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까지만 해도,
나보다도 멍청한 녀석이 있었다.
그런데 가을쯤 되니까 갑자기 각성을 하는 게 아닌가.
기분 나쁠 정도로 머리가 좋아진 것이다.
같은 농구부였던 친구인데 공부뿐 아니라 운동에서도,
어느 날을 기점으로 뭔가 뒤바뀐 것 마냥
엄청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뭐, 3학년이라 이미 은퇴한 시점이라
농구 쪽에서는 별 의미가 없었지만.
본인 스스로도 꺼림칙해 하며,
[우주인한테 개조라도 당한 건가?]라고
자기 입으로 말할 정도였다.
녀석은 뭔가 생각한 게 있었는지,
가을 지나갈 무렵에야 나랑 같이 진학할 예정이던
다른 현 사립대학에서 지역 국립대학으로 지망을 바꿨다.
들어가기 만만치 않은 곳이었지만 한방에 합격했다.
그것도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그 녀석은 웃으면서,
[뭔가 무서운데.]라고 말했었다.
나는 예정대로 다른 현의 대학교에 진학했기에,
최근 1년간은 그 녀석과 잘 만나질 못했었다.
그리고 지난주,
그 녀석의 부고가 전해왔다.
1년 전까지는 아픈 데라곤
하나도 없던 녀석이었는데..
사인은 심부전이었다.
원인불명이라고 한다.
소파인지 의자인지에 앉아,
웅크리고 있었다고 한다.
가족이 아침밥 먹으라고 깨우려고 했는데,
일어나질 않았단다.
괴로워하는 표정 같은 것도 없었고,
그저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가고서도,
그 녀석의 각성 비스름한 건 대단했던 모양이다.
이런저런 상도 잔뜩 받았다고 한다.
그 상금과 아르바이트하면서 모아뒀던 돈 같은 걸
전부 남기고 가는 바람에
고작 스무 살이었던 주제에 유산 상속까지 이루어졌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야구배트와 앰프를 받았다.
그런 걸 전부 기록해 둔 유서 같은 게 있었으니까..
친구가 생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어쩐지 기분 나빴다.
혹시 자살은 아닌지 의심받기도 했지만,
아무리 조사해봐도 자연사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고 한다.
"내가 모아둔 돈은 여동생의 학비로 써주길"이라니.
보통 갓 대학에 들어간 스무 살짜리가 써둘 일일까?
자연사로 세상을 떠났는데?
어쩐지 무척 두렵다.
그 녀석, 왜 죽어버린 걸까..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