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mato (아래의 약간 보충)

PARAOH 작성일 06.07.18 16: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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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야마토의 최후- (1) 거함 '야마토'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4월. 반격전에 나선 미군 대병력이 오키나와에 상륙하면서 일본 본토를 향해 가까이 다가서자 일본 연합함대 사령부는 남은 군함 10척을 긁어모아 마지막 한판승부를 위해 출동시켰다. 이 특공함대의 기함은 사상최대의 전함가운데 하나로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던 '야마토'호 였다.

두께 56cm의 장갑선회포탑에 구경 46cm포 9문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공포를 갖춘, 만재배수량 7만톤급의 이 초대형전함은 그때까지 난공불락의 바다의 요새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일본은 스스로 이 초대형전함을 시대에 뒤진 유물로 만들어놓았다.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함재기들이 하와이의 진주만공격에 성공을 거둔 탓으로 거함이 주역노릇을 하는 함대끼리의 대해전은 이제 영원히 과거의 개념으로 밀려나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특공작전에 나선 일본해군병사들은 '야마토'가 일본제국해군의 체면을 세우기위한 제물로 바쳐지고있음을 알고 있었다. 육군이 오키나와에서 고분군투하고 있으니 비록 부질없는 일이지만 해군으로서도 뭔가 해야한다는 조바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무모한 결전에 나선 것이다. 그 처절한 비극의 진상을 40여년만에 재조명해본다.]



0.구레
전함 야마토의 기관총사수로서 어린축에 드는 19세의 '고바야시 마사노부'상등 수병은 상륙허가를 얻어서 양친과 마지막밤을 지내고있었다. 세 식구는 여관 2층방에서 밥상에 둘러앉아 있었다. 양친은 어색한표정으로 수병복차림의 아들에게 웃음을 던졌다.

1945년 3월의 어느날이었다. 전쟁은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일본의 모든 민간인들은 영양실조로 여위고 옷차림도 초라했다. 고바야시의 부모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골에서 그들을 싣고온 기차는 공습경보사이렌이 울리거나 작업반이 공습 후 잔해를 철로에서 치울때마다 멎었다 다시 움직이곤 했었다. 이곳 구레(당시 히로시마현 구레는 군항으로 관구사령부가 있었음.)는 그때까지 거의 폭격을 당하지 않았지만 다른 대도시를 날려버린 공습이 언젠가 있을것이라고 모두 각오하고 있었다.

수병들을 비롯해 가정주부와 중학생까지 동원되어 항구 북쪽 산중턱에 굴을 팠다. 수리공장의 기계들이나 선반들을 옳겨다 놓고 일할 수 있는 터널을 판 것이다. 그무렵 중학교수업은 1주일에 2번으로 줄어 들어있었다.

고바야시상병의 아버지는 불안한듯지만 말을 꺼내진 않았다. 그러나, 헤어지기 직전에 마침내 불안감을 드러냈다.

"전쟁 얘기인데 말이다. 미국은 아직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구나. 놈들의 폭격기가 우리 본토를 덮치고 있고 소문으론 오키나와가 공격을 받을 것이라던데....."

"맛있는 만두군요."

고바야시 상병은 어머니께 딴청을 부렸다. 모자는 서로 웃음을 주고받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소문은 항상 있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함내에서도 미군이 이미 오키나와주변의 몇몇 섬을 점령했다는 소문이 퍼져있었지만 그것을 부모에게 밝힐수는 없었다.

"물론 형세는 변하고 말고. 용감한 가미카제특공대가 적함들을 격침시켜 놈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일본 사람들이 다 죽는 사태가 오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고바야시의 아버지는 정부 선전기관의 판에 박힌 헛소리를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말에 이의를 들고나설 수가 없었다.

전황이 하도 절망적이다 보니 일본의 통수부는 물론 온 국민이 백일몽에 빠져들고 있었다. 13세기에 원나라의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갑자기 불어닥쳐 일본을 구해줬던 (그들이 하늘이 보낸 태풍이라 믿은) '가미카제(神風)'와 같은 기적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필리핀 방면에서 보여준 희생적인 자살공격이 그런 기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여겼다. 당시 일본인들의 입에 항상 오르내렸던 '톡꼬(특공:特功)'라는 말은 자살행위를 뜻하는 완곡한 일본식 표현이었다.

거리에서 호루라기소리가 들려왔다. 해군순찰대가 외출허가를 받아 상륙한 수병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가야겠습니다."

이제 부모와 두 번 다시 못 만나게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렇게 헤어질 때도 일본의 관습은 자제력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무턱대고 감정을 나타낼 수는 없었다. 뒷걸음으로 물러나 방을 나가기 전에 공손히 머리 숙여 인사하면서 말했다.

"저는 '야마토'호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1.거함 야마토
회색강철의 산더미 같은 야마토호는 위풍당당하게 세토 내해의 서쪽으로 선수를 돌렸다. 티크재로 덮인 길이 263m의 상갑판은 이물에서 고물에 이르기까지 흠잡을 데 없이 미끈하게 뻗어있었다. 이물에서 비스듬히 비탈을 이루며 낮아진 갑판은 제2주포탑이 있는곳에 이르러서 약간 솟아올랐다가 다시 고물을 향해 밋밋하게 내리 뻗어 있었다.

갑판부에는 27cm, 뱃전에는 41cm두께의 철판을 깐 선체는 5층의 갑판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갑판들은 다시 1147개의 방수구획실로 갈라져 있었다. 구조가 너무나 얼기설기 복잡하게 되있어 함내의 순회점검을 8명의 당직사관(갑판사관)이 나누어 실시해도 거의 1시간이나 걸렸다.

야마토는 사상 최대의 전함이었을 뿐 아니라 우아한 모습의 군함이기도 했다. 높이 41m의 유선형 함교는 시야가 탁 트여 망보기가 아주 편했다. 하나뿐인 거대한 장갑굴뚝은 고물쪽으로 25도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상갑판위의 상부구조물에는 크고 작은 화기가 고슴도치털처럼 비쭉비쭉 달려있었다. 우선 3문의 46cm거포가 장비된 주포탑 3기(전방 2, 후방1기), 15.5cm구경의 부포가 3문씩 장비된 포탑2기(전방1, 후방1기)가 있고 함중앙부에는 구경 12.7cm고사포가 2문씩 장비된 포탑 12기와 25mm기관총을 3정씩 장비한 기관총좌 48기, 13mm 기관총을 2정씩 장비한 기관총좌 8기가 있었다.

"키를 가운데로!"

야마토의 함장 '아리가 고오사꾸'대좌는 사방이 확 뚫린 상갑판의 방공지휘소에서 항해를 지휘하고 있었다.

"키를 가운데로!" 조타담당하사관이 그의 말을 복창했다.

함장은 혼자서 뭔가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는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이 팔리면 흥얼거리기 일쑤였다. 4개월전에 야마토의 함장으로 발령받은 48세의 아리가함장은 구축함함장 출신으로 중순양함 '쵸카이'의 함장을 지냈지만 이런 거함을 지휘한 경험은 없었다. 그래서 해군성의 몇몇 고급장교들은 그런 인물에게 세계최대의 전함의 지휘를 맡긴데 의문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땅딸막한 몸매에 분주히 함내를 돌아다니는 그에게는 해군성의 고급장교들이 중시하는 세련미가 부족했다. 부하들도 그를 '사무라이'보다는 '억센 시골농부'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무인으로서의 용기와 뱃사람의로서의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가토노 사카에'소위는 붐비는 승강구와 사다리를 헤아릴 수 없이 비집고 나가면서 자기 전투부서로 갔다. 그의 배치부서인 제8분대 응급지휘소에 닿기까지 한없이 걸어가야만 할 것 같았다. 겨우 최하갑판의 마지막 승강구에 기어내려가 보니 부하들이 모여 있었다.

각자 석면섬유로 된 방화복과 호흡장치를 착용하고 호스와 발포소화기, 모래를 담은 양동이등을 들고 뱃사람의 오랜 적인 해상화재에 대비하고 있었다.

간단한 명령을 받고 흩어진 그들은 조타실에서부터 후미의 우현 기관실이나 배 밑바닥의 만곡부(더러운 물과 기름이 괴는 곳)에 이르는 모든 문과 승강기를 죄다 점검했다.

전투 중에 이 밑바닥에 갇히는 것보다 더 나쁜 사태가 있을까 하고 소위는 생각했다. 게다가 일본해군이 피해대책에 대해 그리 진지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불안은 더 했다. 일본군은 공격을 강조하는 반면 방어적인 것은 가벼이 여겼는데 해군에서도 함정의 수리나 승무원 구조등은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다.

야마토의 참모들이 회의실에 모여 테이블위의 해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웃자리에 제2함대 사령장관 '이토 세이이치'중장이 서 있었다. 54세로 훤칠한 키에 등이 약간 구부정한 노련한 바다사나이였다. 그는 미국과의 전쟁에 반대했던 사람이었다.

추축국 풍자화에서는 엉클 샘(미국인)들이 마법의 병마개를 잘못 뽑아 '거인 사무라이'가 뛰쳐나오는 그림으로 진주만의 굴욕을 겪은 미국을 놀려댔지만 정작 병마개를 잘못 열어 복수심에 불타는 거인을 불러낸 것은 바로 일본인들이었다.

미군이 이제 오끼나와 남서쪽의 여러섬에 상륙함으로써 전쟁의 불길은 일본의 문턱까지 다가오고 있었음에도 일본국민들은 정부로부터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밖에도 5개월전 필리핀해역에서 파멸적인 패배를 당한 제국해군은 이제 그 여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등등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은 일들은 숱하게 있었다.

그때까지 야마토호가 한 군사작전이라곤 남양의 기지를 이리저리 전전하면서 가끔씩 여러곳에 흩어진 섬의 일본군 수비대에게 보급물자를 수송하는 일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1944년 10월, 필리핀의 레이테해전에서 한번 포격을 한 것 외에는 아무런 전투 실적이 없었다.
이 해전에서 야마토는 자매함 '무사시(武藏)'와 꽤 큰 규모의 보조함대를 이끌고 '윌리엄 F 할지'제독의 제3함대와 싸웠다.

여기서 무사시는 20발의 어뢰를 맞고 격침되고 야마토역시 폭탄 2발을 맞았다. 그러나 미해군 함재기들이 야마토를 집중 공격하려는 찰나에 할지제독은 일본해군이 미끼로 내보낸 항모함대를 주력으로 판단해 공격목표를 바꿔버리는 바람에 야마토는 이름만 남은 함대의 기함으로 일본으로 귀환할수 있었다.



전함 야마토의 최후- (2)명예로운 죽음의 길

2.특공함대
이토중장은 부하들에게 연합함대사령부가 해상특공작전을 고려중이라고 알렸다. 일단 야마토는 될수있는대로 많은 호위함정을 긁어모아 규슈 남단을 돌아 사세보군항에 입항해 대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미해군 항공기들이 반드시 야마토를 공격해올것이므로 그때 가미카제특공대를 집결시켜 야마토를 공격하러온 미군항모를 거꾸로 치겠다는 작전이었다.

이 계획을 들은 구축함함장들과 몇몇 사관들은 연합함대의 자랑인 야마토를 하찮은 미끼로 쓴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발상이라며 펄펄 뛰었다.
"이 작전계획에 나도 의문을 품고있다는 것을 솔직히 말하겠소."
이토중장도 시인했다.
"그러나 이것이 명령인 이상 우리는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 하오."

'이것이 우리가 지금껏 싸워온 결말이란 말인가.'
경순양함 '야하기'의 함장 '하라 다메이치'대좌는 생각에 잠겼다. 야마토를 중심으로 짜여진 특수임무부대는 고작 10척의 군함으로 이루어져있을 뿐이었다. 그중에는 3년이 넘는 전투로 닳아빠지고 상처입은 함정들도 있었다.

하라대좌가 지휘하는 야하기는 비교적 새로운 군함으로 마리아나해전과 필리핀해전에 참가했을 뿐이었다. 배수량 8500t의 이 경순양함은 35노트로 항해할 수 있었지만 어느정도의 타격에 견딜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야하기의 이물 바로 앞에는 건조된지 12년이 지난 구축함 '하츠시모'가 있었다. 이 배는 동급의 구축함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배였다.

하츠시모보다 조금 큰 구축함 '카스미'는 1939년에 취역한 배였다. 그너머에는 1940년에 취역한 구축함 '이소카제', '하마카제', '유키카제'(제가 올렸던 '시나노호 격침스토리'에 나왔던 시나노호를 호위했던 구축함들입니다. 왠지 반갑네요.)가 있었다. 이중 유키카제는 수많은 전투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승무원들 사이에서 '불침함'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나머지 3척의 구축함은 멀찌감치 떨어져 떠 있었다. 이중 '아사시모'는 필리핀의 레이테만에서 지근탄을 맞아 기관고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스즈츠키'는 유키카제와 함께 불침함이라는 평판을 듣고 있는 구축함이었고 '후유츠키'는 그 자매함이었다.

하라대좌의 오랜 전우로서 호위부대인 제2수뢰전대 사령관 '고무라 게이조'해군소장은 사방이 뚫린 야하기의 함교에서 그와 나란히 서있었다.

어떤 사관의 회고에 따르면 '함교 위의 덮개는 겨우 비를 가릴 정도의 것'이었다고 하는데 장갑판이 덮힌 조타실에서 야하기를 지휘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로 여겨졌다. 이는 40년전, 쓰시마해협(대한해협)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격파한 연합함대 사령장관 '도고 헤이하치로'원수가 장갑판이 덮인 조타실이 아닌 개방된 함교에서 해전을 지휘한 이래로 해군 사령관들이 전투시 자기몸을 보호하는 것을 전통적으로 경멸했기 때문이었다.

고바야시 마시노부 상등수병은 야마토의 갑판을 문질러 씻어내는 물청소를 끝낸 뒤 목욕하는 즐거움을 기다리곤 했다. 이 전함의 설계자들은 승무원을 위해 길이 10m가량의 목욕탕을 여남은개 마련해뒀다. 여자 입욕객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시골 고향의 목욕탕과 마찬가지였다. 젊은 수병들은 이따금 수건으로 비누를 머리위에 동여매고 양손 집게손가락을 잠수함의 잠망경처럼 물위에 내놓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욕조를 걸어서 건너곤 했는데 이것을 '잠수함 놀이'라고 불렀다.

'와타나베 미츠오'소위는 근무부서인 제1함교의 레이다실로 갔다. 유리를 낀 함교의 큰창들은 전투중에도 닫아두는 일이 결코 없었다. 밑을 내려다보니 수병들이 갑판을 닦거나 와이어의 녹을 긁어내고 기름칠을 하고 있었다. 총포사수들은 화기 분해청소에 바빴다. 깊숙한 바닥쪽에서도 탄약승강기나 전기회로를 점검하기에 정신없었다. 4개의 주 기관실에서는 기관수병들이 야마토의 산더미처럼 큰 터빈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뒤쪽의 제3주포탑이 무겁게 좌현으로 선회하더니 3개의 굵직한 포신이 최대앙각인 45도까지 치솟았다. 이 각도로는 대공화기로선 별 효과가 없었지만 3식탄이라는 신형포탄으로 미흡한점을 보완했다. '벌집'이라는 별명을 지닌 이 포탄은 유산탄이 여러겹으로 가득 채워져있어 시한신관을 맞춰놓고 발사하면 원하는 고도에서 폭팔, 6000개의 탄알이 산탄총 탄환처럼 사방으로 튕겨져 나가게 돼 있었다.
(3식탄은 전함의 대공방어화력을 크게 강화할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실전에서는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3.미함대
전함 '뉴멕시코'호의 14인치(35.5cm)주포들이 3분마다 불을 뿜을때마다 취역한지 오래된 이 함정의 선체가 덜덜 흔들렸다. '모튼 L. 데요'소장이 이끄는 미해군 '제54기동함대'의 함정들이 20Km쯤 앞에서 상륙작전중인 보병부대를 엄호하기위해 차례로 함포사격을 해대는 바람에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오끼나와 해변에 흙먼지가 분수처럼 터져오르고 있었다.

데요소장의 함대에 속한 전함은 모두 건조된 지 20년이나 되어 퇴역을 앞둔 노후함들이었다. 그렇게 고색 창연한 군함들이라 속력이 느려 태평양전쟁에서 주역으로 활약중인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한 고속의 기동함대와 함께 행동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상륙작전 첫단계에서는 최소한 상륙부대를 지원하는 '움직이는 포대'로서 봉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오끼나와에 대한 대규모 공격은 일본에 대한 미국의 보복을 총결산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다. 이곳은 도쿄로 진격하기 위한 마지막 남은 몇 개의 징검다리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흰머리 독수리'는 항공모함 '벙커힐'호 함교의 좁은 통로에 놓인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새 이름에서 따온 이 별명은 '마크 밋쳐'중장에게 잘 어울렸다.

1000대가 넘는 항공기와 이를 탑재한 17척의 항모를 8척의 고속전함, 15척의 순양함, 60척이 넘는 구축함이 호위하고있는 사상최강의 항모함대인 '제58기동함대'를 거느린 이 사령관은 희끗희끗한 백발이 섞인 머리카락이 비어져 나온 군모 밑에 독수리의 부리를 닮은 매부리코가 불거져 있고 연한 하늘색 눈동자가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밋쳐와 같은 해군항공력 증강에 심혈을 기울였던 선구자들은 태평양전쟁으로 높이 평가받게 됐다. 진주만에서 전함8척을 모두 잃고(4척격침, 4척대파. 후일 한척을 제외하고 모두 인양함.) 항공모함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2년사이에 미국은 에섹스급 항모 24척을 비롯한 강력한 항모함대를 구축했던 것이다. 에섹스급 항모의 전형은 밋쳐사령관이 탄 기함 '벙커힐'이었다. 배수량이 2만 7000t을 넘고 최고속력은 33노트 였다. 무장은 구경 5인치(12.7cm)고사포 12문에 길이 260m의 비행갑판 바로밑에 자리잡은 포총좌에 40mm보포스 기관포와 20mm엘리콘 대공기관포가 장비되 있었다.

함내에는 탄약과 화약고 및 항공기용 휘발유와 디젤연료가 가득찬 탱크들이 들어차 있어 상당히 위태로웠다. 그 같은 위험을 심각하게 인식한 미해군은 뉴욕시 소방본부의 노련한 소방관 '해럴드 버크'를 징용해서 소방책임을 맡겼다. 그는 화재방지에 만전을 기해 포말분무기와 소화기를 상하갑판에 30m마다 비치해 화재에 대비하게 했다.
그리고 적의 공격을 받게될 것 같으면 송유관에 찬 항공유를 저장탱크로 되돌려보내고 빈송유관과 저장탱크안에는 불활성 기체로 채우도록 했다.
(이런 조치의 효과는 미드웨이해전 당시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요크타운은 응급수리상태임에도 첫공격을 견뎌냈을뿐 아니라 두 번째 공습에도 침몰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일본잠수함의 공격을 받지 않고 무사히 예인되었다면 완전한 수리를 받고 다시 실전에 나갈수 있었을 것입니다.)

4.영예로운 죽음의 길
일본해군 연합함대사령부는 도쿄와 요코하마의 중간지점인 히요시에 있는 게이오대학 구내의 눈에 잘 띄지않는 밋밋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다. 위장된 건물들이 떼지어있는 언덕 중턱에 종횡으로 터널을 뚫고 그속에서 해군의 중추부가 은신한채 바다에서 이뤄지는 전쟁노력을 총지휘하고 있었다.

레이테해전이래 일본해군이 미해군의 적수가 될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연합함대사령부는 서서히 마비되어 갔다. 연합함대 사령장관'도요다 소에무'대장은 결단력을 완전히 잃은 듯 했다. 그러나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하는 의견은 언제나 많았다. 싸울 수 있는 함정은 다가올 본토 해역에서의 결전에 대비해 숨겨둬야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당시 일본은 항공전력을 재정비하기 위해 만주나 한국같은 지역의 군용기까지 긁어모아야 할만큼 쫓기는 형편이었다. 따라서 귀중한 항공기를 소모시킬 함대공중지원은 생각하기 어려웠고 공중엄호를 받지 않고 해군의 잔여함대가 미군의 오끼나와 상륙을 저지할수 있을것으로 보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야마토를 가미가제특공대의 미항모공격을 위한 미끼로 쓰자는 방안도 말하자면 미치광이 짓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가장 현명한자들은 의견을 내놓기를 삼갔다. 이미 패색이 짙어졌지만 공연히 입바른소리를 하는 것은 위험천만이었기 때문이었다. 깊은 생각 없이 함부로 지껄여대는 호전적인 대다수만이 이길 승산이 있건 없건 무조건 싸우는 것만 능사로 여기고 있었다.

'가미 시게노리'대좌는 그런 부류들중 으뜸가는 자였다. 바다에서 실전의 지휘를 맡았다면 그 호전적인 성격에 걸맞을 그리고 아마도 파국적이었을 탈출구를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미대좌는 선임작전참모로서 여기 히요시 사령부의 책상에 묶여있었다. 이런 사무적인 일은 그의 성격엔 영 맞지 않은 것이었다.

지금의 전황은 육군의 '반자이 돌격(만세 돌격)'같은 행동, 다시말해 적의 숨통을 노리고 막바로 쳐들어가는 단말마적인 공격이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옛 무사들은 어떻게 했던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건곤일척의 공격에 나섰을 것이다. 우리는 쓰시마에서 러시아함대와 맞섰던 도고제독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진주만에서 보인 야마모토사령장관의 기개를 상기하자!"

대좌는 외쳐댔다. 그러나 도고도 야마모토도 이만큼 압도적으로 큰 전력의 격차에 직면한 적은 없었다. 그 차이를 무사도정신만으로 바꿔놓을 수는 없었다. 전투기, 숙련된 조종사, 항모, 호위함등등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를 용기만으로 극복할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런말을 듣게되면 가미대좌는 길길이 화를 냈다.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헛소리야! 우리의 기백이 얼마나 큰지 보이는 것, 바로 그것이 필요해! 영광된 우리 조상의 정신을 말이다! 반드시 우리에게 신의 가호가 있을 것이다!"

연합함대사령부는 매일 아침 9시에 회의를 열었다. 1945년 4월5일 아침 정보참모가 엉성한 상황설명을 시작했다. 오끼나와에 상륙한 미군은 착실히 병력을 증강해 이제 10만이 넘는 적의 대군이 해변에 집결해있다는 내용이었다.

그순간, 가미대좌가 벌떡 일어나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해상특공대로 이름이 바뀐 제2함대는 내일 '덴이찌고(천일호:天一號)'작전에 참가하기로 합니다. 기함 야마토는 순양함 야하기외 8척의 구축함과 함께 4월6일을 기해 출항, 오끼나와의 미군을 공격해 격퇴시킬 것입니다. 적에게 최대한의 타격을 준 후 야마토는 해변으로 돌진해서 모래사장에 얹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생존승무원들은 상륙하여 오끼나와 수비군을 증원합니다."

너무나 어이없는 소리에 아찔해진 참모들은 그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자 도요다사령장관의 얼굴을 살폈다. 두손으로 턱을 괴고 앉았던 도요다제독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급참모가 기가막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특공함대를 출격시키기에 충분한 연료가 비축되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공격부대에 연료를 돌리게 되면 반드시 다른데서 그나마 부족한 연료공급량을 줄여야합니다."

그러나 가미대좌는 이런말로 간단히 반론을 일축해버렸다.
"이건 특공작전입니다. 연료는 편도분만 있으면 되요!"

이 한마디로 끝이었다. 야마토와 호위함들은 자살하도록 운명이 정해진 것이다. 모든일은 전날밤 도요다장관과 가미대좌가 장관실에 틀어박혀 술을 들면서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 끝에 정해진 일이었다. 그때 두사람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나중에 도요다장관은 특공함대가 절반쯤은 살아 돌아올 것으로 여겼다고 변명했다.

두사람이 특공함대에 요구했던 것은 오끼나와에 정박중인 적의 수송선단을 강타하고 상륙작전을 교란시켜 오끼나와 수비군이 미군을 바다로 몰아낼 기회를 주는 일뿐이었다.

가미대좌는 도요다장관이상으로 미군의 반격능력을 얕잡아봤다. 그가 횡설수설 늘어놓은 말은 대충 이런뜻이었다.

'적의 우세한 과학기술과 공업생산력은 대화혼(大和魂:일본정신)으로 무찔러주겠다! 희생이 생길수록 대화혼은 단련돼서 승리에 이바지할 것이다. 영웅적으로 산화한 영령들은 자비로운 신들과 손잡고 기적적인 반격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이 중대한 판국에 설사 하찮은 짓이라도 신이 가호를 보내 주실 것이다..... 이 얼마나 명예로운 죽음의 길인가!'

회의실의 참모들에게 작전계획을 설명하는 가미대좌의 얼굴은 광신자의 열정으로 불타고있었고 참모들은 어안이 벙벙한채 듣고만 있었다. 그는 혼자 구겨진 메모지를 쥐고 흔들면서 책상사이를 누비며 외쳐댔다.

'거함 야마토와 호위함들이, 동이 트기 전 어둠을 뚫고 적군의 한복판에 전속력으로 돌격한다! 겁쟁이 양키들은 우왕좌왕하며 어둠속에서 저희들끼리 무턱대고 총질을 할 것이다! 파도치는 바다에서 불타는 적의 함정들이 갈팡질팡 표류 할 것이다!..................'



전함 야마토의 최후- (3)천1호작전

5. 천1호 작전
암호전보에는 '극비'라는 도장이 찍혀있었다. 이토 세이이치중장은 그것을 두 번읽고 당직수병에게 모리시타참모장을 불러오도록 명령했다. 훤칠한 키에 골초인 제 2함대 참모장 '모리시타 노부에'소장은 머리에 곰팡이가 핀 일본해군 수뇌부의 사고방식에 서슴없이 바른말을 하는 소수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는 강철 사다리를 서둘러 내려가서 함교 바로 아래에 있는 사령장관실로 들어가 예의 바르게 차렷자세를 취했다.

이토중장은 손짓으로 의자에 앉으라고 권하면서 전보를 넘겨주었다. 모리시타가 전보를 읽고있는데 마침 아리가함장이 방에 들어섰다.

연합함대사령부의 도요다사령장관이 보낸 전보의 내용은 이런것이었다.

['천1호'작전을 개시하려 한다. 제2함대는 기함 야마토와 출동 가능한 모든 호위함정으로 제1유격부대를 형성한다. 유격부대는 해상특공작전으로 4월 6일 15시 세토내해를 출항하여 8일 여명 오키나와 서방 해상에 진입, 적 함정과 수송선단을 공격 격멸한다. 연료는 편도항해분만 공급된다. 이는 특공작전이니 양지하기 바람.]

아리가대좌는 의자에 깊숙히 앉아 뭔가 혼자 중얼거렸다. 모리시타참모장은 당장이라도 폭팔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투덜댔다.
"명령치고는 너무나 허술합니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의 명령이 접수됐을 때 '천 1호'작전은 공격계획이라기보다는 조잡한 가정과 기대를 뭉쳐 놓은 것에 지나지 않음이 드러났다. 계획에 따르면 야마토는 9척의 호위함과 동지나해로 급행해서 (대낮인데도 적과 마주치는 일없이) 10시간이나 류쿠제도를 따라 남하하다가 해질무렵 침로를 바꿔 오키나와의 미군 상륙지점으로 달려가 어둠을 뚫고 갑자기 튀어나와 일본함대가 습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을' 미함대를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적함대에 대해서는 미리 가미카제특공대가 맹공을 퍼부어 세력을 약화시키기로 돼있었지만 야마토함대 자체에는 항공기의 엄호가 없었다. 특공함대는 적에게 최대한 타격을 입힌 후 해안으로 돌진, 좌초시킨 뒤, 승무원을 상륙시켜 섬 수비병력과 합류한다는 각본이었다. 아울러 아먀토가 오키나와연안 산호초에 좌초된후에도 전함의 막강한 화력으로 계속 아군을 엄호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헛소리도 덧붙여져 있었다.
(전함의 포탑이 사격하는데 얼마나 많은 인원이 필요하며 동력은 어디서 얻는단 말인지...)

제2함대 포술참모 '미야모토 다카오'중좌는 명령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지만 제2수뢰전대 사령관 고무라 게이조소장은 사령부의 머리가 돌아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서슬이 퍼래서 휘하의 구축함함장들과 의논하는 것을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야하기로 돌아온 고무라소장은 소집된 함장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건 특공작전이 아니야. 특공대라면 공격목표를 두둘겨부술 가능성이라도 있어야 하지. 나는 내 자신의 죽음따위는 개의치 않지만 부하를 개죽음시키는 짓만은 못하겠네."
전대미문의 발언이었다. 일본해군에서 상부의 명령이 문제화된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런데도 마침내 고무라소장이 논쟁의 불씨를 붙였던 것이다. 회의에 나온 함장들은 거의 3년반이나 싸워온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중좌급을 중심으로 한 그들 역시 고무라와 같은 의견이었다. 연합함대 사령부는 차츰 이성을 잃고 있으며 막판에 '결정적인 무기'인 가미카제가 불어줄것으로 믿고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가뜩이나 부족한 항공기와 조종사들을 헛되이 버리는 것도 모자라 얼마 남지 않은 군함과 노련한 승무원들마저 낭비한다는 것은 범죄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하라함장은 차라리 태평양으로 출동해 방비가 약한 적의 병참선을 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무라소장이 야마토에 찾아가 전한 구축함 함장들의 반대의견은 정중히 묵살되고 말았다. 그는 풀이 죽은채 야하기로 돌아와 작전은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전했다. 하라함장은 후일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했다.
"고무라소장은 잘못을 비는 듯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실로 나타난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이렇게 말했다. '사령관께서 우리 일동의 입장을 대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제와선 전화위복이 되도록 온힘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연합함대사령부가 송신한 천1호작전명령을 방수해 해독한 미해군 암호해독반은 '일본군이 포위망 돌파를 계획중'이라는 지급 경고를 타전했다. 미해군은 이미 공중정찰을 통해 일본의 거대전함이 세토내해에 정박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수심이 얕고 기뢰가 숱하게 부설된 간몬(關門)해협(시모노세키-모지)을 이러한 대형함정이 빠져나갈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좀더 폭이 넓고 깊이가 깊은 붕고수도(豊後水道. 시코쿠-규슈)를 통해 출동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초계중인 미해군잠수함들에게 당장 붕고수도를 감시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야마토 함상에 '천 1호'작전의 신호기가 올라가자 고참수병들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들어서 군 상층부의 높은분들이 회천(回天)이라든가 천기(天機)등 '천(天)'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 되는 일이 없고 언제나 많은 수병들이 전사하곤 한다는 것이었다.

야마토의 부함장 '노무라 지로'대좌가 전원 집합 명령을 내렸다. 넓은 전방 갑판에 연록색 전투복의 장병들이 줄지어 이물까지 메웠다. 아리가함장이 작전 개요를 설명했다. 핏빛처럼 빨간 저녁 하늘 밑에 함성이 터져 올랐다. 함장을 쳐다보는 얼굴의 물결, 넘어가는 저녁 햇빛을 받아 후광이 비치듯 환한 그 얼굴 하나하나를 지켜보던 부함장의 눈에 눈물이 괴었다. 그는 함장 곁으로 다가섰다.
"야마토로 하여금 가미카제처럼 적을 무찌르게 해주십시요!"부함장이 외쳤다.
또다시 함성이 터졌다. 이어 천황폐하 만세를 삼창하고 수병들은 구보로 흩어졌다.

정숙하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흥분한 수병들의 속삭임을 막진 못했다. 전방갑판 아래에 있는 하급사관실(중.소위의 거실)의 젊은 장교들은 사태를 낙관하지 않았다.
"도중까지라도 무사히 갈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어느 소위가 중얼 거렸다.
고급사관실(대위 이상의 거실)에서는 초연한듯한 말투로 마치 남의 일처럼 이번 작전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지근탄의 충격에 선체가 얼마나 견딜지 볼만 하겠다고 말했다.

당직수병이 스카치 위스키를 돌렸다. 3년전에 일본군이 싱가폴을 점령했을 때 노획했던 산더미같이 많았던 술 가운데 일부였다. 만일 야마토가 가라앉는다면 몇해리 둘레의 생선이 모두 위스키에 취해 비틀거릴 것이라며 병참참모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노무라부함장이 그날 마지막 내린 명령은 출동을 자축하는 파티를 준비하라는 지시였다. 야마토의 취사병 80명이 전에없이 바쁘게 뛰어다녔다. 전통적인 축하식사로 팥밥과 도미가 배급되고 청주와 포도주도 다량 배급됐다. 술병이 연거푸 주석을 돌았고 수병들은 웃으며 죽음을 앞두고 술잔을 나누었다.
"미나토가와에서 만나세!"가 서로의 구호였다. 천황에 충성을 다했던 용장 '구스노키 마사시게'(1294~1336)를 모신 고베의 미나토가와신사를 가리킨말로 영령이 되서 거기서 제회하자는 의미였다.
"칠생보국(七生報國)!"이라는 구호도 나왔다. 일곱 번 태어나도 천황에게 목숨을 바치겠다는 뜻이었다.

당시 '레이먼드 스푸르언스'대장이 염려하던 진짜 위협은 야마토보다는 가미가제특공대였다. 항공사진에서 규슈의 위장된 50개 남짓의 비행장에 약 750대의 항공기가 집결된 것으로 밝혀졌던 것이다. 일본의 발표와 달리, 그 무렵 몇 달사이에 주력함대의 항모는 한척도 가미가제특공대의 자폭공격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런데도 스푸르언스대장은 4월 6일 아침에 전함 뉴멕시코에서 열린 회의에서 오랫동안 예상되어오던 가미카제 자폭공격이 임박했다고 강조했다.

일본군부는 미군이 가미카제특공작전에 겁을 먹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반응을 잘못 읽고 있었다. 미군은 겁먹었다기보다는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일본군이란 정신이 어떻게 된 자들인가? 이런 무리들이 인간일 리가 없다. 그런 지독한 독종들은 문자 그대로 멸종돼야 마땅하다.'
이런 생각이 퍼져 결국 나중에 일본에 대해 핵무기의 사용을 결정하는데 뒷받침하는 논거가 되기도 했다.

엷은 햇살이 약해지기 시작할 무렵, 미군무선병의 헤드폰에 신호음이 들어오면서 상공을 초계하던 전투기들이 오키나와의 북쪽 어딘가에서 치열한 공중전을 벌이고 있다는 경보가 들어왔다. 대공화기 사수들이 전투태세에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규슈에서 발진한 일본군 제24공격비행대의 제1진이 오키나와에서 상륙작전중인 미군을 덮쳤다. 그러나 전함이나 항모같은 큰 목표를 노리라는 명확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전투경험이 없는 젊은 조종사들은 손쉬운 소형함정만 골라서 달려들었다.

이들은 22척의 함정에 피해를 입혔으나 완전히 침몰한 것은 4척에 지나지 않았고 그날 아침 육군과 해군의 특공기 330대중 생환한 것은 직접엄호기 41대, 폭격기 17대와 극소수의 특공기뿐이었다. 도쿄의 라디오방송은 가미카제특공대가 전함2척과 소형함 57척을 격침시켰고 '적은 두 번다시 일어날 수 없는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고 방송했지만 실제로는 이날 일본은 주요 목표물을 하나도 공략하지 못했던 것이다.

6.비장의 예비연료
4월 6일 새벽2시, 세토내해 서쪽인 도쿠야마의 해군 연료보급기지에서 졸고있던 당직사관은 전화벨소리에 잠이 깼다.(도쿠야마기지는 일본해군 최대의 연료저장 시설이었다.) 야마토함을 비롯한 해상특공대가 얼마후 닿을것이니 오키나와까지의 편도항해에 필요한 연료만 공급하라는 지시였다.

지쳐서 텁수룩하니 수염도 깎지 않은채였던 도쿠야마기지의 참모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경계가 삼엄한 이 정박지에는 거대한 기름탱크가 즐비했지만 지금 보유중인 중유는 겨우 15000t이었다.(당시 오키나와를 공략중인 미 함대가 하루에 소비하는 양이 이정도였다.) 그런데도 도쿄의 높은 자리에 앉은 책상물림제독들은 오키나와방위라는 가망없는 작전에 귀중한 연료와 군함을 낭비하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특공함대에게 최소한 제대로 싸울기회를 갖게해주는 것이 기지가 할 도리였다. 그래서 도쿠야마기지의 참모들은 '비장의 예비연료'를 빼내기로 했다.

텅빈 유조탱크라 해도 펌프의 주둥이가 닿지 않는 맨 밑바닥에는 약200t가량의 기름이 깔려있게 마련이었다. 펌프는 닿지 않아도 사람이 내려가 마지막 한방울까지 손으로 퍼낼순 있었다. 이 기름은 서류상으론 존재하지 않는 기름이었으므로 사령부의 지시를 은근슬쩍 피해서 충분한 연료를 모을수 있을 것 같았다.

연합함대사령부의 허를 찌르는 이 작업에서 예상보다 많은 연료를 모을수 있었다. 명령은 해상특공대 전체 함정에게 2000t의 연료를 주도록 지시했으나 연료보급기지는 8000t에 가까운 연료를 보급해주었다.(그러니까 탱크 바닥에 깔린 연료를 모은 것이 무려 6000t이라는 말입니다. 티끌모아 태산? 이걸 장하다고 해야하나 헛고생했다고 해야하나...)
야마토의 노무라부함장도 도쿄의 관료적인 높으신 분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실제 수령량과는 큰 차이가 나는 연료보급 청구서에 기꺼이 서명했다.

한편 부함장의 부관인 당직사관은 자주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우편물을 나르는 연락정이 오전10시에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요시다 미츠루'소위는 양친앞으로 보낼 유서를 썼다.
'제가 쓰던 물건은 모두 처분해 주십시오. 두 분께서는 어떤경우에도 더욱더 꿋꿋히 살아가세요. 그것만을 기원합니다.'

하라함장은 이렇게 썼다. '나는 우리 함대의 오직 한 대남은 순양함의 함장으로서 출동하려 하고있습니다. 내가 행복한 마음으로 출동한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이런나를 자랑스럽게 여겨 주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그의 유서는 간신히 연락정의 출발에 댈수 있었다.

얼마후, 공습경보가 울려 각 함정의 모든 승무원들이 전투위치로 달려갔으나 경보는 곧 해제됐다. B-29한대가 고공을 날아갈 뿐이었다.

항공사진 촬영용의 카메라를 장비한 B-29의 기수를 구레에서 동쪽으로 돌리고 비행중이던 '프랭크 W. 셰이브'대위는 이때 야마토함대를 발견했다. 기지로 돌아온 대위는 지휘관으로부터 훌륭한 정찰이었다는 칭찬을 들었다.


전함 야마토의 최후- (4)자네가 해치우게!

7.야마토 출진
해가 규슈의 산등성이 너머로 질 무렵, 해상특공대는 붕고수도로 접어들었다. 수상정찰기의 조종석덮개가 바람을 받아 요란한 소리를 냈다. 수상기 조종사들은 적의 잠수함이 이 근처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해군의 레이다는 성능이 매우 떨어져 바다위에 떠있는 잠수함조차도 잘 포착하지 못했다.

방공지휘소의 아리가함장은 갑판의자에 앉아, 항해사가 전함을 해안에 바짝 붙인채 고속으로 몰고가는 솜씨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부근해역에서는 방심해선 안된다고 함장은 미리 주의를 주었다. 섬이나 해변의 낭떠러지에 해면아래에는 산호초가 잔뜩 깔려있는데 항해용 신호부표는 모두 가라앉아버리고 없었기 때문이었다. 긴장한 항해사는 교대시간을 기다리며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밤8시30분이 조금 지나서 아리가함장 곁의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무선반이 적 잠수함의 무전을 엿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적에게 발견 된 것이다.

규슈동쪽해안에 잠수하고있던 '스레드핀'호는 이미 야마토의 출항을 알리는 무전연락을 받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해역의 모든 잠수함들은 하와이의 총사령부의 허락을 받을때까지 공격하지 말 것을 명령받은 상태였다.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잠수함이 격침되기라도 하면 중요한 정찰보고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을 염려한 조치였다.

스레드핀호의 함장은 레이다의 연록색화면을 바라보았다. 밤 7시30분, 섬 때문에 생기는 반사파속에서 움직이는 4개의 희미한점이 나타났다. 2분후, 그 점들은 6개쯤으로 늘어났다. 함장은 그것이 2척의 대형함과 4척이상의 소형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일 가까운 거리의 적함은 구축함으로 6Km쯤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스레드핀호의 함장은 전방 발사관의 어뢰발사 준비를 명령하며 행동의 재량권을 묶고있는 명령을 저주했다. 적과 마주쳤다는 상황을 하와이에 보고하고 지시를 받자면 얼마나 기다려할지 몰랐다.
무전병이 투덜거리며 적함을 포착했다는 보고를 타전하고있을 때 함장은 레이다화면에서 일본함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스레드핀호의 함장이 애석하게 보고한 것처럼 그들은 이때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고바야시상병은 고동치는 단조로운 엔진소리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요시다소위는 레이다실로 향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좌우해상에 호위구축함들의 희미한 모습과 뱃머리에 부딪쳐 갈라지는 하얀 파도가 보였다. 차가운 바람이 쇠로된 마룻줄과 안테나사이로 휘파람소리를 내며 스쳐갔다.

요시다소위가 동틀녘 당직근무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고바야시상병은 전우와 교대해 포대 당직근무에 들어갔다. 포대속은 축축했고 대포를 덮은 캔버스에선 찬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와타나베소위는 함정들간의 통신연락 임무를 인계받고 제1함교에서 당직근무에 들어갔다. 가토노소위는 엔진의 진동이 직접 전해져오는 요란한 최하갑판 방수격실의 응급지휘소에서 부하대원들을 집합시켰다. 모리시타참모장은 야마토의 침로를 점검하면서 새담배 한갑을 뜯었다.

함대는 5분마다 침로를 바꿔 갈짓자를 그리며 22노트로 항진, 새벽3시에 규슈남단 가고시마만의 어귀를 통과했다. 그대로 서쪽으로 나아가서 규슈서쪽 240Km의 해상에 이르면 10시쯤부터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대낮의 위험한 항해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8시간에 걸치게 될 그 위험한항해를 무사히 마치게 되면 방향을 동쪽으로 잡아 오키나와로 돌진할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이었다.

낮게 깔린 구름사이로 아침햇살이 비치기 시작하자 아리가함장의 당번수병이 홍차와 면도기구, 비누, 수건을 들고 대야에 더운물을 담아 가져왔다. 함장은 면도와 세수를 마치고는 뭔가 흥얼거리며 멀어져가는 고국땅의 안개덮인 산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잘 봐 두어라! 고국땅을 보는것도 이게 마지막일테니까."
나이께나 든 '고야마'조타장이 모주꾼처럼 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고물쪽의 수상기격납고위의 평평한 갑판에서 해군체조를 하던 젊은 기관병들이 맞받았다.
"꺼져, 이 노망들린 영감탱이야! 아무도 야마토를 격침시킬순 없다구!"

함내스피커에서 노무라 부함장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연합함대 사령부에서 가마카제특공대가 어제 적어도 항모 4척을 격침시켰다는 연락이 들어왔으며 따라서 우리함대에 대한 적 항공기의 방해도 상당히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이었다.
젊은 기관병들은 이 방송을 듣고 더 요란하게 고야마조타장을 조롱했다.

아침식사가 끝나갈 즈음 나팔수가 전원 전투태세에 들어가라는 신호나팔을 불어댔다. 이미 머리위에 적정찰기가 와서 선회하고 있었다.

8.자네가 해치우게.
잠수함 스레드핀호로부터 보고가 들어오자 스푸르언스대장은 구식전함을 중심으로 편성된 제54기동함대 사령관 모튼 데요소장에게 요격을 명령했다. 아마 스푸르언스의 내면에 있던 전통적인 해군의 기질이 마침내 전함들끼리 맞서는 사상최후의 해전을 화려하게 연출할 기회가 왔다고 부추겼을 것이다. 해군의 항공전력이 중심이 된 이 전쟁에서 수십년간 갈고 닦아온 대함거포주의해전의 이론을 마침내 실전에서 시험해볼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마크 밋쳐중장의 제58기동함대가 이미 야마토를 요격하기위해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지론인 항공력이 전함을 능가한다는 주장을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결의에 차 있었다. 그는 58기동함대의 4개 지대가운데 3개지대를 야마토와의 전투에 투입할 생각이었다.(총 12척의 항모와 986기의 항공기였다.)
나머지 1개지대만으로도 오키나와상공의 공중엄호는 감당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밋쳐제독의 주임무는 오키나와 상륙작전을 지원하는 것이었으므로 오키나와에서 멀리 떨어질수는 없었다. 아군을 지원하면서 아울러 다가오는 적함대에 공중공격을 가할 수 있는 작전거리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자면 일본함대의 위치와 의도를 정확히 알아내야 했다.

함재기들은 목표상공에서 15분에서 20분까지밖에 머물 수 없을 것이다. 그 시간을 넘기면 모함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야마토는 아마도 류쿠제도 서쪽으로 나올 것입니다. 어둠을 타고 마지막코스를 달려 동틀 무렵에 오키나와에 도착할 예정이겠지요. 그러나 아군 정찰기를 속이고자 우선은 동진하는척 할것입니다." 밋쳐중장의 선임정보참모의 결론이었다.

4월 7일 새벽의 어둠이 걷히자 미해군 정찰기 3개편대가 항모에서 날아올랐다. 그들의 정찰구역은 사분원(四分圓)의 부채꼴로 규슈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태평양, 왼쪽으로는 동지나해까지 걸쳐있었다.

아침 8시 6분, 야마토함대를 발견했다는 첫보고가 들어왔다. 그런데 야마토함대가 북쪽으로 그러니까 일본쪽으로 항해하고 있다는 보고였다.(공교롭게도 함대가 지그재그로 항해하던 중 뱃버리가 북족으로 향한 상태에서 발견된 탓이었습니다.) 기함 벙커힐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어쩌면 그들이 변덕을 부려 모항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밋쳐중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뒤돌아 서는 일이 없을 거야. 반드시 덤빈다."

아침 8시23분, 고대하던 정정보고가 들어왔다. '적함대의 목적지는 오키나와.'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어졌다. 제58기동함대가 공격에 나설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가려면 앞으로 한시간 반은 더 걸려야 할 것이다. 밋쳐사령관은 심사숙고 끝에 참모장 '알리 버크'대령에게 지시했다.
"오늘 아침 10시에 총공격을 개시한다고 명령해주게."

항모의 비행갑판은 갑자기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숨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투기, 급강하폭격기, 뇌격기들이 차례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제58기동함대 제1지대의 항모 '샌 저신토', '베닝턴', '호넷', '벨로 우드'에서 함재기가 발진한후 제3지대의 항모 '에섹스', '바탄', '벙커힐', '캐보트', '핸코크'의 함재기들이 뒤따라 이륙했다. 이렇게해서 모두 132대의 전투기, 50대의 급강하폭격기, 98대의 뇌격기가 서북쪽으로 향해 출격했다.
(이중 15분 늦게 항모 '핸코크'에서 발진한 공격기들은 길을 잃고 말았다.)

아침10시45분에는 제4지대의 항모 '인트레피드', '랭글리', '요크타운'에서 다시 106대의 함재기가 출격했다.

공격기들이 모두 발진을 끝내자 밋쳐중장은 버크참모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푸르언스제독에게 내가 야마토함대에 대한 공격을 제안한다고 전해주게. 그리고 '제독께서 해치우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해치울까요.?'라고 물어보게"

스푸르언스대장은 오랜세월 기다려온 전함간의 해상포격전에 몸소 참가하기위해 자신의 기함 '뉴멕시코'를 이미 데요소장의 제54기동함대에 배속시켜두고 있었다. 연락을 받은 제독은 생각에 잠겼다. 야마토함대가 행운이나 혹은 58기동함대의 오산으로 함재기들의 공격을 빠져나올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따라서 데요소장의 전함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여전히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격제안을 만류할 명분이 없었다.
스푸르언스대장은 해군사상 가장 짧은 작전명령을 밋쳐중장에게 회신했다.

"자네가 해치우게!"


9.대공전투 준비!
쌍발의 거대한 마틴 초계비행정 2대가 구름 사이를 누비며 야마토호의 뒤를 따라가며 살피고 있었다. 야마토의 후갑판에 있는 주포탑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 비행정의 뒤쪽에서 포탄이 작렬하면서 큰 먹구름 같은 연기가 퍼졌다.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으나 피해는 없었다.

야하기의 함상에서 하라함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날씨가 재앙을 부를 것만 같았다. 구름사이로 가끔 비치는 눈부신 햇살은 거리의 목측을 어긋나게 했고 가끔 뿌리는 스콜(열대성 소나기)도 정찰기의 눈을 가릴만큼 세차지 않기 때문이었다.

함대는 야하기가 앞장서서 지그재그로 항진하고 그 뒤로 8척의 구축함이 서로의 항적을 엇갈리게 하면서 달리고 있었다. 야하기의 15cm포와 25mm기관포들이 미군의 초계비행정 2대를 겨냥하고 있었지만 사격하진 않았다. 아직은 탄약을 허비할 수 없었다.

구축함 아사시모호가 어딘가 고장을 일으킨 것 같았다. 뭉툭한 2개의 연통에서 황록색연기를 단속적으로 뿜고 있었다. 아사시모는 천천히 뒤로 처지면서 '기관고장'임을 알리는 깃발신호를 올렸다. (아마도 전에 필리핀 레이테만에서 지근탄을 맞고 일으켰던 고장이 제대로 수리되지 않았던 듯.) 믿음직하고 노련한 정예구축함 아사시모가 좌현 뒷쪽을 호위하고 있었기에 지금껏 마음이 든든했던 하라함장은 좀 불안해졌다.

하지만 야마토함상에서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일고 있었다. 어제의 가미카제특공대의 공격으로 미군항모의 손실이 크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 적 정찰기가 따라오곤 있지만 파상공격을 펼칠만큼 많은 함재기를 모으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새로 보급된 삼식탄을 시험하고자 후갑판주포가 구름사이로 들락거리는 비행정을 향해 일제히 불을 토했다. 순간 연통 뒤쪽의 모든 상부구조물이 무연화약이 터지는 구름에 휩싸였다. 질겁을 하며 구름속으로 숨는 적 비행정을 보고 아리가 함장은 낄낄 웃었다.
"저 친구들, 혼비백산 했을거야."

주 레이다실에서는 사병들이 요시다소위를 에워싸고 둘러앉아 전투 전야에 특별히 지급되는 천황 하사품 담배를 피우거나 포켓용 위스키를 돌려가며 한모금씩 마시고 있었다. 전투전에 상하 격식을 떠나 술을 나눠 마시는 것은 일종의 상례적인 일이자 어떤때는 행사이기도 했다. 소년병출신인 전령이 즐거운표정으로 오늘 밤참은 단팥죽이라고 보고했다. 요시다소위가 함교에 들렀을 때 모두들 놀랄만큼 마음편히 쉬고있었다.
"오키나와까지의 중간지점에 다다랐습니다." 누군가가 알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공레이다에 서남방향에서 다가오는 250대가량의 적기가 포착되었다. 이윽고 야마토함상의 수병들은 작고 까만 구름같은 덩어리가 구름을 뚫고 벌떼처럼 쫙 퍼지면서 좌선회를 하는 것을 봤다. 아리가 함장의 명령이 함내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졌다.
"대공 전투 준비!"

10.제1파 공격
-1-
제58기동함대 제1지대에서 발진한 함재기들은 항모 호넷호 소속인 '에드먼드 콘래드'중령의 지휘아래 일본함대 상공을 반시계방향으로 선회하면서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일본함대는 제각기 흩어져 잔잔한 바다위에 큰 S자형 항적을 남기며 회피항진을 시작했다.

선두의 순양함 야하기가 속력을 내며 함대전방으로 돌진해나갔다. 19km북쪽에는 기관고장인 아시시모가 홀로 뒤쳐져 있었다. 4척의 구축함은 야마토의 양옆을 질주하고 나머지 3척은 야하기를 쫓았다.

콘래드중령은 모든 조종사들이 최대목표인 야마토만을 향해 달려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호위함정들도 모두 격침시켜야 했다. 그는 지체없이 척척 지시를 내렸다.
전투기편대가 호위구축함들에게 기총소사를 퍼붓고 그틈에 급강하폭격기가 덮친다. 그러면 일본함대가 이들을 맞아 응전하는 사이 어뢰를 실은 뇌격기가 해면을 스칠 듯 위험한 비행을 하다가 목표에서 1000m정도의 거리에서 어뢰를 투하한다. 이때 사방팔방에서 어뢰를 투하해 목표함정이 회피항진을 해도 전부를 피할 수 없게 해야한다. 이같은 공격계획과 솜씨는 3년간에 걸친 태평양해전에서 갈고 닦인 것이었다.

콘래드중령은 항모 베닝턴소속의 헬다이버들에게 명령했다.
"덩치 큰 저놈을 잡아라!"

거의 같은 시간, 가미카제특공대의 제2진이 58기동함대에 덤벼들었다. 미숙한 일본조종사들은 대부분 목표를 찾기도 전에 격추됐지만 한 조종사는 노련한솜씨로 항모 핸코크의 앞쪽을 돌아 충돌하고 말았다. 그의 기체에 매달려있던 250kg폭탄이 좌현 격납고에서 폭팔했고 기체는 반전하면서 비행갑판에 대기중이던 함재기무리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함재기들은 타오르는 불길속에서 모두 잿더미가 됐다.

한동안 핸코크는 무시무시한 위기에 빠졌다. 개전무렵에 이런 타격을 입었다면 영락없이 격침됐을 것이다. 그러나 낮12시50분 화재는 진화됐고 오후4시30분, 핸코크소속 함재기들이 야마토를 찾지못하고 실망을 안고 귀함했을 때는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했다. 핸코크의 함재기들은 규슈해안을 따라 100km까지 비행했으나 야마토함대를 발견하지 못했다. 어쨌든 이날은 핸코크호에게는 정말 재수없는 날이었다.

항모 베닝턴 소속의 '휴 우드'소령은 헬다이버 4대를 거느리고 야마토의 함미상공에서 급강하했다. 야마토호는 좌현으로 기울어진채 이물로 반원형의 파도를 가르며 달리고 있었고 선체중앙부에 무리지은 대공화기에서 그들을 향해 끊임없이 불꽃을 쏘아올리고 있었다.
우드소령의 기체는 명중탄을 맞아 연료파이프가 두곳이나 절단되고 왼쪽의 급강하보조날개가 조금 날아갔다. 그런데도 그는 곳장 야마토의 고물을 겨냥하고 긴 상갑판을 가로지르며 폭탄을 투하하고 급상승했다. 뒤돌아보니 야마토의 굴뚝뒤에 폭탄이 명중해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그는 연료가 새는 기체를 달래며 겨우 귀함했다.

우드소령을 따른 나머지 3기도 총탄을 맞았으며 그중 한 대는 바다에 추락해 폭팔했다. 그러나 이 4기가 투하한 폭탄은 야마토의 주위에 높은 물기둥을 솟구치게 하면서 2발이 명중했다. 한편 항모 베닝턴의 전투기편대들은 콘래드중령의 명령에 따라 구축함들을 공격했다. 일본구축함들의 움직임은 잽쌌지만 곧바로 한척이 불길에 휩싸이고 다른 한척도 얼마후 폭팔했다.
하지만 이 첫공격이 생각만큼의 전과를 올리진 못했다고 콘래드중령은 생각했다. 일본함대의 대공포화의 탄막이 좀처럼 느슨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항모 호넷의 급강하폭격기들은 정확한 기총사격을 받아 4대가 공중폭팔하고 한 대는 바다에 불시착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항모 베닝턴의 나머지 헬다이버들은 야하기에 폭탄3발을 명중시키고 4척의 구축함에 각 1발씩 명중시켜 피해를 넓혀갔다.
이어 항모 베닝턴소속의 어벤져뇌격기 3대가 폭격을 받아 힘이 빠진 야하기의 대공포화를 뚫고 접근했다. 그들은 치열한 탄막속에서도 비행코스를 잃지 않고 접근하여 야하기의 우현에 어뢰 한발을 명중시켰다. 몇 초 뒤, 항모 호넷에서 출격한 8대의 뇌격기들이 폭포수가 거꾸로 치솟는듯한 탄막을 뚫고 야마토의 좌현을 노리고 돌입해 들어갔다. 그들은 포탄파편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해면에서 150m의 고도로 몇분동안 목숨을 건 저공비행을 감행했다. 정확히 어뢰를 투하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6대의 뇌격기가 피탄되었고 그중 한 대는 야마토의 이물 근처에 추락, 높은 물기둥을 올렸다. 그러나 큰 피해를 보면서도 어벤져들은 멋지게 부채꼴 각도로 어뢰를 투하했다. 4발의 어뢰가 야마토를 향해 정확하게 달려갔다. 항모 호넷호가 마련한 전투보고를 믿을 수 있다면 4발은 모두 명중했다.

경항모 샌 저신토호에서 발진한 헬캣전투기들이 그에 앞서 아사시모호에 공격을 가했다. 기관고장인 아사시모는 속수무책으로 암담한 상태였으나 완강히 저항했다. 전투기들은 갑판높이의 고도까지 내려와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그들은 아사시모호의 앞을 가로질러 질주해오다가 꼬리를 흔들어 감속을 하면서 기총소사를 했다. 전투기들이 두서너번 파상공격을 감행하자 아사시모의 갑판에 불길이 일기 시작하면서 대공포화가 잠잠해졌다.

그때 8대의 어벤져뇌격기가 사방에서 어뢰를 투하했다. 어쩔도리가 없는 아사시모호였지만 그래도 어뢰를 피하고자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느릿느릿 오른쪽으로 침로를 바꿔 2발을 살짝 피했다. 4발은 구축함의 고물로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그러나 나머지 2발이 선체에 명중, 그 폭팔로 아시시모호의 이물이 공중 높이 치솟았다. 그리고 다시 바다위로 떨어지는 순간 바다속에서 무시무시한 폭팔이 일어나면서 다시 공중으로 튕겨졌다.
'아사시모'호는 3분도 못되는 사이에 침몰하고 바다 위에는 몇 명의 생존자와 잡동사니들만 떠올랐다.

10.제1파공격
-2-
이토중장은 야마토의 아리가함장이 방공지휘소에서 다가오는 적기를 쌍안경으로 살피는 것을 봤다.
"뇌격기, 전투기, 급강하폭격기.... 저놈들, 뭐든 가지고 있군."
아리가 함장이 중얼거렸다.

야마토를 노리는 적기들의 주의를 다른곳으로 돌리기위해 야하기는 35노트가 넘는 고속으로 기함에서 멀어져갔다. 2대의 급강하폭격기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야하기의 좌현쪽으로 곤두박질해 왔기 때문에 하라함장은 뱃머리를 오른쪽으로 급회전시켰다.
지근탄이 떨어질때마다 바닷물이 하늘높이 치솟았다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상갑판에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이어 헬켓전투기떼가 갑판높이로 저공비행해오면서 더 많은 폭탄과 기총을 퍼부었다. 기관총탄이 야하기의 상부구조물을 마구 꿰뚫었다.

하라함장은 800m쯤 앞에있는 소나기구름 아래로 피신하려고 키를 돌리게 했다. 그러나 전투기들이 마스트에 닿을 듯 말 듯한 높이로 따라붙기 일쑤여서 야하기는 가까스로 폭탄을 피하곤 했다.
그때 4대의 어벤져뇌격기가 야하기의 바로 90도 옆구리로 산개하더니 일제히 어뢰를 투하했다. 하라함장은 급히 뱃머리를 돌려 흰파도를 일으키며 돌진해오는 어뢰와 선체를 평행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뱃머리를 반쯤 돌렸을 때 어뢰한발이 흘수선 아래의 함정 중앙부에 명중했다. 일순간 모든 소리가 잠잠해졌다. 강타를 당한 야하기는 엔진이 꺼지고 전력도 끊어졌다. 흘러나오는 중유가 고물뒤에 꼬리를 만들고 있었다.
뇌격기 3대가 다시 으르렁거리며 돌진해올 때 하라함장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야하기의 부채꼴 고물이 해면에서 번쩍 들렸다. 키도, 스크루도 거의 완전히 뜯겨나가고 없었다. 하라함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허망한 표정으로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딱 12분간 싸웠을 뿐이었다.(그래도 야하기는 전투가 거의 끝날 때까지 침몰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추가공격을 계속 받기는 했지만요...)

야마토는 그보다 더 혹독하게 맹타당하고 있었지만 이 거함은 그런 무서운 공격을 받고도 버틸수있도록 건조되어 있었다. 제1파의 헬다이버 급강하폭격기들은 적어도 450kg폭탄 2발을 명중시켰다. 한발은 최상갑판과 상갑판을 관통해서 중갑판에서 폭팔, 후부 좌현의 응급반원 전원을 전사시켰다. 다른 한발은 후부의 레이다실을 직격했다.

요시다 소위는 피해상황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기관총탄과 폭탄의 파편을 피하려고 몸을 한껏 구부린 채 소용돌이치는 연기를 뚫고 고물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엄폐물이 없는 상갑판 위에서는 살아남아있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기총소사를 받고 숨진 수병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을 뿐이었다.
레이다실은 박살나 있었고, 흩어진 기기류 사이에 피투성이의 고깃덩이가 뒹굴고 있었다. 요시다소위는 피범벅이 굳기 시작한 바닥을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미끄러지면서 상갑판으로 뛰어올랐다. 그때 상갑판에 폭탄이 한발 터지면서 그 폭풍에 날려 함교로 오르는 사다리에 쳐박혔다. 그는 현기증을 느끼며 사다리를 올라가면서 레이다실 피해상황을 큰소리로 되풀이해 보고했다.
"전원 전사, 수신기 전파, 사용 불능!"

이토사령장관은 함교 한구석에서 바위처럼 버티고 서 있었는데 아무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모든 함정이 저마다 스스로 방어하는것밖에 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모리시타참모장이 목쉰소리로 외쳤다. 우현 창너머를 놀란 눈길로 응시하면서, 담뱃진으로 누래진 손가락으로 구축함 하마카제를 가리켰다. 이 역전의 구축함에서는 연쇄적인 폭팔이 일어났고 선체는 두 동강이 난 채 이물과 고물만이 물 위로 삐죽 나와있었다. 잠시 후, '하마카제'호는 침몰했다.

노무라부함장은 파괴된 주배수관재반(뱃바닥이나 방수격실에 바닷물을 넣거나 뺌으로서 선체의 균형을 잡는 장치) 위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철갑으로 둘러싸인 사령탑에 뛰어들어온 고야마조타장이 놋쇠로 된 작은 주배수타륜을 되도록 빨리 돌렸다. 한 하사관이 비틀거리며 들어오더니 제7응급반원이 전원 전사했다고 부함장에게 보고했다. 노무라부함장은 갑판에 나가서 사태를 자기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폭격만 받았는데 적의 어뢰공격은 어떻게된 것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이때 꽝 하는 폭음이 터졌고 그바람에 그는 방구석으로 나가떨어졌다. 야마토호가 거대한몸통을 쥐어틀며 번쩍 공중으로 치솟는 것 같았다. 그가 입밖으로 내지 않았던 의문의 해답이었다. 어뢰들이 명중한 것이다.

아리가함장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도쿄의 높은 속물들은 구축함함장 출신인 배불뚝이 땅달보가 이 초대형전함을 제대로 지휘할 수 있을까 염려했는데, 그들에게 함장의 활약상을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는 야마토를 겨냥한 대부분의 폭탄을 능란하게 피했다.
그러나 함장이 급강하폭격을 피하는데 정신이 없을 때 우현쪽에서 뇌격기들이 저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뇌격기가 일렬횡대를 이루며 위협적으로 돌진해오자 야마토의 대공포대가 불길을 뿜으며 탄막을 쳤다. 그래도 뇌격기들은 고도 150m로 마냥 돌진해 들어왔다. 한 대가 비틀거리더니 편대에서 떨어져나가 바다에 쳐박히며 폭팔했다. 하지만 나머지 뇌격기들은 일제히 어뢰를 떨어뜨리고는 사방으로 재빨리 흩어졌다.

이제 야마토의 유일한 희망은 뱃머리를 돌려 돌진해오는 어뢰를 마주보면서 그 사이로 피해가는 것뿐이었다. 어뢰 하나가 급히 뱃머리를 돌리는 야마토의 이물을 스쳐지났다. 또한발은 고물의 후방으로 빗나갔다. 그러나 세 번째어뢰가 함교 뒤쪽에 명중, 폭팔하고 네 번째 어뢰는 좌현 바깥쪽의 기관실 옆을 꿰뚫었다.

기관수병이 노무라부함장에게 기관실에 물이 들어온다고 보고했으나 선체는 기울어지지도 속력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때 더 많은 헬다이버들이 나타나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고물쪽으로 급강하했다.

뇌격기 한 대가 고바야시상등수병의 시야에 들어왔다.
"사격, 사격! 쏘고 또 쏴라!"
그는 총신이 벌겋게 달아오른 3연장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연한청색의 배부분에 예광탄이 섞인 기관총탄을 맞자 뇌격기는 비틀거리다가 바다에 떨어졌다. 노란색 낙하산 3개가 뒤이어 바다에 내렸다.

구축함 후유츠키호의 우현 전투위치를 지키며 분전하던 수병들은 한순간 야마토가 격침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야마토는 숲처럼 치솟는 물기둥 속에서 그 위용을 다시 나타냈다.

대공포화는 끊임없이 불을 뿜으며 탄막을 치고 있었으나 최상갑판에는 새로이 몇 개의 폭탄구멍이 뚫렸다. 폭탄한발이 응급치료소로 쓰이던 고급사관실을 뚫고 들어가 작렬했다. 그 사실을 노무라부함장에게 보고한 전령은 아직도 구토를 하고 있었다.

다시 2발의 어뢰가 좌현에 명중하자 함내의 전화가 두절되었다. 노무라부함장은 점점 좌현으로 기우는 야마토를 바로잡기위해 주수판을 열고 우현 방수구획에 3000t의 바닷물을 넣으라고 명령했다. 야마토의 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으나 선체는 차츰 평형을 되찾았다.

적의 공격이 멎었다. 야마토는 큰 피해를 입었으나 결코 불구가 되어 전투력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아리가함장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함은 아직도 떠있다. 싸움은 지금부터다. 이젠 한숨을 돌릴때다."

그때 시각이 낮12시59분. 한숨돌리는 시간은 불과 5분도 가지 못했다.


11.제2파 공격
-1-
야마토함대에 대한 공격지휘권이 콘래드중령으로부터 제3지대 소속의 '하먼 어터'중령에게로 인계되었다.
"급강하폭격기 조종사들은 미친 듯이 곤두박질했어요."
어터 중령의 한 부하장교가 회상했다.
"뇌격기 조종사들도 적함에 아주 가까이 접근해 어뢰를 투하했기 때문에 어뢰를 떨어뜨리고 급상승할때는 비행기가 함정의 상부구조물을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곤 했답니다."

헬다이버 폭격기들이 하늘을 어지러이 돌고있는 가운데 야마토는 대공포화를 쏘며 허위적거리고 있었다. 야마토호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길게 꼬리를 달았다. 4명의 급강하폭격기 조종사들이 각각 함교에서 후갑판까지의 사이에 폭탄을 명중시켰다고 주장했다.

몇초후 또한발의 어뢰가 야마토 앞쪽 우현에 맞았다. 뇌격기편대들은 15초 간격으로 파상공격을 가했다. 야마토호는 큰원을 그리며 천천히선회하기 시작하면서 기울어 좌현의 아랫배를 크게 드러내기 시작해 더욱더 좋은 공격목표가 되었다. 조종사들은 모두 8발의 어뢰를 명중시켰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과장일 것이다.

이무렵, 경순양함 야하기의 상부구조물은 연기를 뿜는 폐허가 돼 있었다. 지근탄이 떨어져서 고물이 또다시 번쩍 공중으로 치솟았다 떨어지면서 굉장한 물벼락을 내렸다.

어터중령은 항모 바탄호와 벙커힐호의 뇌격기편대를 다시한번 야마토공격에 보냈다. 이 공격에서는 2발의 어뢰밖에 명중되지 않았다. 야마토의 대공화기가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했는지 말해주는 증거였다. 그러나 경항모 캐보트에서 날아온 19대의 강력한 뇌격기들을 제3지대의 마지막공격에 가세시키면서 어터중령은 이제 야마토의 운명도 경각에 달렸다고 판단했다.

항행속도가 떨어지고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야마토호의 좌현을 노리고 뇌격기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나중에 4발의 어뢰를 명중시켰다고 주장했는데, 어뢰 2발이 동시에 야마토를 강타했을 가능성도 있다.

시각은 낮 1시 30분. 적의 저항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단계는 이미 지나있었다. 제58기동함대 제4지대가 마지막으로 야마토의 숨통을 끊기 위해 날아오고 있었다.

-2-
야마토의 메인마스트에 펄럭이는 비단으로 만든 커다란 전투기(戰鬪旗)는 여기저기에 탄환구멍이 뚫려 있었으나 거함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불가사의할만큼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야마토는 아직도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기울어졌던 배의 균형도 회복되어 있었으며 속력도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아리가함장은 뭔가 흥얼거리며 사방이 트인 방공지휘소를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구축함 후유츠키가 야마토를 호위하려고 달려왔다. 30노트의 속도로 항진하는 뱃머리에서 파도가 하얗게 갈라졌다. 하츠시모는 야마토의 좌현쪽으로 다가오고 카스미호도 따르고 있었다. 경순양함 야하기호는 속도가 크게 떨어진채 뒤에 쳐져 있었는데 이소카제호가 구조하기위해 가까이서 대기하고 있었다.

미군기들의 공격이 잠시 중지되자 야마토함대에서는 양키들이 어제와 오늘 가미키제특공대에게 심하게 당한 뒤 혼신의 기력을 모아 반격전을 펴서 이제 기진맥진해진 것으로 해석했다. 이제 몇시간만 지나면 어둠의 장막이 특공함대를 감싸줄 것이고 그렇다면 이제 야마토는 더 이상 방해받지 않고 오키나와로 향해 적함대와 회심의 해전을 한바탕 벌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야마토는 원래 적함대와 포격전을 전개하기 위해 건조된 전함이 아니던가.

노무라부함장은 전화가 쓸모없게 된 것에 화를 내며 투덜댔다. 전령이 헐떡이며 뛰어들어와 좌현 바깥쪽의 제8기관실이 침수됐고 그 안의 기관수병들은 몇 명만이 빠져나왔다고 보고했다. 부함장은 다시 좌현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배를 바로잡기 위해 우현 방수구획에 2000갤런의 바닷물을 펌프질해 넣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좌현에 또다시 어뢰가 명중한다면 야마토의 평형은 위태롭게되어 아무리 바닷물을 펌프질해 넣는다해도 배가 기우는 것을 막을수 없게될 것이다.

"저기 놈들이 또온다!"
고바야시상병을 비롯한 기관총수를 지휘하던 하사관이 외쳤다. 기대와는 달리 또다시 미군기가 몰려온 것이다. 고바야시는 다가오는 적기를 향해 마구 기관총을 갈겼다. 머리위로 쏜살같이 스쳐가는 적기에 탄 사격수의 얼굴이 얼핏 고바야시의 눈에 들어왔다.
적사수는 악문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엄폐물이 없는 고바야시의 기관총좌에 총탄을 퍼부으며 지나쳤다. 고바야시 옆에서 총탄을 장전해주던 동려 '도도로키'상등수병이 오른쪽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었다. 그는 동맥이 잘린 듯 심한 출혈을 하며 죽어갔다.

고바야시상병은 응급으로 지혈조치를 하고 함 중앙부의 혼잡한 임시구급소로 도도로키상병을 운반했다. 그러나 군의관은 힐끗 보더니 그를 노려보며 명령했다.
"빨리 사수 위치로 돌아가. 이 친구는 죽었어. 시체는 저기 놔둬."
군의관은 턱으로 욕조를 가리켰다. 전에 고바야시와 수병들이 잠수함놀이를 하면서 목욕하던 그 욕조는 이제 시체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피의 목욕탕으로 변해있었다.

주포탑의 포수들은 삼식탄의 시한신관을 발사 후 1초만에 폭팔하도록 조절하고는 차례로 해면위에 쏘아댔다. 산탄과 물기둥의 막을 쳐서 다가오는 적기를 막아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벤져뇌격기들은 냉혹한 프로근성을 발휘하여, 육중하게 우선회하고 있는 야마토를 공격했다.

노무라부함장은 좌현에 3발, 어쩌면 4발, 우현에 1발의 어뢰를 맞았다고 느꼈다. 배의 속도는 18노트로 떨어졌다. 갑판이 갑자기 날카롭게 기울어졌기 때문에 아리가함장은 기둥을 붙잡고 몸을 가누었다. 거포들의 포격도 멎고 좌현의 함내스피커도 벙어리가 됐다. 걷잡을 수 없이 침수돼오는 보조타기실에서 몇 명인가가 통풍구의 뚜껑을 뜯고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가토노소위가 중갑판에서 혼자 꼼짝않고 유령처럼 앉아있는 자리에 전령이 요란스럽게 덜그덕거리며 사다리를 내려오더니 외쳤다.
"건현(흘수선 위의 뱃전에 있는 격실)에 바닷물을 대량으로 넣기로 했답니다. 제7응급지휘소는 우현의 모든 방수격실에 바닷물을 넣으라고 합니다."

가토노소위는 부하들을 데리고 갑판을 3층 내려가 선창갑판에 이르렀다. 방수구획의 작은 승강구를 열고 수병 3명을 주수꼭지가 있는곳으로 내려보냈다. 5~10분쯤 지났을 때 어디선가 어뢰 한발이 명중, 성당 종소리 같은 폭팔음이 울려퍼졌다. 소위는 수병들을 불러 올리려고 소리쳤다. 물이 벌써 발목까지 찼으나 소위는 계속 불러댔다. 그러자 한 하사관이 그를 잡아당겨 비켜세우고는 승강구 뚜껑을 꽝 닫아버렸다.

모리시타참모장은 우현 난간에 다가서서 고함쳤다.
"이리와 어뢰야! 여기다, 여기!"
어뢰가 함중앙부 우현에 명중하자 만족한 모리시타소장은 껄껄웃으며 아리가함장의 어깨를 툭툭 쳤다. 기울어진 함정을 바로잡는 방법으로서는 비싸게 먹혔지만 경사는 좌현으로 5도쯤 회복됐다. 이만하면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구축함 카스미가 비틀거리며 야마토쪽으로 다가왔다. 심한피해를 입어 제대로 조타가 않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2척의 배는 거의 뱃전이 맞부딪칠 정도로 접근해 나란히 떠 가면서 서로의 끔찍스런 상처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가 이윽고 항행불능에 빠진 카스미는 야마토의 좌현 후방으로 멀어져갔다.
구축함 스즈츠키는 폭탄에 뱃머리와 앞 함교가 날아가 버렸고 갑판에는 시체가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후유츠키호에는 로켓탄 2발이 명중했지만 운좋게 불발로 그쳤다. 유키카제도 큰 피해는 없었다.

무시무시한 폭음과 함께 야하기의 고물은 또다시 공중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다시 한발의 어뢰가 함수 우현에 맞았다. 상부구조물은 도끼로 난타당한 듯 엉망진창이었고 배는 산산조각나기 직전이었다.

구축함 이소카제호가 서둘러 야하기에 접근하려 했을 때 급강하폭격기들이 구름을 뚫고 나와 이소카제호를 덮쳤다. 이소카제호는 기관을 전속회전시키며 미친 듯이 피하고자 몸부림쳤지만 폭탄들이 꼬리를 물고 떨어져서 이 구축함을 강타해 시커먼 연기속에 휩싸여 버렸다.

제2수뢰전대 사령관인 고무라소장이 야하기의 하라함장의 팔을 잡고 동쪽하늘을 가리켰다. 100대가 넘어보이는 적기들이 해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12.제3파, 최후의 일격
꽤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미군기들은 다시 공격해왔다. 적어도 야마토의 승무원들은 그렇게 느꼈다. 그 사이에 통신과의 와타나베소위는 암호해독서를 파기처분할 준비를 했다. 요시다소위는 해군용의 큰 건빵을 한봉지 먹었다. 모리시타참모장은 분주히 함교의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계기류를 살피고 수병들에게 농담을 걸기도 했다.

일본함대는 아직도 공격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소카제는 치명타를 얻어맞으면서도 끈질기게 고사포로 응수, 급강하폭격기 한 대를 격추시켰다. 그러나 야하기는 이 마지막공격을 견디어낼 수 없었다. 만신창이가 된 야하기의 갑판을 마지막으로 살펴본 고무라사령관은 나지막히 말했다.
"자, 하라. 우리 슬슬 가기로 할까..."

하라함장은 천황의 군함을 침몰시키게 된데 대해 사과의 말을 중얼거리며 군함기에 경례를 붙이고 '전원 퇴함'명령을 내렸다. 시각은 낮 2시 5분이었다.
방공지휘소의 강철 갑판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자 오랜 전우인 두사람은 구두를 벗어던지고 물로 뛰어들었다.

물속에 잠긴 상갑판 위를 적기가 스쳐 지나갔다. 기총소사에 구명정 한척이 격파되어 13명이 죽었다.

하라함장은 5m쯤 헤엄치다가 침몰하는 야하기가 일으킨 큰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으나 얼마 후 튕겨지듯이 물 위로 떠올랐다. 눈을 떴을 때 까만 머리들이 주위에 보이기 시작했다. 시꺼먼 얼굴의 사나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하라! 무사한가?"
그것은 중유로 범벅이 된 바다에 떠있는 고무라사령관이었다.

급강하폭격기가 다시 치열하게 공격해왔을 때, 아리가함장은 무엇인지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곧 야마토는 다시 기울기 시작해서 경사는 좌현으로 20도가 됐다. 우현의 흘수선아래에 있는 방수구획이 수면으로 너무 높이 올라와 버려서 바닷물을 채워 평형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리가함장은 볼멘소리로 우현 바깥쪽에 있는 제3, 7, 11기관실에 바닷물을 넣으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하면 우선은 경사를 어느정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갑판 3층 높이인 함저의 세 기관실에 갇힌 300명의 기관수병들은 어떻게 될까? 일부 생존자들은 바닷물이 밀려들기 전에 기관수병들을 철수시킬 시간이 없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노무라부함장은 도망쳐 나올 시간여유를 줬다고 주장한다. 어떻든 분명한 사실은 세 기관실을 침수시켜 경사는 어느정도 회복됐지만 스크루가 마지막 한 개만 돌게 됨으로써 속도가 8노트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않아 어뢰 한발이 야마토의 고물에 명중했다. 키는 좌로 꺾인 채 움직이지 않게됐고 선회포탑은 크건작건 모두 고장났다. 야마토는 제어력을 잃고 왼쪽으로 맴돌게 되었다. 좌현의 뱃전은 거의 수면높이로 가라앉았다.

13.야마토호의 최후
이토사령장관은 흰장갑을 낀 손으로 쌍안경대를 붙잡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참모들에게 말했다.
"제군들은 죽으면 않된다. 나는 함에 머무르겠다."
그리고는 함교 바로 아래의 장관실로 들어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노무라부함장은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있는 아리가함장에게 말했다.
"경사를 바로잡을 가망이 없습니다."
함장은 그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말이 없었다.

"함장님, 배가 가라앉습니다!"
부함장이 외쳤다. 아리가함장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괴어 있었다.

"함장님, 부탁드립니다. 전원 퇴함 허가를 내려주십시오."

"좋소" 아리가 함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노무라, 귀관도 가시오. 누군가가 살아남아서 우리가 싸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야 할테니까."

노무라부함장은 곧바로 전원 상갑판에 집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아래쪽 여러층의 갑판에 있던 1000명이상의 승무원들은 탈출할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야마토의 이곳저곳에는 배와 운명을 같이하여 바다밑으로 빨려들어가 버린 장병들도 있었다.

승무원들이 이성을 잃고 뱃전으로 몰려 공포의 혼란이 빚어지는 사태를 막기위해 부함장은 상갑판으로 나온 수많은 수병들에게 바다에 들어가기전에 모두 소변을 보자고 했다. 그 자신도 실없이 낄낄 웃는 수병들 틈에 끼어 갑판배수구에 소변을 봤다.

사령탑에서는 고야마조타장이 아직도 타륜을 잡고 있었다.
"타륜에 반응이 없습니다."
그는 통화관을 통해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었으나 얼마후 잠잠해졌다. 나이 지긋하고 충직했던 그는 끝내 자기위치를 지키다 파도에 휩쓸려 버렸던 것이다.
(퇴함명령이 내렸는데 반응도 없는 타륜을 붙잡고 있다 죽다니... 고지식하다고 해야하나, 어리석다고 해야하나, 뭐라 말하기 복잡한 느낌입니다....)

몇몇사관들이 로프로 자기몸을 함내 고정물에 묶기 시작했다. 모리시타참모장이 달려와 사관들에게 주먹 세례를 하면서 고함쳤다.
"무슨짓들이야, 젊은놈들은 살아남아야해!"

와타나베소위가 해도실 테이블에 자기몸을 묶고있는 것을 보자 모리시타참모장은 소위의 빰을 때리며 소리쳤다.
"탈출해! 바깥으로 나가!"
요시다소위는 불같이 화를 내고있는 참모장에게 쫓겨 함교에서 뛰쳐나갔다.

항모 요크타운에서 발진한 6대의 어벤져뇌격기가 야마토를 향해 낮게 깔려서 돌진해왔다. 전함은 속수무책으로 좌선호를 계속하면서 우현 밑바닥을 수면위로 높이 드러내고 있었다. 4발이상의 어뢰가 야마토를 향해 달려왔다. 그중 몇발인가가 명중돼서 장갑대 아래에 노출된 함저를 꿰뚫었다.

"천황 폐하 만세!" 아리가함장은 외쳤다.

함장이 자신의 배와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은 일본 제국해군의 전통이었다. 그들이 영국해군의 관습을 따랐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영국해군의 전통은 함장이 맨 마지막으로 자신의 배에서 퇴함할 것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아리가함장은 자기 배를 잃은 선장에게 속죄를 강요했던 일본의 옛 관습에 따랐다고 보는 편이 진상에 가까울 것이다.

상갑판으로 올라온 가토노소위는 자기눈을 의심했다. 승무원들의 자랑이었던 야마토호가 침몰하려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함내스피커 하나만이 "전원 퇴함! 이것은 명령이다..."라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도 얼마후 잠잠해졌다.

야마토호의 우뚝 솟은 함교가 고속촬영화면처럼 천천히 해면으로 쓰러졌다. 바다 위에 떠있던 수십명의 수병들이 야마토의 거대한 굴뚝으로 빨려 들어갔다.

고바야시상병을 비롯한 일부 승무원들은 마지막순간까지 침몰하는 배위에서 파도를 피해 요리저리 옮겨다녔다. 그들은 차츰 기울어가는 갑판을 기어 높은 곳으로 옮겨갔다. 배 밑바닥의 창고에서 들려오는 천둥같은 굉음은 격벽이 터지고 무거운 부속물이 떨어져나가며 뒹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야마토호가 천천히 뒤집힐 때 고바야시상병은 우현의 뱃전으로 기어올라 만곡부 용골까지 가서 배밑바닥을 내려다봤다. 조개, 해초등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배 밑바닥 근처 물위에는 생존자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야마토의 거대한 청동색 스크루 4개 가운데 1개가 아직도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흰테를 두른 사관용 감색군모를 쓴 반라(半裸)의 한 사관이 '반자이!(만세)'를 외치며 상공의 미군기들을 향해 군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고바야시상병은 마지막 남은 전투식량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건빵이었다. 천황 하시품이라는 스탬프가 찍힌 담배도 나왔다. 그는 건빵을 씹으며 담배를 피웠다.

천지가 개벽하는 것 같은 거대한 폭팔이 일어나면서 고바야시상병은 바다로 튕겨졌다. 수중에서 일어난 이 폭팔로 몇십명의 승무원이 죽었다. 다시 물위로 솟구쳐오른 사람들중에는 배가 터져 창자가 튀어나오거나 코나 귀로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노무라부함장은 의식을 잃고 떠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됐는데 그 후 몇 년동안 내장 장애로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요시다소위는 눈이 쑤시고 허파가 터질 것 같아 물을 박차고 해면으로 떠올랐다. 주위에는 헤엄치는 생존자, 표류하는 시체, 까맣게 그을은 잡동사니 파편들이 널려있었다. 102분동안의 절망적인 전투 끝에 세계 최대의 전함이 남긴 것은 그것뿐이었다.

야마토호가 침몰할 때 일으킨 폭팔로 생긴 버섯구름은 6000m고공까지 치솟았고(이바람에 상공을 비행하던 미해군기 몇대가 폭팔에 휘말렸다고 합니다.) 250km나 떨어진 규슈 남단에서도 보였다고 한다. 4월 7일 낮 2시23분의 일이었다.

14.에필로그
침몰을 면한 후유츠키호의 제41구축함대 사령관 '요시다 마사요시'대좌는 선임 지휘관으로서 연합함대 사령부에 무전을 보냈다.

['야마토', '야하기', '하마카제'침몰. '아사시모', '스즈츠키' 행방불명. '이소카제', '카스미' 대파. 다른 함정은 운행가능. 생존자 구조임무 후 임무를 수행하도록 건의함.]

회답 전문을 기다리는 동안, 호위 구축함들은 생존자를 끌어올렸다. 생존자중에는 야하기의 하라함장, 제2수뢰전대 사령관 고무라소장, 모리시타참모장, 노무라부함장, 가토노소위, 와타나베소위, 요시다소위, 고바야시상등수병등이 끼어 있었다.

낮 4시55분, 후유츠키는 항행이 곤란한 '카스미'호에 어뢰를 쏴 침몰시켰다. 유키카제는 밤10시40분에 역시 꼼짝못하는 자매함 '이소카제'를 포격으로 가라앉혔다.

야마토의 승무원중 구조된 인원은 총269명이었다. 전사자는 제2함대 사령장관 이토 세이이치중장, 야마토함장 아리가 고오사쿠대좌를 비롯해 3063명을 헤아렸다. 제2수뢰전대에서는 1187명이 전사했다.

미해군의 손실은 항공기 10대와 전사자 12명뿐이었다.

4월 8일 새벽 1시23분, 연합함대사령부는 '작전중지. 사세보로 귀항하라'는 답신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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