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5시쯤,
역을 향해 오래된 마을을 걸어가고 있었다.
해가 떨어져 주변은 깊은 남빛에 물들고,
집들에서는 저마다 주황색 불빛이 새어 나온다.
너무 추워서 목을 잔뜩 움츠리고
등을 푹 숙인 채 걸었다.
문득 앞으로 보니,
50m 정도 떨어진 곳에 둥글고 노란빛이
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둥실 날고 있었다.
새해 벽두부터 공포 체험인가 싶어 잔뜩 긴장했는데,
묘하게도 따뜻한 빛처럼 보였다.
나는 조금 걷는 속도를 낮추고
그 뒤를 따라갔다.
둥근 빛은 2~3개로 늘어나더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나타나고는
또 반대편으로 둥실둥실 날아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내가 다가갈수록 빛은 어슴푸레해지더니,
10m 정도 근처까지 다가가자 빛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지금 그 빛은 뭐였을까.. 하면서,
나는 빛이 날고 있던 근처까지 걸어갔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길 왼편에 카메라를 든 30대 정도 되는 남자가 서 있었다.
깜짝 놀라 [우왓!] 하고 소리를 내자,
그 사람은 미안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길 반대편을 보니,
그 사람의 아내인 듯한 여자와
여자의 팔에 안긴 6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남자를 향해 V자를 그리며 포즈를 잡고 있었다.
벌써 어두운 이 시간에, 이 가족은 뭘 하고 있는 거람..
잠깐 지켜볼까 싶었지만,
놀라서 소리를 낸 게 부끄러워
그 가족을 뒤로하고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
뒤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A짱 이거 보렴? 집이야. 오랫동안 입원해 있느라 정말 고생했어.. 잘 다녀왔어.]
잘 돌아왔다는 말을 할 즈음에는,
아내의 목소리가 눈물에 젖어 떨리고 있었다.
곧이어 여자아이가 [아빠, 다녀왔어!] 하고
밝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목소리가 작은 사람인지,
뭐라고 말하는지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하지만 아내와 마찬가지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듣고 있는 나마저도 가슴이 떨려와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 빛은 행복의 빛이었으리라..
행복한 사람은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빛은 그런 따뜻함으로 가득 차 있던 것이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천천히 걸어 역으로 향했다.
출처 :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