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땐 전화 해" 명함 돌리는 젊은 장교들

잭바우어24 작성일 07.11.29 13: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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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장교 최영환(26) 중위가 병사들에게 돌린 명함. 명함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최 중위 얼굴과 함께‘군생활이 힘들고 지칠 때 꼭 연락하라’는 문구가 담겨있다. /육군 제공

 

 

신세대 병영… 신세대 장교들 <上>

체면 벗고 병사들에 친구·형처럼 다가가

어학연수·공부 위해 월급은 50%넘게 저축

총장에 소신 발언… 부대운영에 인터넷 이용

동부전선 최전방 육군 제15사단 GOP(일반전초·前哨) 대대에서 정훈장교로 근무하는 최영환(26) 중위의 별명은 ‘유쾌한 장교’다. 그가 올해 초 만든 명함 덕분이다. 명함에는 최 중위가 우스꽝스럽게 웃는 사진과 함께 전화번호, ‘제대하고도 연락할 사람’이란 문구가 들어가 있다. 최 중위는 이 명함을 병사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그는 “힘들 땐 언제나 전화할 수 있는 형이라는 친근감을 주기 위해 만들었다”며 “내게 병사들은 지시의 대상이 아닌 귀한 손님”이라고 했다. “장교 체면에 안 어울린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아이디어 좋다”는 상급자들의 격려가 더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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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을 돌린 이후, 병사들이 일주일에 2~3번 이상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애로사항을 털어놨다. ‘언로(言路)’가 열린 것이다. 최 중위는 또 2주일에 한 번씩 발행하는 부대 소식지에 동료나 선·후임을 칭찬하는 코너를 만들고 애인·가족 사진 콘테스트를 여는 등 부대 분위기를 바꾸는 데 노력하고 있다.

요즘 신세대 장교들은 이처럼 과거와 크게 다르다. 과거에는 장교라면 ‘아버지나 어른’을 떠올리게 되지만 요즘 장교들은 ‘친구나 서비스맨’을 연상케 한다. 그만큼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

지난 22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오죽헌 시립박물관’ 1층 회의실에서 신세대 장교들의 그런 성향을 보여주는 장면이 벌어졌다. 공군이 단기장교의 군 발전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해 올해 처음 개최한 ‘참모총장과 함께 하는 동계캠프’에서 20~30대 초반 장교들의 ‘주문’이 쏟아진 것이다.

“사관후보생 장교들 중엔 우수 자원이 많습니다. 이들을 한데 묶어 ‘짬뽕’으로 끓이기 보다 하나하나 고급스러운 뷔페로 요리해 주시기를 제안합니다(하진우 소위·25).”

“구글 어스를 아십니까. 아깝게 버려지는 공군의 정찰 자산을 외부에 제공했으면 합니다(김문성 중위·26).”

공군 관계자는 “요즘 신참 장교들은 참모총장 앞이라고 해서 주눅들던 과거 세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간형 같다”고 말했다. 공군은 이번에 나온 우수제안 20건을 실제 정책이나 제도에 반영해 추진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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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장교들이 보여주는 특징 중 대표적인 것이 철저한 자기관리이다. 월급 관리가 단적인 예이다. “신구(新舊) 세대를 가르는 뚜렷한 경계선이 ‘월급 봉투’ 관리”라는 말조차 군내에 있을 정도다.

작년 초 임관해 전방 A대대에서 근무 중인 김모(24) 중위. 20개월째 월 150만원 급여 중 80만원 이상을 적금하고 있다. 그는 “내년에 전역하면 미국에 어학연수를 갈 계획인데, 그 비용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본지가 육군에 의뢰해 김 중위가 소속된 A대대와 인근 B대대의 위관급 장교 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은 평균적으로 월급의 50% 이상을 저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대대(위관급 장교 10명)는 평균 52.8%를, B대대(13명)는 평균 52.2%였다.

전방 부대 대대장인 한 육군 중령은 “예전엔 위관급 장교가 저축을 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었다”면서 “병사들 회식이나, 부대 물품 구입을 위해 주머니를 털고 나면 빈 통장만 남았다”고 말했다. 신세대 장교들도 병사들 회식이나 생일 챙기는 일은 하지만 선배들처럼 ‘내 모든 걸 바치는’ 식은 아니라는 얘기다.

육군 모 사단 항공대 헬기조종사 강모(31) 대위는 월급을 쪼개 한성대 국제대학원 국제안보전략학과를 2학기째 다닌다. 국가정책에 따라 등록금 50%를 감면받는다 해도 나머지 학비가 연봉의 10%나 된다. 강 대위는 “지금은 좀 무리하는 것 같지만, 군에 인생을 건 이상 내 미래에 투자하고 잠재력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군에는 강 대위처럼 자기 돈 내고 야간대학이나 사이버 대학에 다니는 학구파들이 적지않다.

특히 신세대 장교들은 가족과 친구는 물론, 군 부대 운영과 의사소통도 인터넷을 통하는 경우가 많다. 본지가 전방의 한 대대급 부대가 운영 중인 인터넷 카페를 조사한 결과, 지난 8~10월 올라온 게시물 440건 중 위관급 장교 12명이 올린 것이 170건이었다. 이 부대 관계자는 “병사 330여명이 올린 게시건수가 205건이고, 가족 등 민간인이 올린 게 65건인 것에 비하면 젊은 장교들이 인터넷 공간에 활발히 참여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육군의 한 장성은 “옛 장교들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해 가며 국가에 충성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요즘 장교들은 자신이 발전하는 것이 곧 조직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문화”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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