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무렵 이야기다.
당시 나는 아버지와 둘이서 지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여섯시,
아침 식사를 차려놓고는 작업복 차림으로 분주하게 출근하곤 하셨다.
나는 조금 있다 일어나, 밥을 먹고 학교로 향하곤 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머리가 아팠다.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하루쯤은 괜찮겠거니 싶어 학교를 쉬기로 했다.
그렇게 집에서 혼자 탱자 탱자 놀면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차피 밤늦게서야 돌아오실테니 들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낮 무렵에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분명 혼이 날 거라는 생각에 열심히 변명을 하고 있는데,
왠지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산책을 나가자.]
혼나지 않으면 뭐든 괜찮다 싶어,
생각도 않고 나는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근처 강둑에서 아버지와 손을 잡고 걸었다.
그동안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딸과 손을 잡고 웃으며 산책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즐거웠기에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동안 걷고 있던 도중,
갑자기 잡고 있는 손이 아플 정도로 힘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아파.]하고 말해봤지만,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 손을 잡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계속 손을 잡아당기며, 둑 아래로 내려갔다.
평소에는 그 정도로 울 내가 아니지만,
그때는 뼈가 부러지도록 꽉 잡힌 손이 아픈 데다
아버지의 미소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기에,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깜짝 놀란 듯, 손을 뗐다.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어서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모르는 아주머니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들자 아버지는 없었다.
아버지가 두고 갔나 싶어 더욱 슬퍼져 나는 계속 울었다.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근처 파출소에 데려다주셨다.
미아로 처리되어, 당시 살고 있던 아파트 집 주인에게 연락이 갔다.
우리 집에는 그 무렵까지도 전화가 없었거든..
잠시 뒤, 집주인한테 연락을 받은 아버지가 얼굴이 새하얘져서 달려왔다.
아버지를 보자 그제야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아버지는 늘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하곤 했다.
당연히 퇴근하고 집에 돌아올 때도 작업복을 입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날 나와 강둑을 산책했던 아버지는,
그제까지 본 적 없는 폴로셔츠와 정장바지 차림이었다.
아버지는 일하던 도중 집주인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기묘하게도 집주인은 내가 수수께끼의 아버지와 외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단다.
그래서 경찰에게 전화가 왔을 때는,
오히려 집주인이 더 기겁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경찰에서는 집주인이 사람을 잘못 봤고,
내가 모르는 사람을 멍청하게 따라갔다는 걸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파출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버지에게 된통 혼이 났다.
평소대로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몇 시간 전, 함께 있었던 것도 분명히 아버지였을 터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던 걸까?
집주인도, 아버지도 고인이 된 지금,
내 가슴 속에만 남아있는 수수께끼 같은 추억이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