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번과 둘째번은 한스 랑스도르프 함장이고 세째는 침몰전의 그라프슈페 네번째와 다섯번째는 자침하고 있는 그라프슈페.. 그라프슈페는 포켓전함이란 이상한 함종으로 분류되는데, 독일은 베르사이유조약에 의거 다음과 같은 제한으로 인해 그라프 슈페를 건조한 것입니다. 1) 독일해군은 구식 전노급전함(pre-Dreadnought) 6척, 경순양함 6척, 구축함 12척만을 보유할 수 있으며 잠수함은 건조할 수 없음. 2) 함의 교체는 건조된지 20년이 넘은 함에 대해서만 가능. 3) 기본배수량 10,000톤 이하, 주포 구경 11인치 이하의 함선만을 보유할 수 있음 그런데 이 구식 전함의 함령이 20년이 넘어가서 교체시기가 되자, 당시 독일해군은 이 제한에 걸리지 않으면서 신조함을 건조해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포켓전함입니다. 작은 선체(배수량 15000톤)에 강력한 화력(28cm주포)를 탑재한 포켓전함은 중순양급 선체에 전함급의 화력과 경순양함의 장갑을 갖춘 함정이었죠. 아뭏든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어드미랄 그라프슈페는 통상파괴전에 나섭니다. 당시 영국해군에 비해 모든것이 열세였던 독일해군은 최대한 영국주력함대와의 교전을 피한채 작전을 실시해야했지만 그라프 슈페호는 이 모든 악조건하에서도 최선을 다해 작전을 펼칩니다. 영국해군은 그라프 슈페호를 잡기위해 순양전함2척(레나운과 프랑스의 덩케르크),항모 아크로열과 허미즈, 중순양함4척(컴벌랜드, 엑세터 및 프랑스측 2척),경순양함2척(아킬레스, 아약스)등을 출항시킵니다. 물론 그라프 슈페호는 이들을 따돌리기 위해 온갖 기만책을 펼칩니다. 이렇게 교묘히 작전을 펼치던 그라프슈페호는 본국에 귀항하기 전 라플라타강 하구로 향했는데 공고롭게도 여기서 영국해군의 추격함대 중 일부였던 중순양함 엑세터 및 경순양함 아약스와 아킬레스와 마주쳐 교전을 벌이게 됩니다. 처음에 랑스도르프 함장은 이들을 경순양함 및 구축함 2척으로 이루어진 함대로 생각하고 자신의 우세한 화력으로 이들을 격멸할 생각에 접근했으나 곧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이 밝혀지죠. 아뭏든 이렇게 벌어진 해전에서 그라프 슈페는 중순양함 엑세터를 대파시키고 나머지 경순양함도 중파 시키는 전과를 거두나 그라프 슈페역시 곳곳에 피탄되면서 피해를 입었고 37명의 전사자가 발생합니다. 랑스도르프 함장은 함의 수리를 위해 우루과이의 수도 몬데비데오에 입항했는데 당시 국제법상 중립국 항구에 교전국의 함정이 기항할 경우 24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죠. 그래서 독일측에서는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처음에 비협조적이던 우루과이 정부가 결국 시간을 72시간까지 연장해 줍니다. 그것은 독일의 노력과 더불어 영국에서 연장해 줄것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당초 영국에서는 그라프슈페를 빨리 내보내라고 했으나 근처에 그라프슈페보다 대형함이 없었기 때문에(영국의 본대는 브라질의 리우데 자네이루에서 보급중에 있었음) 그라프 슈페호가 도주할 경우 그라프 슈페호를 잡을 방법이 없어서 영국으로서는 되도록이면 출항을 늦추게 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썻는데, 그중 하나가 라플라타강 하구 근처에 이미 영국의 순양전함 레나운과 항모 아크로열이 도착했다는 허위 소문을 유포시킨 것인데, 랑스도르프 함장은 이것을 사실로 믿고 여러 방법을 모색했는데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자침이었습니다. 그라프슈페호가 출항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당시 몬데비데오시민 25만명이 영국해군과 독일해군 함정간의 해전이 벌어질것으로 생각하고 바닷가에 가득 모였으나, 그들이 본 것은 해전이 아닌 자침하는 그라프슈페호였습니다. 그리고 3일 후 랑스도르프대령은 구 독일해군기위에서 권총으로 자살합니다. 그는 당시 처칠이 인정할 정도로 연합국 내에서도 존경을 받은 군인이었으며 그의 장례식에는 과거에 그가 침몰시켰던 선박의 선장까지 참석할 정도로 적에게도 인정받은 몇 안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영국신사보다 더욱 신사도를 펼쳐 보인 진정한 신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