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소녀 영자 살인사건
2001년 2월 12일 강원 삼척 사무곡 오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입니다.
사건 자체는 일반적인 살인사건이지만 당시 워낙 유명했던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이라 한국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합니다.
1982년도 생인 이영자양(당시 19세, 이하 영자)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화전과 약초 캐기만으로 살아가던 산골소녀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영자와 그의 아버지는 한국의 시골과 오지를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사진작가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졌고
2000년 7월 KBS 2TV 인간극장 '그 산 속에 영자가 산다(5부작)'를 통해 이후 엄청난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학교조차 나오지 못한 그녀를 위해 수많은 후원이 이루어졌으며 영자는 한 후원자의 도움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초등과정 검정고시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유명세를 통해 이동통신회사인 LG텔레콤의 광고까지 찍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TV프로그램 인간극장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으며
이후 인간극장의 인기는 최고점에 이르게되면서 훈훈하게 이 이야기가 끝났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건 발생>
영자가 서울에 상경하여 검정고시 준비에 열심이던 2001년 2월 12일 영자의 아버지가 산골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시신은 왼쪽 쇄골에 깊은 상처가 나있었으며 콧등에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처음 경찰은 초동수사에서 영자의 아버지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결론 내렸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나서야 부랴부랴 타살로 결론내리고 수사를 시작하였으며
결국 2001년 3월 13일 50대의 남자 양재동을 용의자로 구속하였습니다.
구속된 용의자 양씨는 영자와 그의 아버지가 살던 집이 산 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범행이 용이하다는 점을 파악한 후 CF 출연료와 후원금을 노리고
2001년 2월 9일 영자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진술하였으며 정작 아버지에겐 현금 10여만원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당시 인간극장 출연으로 인해 관심이 영자씨에세 집중되었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이 사건에 전 국민이 경악했는데
2001년 2월 27일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영자의 후원회장이 소녀의 출연료와 인세를 횡령하여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영자는 서울로 올라온 후 후견인에게 돈을 모두 뺏기며 정신적, 육체적인 학대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 후원회장이란 작자의 아내란 사람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남편 잘했는데 왜 가두냐"라는 개소리를 말합니다.
그
이후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야유와 욕설만 들었다고 합니다.
이 두 사건 이후 영자는 "세상이 너무 무서워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속세를 떠나
인근 모 산사로 귀의하여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이것도 영자가 비구니가 되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주변 친지 몇명에게만 말하고 그냥 홀연히 사라진 것인데 각종 뉴스와 언론사들이 영자가 사라졌다며
그녀의 행방을 사방으로 취재해 다니다가 절에 들어갔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훗날 절에 처음 찾아온 영자를 돌봐주었던 혜설스님은 "절에 처음 찾아왔을 때 한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고
피까지 토했으며 대인기피증이 심했다고 합니다.
자구책으로 여신도들만 있는 OO사로 몰래 옮겼습니다.
이 때 언론에서는 '영자가 실종됐다'면서 끊임 없는 관심을 표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불행한 사건은 계속해서 터졌다.
2001년 7월 영자야 산으로 돌아가자 라는 추모 시집이 발간되었는데
책을 낸 신풍출판사에서는 전부터 영자의 아버지와 알고 지냈고 같이 시집을 낼 준비를 하다가 사고가 났으며,
갑작스레 세상을 뜬 고인과 최근 불교에 귀의한 영자양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책을 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집이 영자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영자의 동의 없이 만들어낸 창작물이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개싸움이 벌어졌다가
당사자인 영자가 이미 모든 것을 버리고 불교에 귀의한 상황이라
어영부영 책이 출간되긴 했지만 소문이 퍼져서인지 판매는 저조했으며 신풍출판사는 이후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사건 이후>
이후 한동안 한국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엄청난 비판이 가해집니다.
산골에서 오순도순 잘 살고 있는 두 부녀를 도시로 억지로 끌어내어
결국 비극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건 이 부녀를 오직 돈으로 여긴 광고주와 인간극장 제작진들의 잘못이라는 주장이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사건에 대한 충격과 이 비판을 견디지 못한 당시 인간극장 PD가
결국 해당 프로그램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인터넷상에서는 네티즌들이 이 사건이 알려지고 나서 국개론과
황금만능주의에 찌든 한국인의 처참한 표상에 대해 비하하며 한편으론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속세를 떠난 영자는 법명을 얻고 고향 강원도의 한 암자에서 수행하는 삶을 택했다고 합니다.
출가 이후에도 네티즌들의 궁금증을 빌린 일부 언론들이 영자를 찾으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고,
특히 2007년 초에 한 여학생이 공중파에 출연한 후 유명세를 얻으면서
악플과 괴소문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제2의 영자 사건이라며 기자들이 카메라 들고 암자에 출몰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반장 스님이 "'**스님은 만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지금 너무나 밝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파합니다. **스님의 출가 전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는
스님들도 몇 안되니 그냥 돌아가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내보냈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기자들은 다른 암자에 **스님이 온다는 정보를 듣곤 거기로 개돌했다가
그곳 암자 주지 노스님에게 "'사람을 두 번 죽이려 드느냐!"'는 분노 어린 호통과 같이 내쫓겨버렸는데
다른 스님이 " 왜 그렇게 가만히 계시는 스님(영자)을 못 건드려 안달이냐면서 계속 이러면
우리도 가만히 안 있을 테니 얼씬거리지 말라 "
는 항의를 하자 물러났다고 합니다.
영자의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자신을 죽여달라며 항소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항소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검찰 측의 항소만 받아들여졌습니다.
피고인이 스스로 형량을 높이기 위한 항소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4.jpg
2012년 한 월간지에서 영자의 친척을 찾아갔는데 그들도 비구니가 된 영자에 대하여 소식은 모른다고 합니다.
다만 이 기사에선 영자가 살던 집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해마다 세금으로 1만 5천원 정도가 나오며
그냥 이 친척들이 부담하고 있고 집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영자에게 집의 소유권이 이전되었지만 과연 돌아올 지 모르겠다며 친척들도 우리도 괴로우니
제발 좀 더 이상 그만 찾아와달라고 말을 마쳤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결말입니다.
<유사한 사례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영화 집으로에 출연한 김을분 할머니의 경우도 있었는데
할머니가 유명세를 타면서 심지어는 할머니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루머 때문에 정체불명의 수상한 사람들이
집 근처에 어슬렁거리게 되자 결국 할머니의 자식들이 서울특별시로 모셔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행동거지가 전형적인 강, 절도 전과자들의 모습입니다.
경찰차가 오면 잽싸게 사라지지만 범행대상을 물색할 때는 담배를 피우며 느긋하게 살폈다고 합니다.
뭔가 수상해보여도 일반인은 그 정도 가지고 당신들 뭐냐고 따져 묻기도 뭐하기 때문.
워낭소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비슷한 일을 고 합니다.
이에 여기 나온 할아버지는 워낭소리 감독이 싫다고 하소연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모티브가 된 엄기봉씨도 비슷한 케이스입니다.
산골소녀 영자처럼 인간극장에서 처음 소개되어 인기인이 된 사람이지만
PD수첩에 의해 2002년부터 기봉이 아저씨가 출연한 각종 영화, 방송
그리고 각종 후원행사에서 받은 후원금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기봉씨 모르게 유용된 것이 밝혀져 큰 사회적 파장이 있었습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제작한 PD가 이 사건을 거론하며 할머니의 수익을 밝히지 않겠다고 말한 사연 역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https://woman.donga.com/List/3/all/12/128844/1
https://blog.naver.com/ghshffnfffn1/221953425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