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양조 여고생 살인 사건

미랄라군1 작성일 20.05.28 14: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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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건은 1978년 4월8일에 전라북도 군산시의 백화양조의 계열사 사장의 아들인 강 모군(당시 18세)이 본인과 연인관계인던 김 모양(당시 18세)을 백화양조 실험실에서 살해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당한 시간이 흐른 사건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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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인 김모양은 사건 당시 나이 18세로 여고 3학년생이었다고 합니다.


군산 지역에서 알아주는 미모를 가졌던 그녀는 한 사람과 사귀게 되는데 그게 동갑내기였던 18세 강모군이었습니다. 이 둘은 당시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창이었던 사이었다고 합니다.



강모군은 당시 재벌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한 유력기업이었던 백화양조 계열사 사장의 아들로 소위 부잣집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양은 가정 형편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평범한 서민집안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런 관계이다보니 여자 측 집에서도 꽤 적극적으로 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건의 시작



피해자 김모양의 미모 때문에 당시 지역 학생들에게서 꽤나 많은 구애를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소위 군산지역 플레이보이들의 꾸준한 구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김모양이 성적으로 문란하다더라'는 소문이 났고 이 이야기가 남자친구였던 강모군의 귀에 들어가고 이게 둘 사이의 갈등의 시작이 됩니다.



강모군은 이 사실에 분개, 김모양을 추궁하기 위해 집 밖으로 불러내고, 회사원이 없는 시간을 틈타 회사내 실험실로 그녀를 데려갔다고 합니다.



실험실에서 강모군은 김모양을 강하게 추궁하기 시작했는데, 김모양 역시 매우 급한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스스로 옷을 벗으며 본인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강군이 끝까지 이를 믿지 않자 순간적으로 너무 흥분을 한 나머지 경련을 일으키며 실신했다고 합니다.



김양이 쓰러지자 강군은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얼마지나지 않아 공장 직원들이 출근을 하게 되며 공장 1층에선 몇몇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걸 알고 있었습니다.



다급히 김양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반응이 없자 자신의 질책으로 김양이 죽었다고 생각한 강군은 언제 범행장소에 직원들이 올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에 김양의 사망을 확인하지도 않은 체 이 사건 자체를 은폐하기 위해 아직 살아있어 시간이 경과하면 의식을 회복할 김양을 술이 담겨있는 술통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렇게 김양은 질식해 사망합니다. (아무리 기절했어도 차가운 술통에 들어가면 바로 깨지 않을까 싶은데요)



목을 조르는 방법으로 살해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재판 판례에는 스스로 흥분해서 기절했다고 남아있다고 합니다.




강군은 김양이 자살한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김양의 옷가지를 가지런히 정돈해놓고 도주했습니다.




시신 발견



술통에 들어가 있던 시체는 결국 발견됩니다. 백화소주는 사람시체가 들어있는 상태로 출하되어 한달동안 판매가 계속되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과연 사실일까 싶네요. 사실이라는 글은 인터넷에 많은데 정확한 확인이 어렵네요



공장이 돌아갈텐데 아무도 술통안에 사체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게 그냥 괴담 이지 않을까 싶네요



사건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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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수사 시작 후 이 사건의 용의자 20여명으로부터 동의를 얻고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실시합니다.



- 1978년 4월 8일 새벽 김양을 만난 사실이 있는가?



- 김양의 옷을 벗겨 술통에 빠뜨린 사실이 있는가?



-김양이 어떻게 2층 실험실에 들어갔는지 알고 있는가?



- 김양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는가?



이 4 질문에 대해 강군은 - 없습니다. 아닙니다. 모릅니다. 모릅니다.로 대답했지만 거짓말탐지기는 강군의 대답이 모두 거짓이라고 반응합니다.



이에 강군은 범행 일체를 자백하기에 이르렀고 거짓말탐지기의 검사와 P군의 자백을 토대로 추가로 사건의 증거들이 발견되면서 모든 사건의 실체가 들어나게 됩니다.




1978년 4월 26일자 결국 강 군이 살인 및 시체 유기 혐의로 구속되었다고 합니다.



재판



8월 26일에 전주지방 검찰청 군산지청의 이명재 검사가 강 군에게 단기 5년, 장기 10년의 징역을 구형했다고 합니다.



재판에서 제 1심인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합의부와 제 2심인 광주고등법원은 유죄를 선고하였고 1979년 5월 22일 대법원 형사 2부는 P군의 항소를 기각함으로써 사건은 끝나게 됩니다. 최종형량은 선고공판에서 살인죄와 주거침입죄가 적용되어 단기 2년 6개월, 장기 3년의 징역이 선고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3년을 안 살고 나왔을것 같습니다.



이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주간경향이라는 잡지사에서 심층보도를 했다고 합니다.



백화양조측에서 주간경향을 전량구매하여 소각처리를 하자 주간경향측에서는 또다시 대량재판발매하고 백화양조측에서는 또 전량구매하고 하다가 결국 모든이에게 속속들이 알려지게되어 백화양조는 쇠락의 길을 걸었고 합니다,



당시 인기작가였던 최인호,한수산 같은 이들이 재벌2세들의 못된행동을 질타하는 글들을 언론에 기고하고 그랬지만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없었을 듯 합니다.



이후 백화양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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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소주의 프랜차이즈 제도가 엄격해서 주로 군산지역 사람들만 이 소주를 많이 먹었다고 하는데요 소주 부문에서는 큰 타격을 받았지만 양주 사업 부문에서는 주가가 올라갔다고 합니다. 잘 팔리는 제품들이 있었다고 하네요



이후 1982년에 회사명 또한 베리나인으로 독립하였고 이후 두산그룹이 인수했다고 합니다.


해당 사건이 일어났던 공장은 사건 이후에는 롯데주류 BG의 공장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3이던 회장아들도 현재 2020년인데 건강하다면 살아 계실것 같은데 지금은 무얼하고 사는지 궁금하네요




관련기사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42600329207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4-26&officeId=00032&pageNo=7&printNo=10022&publishType=00020



출처 : https://blog.naver.com/ghshffnfffn1/22198114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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