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환 한나라당 의원이 이달 중 여성 징병제 도입을 골자로 한 병역법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하고, 7월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안보포럼(대표의원 송영선)의 토론회에서도 여성 의무 군복무 주장이 제기됐다. 한 여고생은 “남자만 의무 군복무 하는 건 양성평등의 원칙과 모든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지도록 한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또 최근 몇몇 인터넷 매체의 설문조사 결과 여성의 의무 군복무에 대한 긍정적 의견이 절반 가까이 나왔다. 여성도 국방의 의무를 지는 것이 옳을까.》
▼국방의무 공평하게▼
10년 전 육군여군학교장 재직 시절 이스라엘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스라엘 여군단장의 공식 초청을 받아 방문했기에 여군들의 생활을 세세히 지켜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 네게브 사막에 있는 기갑학교의 교육은 특히 인상에 남았다. 여군 상병이 탱크 부품에 대해 교육하는 교관이었으며 여군 일등병들이 탱크 정비병이었다. 이스라엘 여군들이 너무나 열심히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경우 여성도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하는 나라다.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나라 여성들도 이스라엘 여군들과 같은 자세로 군대에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이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방의 의무를 나눠진다면 안보는 더 튼튼해질 것이다.
저출산 시대의 도래로 남자 병사 징집 대상이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전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 인력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여성이라고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호주제 폐지, 남성 군필자에 대한 가산점 제도 폐지 등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고,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임에 틀림이 없는데 왜 국방의 의무만큼은 남성만 져야 한다고 하는가.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안보를 남성에게만 책임 지우는 것은 요즈음 말로 양성평등에 위배되는 셈이다.
잠시 현역복무 때를 떠올리면 당시 여군 장교 및 부사관 모집 경쟁률(1990∼1997년 평균치)이 무려 50 대 1이었다.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수많은 젊은 여성이 군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전산, 정보, 통신, 정훈, 부관, 의정, 경리, 간호 등 여성에게 적합한 병과도 많다. 기초적인 군사훈련을 체계적으로 실시한 뒤 군복무를 시킨다면 여성들에게도 큰 무리는 없다고 본다.
어떠한 제도도 100% 완벽하지는 않다. 여성에게는 육아 양육문제가 있고, 출산 문제가 있어서 의무 군복무를 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요즘 결혼이 늦어지고 있으며, 아무리 빨리 결혼한다 해도 18세에 결혼하는 경우는 드물다. 남녀가 서로 성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성차별은 없애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면 지금쯤 여성 의무 군복무 문제가 제기되는 게 시대의 흐름에도 맞다. 앞으로 구체적인 방안이 연구 검토되겠지만 여성 의무 군복무에 대한 법적인 조치와 보상이 주어진다면 여성들도 과감하게 국방의 의무를 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겨울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최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하는 한 병사가 후방에 계신 어머니께 보낸 안부편지 말미에 쓰여 있던 구절이 기억난다. “어머니 전방의 겨울은 너무 추워요.” 혹한 속에서 보초 근무에 여념이 없는 병사들의 고된 군대생활을 젊은 여성들이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남자들이 이 나라의 국방을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는 ‘얌체 같은’ 말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 여성도 달라져야 한다.
언제까지 여자는 약하고, 언제까지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야 할 것인지 젊은 여성들에게 묻고 싶다. 남녀가 공히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를 완수하면서 큰 소리로 권리도 주장하는 게 이 시대의 진정한 여성상일 것이다.
김화숙 재향군인회 여성회 회장
▼軍현실 무시한 발상▼
갑자기 국회 일각과 시민사회에서 여성 병역 의무제에 대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여남 평등시대에 여성이 못할 일이 어디 있으며 금녀의 영역이 어디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여성 징집제에 반대한다. ‘생물학적 차이’에서 오는 근육과 리더십, 전투성 등에서 여성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여성 의무 군복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방의 의무에 대한 평등을 주장한다. 그리고 여성이 군대에 가야만 성 평등이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발상의 전환을 해 보자. 다른 분야의 성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그렇게 둔감한 사회에서 왜 유독 국방의 의무에서는 ‘평등론’에 집착할까? 국방의 의무가 너무나 신성해서?
여성에 대한 사회경제적 차별이 여전하고 여성 임금이 남성 임금의 60%를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여성권한 지수가 후진국 대열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이 땅에서, 유독 군대 가서 성 평등을 찾으라고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성 차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것은 가정, 사회에 이어 군대에서까지 성 차별을 확대시키는 지름길이다. 저출산에 호들갑 떨며 국가적 대책을 논의하는 마당에 말이다. 남성만 군대 가는 게 성 차별이라면 고용, 가사와 양육 부문에도 특별평등법을 만들어 남성에게 강제하는 게 헌법의 평등 정신에 부합하는 게 아닐까?
징집제가 군사주의, 남성 우월주의, 권위주의, 폭력적 위계질서 등을 재생산하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상당수 남성도 군복무를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보상을 여성이나 미필자에 대한 ‘마초’적 공격에서 찾으려 한다. 그곳에 여성을 밀어 넣자는 말인가?
여성의 복무가 군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병영의 상식으로는 군대 가는 여성은 남성의 보조적 역할이나 전형적 성별 분업에 따른 ‘돌봄’의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여성 징집제가 군대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군의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기대에 불과하다. 물론 현 상태에서 여성의 군 입대 문을 넓히고 여성 부사관 및 장교의 비율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최전방 전투 병과도 여성이 남성과 함께 못 할 이유는 없다. 군은 남성의 고유한 성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징집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남녀공동병역의무추진위원회’라는 단체의 한 운영자는 “여성 대통령이 나오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며 남녀가 갈라서 싸우고 헐뜯는 게 안타까워 총의를 모아 보려고 이런 시도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비롯한 여성 지도자들이 군에 다녀온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군복무 문제는 남녀가 ‘갈라서 싸우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강자인 남성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가하고 있는 성 차별과 억압의 맥락 위에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하고 있다.
여성학 개론의 기초도 익히지 못하고 있는 ‘대한남성민국’에서 문제가 돼야 할 것은 여성 징집제가 아니라 징집제 그 자체다. 군의 민주화, 소수정예화와 첨단 군사기술 능력 증강이 미래 방향이라면 병영 내 인권 확립, 양심적 병역 거부의 권리, 대체 복무제, 모병제 등에 대한 논의가 더 바람직한 의제 설정이 아닐까? “내가 당했으니 너도 한번 당해 봐라”가 아니라, 내가 당해서 문제가 많다는 걸 알았으니 징병제 변혁에 여성들도 함께 힘을 모으자고 하는 게 올바른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