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들로 명시된 아시아계 독일군포로 사진)
1944년 6월 6일 연합군중 미국의 일본인 집단수용소로 부터 군에 자원한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당일 잡힌 일본계 독일군
포로들을 심문하라고 명령한 연합군은 포로들을 심문한 그들이 당일 잡힌 포로들이 일본인들이 아니라고 보고하자
의아해 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포로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 연합군측 심문요원들은 당일 잡힌
아시아계 군인들중 일부는 구소련에서 자원했고, 일부는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자 그들에게 코리아면 일본이 아니냐고
묻자 그들이 극구 자신들은 일본이 아닌 코리아라고 하자 또 다시 의아해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소련에서 자원한 군인들 역시 대부분 스탈린의 일방적인 강제 이주정책에 희생되어 농사짓기 힘든 장소로
옮겨진 뒤 마음속에 구소련에 대한 분노가 들어차 있던 코리안들임을 알게된 연합군은 그들에 관한 기록을 당시
전사에 상세히 남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인 양경종이라고 알려진 인물
-번역- 이 사람은 일본군으로 징집됐다. 1939년 만주국경 분쟁시 소련군에 붙잡혀 Red Army에 편입됐다.
그는 (*주* 독일의 소련 침공 때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Atlantic Wall(추정:대서양 방어선)을 건설하는데
강제 투입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됐다.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 했다.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Utah 해안에서........
위사진의 이름 : 양 경종
생년월일 : 1920년 3월 3일
본적 : 신의주
관동군 입대 : 1938년
노몬한 전투 참전때 소련군 포로
1943년 여름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독일군 포로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유타해변에서 미군 포로
1945년 5월 영국 포로수용소에서 석방
1947년 미국으로 이주
1992년 4월 7일 미국 일리노이주 노스웨스턴대학 부근 거주하다 사망
평범하게 태어나 수많은 전쟁참화를 겪은 뒤 미국으로 이주
40년 넘는 세월을 평범한 미국시민으로 생활
슬하에 2남 1녀 자녀 둠.
결코 가족들에게는 자신의 전쟁경험을 이야기 한적 없다고 전해짐...
마켓가든 작전시 포로로 잡힌 몽고 의용병
제3척탄병사단의 태국인 의용병
독일군 군복을 입은 일본군 장교
중국 의용병
투르키스탄 의용병
철십자훈장을 받고 있는 헝가리 의용병과 국적미상의아시아계 의용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