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여 전, 분수 광장 근처에서 이상한 여자가 서성이곤 했다.
출근길에 자주 봤었다.
서른 남짓 되어 보이는데,
오래된 것 같은 빨간 드레스 같은 걸 입고 있었다.
몸은 바싹 말랐고, 안색은 어두운 데다 눈도 공허했다.
머리는 등 가운데까지 내려와, 기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옷 색깔이 워낙 튀는 데다,
독특한 분위기가 감돌아서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
하지만 뭔가 무서운, 정신 나간 것 같은 느낌이라
무심코 바라보기는 해도 눈이 마주치지는 않도록 조심했다.
여자는 늘 광장 안을 맴돌았다.
지하 출구를 나오면 거기 몇 군데 술집이 있기에,
거기서 일하는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어느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광장 안 드러그 스토어 앞에서 화장품 세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쇼핑할 때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라,
그때도 아마 한 시간 정도는 거기 머물렀던 것 같다.
그날 밤도 여자는 광장을 떠돌고 있었지만,
맨날 보던 모습이라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게에서 나온 순간,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광장 한가운데 있는 분수를 사이에 두고, 여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고 있음에도,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은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여자는 확실히 보였다.
눈이 마주친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뭔가 본능적으로 두려워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와, 위험해..
하지만 뭐가 위험하다는 것인가?
스스로도 사고회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가게 안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가위에 걸린 것 마냥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도움을 구하려 해도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항상 비틀거리며 걷던 여자가 곧바로 빠르게 다가온다.
분명히 평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머리는 산발에, 드레스 자락을 잡은 채 다가오는데,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너무나 무서워서 나는 압도되고 말았다.
눈 전체가 검은자위였거든..
무서워서 더는 안되겠다 싶은 순간,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내 팔을 꽉 잡았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그제야 몸이 움직였다.
웬 남자였다.
내가 입을 열려고 하자,
남자는 [조용히 해.]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남자는 점점 손아귀 힘을 더하며 무서운 얼굴로 앞을 노려봤다.
시선을 돌리자, 여자가 바로 앞에 서서 남자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너무나 끔찍한 그 얼굴에, 나는 벌벌 떨었다.
갑자기 여자는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죽인다..]라고 중얼거리며 남자 옆을 부딪히듯 지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그 후 나를 붙잡고 역 안까지 간 뒤, 그제야 손을 놓았다.
역 안은 사람들이 가득해, 방금 있었던 일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멍하니 있자, 남자는 [괜찮아?]라고 말을 걸었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나는 패닉에 빠져있었다.
상대의 이름을 묻거나, 감사를 전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남자는 나를 개찰구까지 바래주었다.
헤어지면서 [이제 거기로는 다니지 마.]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 때문에라도 다녀야 하는데요.]
[목숨이 아까우면 그만둬.]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있자,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운이 좋았어. 네 수호령이 나를 불러서 너를 지켜준 거야.]
나는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우연이라고. 알았어? 네가 살아남은 건, 수호령의 부름을 알아차릴 사람이 마침 근처에 있었던 덕분이라고.
저놈에게 죽고 싶지 않으면 다시 거기로 다니지 마.]
영혼 따위 본 적도 없기에,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 눈에 여자는 사람으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남자는 몇 번이고 [혼자 다니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하지만 다음날 낮, 나는 또 그 광장을 지나갔다.
낮이다 보니 공포감이 희미해지기도 했고, 실제로 지나가는 사이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귀갓길에 날이 어두워지자 남자가 말했던 것들이 떠올라 무서워졌다.
그래도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기에, 나는 한번 가보기로 했다.
그 여자가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짓이었다.
광장으로 이어진 계단을 반쯤 내려가자,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나에게 등을 보이고 계단에 앉아있었다.
이제껏 여자가 계단에 앉아있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달아나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여자는 슥 일어섰다.
마치 마리오네트의 줄이 끊긴 것 같은,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그 순간, 나를 바라볼 것 같다는 예감에,
황급히 계단을 뛰어올라 뒤도 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 후 나는 분수 광장은 무조건 피해 다녔고, 두 달 뒤 일도 그만뒀다.
아직도 그 여자는 거기에 있을까?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