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도 총만 쏘고 살 수 없다

똥꼬X 작성일 07.05.10 00: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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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2사단 선봉도서관. 역사관과 사이버정보방을 겸하고 있다. 평일은 점심시간과 오후 4시30분~7시 개방한다. 3천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진중문고 외 신간이 보급되지 않아 구간도서가 다수다. 사진은 일과중 취재차 개방한 것이어서 독서장면을 연출했다. 
 
 
2006년 국방비는 22조5129억원. 이 가운데 후식비와 우유비는 각각 860억, 518억원이다. 도서비는 2002년 이래 붙박이 10억. 0.005%다. 10억원을 육해공 3군으로 나누면 3억3천만원정도. 중대급에 풀면 19~20권꼴. 한해 한번 보급하는 ‘진중문고’는 그래서 20권 한질이다. 이례적으로 지난해 별도 30억을 들여 격오지 중대 875곳에 400권씩의 도서를 공급했다. 책에 목마른 일선부대에서는 감지덕지다. 군인이 강인한 체력에 총만 잘 쏘면 그만이지 무슨 책타령이냐고?

9년째 병영도서관 건립운동을 펴는 사랑의책나누기운동본부 민승현 본부장은 “군인들에게 반드시 책을 읽혀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군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사병은 2년여 동안만 군인입니다. 이들은 복무가 끝나면 우리 미래사회의 주체들이죠. 그러므로 병역을 감당하되 그로인해 고립, 퇴보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병사 개인은 물론 국가의 손해죠.”

 

해병대 2사단 상장대대 도서관. 책 1100여권과 독서대를 갖췄다. 2003년 말 이보영 중령이 대대장으로 부임하면서 옛 복지관을 개조하고 부사관 이상 간부들이 책을 모아 자체적으로 꾸린 공간이다. 매주 화, 목요일 두차례 동아리 활동시간이면 독서반 사병들이 모여 책을 읽고 토론 또는 독후감을 발표한다. 영내 병력 130여명 가운데 70명이 독서반이다. 이 중령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죽이기보다 책을 보거나 공부할 것을 권장한다”며 “주기적으로 바꿔주어야 할 정도로 독서반 호응이 좋다”고 말했다. 이런 자생도서관은 희귀사례에 속한다.

 

사병들에게 도서관은 먼나라 얘기다. 군단급 이상 제대와 군사학교 43곳에 설치된 도서관은 병사들에게 그림의 떡. 이런 형편에 민간단체인 사랑의책나누기운동본부가 추진하는 병영도서관운동은 가뭄에 단비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대대급 부대에 44개 도서관을 설치됐다. 본부장 민승현씨가 사재를 털어 만들어 오다가 2005년에 비로소 국가보훈처의 2천500만원 지원을 받았고, 2006년에는 국민은행 2억5천만원과 교보, YBM의 현물 지원을 받으면서 지원금 체제로 전환됐다. 운동본부의 노력으로 2003년 4월30일 병영도서관 설치를 위한 법령이 법제화되고, 2005년부터는 대대급 막사 신축때 반드시 도서관 시설을 짓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5년 60개, 2006년 70개 시설이 착공됐다. 하지만 콘텐츠 확보까지는 눈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부대 자생 책동아리 꾸린 곳도

병사들의 요구는 절박하다. 2006년에 사병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사병들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73.3%) △교양을 쌓고 인격 형성을 위해(60.1%) 책을 읽는다고 답했다. 57%는 독서가 군부대 생활이나 제대 후에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렇듯 책에 대한 수요가 큰 반면 △시간 부족해서 △내무반에서 멀어서 △읽을 만한 책이 없어서 △개관시간이 짧아서 영내 도서관 이용이 활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병 상장대대 김현우 상병은 독서가 일종의 사회복귀 준비라면서 도서관 책을 이용하지만 신간은 집에서 소포로 붙여온다고 밝혔다. 또 김태우 상병은 군대 와서 책을 많이 접하게 됐다면서 현재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고 전했다. 해병 1연대에서 면담한 7명의 병사들은 평소 사물함에 2~4권, 많게는 8권의 책을 보관해두고 읽고 있다고 말했다. 전역이 비교적 가까운 한 사병은 전공분야 관련 한두 권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일선부대의 노력도 눈물겹다. 육군 66사단 횃불도서관. 사랑의책나누기운동본부가 지원한 3천여권으로 2005년 개설된 이곳은 그해 2400여권, 다음해 1350권 등 새책을 보충하고 가평도서관과 협조해 2주단위로 50여권씩 대출받아 병사들의 수요를 맞추고 있다.

해병 2사단 선봉도서관. 2002년 운동본부의 지원을 받아 3천권으로 시작해 5년째인 현재 장서는 여전히 3천여권이다. 진중도서 3년치, 웅진과 한국문화진흥원, 김포외고에서 기증받은 게 추가됐지만 장병들의 신간수요에는 못 미친다. 도서관리를 맡은 최준영 중위는 보유도서의 3분의 1을 20~30권 단위로 꾸러미를 만들어 일선초소의 병사들에게 전달하고 한달 정도 간격을 두고 초소간 책꾸러미를 옮겨줌으로써 교체보급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전했다.

 

해병대사령부 정책홍보처장인 김태은 중령은 “현대전은 체력단련과 교육훈련을 통한 전투력 증강 외에 위급한 상황에서의 판단력, 사고력, 문제해결 능력을 필요로 한다. 출구는 책읽기다. 또 2006년 7월부터 실시된 주 5일제 근무로 휴무가 확대되면서 여가시간이 늘어났다. 이로써 독서의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진 셈이다”라고 말했다. 김 중령은 실제로 병사들이 책을 읽음으로써 병사들이 훈련에 적극적이 되고 할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게 되더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개인간 기합사고가 줄었다고 전했다.

 

기합 줄고 문제 해결력 높아져

주한미군과 비교하면 우리 군도서관의 열악함이 두드러진다. 주한미군은 현재 12개 기지 도서관에 장서 15만9000권을 갖추고 군인 및 관련 민간인들에게 서비스하고 있다. 대부분 오전 10시에서 저녁 8시까지 열며 인터넷으로 언제든 접속해 도서정보는 물론 전자책 2675권, 잡지 8000권, 연감류 등을 열람 또는 다운받을 수 있다. 네트워크와 자동화프로그램, 디지털화를 통해 오지 근무자한테도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문의를 받아 48시간내 답변하는 서비스가 특징. 한국전쟁 동안의 병영도서관 서비스는 유명하다. 1952년 1월부터 3500~4000권 단위로 장서를 반입하고 6월부터 1년 안돼 69개 도서관 및 기탁소에 사서를 배치했다. 1953년 휴전조인 무렵 5공군부대 도서관서비스는 13개 거점도서관, 49개 기탁소와 야전도서관에 8만5079권의 도서를 갖췄다. 제14보병 연대 제3대대에서는 지게도서관을 운영해 등짐으로 일선소대를 방문해 책을 공급한 사례도 있다.

현재의 병영도서관은 숫적 확대와 장서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지속적인 유지관리나 질적인 개선에는 눈길이 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상장대대 도서관의 경우 전체 1100권의 도서는 진중도서 101권, 일반기증도서 759권, 군 홍보물 및 잡지류 242권으로 구성돼 있다. 4분의 1 가량이 홍보물과 잡지류이고 일반도서의 경우 판타지나 무협지가 153권으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웅진과 랜덤의 일괄기증 도서외 일반 기증도서는 상당수가 구간도서들. 그런 탓인지 대출은 판타지나 무협지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독서반을 지도하는 김영규 소위는 신간인 진중문고 도서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선봉도서관은 도서에 도착순 일련번호를 매겨 관리하고 있다. 도서담당 간부는 책이 적은 탓에 분류기호를 따를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하고 기증하는 쪽에서도 구간보다는 신간들로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의 규정은 3만권 이상인 곳에만 사서를 둘 수 있다.

 

<병영도서관 운영모델 연구>(차미경, 2005)는 병영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사서, 독서전문가 배치 △도서관운영위원회 민관합동 구성, 도서선정위원회에 사병의사 반영 △병영도서관 전담부서 설치 △국립중앙도서관, 한국도서관협회와의 연계 △디지털 체제 준비 △사병의 도서구입시 혜택 부여 등을 권고하고 있다.

 

독서전문가·사서 둬 내실 기해야

민승현 본부장은 지자체 또는 지역도서관과의 연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군부대는 지역의 재난 구호를 지원하고 지자체는 군부대에 책을 지원하자는 식이다. 그는 경기도에서 2005년 5억원, 2006년 1억8천만원을 도서비로 지원한 사례를 들었다. 또 66사단처럼 지역도서관과 군부대 도서관이 결연해 도서를 교류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위로는 국방비 가운데 도서비용을 지금보다 훨씬 높여야 하고 아래서는 일선 지휘관들이 독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병사들에게 도서관 이용을 권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예 ‘일주일 3시간’ 식으로 규정에 명문화하는 것이 어떨까.” 조심스런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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