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을 추억하며

IloveT 작성일 18.12.17 11: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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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

 

초등학교 그 땐 국민학교였지만... 4학년 때

같은 반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었다

그 때 당시 또래 여자애들과는 뭔가 달랐었다

외모에서 풍기던 살짝 성숙해보이는 외모와 

사춘기가 일찍 왔는지 다른 여자애들보다 키도 크고 가슴도 살짝 있었던거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녀는 또래 남자애들한테 완전 인기인이었다

 

처음엔 그런가보다했었다

이제 겨우 10살 11살 먹은 꼬맹이가 이성에 관심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었을까 싶다

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새로 자리 배정이 있었고 그 여자애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나는 당시 반장이었고 나름 공부도 운동도 잘하던 그런 학생이었다

주변에 항상 친구들이 많았고 친구들이랑 장난도 좋아하던 딱 그 나이 때의 장난꾸러기였다

그래서 그녀가 처음 옆자리에 앉았을 때

아무생각없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넌 집이 어디니? 혹시 동생이 있니? 등등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된 것은

당시 내 친동생도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녀에게도 2살 터울 남동생이 있고 그 동생이 내 친동생과 같은 반에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그녀와 좀 친해질 수 있었다

 

여기 아재들은 다 공감할 수도 있는 이야기겠지만

그 때는 남자가 여자애랑 친하게 지내면 놀림을 받던 시기였다

난 한편으로 그 놀림이 즐거웠다

농담으로 날 놀리던 친구들에게 부럽냐고 받아치기도 하면서 나름 그 친분관계를 즐겼던거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넉살이 좋았던 나는 여자애들에게도 남자애들에게도 그런 농담을 잘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동생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친구 중에 XX라는 애가 있는데 걔 누나가 형이랑 친구라면서 사탕을 주고 가더라. 형 그 누나 누군지 아냐?"

 

난 그 이야기를 듣고 괜히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나름 미모로 유명했던 여자애가 나하고 많이 가깝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학교에서도 그녀와 많이 가까워졌었다

생일날 몰래 선물을 주고 받기도 하고 

당시 사업을 하시던 우리 아버지께서 해외에 나갔다 오실 때마다 가져다 주시던 초콜릿이나 과자도 몰래몰래 갖다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그녀를 좋아했었던거 같다

뭐 좋은게 있으면 항상 챙겨다 줬고 엄마한테 용돈이라도 받은 날은 그녀에게 인심을 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어머니께서 일본인이었다

사실 난 그런거 신경도 안썼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이런 생각이었지 혼혈이니 다문화가정이니 이런건 관심도 없었으니까

다만 가끔 외가집을 가려고 해외로 간다는 것만 좀 신기해했었던거 같다

 

당시 뭐 때문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평소보다 30분 정도 늦게 학교에서 나섰는데 집에가는길에 운동장 구석에서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있는걸 봤다

그 때 당시 5학년인지 6학년인지 형들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쪽발이년이니 왜년이니 이러면서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쪽으로 뛰어갔다

뛰어가면서 머리속으로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저 형들이랑 싸우게 되면 어떡하지

난 혼자인데 저 형들한테 나중에 보복당하는거 아닌가

가서 손만 붙잡고 같이 도망갈 수 있을까 등등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당장 그녀를 구해줘야 겠다는 생각과 이런걸 보고도 도망가는건 남자가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더 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형들 앞에서 너무도 당당하게 말했다

"난 4학년 4반 반장이고 형들 괴롭히는 여자애는 우리반 여자애인데 왜 괴롭히고 있냐. 당장 그만하고 보내줘라"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 했던거 같다

그 때는 반장이라는 완장을 이렇게 써먹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 형들이랑 한참 실랑이를 벌였던거 같다

넌 뭐냐, 쪼끄만게 어디서 까부냐(나도 키는 좀 컸는데...ㅋㅋㅋ), 맞을라고 대드냐 등등

그러다 그 형들한테 몇 대 맞았던거 같다

몇 대 맞으면서 반격도 해보려고 했는데... 그 땐 뭐 반격한다고 데미지를 줄 수있는 수준까진 아니었는지

나중에 일방적으로 쳐 맞고 있었다

그렇게 몇 대 맞고 있다가 지나가던 선생님께서 우리를 발견하셨고

형들이 도망가면서 그 상황이 종료되었다

 

난 그 상황에서도 그녀가 걱정되었다

그리고 내가 좀 폼 안나게 그녀를 구해준거 같아 쪽팔리기도 했다

그녀는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선생님께 불려가서 상황설명을 다 했다

담임선생님께서도 연락을 받고 오셔서 그 상황들을 다 전달 받으셨던거 같다

 

난 그날 저녁 집에서 부모님께 칭찬을 들었다

선생님께서 집에 전화를 하셔서 상황 이야기를 하셨고

그녀의 아버지께도 전화를 받으셨다고 했다

엄마는 아들 키운 보람이 있다고 칭찬해 주셨고

아버지께서는 그 와중에 그런 상황에서 몇 대 때리지도 못했다고 면박도 주셨다

 

맞았지만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갔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친구들이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남자애들은 병신같이 맞았다고 놀렸고 여자애들은 멋있다고 칭찬도 해줬다

 

난 우쭐했다

뭐 쳐 맞기만 했지만... 그래도 뭔가 내가 잘한일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거 같았다

그녀는 고맙다고 했고 난 별거 아니란 식으로 쿨하게 넘겼던거 같다

 

나중에 그녀의 집에 초대 받아서 갔을 때 그녀의 어머니가 발음 좀 못하는 한국말로

우리 딸이랑 잘 지내줘서 정말 고맙다고 인사도 해주셨다

난 그렇게 그녀와 잘 지냈고 우리 반에서 그녀와 나는 인증받은 커플이 되었다

항상 남자애와 여자애가 뭔가 같이해야 될 행사가 있으면 나는 그녀와 뭔가를 했었다

 

그렇게 학년이 끝났다

그녀와 나는 5학년이 되면서 다른 반이 되었다

비록 다른 반이었어지만 항상 오며가며 그녀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했고

그녀도 반갑게 인사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하시던 사업을 확장하시면서 더 넓은 공장 부지가 필요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결단으로 지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난 그녀에게 이사간다고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시간은 있었지만... 말할 기회가 없었던거 같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고

그 때 이후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러고 10년 가량 흘렀다

난 대학생이 되었다

당시 싸이월드라는 SNS가 유행하고 있었고 아이러브스쿨이나 이런 인터넷을 통해 예전 친구들을 찾는

그런 것들이 한참 유행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녀가 생각났다

잘 지내고 있는지... 뭘하고 있는지, 예전 그 모습처럼 잘 성장했는지

그리고 날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

 

난 다시 그녀를 찾아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당시 여자친구도 있었고 대학생이 된 나에게는 너무나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날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

나 혼자만의 추억일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나대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치 않게 그녀의 싸이월드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아이러브스쿨에서 어떻게 어떻게 경로를 알게 되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녀의 사진을 몇 장 볼 수 있었다

예전의 그 얼굴 그대로였다

그 때처럼 얼굴도 하얗고 이목구비도 너무 예뻤다

화장을 하고 많이 꾸몄지만 얼굴은 예전 그대로 였다

속으로 흐뭇하게 "잘 컸네"라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싸이월드를 보던 중

 

그녀가 일기장에 써놓은 글을 봤다

 

예전에 자기가 어릴 때 좋아했던 남자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천천히 읽어보니 그건 내 이야기였다

내가 선물로 줬던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 그녀가 선물로 줬던 물건들의 이야기

그리고 형들한테 괴롭힘 당할 때 구해줬던 이야기들이 써 있었다

그 때 친구가 많이 없던 그녀에게 먼저 다가와 친구가 되어 주었던 나에대한 고마움이 담담하게 써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는

내가 어디에서 뭘하던 항상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써 있었다

 

난 인터넷 창을 닫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안부를 건내려던 생각을 접었다

지금 내 모습보다 예전에 그녀가 기억하던 그 모습 그대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는 단 한번도 그녀를 찾아보지 않았다

 

그 때 이후로 한 2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오랜만에 문득 생각난 30여년전 그녀에게 한번 쯤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잘 지내니

너도 이제 아줌마가 되었겠구나

 

한 번 쯤 길가다가 널 마주치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는데

우리 이제 서로 알아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내 기억 속의 너는 항상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고 다니고 

오른손 약지에 어머니가 사주신 반지를 끼고 다니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네

 

나도 이제 아저씨가 되었네

니 바램처럼 난 잘 지내고 있다

 

그 때 인사도 못하고 갑자기 못 만나게 되서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20년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찾아본 너한테 인사 한마디 못 건넨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 정말 많이 좋아했던거 같아

사람들이 첫사랑이 언제냐고 물어보면 초등학교 4학년 때 였던거 같다고 이야기할 정도니까

 

언젠가 한 번쯤은 마주칠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이미 몇 번 마주쳤는데 서로 기억을 못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내 인생에 정말 좋은 추억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었다

 

고맙다 그리고 진심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네

 

언제나 행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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