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지난 1999년 일어난 사건으로
고교생이 저지른 최악의 경관살해 사건이며 또한 최악의 인질극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건자체가 십대가 저지른 사건치고는 너무나 잔인했고 또한 결과 또한 굉장히 참혹한것 같습니다.
사건의시작
사건의 주범인 임군은 경북 구미시 선산읍에 거주했고 소위 말하는 불량학생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열아홉 살. 구미의 한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폭력 사건으로 대구지검 김천지청에 입건된 전력이 있었습니다.
2학년 때에도 비슷한 사건으로 김천지청에서 선도유예 처분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그의 어긋난 행동은 가정에서도 통제가 안 됐다고 하는데요
가출은 밥 먹듯이 했고 집에 있을 때는 아버지의 승용차를 몰고 나가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1998년 11월쯤,
임 군은 검정고시 준비생인 임 아무개 양을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됩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열여덟 살. 임 양에게 첫눈에 반한 임 군은
“사촌 오빠처럼 알고 지내자”라며 제의했지만 그녀는 거부를 합니다.
임 군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약 한 달 동안 임 양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합니다. 하지만 임양은 계속해서 거절하고 다른 남자친구를 만나 사귀기 시작하죠. 이에 한껏 자존심이 상한 임 군은 더욱 임 양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둘은 임씨의 여자친구인 피해자 임양이 피고인의 가출 종용과 동거에 응하지 않자 급기야 임양을 납치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끔찍한 사건의 시작입니다.
1999년 2월 23일 오후, 임 군은 아버지 소유의 쏘나타를 끌고 나와 친구 권군과 합류합니다.
이들은 임양의 집으로 찾아가 가족을 흉기로 위협하고 임 양을 납치할 계획을 세우고 차를 몰아 실제로 임양의 집에 찾아갑니다.
권씨를 운전석에 대기시켜 놓은 임씨는 준비한 회칼을 들고 임양의 집 문을 열고 그대로 집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대로 칼을 들이대며 집안에 있던 임양의 머리채를 잡아서 끌고 나옵니다.
이들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한것은 아마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것에 대한 충격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새로운 남자친구였던 최씨가 정신을 차리고 임씨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이에 임씨는 칼을 휘두르며 대항하고 권씨는 차 밖으로 나와 벽돌을 집어던지며 최씨를 저지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 둘은 임양을 납치하는데 성공하여 곧장 차를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이후 임양을 납치한 임씨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 임씨는 임양에게 최씨를 만난 일을 추궁하다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회칼로 임양의 허벅지를 내리 찍었다고 합니다.
결국 임씨가 당시 가졌던 감정은 다른게 아니라 증오와 복수 분노와 같은 감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둘은 그대로 차를 내달려 진해시의 모텔 그리고 부산의 음식점을 떠돌아 다닙니다.
임씨가 이 끔찍한 인간들로부터 감금되어있던 시간이 무려 40시간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큰 공포와 고통을 겪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습니다
임 군은 임 양을 끌고 부산 등지로 돌아다니다가 경북 상주로 잠입합니다.
임씨가 저지른 범행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 인간이야 말로 자기밖에 모르는 지독한 이기주의자 라는것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임 양 부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임 군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납치 이틀째인 2월 25일 오후 2시 30분쯤 경찰은 상주시 복룡동의 한 식당 앞에서 휴대전화를 걸고 있던 임 군의 공범인 권 군을 검거하게 됩니다.
경찰은 권 군을 추궁하며 임 군의 소재를 파악하고 상주 경찰서는 구미 경찰서의 지원 요청을 받아 비상 연락망을 가동하게 됩니다.
이때 상주 경찰서 동문 파출소 소속 김인배 경장과 김성균 순경이 현장으로 출동하게 됩니다.
당시 김 경장의 나이 서른넷 김순경의 나이는 서른이었습니다.
이들은 오후 5시 30분쯤 상주시 복룡동 팔레스 여관 뒤편 정미소 창고 앞에서 수배차량을 발견하고 발견하고 임 군을 체포하려 합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도착하자 임씨는 임양의 목에 면도칼을 갖다 대고 인질극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기회를 보아 순식간에 달려든 두 경찰들에 의해 이 인질극은 그렇게 쉽게 막을 내리는했으나
안타깝게도 이것은 더 끔찍한 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임 군은 두 경찰관이 수갑을 채우려 하자 격렬하게 저항했고 경찰관들과 임 군이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김 경장의 38구경 권총이 바닥에 떨어지게 됩니다.
몸싸움 중 팔을 뻗어 김경장의 총을 꺼낸 임씨는 김순경이 들어오는 순간 그대로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깁니다.
이 총알은 그대로 김순경의 오른쪽 눈에 명중하여 김순경은 그대로 쓰러집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놀란 김경장은 임씨를 제압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임씨는 김경장의 좌측 팔과 둔부, 가슴에 명중시켜 결국 김경장마저 바닥에 그대로 쓰러지게 됩니다.
그 길로 임씨는 총을 든채 도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아주 불행한 사건이 또 다시 벌어집니다.
임씨가 격투중 승용차 열쇠를 떨어뜨린것을 깨닫고 도주하다 말고 다시 정미소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사실 좌측 가슴과 팔등에 총상을 입은 김경장은 중상을 입긴 하였으나 사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김경장은 이 악마의 마수에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임씨는 바닥에 쓰러진 상황에서 무전기를 들고 지원요청을 하던 김경장을 발견하자 그대로 권총으로 김경장의 머리를 내리치고 발로 얼굴을 마구 후려차기 시작합니다.
결국 김경장은 완전히 의식을 잃게되고 끝내 이 둘 모두 병원에서 몇시간 간격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 길로 임씨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 경찰들의 체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임양을 다시 인질로 잡게 됩니다.
참 너무나 뼈아픈 실책이며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상황에서 임양은 얼마나 큰 절망과 공포를 느꼈을까요.
붙잡힐 줄 알았던 범인은 멀쩡하게 밖으로 나왔고 경찰둘은 그 범인에게 총을 맞고 쓰러졌으니 말이죠.
사실 임씨는 정미소 사무실 앞에 서있던 임양을 발견하자마자 경찰들에게 한 짓과 마찬가지로 들고있던 총을 발사 했는데요.
그대로 임양을 살해하려고 했다는군요.
이 인간에겐 사람목숨이 마치 파리목숨처럼 가볍게만 느껴졌나 봅니다.
고교생의 범행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네요.
아무튼 임씨가 아주 근거리에서 총을 쏜것은 아니었던듯 다행히 이 총알이 빗나가서 임양을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끔찍한 고통까지 끝난것은 아니었죠.
이 악마같은 임씨는 끝까지 임양을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끔찍한 인질극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던 것입니다.
임 군은 정미소 안으로 임 양을 끌고 간 뒤 문을 걸어 잠그고 인질극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경찰 60여 명이 출동해 정미소를 에워싸고 자수를 권유합니다. 하지만 임 군은 더욱 격렬히 저항했고 경찰은 약 30분 후 강제진압에 나서게 됩니다.
급기야는 인질극 현장에는 총을 든 무장 기동대까지 출동하게 됩니다.
수십명의 무장한 기동대가 포위를 한 상황.
여기서 임씨가 빠져나갈 방법이란건 존재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오기 때문인지 대체 무엇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임씨는 계속해서 이 불필요한 막장 인질극을 이어갑니다.
점점 상황은 임씨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죠.
그러나 임씨는 절대 순순히 자수를 하거나 피해자를 놔주지 않았습니다.
도주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 서자 책상에 있던 사무용 칼로 임양의 손목을 긋기 시작했던 것이죠.
같이 죽자면서 말이죠.
그야말로 무서운 집착이고 끔찍한 광기가 아닐수 없습니다.
대체 이 쓰레기는 어쩌다 이런 괴물이 된 걸까요.
그러나 손목을 긋는 정도로 사람이 쉽게 죽을 수는 없는 법이죠.
임양의 손목을 그어 살해하려고 했으나 큰 효과가 없다는 판단이 서자
이 악마같은 놈은 급기야 책상위 가위를 들고 임양의 머리를 찍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시 고통과 공포로 정신이 나간 임양의 머리를 권총으로 마구 내리치기까지 했다고 햅니다.
상황이 다급하다고 판단한 경찰은 임 군에게 실탄 두 발을 발사해 어깨와 목에 명중시킵니다. 임 군은 경찰과 대치하며 인질극을 벌인지 약 한 시간 만인 오후 6시 50분쯤 마침내 검거됩니다.
한 고교생의 일그러진 욕망과 집착이 부른 사건 치고는 그 결과가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졸지에 두 경관의 부인과 어린 자녀들이 아버지와 남편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피해자 임양은 후두부를 권총에 얻어맞은 충격으로 신경이 심하게 손상돼 뇌진탕 증세를 보였고 사물 식별이 거의 불가능한 실명 위기 상태에까지 놓이게 됩니다.
당시 경찰은 고교생인 임씨의 얼굴을 가리기는 커녕 부상을 입고 피흘리는 그대로 차에 대충 던져 넣은 뒤
병원으로 향하는데요,
지금같으면 각종 인권단체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경찰의 인권유린을 성토했을 테지만 이때는 이게 당연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시기도 요즘 같은 시기가 아니었고 같은 경찰이 살해당했으니.
이것이 가능했던것은 이 때까지만 해도 국가인권위가 출범전단계로 범죄자에 대한 인권 따위를 보호해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범인이 미성년이라 실명까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만 지금처럼 마스크를 준비해서 씌워주는 친절함 따윈 찾아 볼 수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당시 병원에서도 경찰은 임씨의 얼굴을 가려주진 않았습니다.
그냥 매체가 알아서 모자이크를 했던 것이죠.
병원에서 당시 범인 임씨가 밝힌 범행동기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화가 날 정도였습니다
범행 동기가 고작 집에서 쫓겨난 것이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이런 범죄형 인간들은 별다른 이유없이 자기 기분내키는 대로 사람을 찌르고 죽이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해할수 없는 면을 가진 격리되어야 할 인간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임씨는 두건의 살인과 한건의 살인미수등으로 당시 청소년에게 내릴수 있는 가장 무거운 형벌인 무기징역을 받고 수감됩니다.
이후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던 김인배 경장은 상주 성모병원에서 6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혈압과 맥박 상태가 악화되며 26일 오전 4시 2분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이때 사망한 김인배 경장과 김성균 순경 이 두 순직 경찰관은 1계급 특진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됐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 범죄사에 고교생이 저지른 전무후무한 최악의 경찰관 살인극으로 남게 됩니다.
순직하신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관련기사 : https://imnews.imbc.com/replay/1999/nwdesk/article/1777626_30729.html
출처 : https://blog.naver.com/ghshffnfffn1/221960330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