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의 일입니다.
그날은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고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아프면 헛것을 본다고 하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갑자기 옆에서 어떤 여자아이가 말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직감적으로 그 여자아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도 묘하게 무섭지는 않더라고요.
어쩌면 너무 아파서 무서워할 겨를도 없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너무 피곤하고 아파서 그 여자아이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그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목소리는 처음과 같고, 어조도 나긋나긋했는데 말이죠.
뭐라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 [.. 맞지? 응?]이라며 저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맞다고 하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니야..]라고 대답했죠.
그 순간 머리가 심하게 어지러워지면서
머릿속이 마구 뒤엉키는 듯한 기분으로 정신이 아찔해졌습니다.
저는 이 아이에게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에 오빠 방으로 뛰어갔습니다.
그 방에서는 엄마가 컴퓨터를 하고 계셨습니다.
오빠방 침대에 누워 다시 잠을 자려고 했지만,
그 여자아이는 끈질기게 저를 쫓아와서 저에게 맞냐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계속 아니라고, 싫다고 대답했지만
그럴수록 저의 어지럼증은 더 심해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빠방을 나와 안방 침대에 누웠지만,
여자아이는 거기까지 따라왔습니다.
이대로는 끝이 없을 것 같고, 몸이 너무 아팠기에
저는 [맞아.. 네 말이 맞아..]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아이와 어지러움이 순식간에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몸살 기운도 싹 사라져서
정말 상쾌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정신을 차려보니 제 옆에는 엄마가 계셨습니다.
엄마가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제가 갑자기 들어와서 침대에 눕더니
[아니야.. 아니야..]만 반복하다 방을 뛰쳐나가서 놀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여자아이의 정체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제가 받아주지 않아서 화를 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