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던 시절,
언제부턴가 같이 등교하던
상급생 언니가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같이 등교하게 됐는지
기억나지 않고 이름도 모릅니다.
등교 도중 길에서 만나
학교에 도착하기까지
5, 6분 정도만 같이 걸었습니다.
대화 내용은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 같은
흔해빠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안까지 같이 들어갔던 기억은 없습니다.
늘 교문 근처에서 헤어졌었으니까..
언니는 헤어질 때면,
늘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나에 대한 건, 반 친구들한테 말하면 안 돼.]
협박 같은 느낌은 아니고,
평소처럼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요.
아직 저학년이었던 나는,
"그렇구나, 말하면 안 되는 거야." 하고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았습니다.
반 친구들은 물론이고, 부모님이나 동생한테도
그 언니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반 여자아이들과 이야기하다가
우연히 그 언니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계기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침마다 항상 학교 오는 길에, 언니랑 만나서 같이 와.]
그 정도만 말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날 하교 시간에
혼자 집에 가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어깨를 잡았습니다.
누군가 싶어 돌아보니,
언제나 등교 시간에만 만났던 언니가
평소처럼 싱글싱글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약속을 어긴 것 따위는 완전히 잊고 있던 나는
"아, 매일 보는 언니다."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등교할 때 늘 언니와 만나던 곳에 이르렀습니다.
언니는 나직이 말했습니다.
[오늘, 나에 대해 학교에서 말했지?]
아차 싶어서 언니를 봤습니다.
평소 늘 짓고 있던 미소와는 달랐습니다.
웃고는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죄송해요.]라고 사과하자,
언니는 그 얼굴 그대로 [괜찮아.]라고만 대답했습니다.
그날 이후, 언니와 내가 같이 등교하는 일은
두 번 다시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언니를 등교할 때와 마지막 하교할 때만 만났었습니다.
뭐,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많아서 그랬던 걸 수도 있겠지만요.
관계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4학년이던 시절,
학교 창립 110주년이라고 기념 앨범이 나왔었습니다.
흑백사진이지만 한 장에 한 반씩,
전 학년 모든 반이 들어 있습니다.
문득 언니가 떠올라 혹시나 싶어
상급생 반 사진들을 찾아봤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단체 사진 중 딱 하나,
얼굴이 새까맣게 칠해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진 아래에는 나란히 서 있는 순서대로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그 사람의 이름만 역시 까맣게 칠해져 있었습니다.
내가 한 기억은 없는데..
무섭다기보다는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