할아버지는 더 질문을 하려 했지만, 일단 잠이나 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날, 할아버지가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데 A가 찾아왔다.
A는 씩 웃으며 [너 어디 숨어서 혼자 뭐 먹기라도 했냐? 무거워 죽는 줄 알았네.]라고 말을 건넸다.
할아버지는 A가 업어다 줬다는 걸 알아차리고,
[이것도 마른 거야.]라며 웃어넘겼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음에 걸리는 것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하고 있자,
A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부대에서는 7명 살았다.]
할아버지는 그 강둑에서 만난 사람들 이름을 말해봤지만,
전부 살아남지 못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전쟁에 나서면 죽음으로 꽃을 피우라는 소리를 해댔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우끼리는 살아남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게 다 같은 마음이었지.]
할아버지는 전쟁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8년 전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강 너머 저편에서 옛 전우들과 잘 지내고 있을까..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