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일본2ch에 올라왔던 이야기라고 하는데 구글 및 다른블로거분들 글을 참고해서 다시 정리해봤습니다.
[일본2ch 괴담] 폐촌에 홀로 있던 노파
지금으로부터 약 4~5년 전에 체험한 이야기인데 당시 저는 출장으로 1개월 정도를 G현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G현은 기후현이라고해도 시내가 아니라, 외곽에 있는 시골이었습니다.
시골이라고 해도 역 주변에는 노래방이나 카바레 클럽 같은 오락시설 같은 것들이 있어서 지루하진 않았고
업무는 기본적으로 출장이다 보니 잔업 하나 없이 정시 퇴근을 했습니다.
처음 왔을 땐 지인도 없었던 터라 퇴근후 바로 비즈니스 호텔행이었지만 점점 사람이 그리워져서 어떤 바에 들르게 되었는데 그 바는 마스터 혼자 가게를 맡고 있었고 카운터 자리 5석, 테이블 2석 정도의 작은 가게였습니다.
마스터는 사카구치 켄지(배우)에다 남성적인 느낌과 나이를 더한 풍채의 사람이었는데말솜씨도 좋아서, 지인 하나 없이 외지에 홀로 온 나는 언제부턴가 일이 끝나는 대로 매일 그 바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이나 연속으로 다니다 보니 단골손님들과도 면식을 트게 되어 별 볼일 없는 이야기로 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특히 사이가 좋아진 사람은 타카시 씨라고 불리는 40대 전반의 사람과 사짱이라 불리는 동양풍 미인 여자애였습니다.
타카시 씨와 사짱도 사이가 좋아서 마스터를 낀 네 명이서 항상 폐점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중 어느 날 일을 마친 저는 바를 향했는데지하로 이어지는 짧은 계단을 내려가 바의 두꺼운 나무 문을 여니, 항상 카운터석에 앉아있던 사짱이 테이블석에 앉아있었는데 친구들을 같이 데려온 모양인지 여자 셋이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장 안쪽 카운터석에 앉자마자, 마스터에게 맥주와 주인장 추천 파스타를 주문했고 조금 뒤 타카시 씨도 가게로 들어와 내 옆에 앉았고, 둘이서 해외 축구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짱이 말을 걸어왔다.
" 유우키 씨(나)는, 귀신같은 거 믿으세요? "
엉뚱한 질문에 저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런 계열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터라 믿는다고 대답했고 술이 거나하게 취한 타카시 씨까지 유령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스터까지 이야기에 끼어들어서 이야기의 주제는 무서운 이야기로 바뀌어버렸고 이런저런 체험담을 어느 정도 이야기 나누던 때, 이야기가 흘러감에 따라 담력 테스트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가장 의욕이 넘치던 마스터가 가게를 빨리 닫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고 그리고 나서 다 함께 마스터의 마감을 도와 0시 전에 가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쯤에서 사짱의 친구 2사람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먼저 한 사람은 준짱.
마른 체형에 키도 크다. 긴 흑발이 인상적인 사람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사야짱.
작은 체구에 보브컷이 잘 어울리는 여성스러운 친구였습니다.
이렇게 여성 3인과 나와 타카시 씨, 마스터 이렇게 여섯 사람이서 역 앞 번화가를 지나 마스터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을 향했는데 당시 술에 취해있지 않았던 사람이 마스터뿐이어서, 운전은 당연히 마스터가 하기로 했습니다.
마스터의 차는 독일의 유명한 왜건이었는데. 바 라는 게 의외로 돈이 되는 장사인가보다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운전석에는 마스터 조수석에는 준짱이 앉았고 두 번째 줄은 타카시 씨와 사야짱,
그리고 저는 사짱과 뒷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목적지는 통칭 "가와사키무라"라고 불리는 폐촌이었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시대에 걸친 시기(1868~1989) 즈음에 폐촌이 된 마을이라는 것 같았고, 지금까지도 당시의 민가 같은 것들이 꽤 남아있다고 하는데 그 남아있는 건물이라고 해봐야 낡은 건물들뿐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지방 사람이 아니어서 가와사키무라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었지만, 의외였던 것은 이 지방 사람인 다른 다섯 사람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정도의 수준이었다는 점이었고, 실제로 가 봤다는 사람은 없었는데 그 지방에서도 그렇게 유명한 장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슬아슬하게 제일 나이가 많은 마스터가 가와사키무라까지 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자동차를 타고 산 방향으로 1시간 정도 걸려 달려야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거기다 도중부터는 차로 지나갈 수 없는 길이어서 거기서부터는 도보로 갈 수밖에 없다고 들었고 저는 걸어야 한다는 말에 의욕이 살짝 떨어졌지만, 나머지 다섯 사람은 그렇지도 않은 분위기인 데다 기분 좋게 콧노래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를 뒤로하고 교외를 빠져나가니 양쪽으로 펼쳐진 풍경은 산 뿐이었는데 마침 산과 산 사이를 뚫고 나가듯이 나 있는 도로를 달렸고 다시 도로를 달려, 표지로 생각되는 찌그러진 드라이브 인에서 우회전을 했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정말 산길이 시작되었는데, 어떻게 포장은 되어있었지만 아스팔트 곳곳이 들려진 상태로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길이었는데 이어서 차로 지나갈 만한 포장조차 되어있지 않은 자갈길로 바뀌었습니다.
자갈길을 지나니 부자연스러운 광장이 나타났는데 광장을 지나고부터는 검정, 노란색 로프가 걸려있었고 로프에는 간판이 걸려있었습니다.
산사태 주의
○△□시청
여기서부터는 정보대로 도보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았는데 로프를 넘어간 여섯 사람은 자갈길을 신중히 나아갔고 달빛도 나무들에 가려져서 시야가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무릎 위까지 자란 풀 때문에 걷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충분히 심령스팟으로는 합격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저 분위기만 그랬을 뿐, 그 당시에는 아직 이상한 느낌은 없었고 풀을 헤치며 점점 나아가니 또다시 작은 광장에 나왔습니다. 그 광장은 버려진 가전제품이나 타이어의 잔해가 산처럼 쌓여있었는데 아마 불법투기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광장을 지나니 다시 좁은 짐승 다니는 길이 나타났는데길을 잘못 든 게 아니냐고 여성진들이 말했지만 마스터의 말에 따르면 제대로 가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짐승 다니는 길을 따라 15분 정도 나아갔을 즈음 순간 앞장서서 걷고 있던 마스터가 걸음을 멈추었고 그것에 영향을 받은 듯 전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마스터가 바라보는 곳에 커다란 비석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나란히 서있다고는 했지만 비석과 비석 사이에는 차 두 대가 스쳐 지나갈 정도의 간격이 있었는데 마침 비석과 비석 사이가 문처럼 보였습니다.
도다이 사(東大寺)의 금강역사(인왕)상을 예로 들면 상상하기 쉬우실까요?
우측 비석은 전체적으로 사각형이었고, 크기는 묘지에 쓰일 정도의 물건이었고 세월을 탔는지 돌에 이끼가 두껍게 끼어있었습니다.
뭔가 문자가 새겨져 있는 것 같았지만 일부가 지워져서 읽을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을 이름 같은 게 새겨져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좌측의 비석은 전체적으로 둥근 형태를 띤 돌로, 굉장히 컸습니다.
이쪽도 문자가 새겨져 있었지만 사각 비석과 마찬가지로 읽기가 어려는데'慰(위)' 와 '碑(비)' 라는 문자만 간신히 읽을 수 있었다.
비석과 비석 사이를 지나 우리들은 드디어 마을로 들어갈수 있었는데 지형부터 보면 단순한 산골마을이었고 멀찍이 몇 갠가 건물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일단 저희들은 건물을 향해 걸었습니다.
마을 안도 잡초나 쓰러진 나무들로 걷기가 힘들었는데건물에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곳이 폐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뜻 봐도 폐허는 20채 정도가 있었고 전부 목조 단층집이었는데, 시대극에나 나올법한 나가야(長屋)를 상상하면 알기 쉬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비교적 멀쩡한 건물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아마도 현관 미닫이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떼어내 안에 침입했습니다.
현관은 봉당(흙바닥)이었고, 거기서 한 칸 높은 곳에 다다미가 깔려있었는데 단 다다미도 너덜너덜하게 썩은 상태여서 마루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었고 저희들은 서로 넘어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민가 내를 탐색했습니다.
특별히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메이지 시대에 폐촌 되었다는 것은 정말이었던 모양으로, 전기제품 잔해는커녕 조명시설이 없는 것부터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 시대에는 램프나 양초로 불을 밝혔나보다,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탐색하던 것을 끝내고 우리는 그 민가에서 나왔는데그곳에서부터 되도록 들어가기 편해 보이는 민가를 3,4채 정도 둘러보았습니다.
예전에 담력 테스트를 위해 방문했던 사람의 흔적(주스캔 등)이 있었지만 최근10년간은 아무도 방문한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얼추 돌아보는 것을 끝내고 우리는 잠깐 쉬기로 했는데생각한 것보다 무섭지 않다느니 뭐니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담배를 태우고 있는데 민가 뒤쪽 언덕 방향에서 오열인지 동물 울음소리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소리가 들려오자 이 소리를 들었는지 다들 일제히 언덕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우오오오오오오
다시금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번에는 외친다기보다는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 같았습니다.
다들 경계하기 시작하며 그때부터 온 신경을 집중시켜 세 번째로 들려올 소리를 기다렸지만, 결국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 방금 그거 뭐였을까? "
제가 모두에게 묻자 그 말에 대답을 해온 것은 마스터였는데
" 아마 코요테 같은 게 아닐까? "
" 코요테는 일본에 없잖아? "
사짱이 지적했습니다.
" 그건 그렇군. "
마스터가 부끄러운 듯 수줍은 미소를 보였고 모두에게 웃음의 기운이 돌았습니다.
" 있잖아. 아까 소리가 들려온 쪽에 가 보지 않을래? "
사야짱이 제안했는데 다들 그 소리를 동물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이 시점에서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민가의 뒷마당을 지나 조금 높은 언덕을 올라가자아래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언덕을 지나니 그곳에는 휑한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초원 가운데에 작은 오두막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는데
" 누군가 있는 걸까? "
" 가까이 가서 확인해볼까? "
여섯 사람은 공포심보다 호기심이 컸기 때문에, 오두막집에 가보기로 했고 조심조심 작은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봤는데 그곳에는 이상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오두막집의 크기는 5평 정도였는데 방 모퉁이에는 양초와 소금 더미,그리고 개 · 돼지 · 소 · 닭의 머리가 놓여있었습니다. 게다가 방 중앙에는 제단으로 생각되는 선반이 있었고, 그 위에 술이나 비쭈기나무, 쌀 등이 즐비해있었고그리고 방 한쪽 벽은 먹으로 갈겨쓴 듯한 문자가 빽빽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가장 놀란 것은 제단 앞에 백발의 노파가 기도를 드리고 있던 광경이었는데 뭔가 외우고 있었지만 그게 일본어인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주문을 외는 리듬은 묘하게 기분이 좋았는데, 마치 술에 취했을 때의 감각과 비슷해보였습니다.
저는 주변의 모두를 돌아보았는데 모두들 미소를 지은 채로 기분 좋은 듯이 주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노파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며 삼베 자루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인간' 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아주 얄팍한. 분명 인간의 가죽을 벗긴 것이라고 생각되었는데굉장히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준짱과 사야짱이 비명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노파가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고 말았습니다.
" 본것이냐? "
저에게는 그렇게 들렸는데 노파는 다음 순간, 네발로 기어서 마치 개처럼 저희 쪽으로 뛰어왔고 저희들은 쏜살같이 오두막집에서 벗어나 언덕을 내려갔습니다.
주변 사람을 신경 쓸 여유 같은 건 없었고 그저 외치는 소리나 달리는 소리로 모두가 함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무너진 마을을 뒤로하고 비석이 있는 광장까지 단숨에 달려왔는데
" 허억..허억..헉.. "
숨을 고르고 모두의 안부를 확인하는데 그럭저럭 전원 도망치는데 성공한 모양이었습니다.
멀리서 아직도 울음소리가 들려왔는데 아마 이 소리는 그 노파의 목소리일것으로 생각했는데 분명 동물의 영에 씐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말없이 마스터의 차까지 돌아갔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모두들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바 앞이었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후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다음날부터 저는 바를 다니지 않게 되었고
그런 채로 1개월간의 출장도 끝이 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반년 정도가 지나고 차차 그 노파를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때때로 꿈에 나타나기까지 했었는데 ….
그러던 어느 날, 제 휴대전화가 울렸는데
사짱의 번호였습니다.
" 여보세요? "
전 머뭇거리며 전화를 받았는데
" 유우키 씨, 오랜만. "
사짱은 , 당연한 거겠지만 반년 전과 변함없는 목소리였습니다.
" 괜찮으면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
딱히 할 일도 없어서 돌아오는 일요일에 다시 기후까지 가기로 약속했고 일요일, 사짱은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몇분 전에 패밀리 레스토랑에 도착했습니다.
" 오랜만이야 "
" 응, 오랜만. "
두서없는 인사를 주고받는데
" 오늘 왜 유우키씨를 불렀냐면 …… "
사짱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는데
" 사실 그 일 뒤로 타카시 씨랑 마스터와 연락이 되지 않아서 …… "
아무래도 그 사건 이후로 타카시 씨, 마스터와 소식불통이 된 모양이었습니다. 그 일 이후에 마스터는 바도 폐점한 상태였고 소문에 의하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타카시 씨에 이르러서는 소식조차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짱은 이어서 말하기를
" 그래서 나, 그 마을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조사해봤어. "
라고 말하며 저 에게 한 권의 파일을 넘겨주었는데 파일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적혀있었습니다.
가와사키무라川崎村 (皮裂村 )
쇼와 2년 폐촌
에도시대 중기부터 메이지 초기에 걸쳐 가죽제품을 주 수입원으로 삼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마을 인구는 총원 약 100명 정도.
소위 피차별지구.
바깥 세계와의 교류는 거의 없었고 농경이나 수렵으로 자급자족 생활을 하고 있었다.
메이지 후기에는 마을 인구가 20명 정도로 줄었고 쇼와 2년, 마지막 마을 사람이 옆 마을로 이사한 후 폐촌.
여기까지 읽고 확하고 느낌이 왔습니다.
" 혹시 그 노파가 마지막 가와사키무라 마을 사람이었다는 소리야? "
사짱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 원래 그 마을은 가와사키무라 (皮裂村, 가죽 벗기는 마을) 라고 불리면서 엄청난 차별을 받아왔어. 그러던 차 바깥세상과 교류도 점점 없어져서 고립되어 간 거야. 그리고 그 마을은 수렵이나 가죽제품을 생업으로 두던 사람들의 마을이다 보니 짐승을 신으로써 모셨어. 그 왼쪽 비석은 죽인 가축들의 위령비였던 모양이야. "
사짱은 계속 이야기했는데
" 마을의 어떤 가계를 보면 요즘 말로 무당 같은 능력이 있던 일족이 있었다고 해. 그 일족은 짐승의 영혼을 내려받아 농작물의 풍작을 기원하거나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했다고 하더라구. 그리고 연 1회 짐승의 신에게 제물로써 인간의 가죽을 바치고 있었지. "
아무래도 우리들이 그 장소에서 본 것은 그 의식의 일부였던 모양이었고 이후 그 노파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고 있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며 저도 마스터나 타카시씨와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말을 했고 사짱과 식사후에 헤어졌습니다. 4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사짱과는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종종 식사나 술 한잔을 하기도 합니다만 마스터나 타가시씨의 소식은 여전히 알수가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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